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20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2-18 1

 서로 먼지를 일으키면서 합을 이루고 있는 틈에 나는 자리를 잡아 나타를 엄호하려고 했지만 너무 움직임이 빨라서 아직 조준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따라가기는 아직 어렵지만 조금씩 보이고 있다. 그들이 싸우는 걸 두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니 미소가 절로 흘렀다.

보인다. 조금씩.

 나타의 붕대에 상처가 조금 벌어지는 게 보였다. 서두르지 않으면 이대로 끝장날 수 있다. 두 사람의 속도는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그들이 총구를 겨누어 녀석이 움직이는 방향에 맞게 사격한다.

탕! 피윳-

"음?"
"야! 너 뭐하는 짓이야! 내가 끼어들지 말라고 했잖아!!"

 배원형의 팔에 총알이 스쳤다. 다행히 맞췄다. 나타가 화를 내고 있지만 나는 숨을 헐떡이며 상대방을 노려본다. 조금 당황했는지 도끼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가 창을 거두었다.

"야! 너 뭐하는 거야!?"
"흥이 깨졌다. 확실히 부상이나 당한 녀석을 상대로 제대로 된 싸움을 할 리가 없겠지. 결판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지. 그리고 말이야. 난 아직 너희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어. 이번에 특별히 그냥 보내줄 거니까 **."
"뭐가 어째? 누구 맘대로 봐주라 마라야! 크윽."

 붕대에서 시뻘건 피가 나오고 있었다. 나타는 자기가 상처를 입었다해도 본능으로 싸우려고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통제불능의 사냥개, 그게 나타의 정체였다. 살육전을 벌이는 데 적응해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거겠지. 그에게 초커가 채워진 이유를 알 거 같았다. 그는 나타가 잠시 몸을 주춤거리는 걸 보고 혀를 차면서 높게 점프했다. 사이킥 무브로 벗어난 거겠지. 

"나타, 괜찮아?"
"야! 뭔데 내 싸움을 방해하는 거야! 내가 저런 놈에게 지기라도 할 줄 알았어?"
"켁... 켁."

 양손으로 내 멱살을 잡고 들어올린다. 역시 위상력 능력자, 힘이 장난 아니다. 지금이라도 날 죽일 거처럼 무섭고 올려다보고 있으니 순간 모르게 겁을 먹었지만 여기서는 겁먹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상처... 상처가 났잖아. 그 상태로 계속 싸우다가는 몸이 나아지지 않았을 거라고."
"입 다물어! 저 자식이 그냥 가지 않았으면 너같은 비실이는 금방 고깃덩어리가 되었어. 알았어!?"

쿵!

"콜록... 콜록..."

 엉덩방아를 찍은 뒤에 기침을 여러 번 반복했다. 확실히 그 요원이 그냥 가서 살았다. 나타와 거의 호각 수준인데 그 남자가 나를 노렸다면 치명상은 입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중요한 경험을 했다. 움직임이 빠른 상대가 이제 서서히 느려지는 게 느껴졌으니까. 빠른 움직임을 조금은 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거다.

"비실이 넌 인마, 감시 요원은 우리같은 녀석들을 감시하는 거지 싸움에 끼어들라고 하는 거 아니야. 너 진짜로 죽고 싶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콜록, 그럼 나타 너는 왜 심한 상처를 입으면서 죽을 지도 모르는 싸움을 하는 거야? 싸움은 왜 하는 거야?"
"크크큭,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지. 서로 피를 튀기면서 싸우는 게 얼마나 짜릿한데."
"그럼 왜 나는 그걸 느끼지 못하게 하는 거야?"
"뭐? 그... 그건."

 대답 못할 줄 알았다. 썩은 미소를 보이면서 말하다가 내 의문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렇게 싸움이 재미있으면 내가 나서더라도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단지 자기 싸움에 끼어들어서 화를 내는 거라면 내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재미있다고 여기면서 왜 다른 사람은 하지 못하게 하는 걸까?

"나타, 난 겁쟁이처럼 도망치고 싶지 않아. 감시 요원이라면 클로저 곁에 항상 있어야 하잖아. 차원종에게 죽을 각오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야, 너 진짜로 죽고 싶어서 하는 말이야?"
"죽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 그래도 누군가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잖아. 난 그렇게 생각해. 세하도 그랬어. 처음에는 자기도 싸우기 싫었는데 싸워야하니까 나선 거라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타는 처음부터 싸우고 싶지 않았을 거다. 분명히 뭔가 계기가 되어서 싸움을 시작했고, 그 맛을 들여서 지금은 즐기게 된 거였으니까. 싸움이 단지 재미있어서 말한 이유를 가진 사람에게는 반드시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싸움을 해야 했던 이유가.

"싸워야 하니까 그런 거라고? 그게 대체 무슨 재미인데? 싸움은 말이야.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가장 재미있는 법이야. 짜증나는 소리 집어 치워. 또 한 번만 더 헛소리하면 다음에는 죽여버릴 수도 있어."
"나타, 무슨 일 있었던 거 맞지? 왜 초커를 차게 된 건지 말해주지 않겠어?"
"말해서 뭐할 건데? 네가 해결해주기라도 하게? 웃기는 소리 작작 해라. 이건 경고야."

