바이러스 맨 32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3-07 1

 국장님과 얘기를 마친 뒤에 늑대개 팀이 머무르는 천막으로 와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바이올렛 아가씨가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꽤 그럴 듯한 이야기네요. 부하들을 먼저 섬멸시키고 나서 지휘관을 쓰러뜨리는 것도 괜찮군요."
"네? 그런가요?"

 그냥 게임에서 나온 말을 했을 뿐인데 그걸 받아들인다고? 그러고 보니 나도 게임으로 시험해본 적 있었지 체력 많은 영웅유닛이 원거리 유닛 도움으로 적 1부대를 섬멸했었다는 걸. 만약 부하들이 전멸한다면 영웅 혼자서 결국 다굴맞고 사망했었다. 영웅 유닛 능력치가 먼치킨 수준이 아니어서 그런 거였다. 노다지 군단 지휘관도 정예 클로저도 상대할 수준인 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한석봉 님께서 생각하신 거죠?"
"네? 어떻게 아셨어요?"
"실은 국장님과, 이야기 하는 걸 들었거든요."

 레비아는 귀가 좋은 모양이었다. 차원종은 원래 인간 구조와 다르니까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나타는 이제 회복되었는지 구석에서 쿠크리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나타, 뭐하는 거에요?"
"뭐야? 내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마."

 자세히 보니 쿠크리로 나무 토막을 깎고 있었다. 모양으로 봐서는 새처럼 보였다. 나타에게 조각 취미가 있는 건 처음 알았다. 평소에 성격이 나쁜 불량배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순수한 모습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새를 조각한 걸까? 게임 속에 나온 묘사가 금방 생각나게 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한석봉 씨.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 새를 조각한 걸 말이에요."
"야! 시끄러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바이올렛 아가씨가 물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나타가 왜 새를 조각했는지 금방 떠올렸다. 본인이 듣는 곳에서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클로저니까. 지휘관이라면 팀원이 싫어하는 행동을 안하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가 국장님과 논의한 작전이 있습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레비아 씨가 될 거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네! 물론이에요. 뭐든지 시켜주세요."

 뭘 시킬 줄 알고 두 주먹을 불끈 쥘 정도로 의욕이 넘치시는 걸까? 물론 나야 고맙긴 하지만 조금은 긴장해줬으면 했다. 나타도 흥미를 가졌는지 조각하다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지하에 폭발물 실험장만한 구멍을 만들어낼 겁니다. 레비아 씨는 지휘관을 그곳으로 유인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최대 힘을 발휘해 최대한 오래 버텨주십시오. 그동안에 다른 클로저들이 군단을 섬멸하고 그곳으로 합류할 겁니다."
"어머, 설명하는 게 마치 작전 참모같네요. 국장님의 생각인가요? 아니면 당신 생각인가요?"

 하피 씨 눈빛이 무섭다. 마치 홍시영 감시관님처럼 얼음여왕같은 미소를 보이고 있으니까. 

"누구 생각인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지휘권이 있는 국장님께서 최종적으로 결정하신 작전입니다."

 내가 했다고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 전투에서 커다란 공을 세워 위로 올라갈 생각은 없었으니까. 게임 주인공 설정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 거 같았다. 공적 욕심이 없고, 당연히 할 일을 하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일이 많았으니까.

"야! 그건 나에게 넘겼어야지. 그 재수없는 자식에게 한 방에 나가 떨어져서 짜증나는데!"
"괜찮아요. 당신에게는 다른 역할이 있으니까요. 노다지 군단 후방을 급습해서 섬멸하면 돼요."
"후방이라고?"
"지휘관은 부하를 아끼는 편이에요. 레비아와 싸우는 중에 부하들을 다 잃게 된다면 엄청 분하겠죠?"

 나타는 상대방이 도발에 먹혀 분노하는 모습을 즐기는 편이었다. 예상대로 나타는 씩 웃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타 성격을 가진 게임 캐릭터의 특징을 알고 있어서 운이 좋았다.

"키야하하하하! 그래. 그 자식이 분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겠구만. 좋아. 이 나타님이 기꺼이 맡아주도록 하지."

 가슴에 주먹을 툭 치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받아준다니 다행이었다. 예전 벌쳐스 감시 요원은 나타가 명령 불복종하려는 일이 많아서 리모컨을 계속 작동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그럴 일이 거의 없을 거 같았다. 나타 성격에 맞는 작전을 제안했고, 국장님도 순순히 받아주셨으니까. 그런데 왜 반대하지 않았지? 국장님이 너무 쉽게 나를 믿어주는 것도 이상했다. 

*  *  *

 밤이 되었다. 모두가 잠들고 클로저 몇 명이 경계 근무를 하는 사이에 밖으로 나와 커다란 돌 위에 앉았다. 녀석들이 쳐들어 왔을 때 작전은 시작된다. 폭발물 실험장 크기의 지하는 클로저들 힘으로 금방 완성되었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밤하늘을 본다. 그녀의 얼굴이 달을 가리는 거로 보였다. 분홍색 단발머리에 푸른색 눈동자, 아, 언제 봐도 귀여워, 빨리 만나고 싶다.

