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31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3-06 1

 릭스마이너는 석봉을 놔주고 레비아의 돌진을 피했다. 인간의 위상력이라고 전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침을 하는 석봉이에게 다가가 부축여주는 걸 보았다.

"묘한 일이군. 너는 용의 군단 소속 아니냐? 왜 나약한 인간을 구하지?"

 지구로 오기 전, 용의 군단과 싸웠던 기억이 있었다. 그 때 느꼈던 위상력이 용의 힘이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석봉은 레비아에게 맡기고 자리를 피했다. 릭스마이너의 삼단봉이 그녀의 얼굴을 조준했다. 

"대답해라. 너도 역시 적이지만 인간의 적이었던 용의 군단 소속이 인간을 돕는 이유가 궁금하다."
"대답할 이유는 없어요. 한석봉 님을 공격한 건 용서할 수 없어요."

 레비아의 손에서 분홍색 레이저가 뻗어나갔다. 릭스마이너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피해내며 그녀에게 접근해 삼단봉으로 내리쳤다. 

캉!

 레비아는 재빨리 낫을 들어올려 막아냈지만 힘에서 밀려 뒤로 3m정도 밀려났다. 릭스마이너는 그녀를 밀어낸 다음에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군이 클로저에게 밀리는 기색이었다. 더 싸웠다가 피해가 클 거라고 생각했는지 삼단봉을 접은 뒤에 군단에 지시를 한다.

"전군, 물러난다!"

 결판을 내기 전에 전세를 먼저 생각했다. 레비아는 양손이 피멍든 걸 보았다. 힘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아서 양손에 피가 묻었다. 순순히 물러나는 걸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이대로 물러난 게 천만 다행이었다. 물러간 걸 확인한 뒤에 한석봉을 찾았더니 나타를 업고 오는 게 보였다.

"한석봉 님."
"잠깐만요."

 석봉이 나타를 천천히 내려놓은 뒤에 레비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깜짝놀랐지만 석봉이 꺼낸 약을 보고 이해했다. 소독약을 꺼내 상처부위를 바른 뒤에 하얀 붕대로 감싸주었다.

"자, 다 되었습니다."
"저기, 이렇게 안해주셔도 되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상처가 났으면 당연히 치료하는 게 낫잖아요."
"레비아는 차원종이라 상처는 저절로 낫거든요."

 바이올렛이 와서 대신 설명해주었다. 얼굴이 붉어진 레비아를 보고 눈썹이 꿈틀거렸다. 안 그래도 석봉의 행동을 지적하려고 했는데 인내심이 끊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한석봉 씨. 후방에 물러나는 게 더 안전한데 왜 위험하게 전장으로 뛰어드세요? 클로저가 싸우다가 전사하는 건 어디에서나 흔한 일이라고요. 그런 전사들을 살리겠다고 스스로 위험에 노출시키다니, 제정신이세요?"
"으,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반성했다. 죽을 뻔한 것도 사실이고, 그 때문에 레비아가 양손을 다치기도 했었으니까. 그녀의 지적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특히 더 무섭다는 걸 느꼈다.

*  *  *

 이번에도 살아남았지만 꽤 많이 혼났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무섭게 구셨는데 꿈에 나올까봐 두려웠다. 위험한 일을 했으니 걱정 끼쳐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혼나는 것도 점점 익숙해지는 내 자신이 조금 무섭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은 나를 어떻게 해서든 제거하려고 하는데 아가씨는 뜻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 아버지의 그 딸이라는 말이 있는데 바이올렛 아가씨는 해당이 안 되는 듯 했다.

"호오, 벌쳐스 사장 딸이 감정적으로 나오는 건 처음이군."

 아가씨가 티타임을 가지고 있을 때 국장님께서 상황을 정리하고 내게 오셨다. 심한 흙먼지와 함께 얼굴에 베인 상처가 조금 생겨난 게 보였다.

"국장님. 괜찮으세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부상당한 클로저들을 전부 병원으로 보냈어.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학생이 활약한 덕에 많은 클로저들이 살았어."

 지혈제를 썼을 뿐이었는데 큰일을 한 거처럼 말씀하셨다. 이렇게 과대평가를 들을 줄은 몰랐다. 신민우 국장님은 전투 후에 여러 지시를 하시느라 목이 터지시는 거 같았다. 나는 늑대개 팀만 관리하면 되는 거라 별로 힘들지 않았지만. 나타도 지금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중에 회복되면 다시 복귀하겠지.

"저, 국장님. 바이올렛 아가씨를 아세요?"
"몇 번 본 적 있지. 냉철하고 마성의 매력을 자랑하는 얼음 여왕같은 이미지였지. 오늘은 평소답지 않게 감정적으로 자네 잘못을 지적하는 거 보니까 상당히 아끼고 있는 모양이군. 한석봉 학생. 벌쳐스에 다니면서 무슨 커다란 활약이라도 했던 모양이지?"
"네? 별로 한 일은 없어요. 그냥 아가씨께서 좋게 봐주신 거뿐이에요."

 솔직히 나는 큰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팀원 걱정을 끼치며 죽을 고비나 몇 번 넘겼을 뿐이었다. 노다지 군단이 일직선 레일캐논으로 기본적으로 무장했다. 왜 지휘관만 근접무기를 사용할까? 부하들보다 더 강한 걸 어필하기 위해서였을까?

