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17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2-14 1

 아가씨 표정이 좀 무섭다.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클로저도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감시 요원이 계속 나섰으니까. 몇 번이고 죽을 뻔 했으니까.

"네."
"정신이 나간 거에요? 정말로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요? 왜 위험한 행동을 그렇게 자초하는 건가요? 항상 제가 구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감시 요원이 그렇게 무리하게 나설 필요는 없다는 얘기였다. 바이올렛 아가씨가 아니었다면 이미 나는 이 세상에 없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상처 입어서 의식을 잃은 늑대개 팀을 생각하면 이대로 놔둘 수도 없었다. 나 혼자서만 손가락을 빨면서 구경하는 건 질색이었으니까.

"당신은 미래에 우리 회사를 이끌 유능한 인재에요. 다시 말해 벌쳐스의 소유가 될 운명이에요. 그러니까 함부로 목숨을 버리지 말도록 하세요."
"죄송합니다. 아가씨."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내 미숙함 때문에 그녀가 팀원을 내팽개치면서까지 나를 구하러 올 정도였으니까. 위상력에 각성하지 않은 인간은 원래 클로저에게 커다란 짐이 되기 마련이다. 주로 후방으로 물러나 안전하게 있는 게 보통이다. 그걸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전방으로 나서서 위험에 자진해서 마주했다. 아직도 상처난 곳이 아프지만 그래도 참아야 했다.

"한석봉 씨.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위상력을 각성하는 게 어때요?"
"위상력이요?"
"네. 아무래도 싸우고 싶은 거 같은데 아버지에게 말씀 드려서 저들처럼 클로저가 되게 할 수도 있어요."

 위상력 능력자가 된다는 말에 조금 흔들렸다. 확실히 각성하게 되면 평소와는 더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차원종을 쓰러뜨리는 클로저가 되어 그녀 옆에 설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전 위상력 능력자가 될 생각이 없어요."
"뭐라고요?"
"확실히 각성하게 되면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커다란 책임을 감당할 정도로 강한 인간은 아닙니다."

 어느 영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커다란 힘에는 커다란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고. 클로저가 되어서 차원종을 쓰러뜨린 강자가 되었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다. 세하 어머니가 대표적인 예다. 그녀를 존경하는 사람이 많이 있겠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한 인생을 보내기 어려웠을 테니까. 보통 사람과는 다른 취급을 받았기에 그녀와 가까이 지내려는 이는 거의 없다. 세하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내에서 다른 사람들이 멀리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세하는 강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그럼 앞으로 전방으로 나서지 마세요. 감시 요원이면 감시만 하시라고요. 매번 위험에 처해서 구하는 것도 싫으니까요."

 검지로 나를 가리키면서 명령조로 말한다. 반드시 따르라는 듯이 말하지만 나는 거기에 굴할 생각이 없었다. 이건 사장님의 명령이라 해도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가씨에게 민폐 끼치는 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차원종과 싸우는 클로저와 함께하고 싶으니까요. 그러다 죽게 되면 어쩔 수 없지만, 겁쟁이처럼 행동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 보세요.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에요? 죽으면 다 끝이라고요. 당신은 지금 처리부대에게 짐만 되고 있어요."
"네. 지금은 짐이 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도 계속 짐만 될 생각은 없습니다. 경험을 쌓으면서 차원종과 싸울 수준인 전투력을 가질 겁니다. 처음에 레벨 1인 초보자가 세월이 흘러서 왕국을 구하는 영웅이 되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강한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마찬가지. 레벨 1부터 시작하면서 서서히 경험치를 얻어서 성장하는 거다. 나도 그렇게 되는 거라 확신했다. 모스페어와 싸움에서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빠른 스피드를 감당할 수준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약물같은 걸 하지 않아도 수련으로 언제든지 움직임을 빠르게 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석봉 씨가 그 영웅이 되겠다는 건가요?"
"지금은 늑대개 팀에게 신세만 지고 있지만, 고 레벨이 된다면 제가 아가씨를 구해드리겠습니다."
"에? 뭐라고요?"

 어이없었는지 눈을 반쯤 감은 채 고개를 약간 숙였다. 가슴을 주먹으로 쳐서 당당하게 말해서 할 말을 잃으신 모양이었다. 이 말이 웃기게 들릴 수도 있다. 바이올렛 아가씨에게 몇 번이나 구해졌다. 이렇게 살아난 목숨이니 나도 그녀를 구할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수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석봉 님. 아가씨는 제가 반드시 지킵니다."

