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21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2-19 1

"왜 헬기가 정해진 시간에 가지 않는 거에요? 지금쯤이면 잔해 수집을 충분히 했을 텐데요."

 한석봉이 아직도 안 돌아왔다는 소식에 바이올렛이 사장에게 달려가 따진다. 사장은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무거운 한숨을 내쉰다. 지금까지 말을 잘 들었던 딸이었는데 한석봉 한 명 때문에 저렇게 반항적인 태도로 나오니 심기가 불편했다. 물론 그녀가 이야기한 것도 있지만 유능한 인재는 그 소년만 있는 게 아니니까.

"언제부터 네가 나에게 그렇게 따지는 입장이 된 거지? 그깟 소년이 뭐 어쨌다는 거야?"
"말씀 드렸잖습니까? 그 사람은 미래를 위한 인재라고요."
"날씨 때문에 악화되어서 연기 되었다. 헬기는 내일 뜨게 될 거야."
"일기 예보를 보셨을 텐데요."

 헬기를 못 뜨게 할 구실로 날짜를 잡아 두 사람에게 임무를 주었다. 나타는 벌쳐스 사람을 죽인 혐의가 있어서 사장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 위험한 기밀을 본 소년이 같이 정리 된다면 그에게는 엄청 편한 일인데 딸이 자꾸 그 소년을 살리자고 주장하는 바람에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소년이 너에게 뭐라도 되냐? 유능한 인재 정도야 내가 능력껏 모집할 수 있어. 이 세상에는 그 소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왜 자꾸 그 녀석을 못잡아먹어 안달이야? 어!? 지금 헬기를 보냈다 치자. 그 녀석이 무사히 있을 거 같아? 나타 요원에 대해 알지? 그 녀석은 통제를 벗어나면 자기 감시 요원도 죽인다고."

 허리를 의자에 기댄 채로 당당하게 말하자 바이올렛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버지에게 대들고 싶었지만 두 주먹만 쥐면서 인사만 하고 물러났다. 나타는 늑대개 팀 내에서 위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초커로 통제하고 있긴 하지만 빈틈이 드러나면 언제든지 감시 요원을 살해할 수 있는 위험 인물이다.

"내일 예정대로 헬기를 띄워서 보낼 거다. 그 사냥개는 살아있을 지도 모르지만 감시 요원은 이미 죽고도 남았겠지. 평소에 그 소년이 하는 행동을 녀석이 마음에 안들어 했으니까."

 나타가 석봉에게 매일 화내면서 비실이라고 욕하는 것도 보고받았다. 싫어하는 편이라면 더더욱 그를 죽일 명분이 있는 법이다. 바이올렛은 입을 꾹 다문 채 복도로 나가서 문을 세게 닫았다.

쾅!

"저런 저거... 버르장 머리없는 녀석이."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는 알지만 앞으로 회사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인물은 미리 제거하는 게 올바른 일이었다. 사장이 그를 경계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처리부대와 가까이 있는데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클로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건 회사가 아무리 압박해도 굴하지 않는 법이다. 정의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자로 변할 수 있어.

 나타가 거기서 그를 죽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일단 석봉의 어머니에게도 기억 조작으로 숨길 수 있으니 일이 커지기 전에 조용히 덮는 건 가능하니까.

*  *  *

 밖에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불었다. 설마 이런 날씨가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동굴 안으로 피신했지만 몰려오는 강풍 때문에 추웠다. 나타도 추웠는지 두손으로 몸을 끌어안은 모습을 보였다. 각성했다해도 자연의 법칙은 어쩔 수 없다는 건가?

"어우, 추워 죽겠네. 날씨가 왜 이 모양이야!"

 날도 어두워졌고, 오늘 하루도 이런 곳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헬기가 안 온 이유는 날씨 때문이었다. 그래서 안 온 거였구나. 미리 연락을 해줬으면 좋았는데 그것도 안한 걸 보면 고의라는 걸 알 수 있다. 벌쳐스 정도 되는 사람들이 일기 예보도 안 보고 이런 작전을 지시할 리가 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나도 좀 춥네.

"나타, 괜찮으면 내 옷 입을래?"

 나타 옷은 너무 얇은 티셔츠라 찬바람이 부는 밤에 견디기 어려웠다. 내 옷은 그나마 긴팔 티셔츠가 가방에 하나 더 있어서 그런 거였다. 원래 야간 근무가 많은 걸 알았으니 긴팔 티셔츠는 기본이다.

"뭐야. 이런 걸 나더러 입으라고?"
"이거 입으면 좀 나을 거야."

 차분하게 달래면서 말했다. 나타는 그걸 두손으로 잡아서 유심히 살펴보다가 온 몸에 두른 장비를 다 벗은 뒤에 옷을 입었다. 그런 다음에 다시 필요한 장비를 착용하게 도와주었다. 그나마 잘 맞아서 다행이었다. 이제 추위는 좀 해결되었다 싶었는데 누군가가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게 보였다. 비 맞으면서 비틀거리고 있는 남자다.

"어? 저기 누구 있는 거 같은데?"

 어두워서 자세히 안 보였지만 전에 나타와 싸웠던 그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 동굴로 다가오자 나타는 곧바로 무기를 꺼내들었지만 남자는 우리를 알아봤는지 한손을 앞으로 밀듯이 내밀면서 말을 꺼낸다.

"그만, 난 지금 싸울 생각이 없어. 거래를 하러 왔다."

 동굴 안에 비춘 램프로 남자 얼굴을 알아봤다. 역시나 배원형이었다. 이 섬을 떠돌다가 비가 내리는 걸 맞아서 생쥐꼴이 된 채로 들어왔다. 나타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맞이했다.