"혼자 무슨 생각하나? 나도 좀 알려줬으면 좋겠군."
"아, 죄송합니다. 실은 노다지 군단이 이해가 안 되어서요."
"아, 부하들이 원거리 무기 쓰고, 지휘관이 근접 무기를 사용한 거?"
"네."
"이해 안 되는 게 당연하지. 그런 군단이 최근에 나타났는데 어떻게 알겠어?"

 너무 당연한 소리에 잠시 얼어붙은 느낌이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나도 그건 잘 알고 있다. 내가 의도하는 건 그 의문을 풀어야 하는 거였는데. 게임에서 말한다면 근접 영웅유닛이 체력이 약한 원거리 유닛과 함께 임무를 수행한다는 느낌이었다.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내에서 흔한 일이었다. 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국장님. 만약 놈들이 한 번 더 쳐들어 온다면 그 때는 지휘관 말고 군단을 먼저 섬멸하는 게 어떻습니까?"
"군단을 먼저 섬멸한다고? 무슨 소리야? 지휘관 녀석이 클로저 다수를 학살하는데 당연히 지휘관 먼저 노려야지."
"지휘관이 선봉을 서는 이유는 제 생각이지만 클로저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라 확신했습니다. 레일 캐논은 원거리 무기, 근접한 클로저에게 취약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전장에서 봤거든요. C급 클로저가 접근해서 쉽게 군단을 무찌르는 걸."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말하자면 체력이 많은 영웅유닛이 앞에서 방패역할하고, 체력이 약한 원거리 유닛들이 뒤에서 서포트를 해준다는 거다. 아군 유닛 전사자를 늘리기 싫어하는 어느 유저가 0데스로 영상을 올렸던 걸 본 기억이 있었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그 녀석은 분명히 혼자서는 수많은 클로저를 한꺼번에 상대하지 못할 거다. 삼단봉을 사용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모르겠지만.

"호오, 조금은 일리가 있는데 과연 그 방법이 먹힐 거라고 생각해? 차원종 체력은 우리 인간보다 높은 수준이야. 어쩌면 혼자서 클로저 다수를 상대할 지도 모른다고."
"저는 어디까지나 의견을 말씀드린 거 뿐입니다. 최종결정은 국장님께 맡기겠습니다."

 내게는 지휘권이 없다. 늑대개 팀을 이끄는 권한밖에 없지. 설마 이 정도로 단순하다면 클로저들이 이렇게 고전할 리가 없겠지. 나 말고도 그런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한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래도 일리는 있어. 병사들을 먼저 섬멸하고나서 지휘관을 쓰러뜨린다. 문제는 그 지휘관을 누가 상대하느냐야. 정예 클로저들이 나선다해도 최대 4분 정도밖에 시간을 벌지 못하지. S급 클로저를 요청했는데 상부에서 거부했어.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다른 임무에 나서는 모양이야. 녀석들은 반드시 올 거야. 그러면 클로저들이 또 죽어나가겠지. 계속 소모전을 벌이는 거보다는 학생이 말한대로 한 번 해**."
"아니,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인데요?"
"어차피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담배를 한대 물면서 말씀하셨다. 어디까지나 게임지식으로 이야기한 거 뿐인데 이걸 그냥 받아들인다고? 물론, 게임처럼 흘러가는 일이 있었다. 전략전술과 무기, 방어, 위상력도 거의 게임 세계나 다름없었다. 과거에는 상상으로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를 구현했지만 현대에 게임같은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자네 팀에게 전달해주게. 다음에 놈들이 쳐들어오면 한 번 시도해** 뭐."

 확신을 가지고 한 의견이 아니었는데 쉽게 받아들이신 거 같았다. 클로저 희생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말은 정예 클로저들이 4분 정도 시간 끄는 사이에 군단을 모두 쓰러뜨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가만 있자. 4분 말고도 더 버틸 수 있는 클로저가 한 명 있었다. 바로 레비아였다. 위상력 전부 발휘하게 된다면 어느 정도 호각을 이룰 거라 생각했다. 

"국장님. 레비아 요원을 정예 클로저 팀에 합류시키는 게 어떠신가요? 아니, 레비아 씨 혼자서 시간을 벌어주실 지도 모릅니다."
"혼자서? 그게 가능하다고?"
"네. 그 분이 본래 힘을 발휘한다면 지휘관을 4분이 아닌 10분도 붙잡아 둘 지도 모릅니다. 대신에 녀석을 유인할만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흠, 벌쳐스 차원종에 대해서는 들은 기억이 있지. 힘이 폭주해서 처리부대 다수를 죽였다고 하던데, 그 힘을 지금 발휘하겠다는 건가?"
"지금은 제어가 가능합니다."

 폭발물 실험장에서 이미 확인했다. 최대로 발휘했는데 이성을 잃지 않고 통제하는 걸 보았다. 여러 번 시도 끝에 성공한 거였지만. 낮은 레벨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경험치를 올려 레벨업 한 캐릭터가 고 레벨 던전에 도전해 클리한 거나 다름 없었다. 이런 말을 하면 국장님께서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내 말을 순순히 들어주시는 것도 어렵겠다.

"좋아. 한 번 해**."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2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