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24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2-24 1

 기분 전환을 위해 우선 분식집으로 왔다. 게임 속 어느 노인이 한 대사가 있다. 인간은 음식을 맛보는 거로 커다란 행복을 얻는다고 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그 고통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레비아를 데리고 온 거다.

"여기는 어디인가요?"
"여기는 분식집이라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에요. 여기 떡볶이와 순대 각각 2인분씩 주세요."

 거기서 나온 월급이 많았으니 그녀가 충분히 배불리 먹을 만큼 주문할 수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주변 사람을 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른 이들과 마주할 자신이 없는 건가? 그렇겠지. 100만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였다는 데 그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저렇게 나올만 하다. 

"한석봉 님. 제가 이런 곳에 와도 되는 건가요?"
"레비아 씨. 저는 당신이 과거에 한 일을 들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해요."
"제 정체를 아시면... 틀림없이 저를 멀리하실 거에요."
"알고 있습니다. 레비아 씨."

 눈 앞에 무서운 힘을 가진 사람과 대치할 때는 겁 먹을 게 아니라 오히려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물론 자칫 잘못하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지만 더 무서운 힘을 가진 사람과 친구가 되었는데 이 정도를 견디지 못하면 안 될 거다. 확실히 무서운 느낌이 나지만 내가 생각한 정도는 아니다.

"레비아 씨.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마세요. 일단 음식을 먹고 난 뒤에 천천히 의논하도록 해요."

 지금은 그녀의 감정을 가라앉히는 게 중요하다. 사람이든 차원종이든 불안증세를 일으키면 의도치 않게 그 힘이 폭주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건 자료를 받지 않았어도 기본 상식으로 알 수 있다. 본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순간은 정신적으로 붕괴될 순간이니까. 게임에서 그렇게 나왔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종업원이 커다란 접시에 담아서 주고 갔다. 레비아는 신기하다는 눈동자를 보이며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가까이서 관찰하면서 냄새를 맡아본다. 나타가 전에 말한 걸 떠올렸다. 늑대개 팀에게는 맛 없는 전투 식량만 지급한다고 했다. 그녀도 맛없는 음식만 먹었지만 애써서 참는 듯 했다.

"이게 뭐죠?"
"일단 한 번 드셔보세요. 이렇게."

 포크로 찍어서 입에 먼저 넣었다. 역시 맛있는 곳이다. 레비아는 곧바로 따라했다. 떡볶이를 입에 넣자마자 눈이 커지며 큰 소리로 외쳤다.

"맛있어요!!"

 이런,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할 줄은 몰랐다. 나는 황급히 그녀의 입을 가리면서 검지를 입에 대고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겨우 떡볶이 하나 가지고 저렇게 난리를 치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손님들이 조금 진정한 모습을 보이자 나는 레비아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어때요?"
"맛있어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는 줄 몰랐어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불편하셨죠."
"괜찮아요."

 이렇게 보면 정말로 차원종이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겉모습도 인간이고, 말하는 것도 내성적인 소녀의 목소리였다. 마치 반차원종인 거처럼 보였다. 혹시 인간이 엄마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저 같은 사람이 이런 걸 먹어도 되는 건가요?"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마시고, 드세요.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최대한 부드럽게 대해주었다. 지금은 대화할 상태가 아니다. 조금은 진정시킨 뒤에 본격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설 생각이었다. 힘이 폭주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을 대하려면 우선 정신적으로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다. 벌쳐스에서 가르치진 않았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  *  *

 두 사람이 분식집에서 음식을 맛보고 있는 걸 몰래 지켜본 하이드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연락을 취했다. 리무진 차량에서 감시역할을 하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한석봉이 말을 걸지 않고, 그녀가 음식을 먹게 하는 걸 보고 보통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네. 아가씨. 혹시 벌쳐스에서 레비아 대원을 대하는 방법을 알려준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어요. 아버지는 한석봉 씨를 죽이려고 마음 먹으신 분인데 그걸 가르쳐 주실 리가 없어요. 
"하지만 차원종을 대하는 게 처음이 아닌 거처럼 보였습니다. 그 분께서 하는 행동으로 레비아 대원이 안정감을 누리는 게 보였습니다."
-그렇군요. 계속 감시하세요.
"네. 아가씨."

 하이드는 두 눈을 반쯤 감은 채로 한석봉의 행동을 관찰했다. 힘을 폭주할 지도 모르는 레비아 앞에서 전혀 겁을 먹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레비아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게 보였다. 바이올렛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거지만 지금은 싫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나타와 함께 임무 수행한 이후에 그가 오히려 한석봉을 걱정하는 듯한 말을 보일 정도였다. 민간인이고, 뛰어난 집안의 아들도 아닌데 저렇게 대할 수 있는 게 이상했다. 

분명히 전직 클로저의 아들이라고 했지. 그 사람도 별 활약없는 평범한 클로저였다고 알고 있는데.