"뭐야 너? 나한테 썰리려고 온 거야?"
"누가 너같은 멸치 ***에게 썰리겠냐? 그저 휴전을 제안하고 싶어서 온 거 뿐이다. 너희 두 사람, 오늘 밤을 여기서 보내야 할 텐데 내가 아주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거든? 여기서 휴전을 협조한다면 이걸 주도록 하지."
"뭐? 멸치 ***!? 너 이 자식이!"

 당당하게 말하는 배원형에게 덤벼들려는 나타였지만 팔을 들어 그를 말렸다. 지금은 여기서 싸울 때가 아니니까. 좁은 동굴 안에서 싸우다가 오히려 둘다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야! 왜 막는 거야?"
"진정해. 나타. 지금 여기서 싸우면 마음놓고 싸우지 못하잖아. 밖에 나간다해도 밤새도록 비맞으면서 싸울 수밖에 없어."
"헷. 날씨가 어찌되든 뭔 상관이야? 추워서 짜증났는데 마침 잘 되었잖아! 방해 말고 비켜!"

 정말 못말리는 싸움꾼이다. 물론 비가 와도 싸울 수는 있지만 우선 정보를 수집하는 게 우선이다. 벌쳐스 사장이 나를 자꾸 제거하려고 한다면 순순히 내가 당할 생각은 없으니까. 여기 있는 CKT부대 요원에게서 뭔가를 얻어가서 그들이 궁금하게 한다면 나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나타, 나중에 과자 줄 테니까 이번만 참아주면 안 될까?"
"뭐? 과자? 그게 뭐야?"

 매일 전투 식량만 먹었던 나타가 과자를 알 리가 없지. 작은 목소리로 맛있는 간식이라고 말한 뒤에 그를 천천히 물러나게 한 뒤에 배원형 앞에 섰다. 그러자 그는 내게 붉은색 알약을 건네주었다. 휴전을 요청하러 온 걸 보면 저체온증으로 죽기 싫어서 그런 거라 볼 수도 있지만 속임수일 가능성이 있어서 받지 않았다. 저 알약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냥 대놓고 먹을 리가 없으니까.

"의심되나? 독은 없다는 걸 증명해주지."

 소지품에서 알약이 담긴 병을 꺼냈다. 조그마한 병에 가득 들어 있었다. 그는 두손으로 위아래를 흔들어서 섞은 뒤에 병에서 무조건 하나를 꺼내 입안에 넣고 꿀꺽 삼켰다. 저렇게 나오면 의심할 건 없지.

"이건 우리 CKT부대가 만들어 낸 체온 약이야. 어느 환경에서도 정상 체온을 유지하게 해주지."
"그 약을 먹고 밖에 돌아다녀도 되지 않나요?"
"시끄러워! 비가 내린 건 문제가 안 되지만 강풍이 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밤새 내내 바람과 싸울 수 없어서 하는 말이었다. 확실히 그 강풍에 맞서 싸우기에는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다. 억지로 체온을 유지하긴 해도 몸을 버틸만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두 사람은 원래 서로 원수였으니 다투는 건 당연했다. 나도 약을 하나 먹어본다. 거짓말처럼 추위가 사라졌다.

"확실히 효과가 있네요. 어떻게 만드신 건가요?"
"그걸 내가 말해줄 거 같냐? 너희 벌쳐스에게는 절대로 말 못하지."

 배원형은 젖은 옷을 벗은 채로 쭉 짰다. 우리가 공격하지 않을 걸 아는지 언월도도 등 뒤에 내려놓은 채로 여유를 부리고 있다. 나타는 도끼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경계할 뿐이었지만 그가 여유를 부려서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보였다.

"야, 아주 대놓고 나 죽여주세요. 하는 거 같다."
"흥. 날 죽일 수 있으면 죽여보던가. 너 같은 멸치 ***는 무기 없어도 제압이 가능하니까."
"이 자식이 자꾸 나를 멸치라고 부르네. 두 번 다시 입을 못 놀리게 확실히 썰어줄까?"
"오호,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시던가."

 아이고, 왜 이렇게 싸우려고 안달일까? 두 사람이 다시 무기에 손을 짚은 채로 대치하고 있자, 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권총을 들어 천장쪽에 발포하자 둘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뭐야!? 깜짝 놀랐네."
"지금은 둘 다 싸울 때가 아니라는 거 아실텐데요. 지금 밖에 강풍이 불고, 비도 세게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악천후 속에서 싸우다가 둘 다 죽을 수도 있어요."
"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우리 같은 녀석들은 원래 싸움을 즐기는 자라고."

 나타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배원형도 마찬가지라 여겼는지 씩 웃어보이며 창을 그에게 겨누었다. 아무래도 싸움을 말리기는 어려울 거 같았다. 원래 두 사람은 서로 적이니까. 약속이라도 하듯이 둘이 동시에 밖으로 나간다. 이래도 되는 걸까? 무거운 한숨만 나온다.

"이야아!"
"하앗!"

캉! 카캉! 채챙!

 결국 또 싸운다. 엄호할까 생각이 들지만 이번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나타는 자기가 싸우는 도중에 끼어드는 걸 매우 싫어하는 편이었으니까. 이번에도 막상막하로 합을 이루고 있지만 비가 계속 쏟아지면서 서서히 움직임이 느려져가는 게 보였다. 역시 자연의 법칙은 어쩔 수 없다는 건가? 비를 맞으면서 움직임이 둔해지는 거로 보였다. 물방울이 눈 앞에서 계속 떨어지니 시야도 가리고, 뭔가를 두들겨 맞는 느낌이 계속 들고 있을 테니까.

쏴아아-

"어? 둘 다 위험해!"

 갑자기 날아온 물살이 두사람을 동시에 덮쳤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1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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