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25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2-25 1
다음 날, 레비아와 함께 실험장에 왔다. 조금씩 위상력을 드러내면서 빔을 발사했다. 전투할 때 그 모습은 문제없었다. 다만 힘을 더 많이 개방하게 된다면 괴물처럼 변할 수 있다는 거였다.
"오지 마세요. 한석봉 님. 제 안에 있는... 자가, 깨어나려고 해요."
"아앗! 또 죽었어요. 한석봉 님은 어떻게 잘하시는 거죠? 위상력이 없으신데."
쿠구구구구-
천천히 파워를 끌어올린다. 위상력의 기운은 점점 강해진다. 세하 만큼은 아니지만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다가가면 당장이라도 위험할 거 같았다.
"으윽!"
"레비아 씨?"
"으으으."
펑!
갑작스럽게 폭발하는 바람에 내 몸이 벽으로 나가떨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당황할 기색도 없이 몸이 날아갈 정도로 강력했다. 힘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건 바로 이런 거였던 모양이었다. 갈비뼈가 조금 나간 느낌이다. 많이 아팠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했던 말이 있으니 주저앉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간다.
"오지 마세요. 한석봉 님. 제 안에 있는... 자가, 깨어나려고 해요."
위상력이 사라졌다. 간신히 그걸 억지로 집어넣은 모양이었다. 기침을 두 번 정도 하면서 레비아에게 다가간다. 확실히 조금만 더 방출했으면 나는 병원에 실려가 응급수술을 받아야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수많은 사람이 더는 그녀에게 죽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해야 하니까. 벌쳐스 사람들은 그녀를 제거하거나 이용할 생각만 할 뿐이다. 그런 식이면 결국 다같이 파멸하게 된다. 벌쳐스의 자랑하는 장비라해도 폭주하는 힘을 전부 잠재운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레비아 씨. 자신의 힘을 통제당하면 안 됩니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해요. 레비아씨는 지금 또 하나의 자신과 싸우고 있어요."
"무리에요. 그건 무리라고요! 저도 처음부터 포기한 건 아니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까 그런 거라고요. 방금 그 일로 한석봉 님을 다치게 했어요."
"아니, 이건 그냥 사고니까요."
갈비뼈 부분이 아팠지만 애써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다. 그런 나를 본 레비아는 오히려 경악을 드러내면서 도망치듯이 실험장을 나간다.
"레비아 씨!"
쫓아가려고 했지만 출입문 앞에 누군가가 막아섰다. 험상궂은 얼굴에 흉터가 많은 사람, 늑대개 팀의 대장이었다. 분명히 이름이 트레이너 씨라고 했나?
"여기서 뭐하고 있었나?"
"그게, 레비아 씨가 힘을 제어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했어요."
"바보같은 짓을 했군. 당장 그만두는 걸 추천하지."
포기하라는 말을 쉽게 하셨다. 다른 벌쳐스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장도 포기가 빠른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럴 수 없다고 반박한다.
"레비아 씨는 할 수 있어요. 지금은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지만 노력을 하면 가능합니다."
"누가 그렇게 말했지? 벌쳐스 감시관인가? 아니면 네 자신이 생각한 말인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데도 나에게 굉장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두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나를 내려다보는 게 무서웠다. 마치 내가 범죄자로서 심문을 받는 기분이었다. 왜 다들 불가능하다고 말할까? 왜 안 된다고 말할까? 확실히 그 일로 내가 죽을 뻔 했지만 누군가가 나서지 않으면 그녀는 계속 그 힘에 두려움을 떨어야 한다.
"한석봉 학생. 너는 감시 요원이지 구세주가 아니다. 나약한 생각으로 그 차원종을 구하려고 하지 마라. 내면에서 괴물이 나온다면 그 때는 내가 박살내면 되는 일이다. 조용히 감시 임무에만 전념하도록."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에요. 레비아 씨는 혼자서 이겨내기 어려워하시고 있다고요. 누군가가 도와줘야 해요."
"어리석군. 그렇게 쉽게 해결된다면 이미 오래 전에 이루어졌을 거다. 레비아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겠지? 100만명이나 되는 사상자가 나타난 건 벌쳐스도 막을 수 없었던 손실이었다. 벌쳐스도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저대로 방치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들이 노력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한 두번 시도한 끝에 포기한 거라는 건가? 그래도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끝나는 건 납득이 안 되었으니까.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너는 벌쳐스 감시 요원으로 일하면서 네가 이루고자 하는 일은 전부 헛수고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군. 애초에 처리부대와 같이 싸우려고 하는 발상 자체가 웃기는 노릇이지.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도 그렇게 무리하게 나서려고 하다니, 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은 거 아니냐?"
"살고 싶어요. 당연히 살고 싶죠. 하지만 저만 살고 싶어할까요?"