쉬익-

 낮은 소리를 내면서 내 목에 쿠크리를 들이댔다. 순간 죽는 줄 알았지만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그러자 나타는 도끼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야, 안 무서워? 내가 지금 이렇게 칼을 들이대는데? 조금은 무서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안 죽일 거잖아. 나타. 죽였다면 목에 칼을 들이댈게 아니라 단번에 베어야 된다고 생각해."

 굳이 죽일 사람을 상대로 목에다가 칼을 들이 댄 채 잡담이라도 나누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싸우는 걸 좋아하는 나타라면 말 보다는 행동으로 옮겨서 곧바로 베는 게 맞는 말이다. 그걸 잘 아는 본인이 굳이 칼을 들이대면서 말이라도 걸어서 시간을 끈다는 건 죽일 생각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쳇. 짜증나는 놈. 조금은 무서운 얼굴이라도 지어보이라고. 아무튼 경고했어. 네가 위험에 처해도 널 구하는 일은 없으니까. 알아서 해."

 혀를 차면서 앞장선다.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흔들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쿠크리를 잡은 손이 약간 떨리는 거처럼 보였으니까. 

*  *  *

 배원형은 두 사람과 떨어진 뒤에 무전기를 들어 본부에 연락한다. 잔해를 이미 수집했는데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아서 불만이 가득이었다.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합니까? 그 빌어먹을 잔해수집은 언제까지 하냐고요."
-배원형, 미스터 블랙님의 지시에 이의를 제기하지 마라. 아직 우리는 활동 자금이 모자라서 전세계를 적으로 돌리기에는 모자라다. 다시말해 준비가 덜 되었다는 뜻이다. 가능하면 쓸데없는 사고는 저지르지 마라.

 여성의 목소리에 그는 혀를 차면서 연락을 끊었다. 최근 그들은 사람들 눈에 잘 안띄게 하려고 일을 적게 벌이고 있었다. 유니온 내에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걸 알리지 않을 수준으로만. 어차피 벌쳐스에게는 눈엣가시로 느껴졌고, 한국 유니온 본부에서 그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쳇.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시시한 일을 하라니."

 투덜거리면서 조용히 나무 기둥에 기대어 물통을 꺼내 마신다. 지금은 이대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으니까. 나타와 결판을 낼 수 있었지만 한석봉의 사격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고, 나타가 부상을 입은 채로 싸움을 걸어와서 그냥 이기기에는 마음이 찝찝하게 느껴졌으니까.

가능하면 제대로 붙어보고 싶어. 그 녀석이라면 완전히 나았을 때 마음껏 싸울 수 있겠지.

 피식 웃으면서 물을 한 모금 더 마신다.

*  *  *

 이 섬에 온 지 하루가 지났다. 어째서인지 헬기가 오지 않는다. 배고파 죽겠는데 쓰레기라도 먹어야 되나? 식량도 다 떨어졌고, 와야 하는 헬기도 안오고 있으니 완전히 나는 이 섬에 버려진 거나 다름없었다. 그건 나타도 마찬가지겠지. 이대로 구조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쳇. 야, 그 도시락 없냐?"
"없어. 다 떨어졌어."
"아, 이 꼰대같은 자식들. 왜 헬기를 안 보내주는 거야!"

 나타도 영문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당연하지, 원래 벌쳐스는 우리같은 사람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한다고 했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내 목적을 위해서는 그만 둘 수 없다. 만약 비인간적인 지시를 받게 된다면 내 나름대로 저항할 각오도 있으니까.

 녀석들이 우리를 쓰레기 섬으로 보낸 건 섬 주변에 있는 먹을 걸로 생존하기 어렵게 만들려는 거였다. 쓰레기에서 나오는 병균이 동식물에 스며들어 우리가 그걸 먹게 되면 감염될 수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그건 그렇고, 배고파서 힘이 없다. 제대로 걷기가 어려울 정도다.

"야. 비실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나타는 어디론가 향했다. 이 근처에 먹을 거라도 구하러 가는 건가? 그런 건 존재하지 않을 텐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이 섬은 쓰레기로 가득한 섬이다. 분명히 자연산 과일이라도 쓰레기 성분으로 덮여져서 건강에 좋지 않을 거로 예상 되었다. 나타는 잠시 후에 뭔가를 구해왔다. 바나나였다.

"어? 바나나?"
"야, 너 설마 이 섬 전체가 쓰레기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이 섬이 쓰레기로 밀려들어오긴 했지만 쓰레기가 중앙까지 침범한 건 아니야."
"정말?"
"그래! 오면서 확인했거든. 위에서 보니까 쓰레기로 뒤덮인 건 저기 모래사장이 있는 곳과 그 근처일 뿐이라고."

 가만, 내가 잘못생각한 건가? 벌쳐스가 그걸 모를 리가 없을 거다. 그렇다는 건 그냥 단순히 버려서 포류하라고 보낸 건 아니었을까? 어우, 게임을 하도 많이하다보니 여러가지 가능성이 자꾸만 들어서 머리가 아팠다.

"빨이 쳐먹기나 해! 이 비실한 놈아. 나보다 먼저 쓰러지면 진짜로 죽을 줄 알아."
"어, 응. 고마워."

 나타는 혀를 차면서 바나나를 내려놓고 등 뒤를 돌았다. 쑥스러워서 저러는 걸까? 아무튼 나는 그 덕에 바나나로 아침을 해결할 수 있었다. 어느 때보다도 달콤해보이는 바나나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1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