"한석봉 씨."
"히익!"

 한참 좋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부르는 목소리에 놀랐다. 아가씨도 잠이 안왔는지 내 옆으로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조금 가까운 거 같은데 1m 정도 거리는 괜찮으려나? 

"그 여자애를 생각하신 거에요? 완전히 빠진 게 너무 티가 나요."

 정신줄을 놓아서 들켰다. 설마 그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겠지?

"낮에 했던 질문에 답해주세요."
"네? 낮에 했던 질문이라면 나타 말인가요?"
"네."

 그게 그렇게 중요했나?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마침 여기에 나타도 없으니까 상관 없을 듯 했다. 본인이 있는지 먼저 고개를 돌려 확인한 후에 입을 열었다.

"나타는 자유를 갈망하고 있어요. 그래서 새를 조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목에 달린 초커에게서 자유를 찾고 싶었겠죠."
"맞아요. 초커를 단 노예들은 자유를 원하는 법이죠. 나타를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요? 역시 당신은 유능한 인재에요."
"너무 추겨세우지 말아주세요. 전 단지 그와 비슷한 사람을 봤을 뿐이에요."
"그 비슷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그게...... 게임에서 나오는데요."

 게임이라는 말에 아가씨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게임 캐릭터는 가상이기에 현실적이지 않다. 그걸 잘 알고 계셔서 이해가 안 되신 듯 했다. 옛날 게임이라면 캐릭터 설정 개연성 문제가 있었겠지만 요즘은 캐릭터 개연성을 잘 살려내는 명작 게임이 많이 나오기에 나도 알 수 있는 거였다.

"전 나타 요원에 대해 완전히 모릅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는 알 수 있었어요. 나타는 사람을 죽였다고 하지만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자가 아니에요. 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죽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죽이라고 강요를 받아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아가씨가 놀란 표정을 보였다. 왜 저러시지? 이해가 안 되셔서 그러나? 추가로 더 설명하려고 했지만 아가씨가 한손으로 재빨리 내 입을 막았다.

"쉿! 조용히 하세요. 그런 일을 말하면 안 되요. 혹시 나타 요원이 밝힌 사실인가요?"
"아뇨. 제가 생각한 건데요."
"절대 그런 사실을 입밖으로 내지 마세요. 그건 벌쳐스 처리부대 기밀사항이에요. 감시 요원인 당신이 알 권리는 없어요."
"네? 그건 몰랐습니다."

 아니, 내가 추측한 게 기밀이 된다고? 왜 나타에 대해서 기밀로 처리했을까?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을 듯 했다. 나타의 과거가 알려지게 된다면 벌쳐스 회사가 곤란해지니까 그런 모양이었다. 솔직히 나는 기밀 자체를 모르는데 운 좋게 알게 된 느낌이었다. 정말로 이래도 되려나?

"하나 물어볼 게 있어요. 석봉 씨."
"네."
"당신은 원래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나요? 아니면 차원종에게 인기가 많았나요?"
"네? 전 그런 거에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친구도 별로 없고요."
"흠. 그럼 어째서 레비아가 당신을 잘 따르는 거죠? 레비아와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세요."

 갑자기 무서운 눈빛으로 쳐다보셨다.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지? 말을 잘못했다가는 나를 금방이라도 덮칠 사나운 야수처럼 느껴졌다. 레비아가 얼굴을 붉힌 거 때문인가? 차원종과 감시 요원이 가까워지면 뭔가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는 모양이었다.

"저... 저는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어서...... 그러니까. 레비아 마음은 받을 수 없어요."
"제가 말하는 건 그게 아니잖아요!"
"으앗!"

 무서워. 목소리도 왜 이렇게 섬뜩할까?

"으흠, 실례했군요. 제가 묻고 싶은 건 레비아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느냐는 거에요."
"트레이너 씨에게 말씀 드렸어요. 게임인 거처럼 거짓말로 해결했거든요."
"이해가 안 되는 방법이군요. 그 게임이라는 게 그렇게나 유용하던가요?"
"한 번 해보실래요?"

 눈을 반쯤 감은 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셨다. 이럴 때는 그냥 게임을 직접 해보시는 게 좋겠지. 주로 스토리가 있는 게임을 하는 걸 추천했다.

"게임 스토리를 보시면 이해가 되실 지도 모르겠어요. 레비아 씨의 또다른 인격이 어떻게 본래 몸을 차지하는 지 그 원리를 깨닫게 했어요."
"호오, 패턴을 깨닫게 했다는 건가요? 어디 그럼, 해볼까요?"

 캐릭터 하나가 총기류로 보스와 싸우는 게임이었다. 조작방법을 알려준 뒤에 플레이하게 했다. 그렇지만 5초 이내에 캐릭터가 사망했다.

"아니,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제가 보여드릴게요. 이렇게 하시면 되요."

 보스를 처리하는 걸 보여주었다. 내가 클리어하는 모습을 본 아가씨는 신기하다는 듯이 내 게임기를 낚아채 다시하기 버튼을 눌러 플레이했다. 의외로 승부욕이 강하시네.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2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