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18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2-16 1

"뭐? 그 녀석들이 살아 돌아왔다고?"

 벌쳐스 사장은 눈살을 찌푸린 채로 보고 받았다. 늑대개 팀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기밀 유출 위험이 되는 한석봉이 거기서 살아 돌아온 게 문제였다. 이번에 출전했던 처리부대는 대부분 응급치료를 받는 중이다. 

"네. 골치아픈 녀석들도 사장님의 따님도 살아 돌아왔더군요. 유니온 정예 클로저들이 뒷처리를 해서 울릉도는 이제 차원종 위협에서 사라졌어요."

 홍시영이 차분하게 보고하자 그는 심기가 불편했는지 인상을 구겼다. 살아 돌아온 게 분한 일이긴 하지만 차원종 본거지나 다름 없는 곳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이상했다. 특경대들의 보고에 의하면 피투성이가 되어서 나오는 그들을 응급처치한 거 밖에 없었다.

"사장님. 당분간 그 소년을 이용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나름대로 성실한 면이 있어서 우리 조직을 위해 뭔가를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홍시영이 전에는 자신의 생각에 동의했지만 지금은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어서 살짝 불쾌한 표정을 보였다. 직원을 살짝 겁을 주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홍시영은 실눈으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 소년이 다른 감시 요원과는 다르게 겁을 먹고 있지는 않는 모양이에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용감하게 나서려는 그 마음 가짐이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어떤가요?"
"흠, 좀 더 지켜보자고? 아니, 그건 안 되는 일이야. 불안의 싹은 즉시 잘라버려야 맞는 거야. 그렇지만 지금은 녀석을 손쉽게 제거할 수 없겠어. 본부장 녀석이 날 의심하는 듯한 눈치거든."

 유니온 본부장은 자신의 이상을 따르지 않는 녀석이었다. 조재현의 일에 가담한 전임 본부장을 잡은 이후에 본인이 본부장 자리에 올랐었다. 그리고 그는 본부장이 되고 나서 비리를 저지른 이들을 싹 다 잘라내 내부 청소를 한 인물이었다.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자였으니까.

"굳이 그렇게 제거하려고 하신다면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뭔데?"
"실은 제일 골치아파보이는 사냥개 한 마리가 지금도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났거든요. 그 대원과 단 둘이서 위험한 임무에 투입시키면 어떨까요?"
"흠. 사냥개라면 그 녀석 말이지?"

 이야기를 들은 사장은 씩 웃어보였다. 이번에는 잘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  *  *

 붕대 감은 상처가 쓰라렸다. 그 위험에서 살아나오긴 했지만 훈련을 그만둘 수 없었다. 클로저들은 다친 몸으로도 임무 수행한다고 했으니까. 그러면 나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부모님도 다친 몸으로 일하는 일이 있었지 않았는가? 

쉴 수는 없지.

 최재성 팀장님에게 받은 발명품을 사용한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연습을 한다. 행글라이더와 싸이클 슈즈를 연습하면서 차츰 적응해가고 있다. 이 두가지만 활용하고, 실전 경험을 쌓는다면 아무리 빠른 차원종이라도 상대할 수 있는 전사가 될 수 있다. 레벨업 한 번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험치가 필요하다. 그 경험을 쌓으면서 성장을 이루어낸다는 얘기다. 

인간은 위상력 없이 성장이 가능하다.

 자신만의 억측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걸 이루어낸 사람이 있지 않은가? 위상력을 각성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두려워할 뿐이다. 그런 편리한 지름길 없어도 다른 방법이라도 이루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상처가 욱신거리지만 몸을 움직이다보면 그게 잠시나마 잊게 된다. 일을 하고 나서 생긴 허리 통증이나 다리 통증은 일로 낫는다고 했었다.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셨지.

"후, 어느 정도 익숙해졌군."

 아직 차원종 상대로 부족해보이지만 자신감이 있다. 언젠가는 그 사람처럼 될 수 있다고 확신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참에 휴대폰 문자가 도착했다. 감시관님이 보내신 문자를 보고 곧바로 본부로 귀환한다.

*  *  *

"쳇. 내가 이런 비실이랑 단 둘이서 임무 수행해야 되다니."

 나타는 투덜거리면서 석봉과 같이 임무 수행한다. 이번에 맡은 임무는 쓰레기 섬이라고 불리는 장소에 가서 차원종 잔해를 수집하라는 임무였다. 주로 처리부대에게 주어지는 기본 임무, 바로 잔해 수집이다. 그것이 있어야 벌쳐스 회사 내에서 다양한 장비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유니온같은 조직과 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까. 쉽게 말해서 돈 벌기 위해 잔해 수집하는 거다. 그리고 잔해 수집방법은 간단, 차원종을 처리하면 된다.

 헬기를 타고 가면서 나타는 창밖을 보며 투덜거리고 있다. 석봉은 그와 단 둘이 임무 수행하는 게 조금 긴장되었지만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여기 오기 전에 최재성 팀장에게서 들은 게 있었으니까.

분명히 사람을 죽였다고 했지? 내가 여기 오기 전에 감시 요원 한 명도 죽었다고 했으니까.

 잘못하다가 자신도 살해당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두려워할 생각은 없다. 나타는 심술궂긴 해도 자신을 위한 충고같은 이야기를 몇 번 했으니까.