 그녀가 보는 눈이 있었다. 한석봉은 다른 민간인과는 다르다. 100만을 죽인 차원종이라고 알고 있는데도 태연한 모습으로 말을 걸면서 웃는 게 보였다. 궁금했다. 차원종을 대하는 방법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그걸 스스로 알아냈다는 게 이상했다.

혹시 클로저 이세하가 알려줬나? 아니, 그럴 리가 없겠지.

 세하라 해도 그 방법은 모른다. 차원종과는 싸우기만 했던 클로저인데 대화같은 걸 해볼 리가 없으니까. 둘은 밝은 얼굴을 보이며 밖으로 나왔다. 어딘가로 이동하는 게 보이자 차 시동을 걸고 비상등 깜빡이면서 조심스럽게 미행한다.

*  *  *

 벌쳐스 건물 지하 훈련장으로 들어왔다. 가상 훈련이 아닌 폭발 실험장이었다. 주변 벽이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져서 핵폭발에도 끄떡없다고 들었으니까.

"한석봉 님. 여기는 왜 오신 건가요?"
"여기라면 레비아 씨의 힘을 시험할 수 있어서요. 폭주했을 때 기억은 없으시죠?"
"네. 혹시 여기서 힘을 사용하시라는 건가요?"
"네. 지금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안 돼요! 그렇게 하면 석봉 님이 죽어요!"

 음, 역시 안 되려나? 예전처럼 불안한 증세가 온 거 같았다. 폭주하는 힘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힘을 계속 방출함으로서 제어하는 연습을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심리적으로 저렇게 불안해하니 지금은 안 될 거 같았다.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알았어요. 그럼 억지로 시키지 않을 게요. 레비아 씨는 지금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어요. 제가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게요. 어느 소년이 있었어요. 소년은 레비아 씨보다 더 강력한 위상력을 가지고 있어요. 어느 날, 한 불량배에게 시비가 걸렸는데 그 소년은 싸움을 건 그 상대에게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고 참고 넘어갔어요. 그러자 재미없어하는 불량배는 그냥 사라졌고요. 소년은 알고 있는 거에요. 자기가 가진 힘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면 안 된다는 걸요."
"저보다... 더 강한 소년이 있는 건가요?"
"네. 제 친구 중에 있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사실은 적응이 되어서 그런 거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강한 생물이다. 극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많이 어려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환경에 적응이 되어 보통이라고 생각하니까. 레비아는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지 못하는 듯 했다. 차분하게 요점만 답해주었다.

"레비아 씨도 그 강력한 힘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거에요. 제 친구는 그 힘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해서 사람을 한 명도 죽이지 않았으니까요."
"저... 정말인가요?"
"네. 레비아 씨는 지금 겁을 먹고 있어요. 자신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으니까 그 힘에 많은 분들이 죽임을 당한 거에요."

 게임 내에서도 타락하거나 폭주하는 사람들의 정신은 대부분 불안정했다. 이성을 잃고 분노하거나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죽었다는 거대한 충격을 이기지 못해 또 다른 자신에게 육체를 빼앗기거나. 그건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나 자신이라 해도.

"한석봉 님. 저는 인간이 아니에요. 인간이라면 그럴 지는 몰라도 저는 차원종이에요. 그렇게 하는 건 불가능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차원종이 할 수 없다고 누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어요."
"그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세요?"

 내 말에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그 사람들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원종이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도 알려지지 않는 사실이다. 벌쳐스 사람들이 왜 그녀를 생체 실험하는가? 간단한 이유다. 그녀에 대해 완전히 알아내지 못했으니까. 연구하는 걸 직접 내 눈으로 봤으니 틀림없다.

"레비아 씨. 전 그 사람들이 멋대로 착각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두려운 나머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 뿐이에요. 그렇지만 저는 당신이 두렵지 않습니다. 폭주해서 제가 거의 죽을 상황에 처하더라도 같은 마음일 겁니다."

 그렇게 할 자신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이미 나는 각오했다. 그 정도 배짱은 되어야 그 여자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 친구에게도.

"한석봉 님. 신기한 분이시네요. 나타님이나 하피님 처럼 힘을 가지고 계시지도 않으신데."

 나 같은 사람은 처음 봤는지 불안했던 그 표정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조금은 안정된 모양이었다. 

"꼭 힘을 가진 사람이 용감하다는 법은 없습니다. 저는 위상력이 없지만 여러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그게 제 유일한 장점이지만요. 저는 레비아 씨가 힘을 통제할 거라고 믿습니다. 제가 도와드리죠."

 레비아 힘으로 인해 희생자를 막을 방법은 두 가지다. 그녀를 죽이거나, 아니면 그녀가 힘을 완벽히 통제하거나. 벌쳐스 사람들은 대부분 첫번째를 추천할 거다. 그녀가 힘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니 이용만 하다가 버릴 생각으로 대하는 거겠지. 나는 그게 싫었다. 그녀가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그녀를 생체실험하고 죽인다면 나쁜 차원종이 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니까.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1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