"음?"
트레이너 씨의 눈매가 조금 커졌다. 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민간인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듯이 위상력 능력자도 그러고 싶어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처리부대나 유니온 클로저들도 살고 싶어한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각성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에 부름을 받아 차원종과 싸워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수많은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어요. 그러다가 전사한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각성하든 하지 않든, 본질은 전부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두 주먹을 쥐면서 말했다. 힘이 있거나 없어도, 내면은 똑같은 인간이다. 레비아는 비록 차원종이라도 인간과 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주장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이루어 낸 사례를 직접 눈으로 봤으니까.
"레비아보다 강한 위상력을 가진 사람도 자신의 힘을 완벽하게 컨트롤 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위험 수준이 높다고만 알려질 뿐, 실제로 저지른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거지?"
"제 친구 이야기입니다. 트레이너 씨. 저는 당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지적하지는 않겠습니다. 행동으로 그저 보여드릴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그를 지나쳐서 레비아를 찾으러 갔다. 요즘 왜 그 친구가 생각이 나는 걸까? 당연하다. 레비아와 닮았으니까.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이겨냈고, 레비아는 계속 패배한 채로 있다는 거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그녀가 비록 차원종이라 해도 노력하면 이루어질 거라 확신했다.
* * *
트레이너는 실험장 입구에 서서 한석봉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강한 위상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힘을 완벽하게 컨트롤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 강한 위상력을 가진 이라면 유니온 내에서 딱 두 사람 뿐이었다. 한 명은 지금 수용소에 있고, 다른 한 명은 이 나라에 없다.
"트레이너 대장님. 여기 계셨습니까?"
"바이올렛 아가씨인가? 어쩐 일로 오셨소?"
"한석봉 씨가 여기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요."
"레비아를 찾으러 갔소. 어디로 갔는지는 정확히 모르오."
그렇게 말한 뒤에 자리에서 벗어난다. 바이올렛은 실험장 내부를 보면서 바닥에 폭발한 자국과 벽에 뭔가가 긁힌 자국이 있는 걸 보고 다급한 표정을 보이며 휴대폰을 꺼내 석봉이에게 연락하지만 받지 않자, 곧바로 발끈하면서 하이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장 한석봉 씨 휴대폰 위치 추적하세요."
* * *
레비아는 건물 옥상에 있었다. 직원들의 도움으로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뛰면서 갈비뼈가 매우 아팠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으면 이 정도 고통은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오지 마세요! 한석봉 님."
"두려워하지 말아요. 레비아. 저는 한 번 말하면 끝까지 지키니까요. 절대로 도망가지 않아요."
트레이너 씨 말대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항상 가능한 일만 하라는 법은 없다. TV에서 봤던 클로저들의 일이나 경찰, 구조대원의 일도 지금 시기에는 불가능한 거처럼 보여도 전부 목숨 걸고 해내려고 하고 있다. 그 사람들도 해낼 수준이다.
"예전에도 저를 대해주신 사람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 분도 결국 제가 죽였어요. 그런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전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레비아 씨가 아무리 불가능하다고 해도 저는 가능하다고 말할 겁니다."
"저는 안 돼요."
"저는 안 돼요."
"흠. 그럼 레비아 씨. 이거 한 번 해보실래요?"
내가 보여준 건 게임기였다. 내면에 잠든 또 하나의 자신을 이길 수 없다면 이길 자신을 생기게 할 계기를 마련해주면 된다. 이걸 처음 봤는지 레비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내가 하는 걸 그대로 보여주었다. 조작법을 가르쳐 주면서 최종 보스를 쓰러뜨리는 아군 캐릭터를 보고 놀라워했다.
"이게 도대체 뭐죠?"
"게임이에요. 당분간은 이걸 해보세요. 저같은 민간인이 해냈으니 레비아 씨도 해낼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두손으로 게임기를 잡으며 조작하지만 상당히 당황스러워했다. 원래 처음에는 게임이 어려운 게 당연하다. 캐릭터가 최종보스 마왕을 쓰러뜨리기 전까지는 부하 마물들을 해치우면서 가야 하니까. 레비아 씨는 어느 순간 빠져들었는지 의욕이 넘치는 얼굴로 게임을 조작한다.
"아앗! 또 죽었어요. 한석봉 님은 어떻게 잘하시는 거죠? 위상력이 없으신데."
이럴 때는 사실을 말해야 하나? 아니지. 지금은 숨기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이며 레비아를 도발한다.
"설마 민간인이 할 수 있는 걸 위상력 능력자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그... 그럴 리가요!"
레비아도 자존심이 있었다. 아무리 성격이 순진해도 민간인보다 약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프라이드가 긁히니까.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아도 나같은 사람보다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떠겠는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