"야, 뭘 봐! 비실이!"
"응? 아, 저기, 잘 부탁할게."

 석봉이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나타는 그가 보인 행동에 조금 놀랐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보통 자신이 이렇게 심술궂게 말하면 다른 사람은 화를 내거나 그럴 텐데 이 소년은 그러지 않았었다. 정작 자신의 말에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은 처리 부대 말고는 그가 처음이었다.

"쳇. 너 뭐야? 내가 마음에 들기라도 한 거야? 내가 누군지 몰라!? 앙!?"
"알고 있어. 나타. 넌 좋은 애라는 거 알고 있어."
"내가 어딜 봐서 좋은 애라는 거야!? 기껏 말 놓게 해줬더니 이상한 소리나 하고."

 헬기에 타기 전에 서로 말놓게 했었다. 그런데 석봉이 다정하게 말하니 검지로 손가락질 하면서 이마를 찌푸렸다. 짜증이 나서 베어버릴 충동이 생길 수준이다. 그렇지만 석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기를 그만두라고 말하기도 했고, 내게 위험을 경고해줬잖아. 그렇게 말해준 것만 해도 좋은 사람이라는 거 충분히 알 수 있어."
"뭐라는 거야!? 이 비실이가! 그냥 닥치고 있어!!"

 양 손으로 가슴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홱 돌리며 큰 소리를 냈다. 석봉은 그가 솔직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차원종과 싸울 때 그가 몇 번 도와주기도 했었다. 강자와 싸우는 걸 즐기지만 약자를 은근 챙기려고 하는 편이다. 감시 요원으로서 내린 그의 결론이었다.

"나타, 상처는 괜찮은 거야?"
"흥! 이까짓 상처 따위에 굴할 나타님이 아니시다. 그건 그렇고, 그 쓰레기 섬이 어떤 곳인지는 아냐?"
"아니, 난 잘 모르겠어."
"쳇! 쓸모없는 녀석."

 감시 요원인 그에게도 자세한 건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곳으로 가서 잔해만 수집하고 오라했으니까. 석봉은 나타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정말로 아무 이유없이 살해한 남자일까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으로 봤을 때 절대 그러지 않았다고 느꼈다.

"곧 도착합니다. 내릴 준비하세요."

 헬기 조종사의 말에 석봉은 자세를 반듯이 하며 안전벨트를 풀었다. 두 사람이 내린 뒤에 곧바로 헬기는 떠올랐고, 나타는 저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스캐빈저 무리를 보며 곧바로 달려들었다. 석봉도 권총을 꺼내 자신에게 달려오는 스캐빈저 무리를 향해 사격한다.

탕! 탕! 탕!

 떨림이 오지 않는다. 강한 차원종을 상대로 살아남은 덕에 경험이 되어 이제는 전장에서 망설이지 않았다. 스캐빈저 정도는 그가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많은 수는 나타가 전부 상대하고 있어서 편했다. 전부 다 썰어버리고 온 나타를 본 석봉은 피투성이가 된 모습을 보고 입을 벌렸다. 저게 바로 살육을 즐기는 사냥개, 나타였다.

"크크크, 약해빠졌잖아. 야, 비실이. 잔해 수집이나 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어, 응."

 잔해 수집용 상자를 열어 스캐빈저 잔해 하나씩 모아서 한꺼번에 담았다. 이대로 계속 담기만 하다보면 헬기가 알아서 오게 되어있다. 

*  *  *

 바이올렛은 병실 침대에 앉은 자세로 책을 읽다가 하이드에게 소식을 듣고 놀란 얼굴을 했다. 한석봉이 임무 수행으로 또 갔다는 소식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통증때문에 다시 주저앉았다.

"아니, 돌아온지 얼마 안 되었는데 바로 임무라니.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아가씨. 지금은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건강이 더 악화됩니다."
"어떻게 진정할 수 있어요? 하이드. 당장이라도 돌아오게 해야 해요. 미래의 유능한 인재가 거기서 죽게 되는 걸 지켜볼 수 없어요."

 하이드는 욕심이 많은 아가씨를 보좌하는 게 가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라 뭐라 하지 못했다. 힘은 약해도 성실함은 그도 인정하고 있으니까. 이번에 벌쳐스 사장의 계획을 자신이 생각한 대로 말했다.

"사장님께서는 아마도 그 소년을 죽게 할 생각이신 모양입니다. 아직도 그 분께서 기밀 정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니까요."
"기억 제거도 안 되니까 그냥 죽게 내버려 둔다는 건가요? 제가 지금까지 봤는데 그런 거 알았다고 볼 수는 없었는데."
"만에 하나 제거하는 거겠죠."

 하이드의 말에 바이올렛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그가 살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지금은 다친 몸으로 어디로 갈 수도 없으니까. 하이드도 다친 몸이지만 그녀를 보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혼자 간 건 아니죠?"
"나타 요원과 함께 갔습니다. 그 분만큼은 아직 전투가 가능한 육체니까요."
"이거 불안하군요. 아버지는 상당히 치밀한 분이실지도 몰라요. 한석봉 씨가 그 섬에서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염려해두셨을 거 같아요. 전에 감시 요원을 죽인 적 있는 자니까요."

 이번에도 살해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소름돋는 얼굴을 했다. 하이드는 그저 냉담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1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