 하이드가 나서서 인상을 약간 구기면서 말했다. 자신의 경호 능력이 미숙한 거로 지적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살의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내가 조금 말실수했나 보다.

"하, 이런 농담은 처음 들어보네요. 당신이 저를 구한다고요? 저보다 약하면서?"
"그것도 지금 뿐입니다. 전 이보다 더 강해질 생각이니까요."
"하아, 이봐요. 위상력 없이 강해질 거라고 생각하세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위상력 능력자는 물론 C급 차원종도 감당하지 못해요."

 이마에 손을 짚으시면서 말씀하신다. 상식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렇지만 민간인이 클로저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는 사례는 들어서 알고 있다. 세하 아버지가 그 중 한 명이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다는 건 나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꼭 위상력을 가진다고 해서 다 이루는 건 아니다. 내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  *  *

 모스페어 차원종 무리는 유니온에서 온 정예 클로저들에 의해 토벌되었다. 약점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건 정예 클로저도 알 수 있는 사실이라 내 도움은 필요 없었다. 아가씨는 내 말이 우습게 들리겠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그 정도 배짱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세하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한석봉, 어이! 한석봉! 이녀석아!"
"아! 네! 선생님."
"이 녀석, 수업 중에 왜 창밖을 보고 있어? 나와서 풀어봐."

 으억, **, 수업 중에 딴 생각을 해버렸다. 상체를 숙이며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분필을 들며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였으니까.

*  *  *

 유니온 본부, 이번에 본부장으로 취임한 차재욱 본부장은 울릉도로 간 정예 클로저들이 모스페어 차원종 무리에 관한 보고서를 읽으면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유니온 클로저가 출발한 날짜와 그들이 토벌한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으니까. 

"뭐야 이거? 이 녀석들이 어디서 놀다가 갔나?"

 상당히 불쾌했다. 벌쳐스 처리부대가 대원들을 먼저 보내 차원종과 싸우고 있었는데 진작 합류했어야 할 유니온 정예 클로저들이 도착이 늦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본부장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수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연락했다.

"울릉도로 다녀온 클로저들 전부 내 앞으로 불러내."

탕!

 벌쳐스 처리부대는 겨우 생명에 지장없을 정도로 치명상을 입었다. 그리고 그곳에 감시 요원도 크게 다쳤다고 들었다. 유니온 클로저가 진작 도착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다. 이를 악물면서 수화기를 세게 내리쳤다. 잠시 후에 울릉도로 갔던 클로저들이 전부 본부장 실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거수 경례 하는 리더가 그의 얼굴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안 좋은 일로 불렀다는 걸 의미하니까. 차재욱은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너희가 출발한 시각과 울릉도에서 토벌한 시간이 왜 이렇게 긴 거야? 이게 말이 돼? 0월 0일 0시에 출발인데, 왜 0월 0일 0시에 도착해서 토벌이야?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
"실은 벌쳐스 사장님께서 저희에게 연락하셨습니다. 처리부대가 다 처리할 테니 굳이 출발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장이? 너희는 관리요원에게 연락은 했어?"
"네. 관리요원님께는 보고 드렸습니다."

 관리 요원에게는 보고 했지만 본부장인 자신에게는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수화기를 들어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불러냈다. 이 클로저 팀 관리 요원과 지부장까지. 

"좋아. 알았으니 이만 가보게."

 클로저들이 거수 경례하고 나갔다. 크게 뭐라할 자신은 없었다. 자신도 예전에 상사가 못된 짓을 할 때 맞서 싸우거나 그러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자기가 본부장이니 갈등 할 일이 거의 없겠지만. 물론 정부쪽 사람이 간섭해오긴 하지만 데이비드처럼 당당하게 나서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나저나 그 소년이 감시 요원이라 했던가?

 벌쳐스에서 보내준 프로필을 보았다. 한석봉, 그는 평범한 소년이지만 전직 클로저였던 아버지를 두고 있었고, 현재 위상력 상실증에 걸린 이후로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왜 이 소년이 벌쳐스에 들어간 거지? 거기는 들어가기 어려운 기업일 텐데.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그는 수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나다. 급히 해줘야 할 일이 있는데, 벌쳐스 회사 말이야. 거기로 잠입해서 뭘 꾸미고 있는지 알아봐... 응. 그래, 그리고 한석봉이라는 소년이 왜 벌쳐스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지도 알아내... 아니 그걸 몰라서 묻냐? 그런 애송이가 그 회사에 어떻게 들어가? 뭔가 숨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한석봉이 그 회사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학업 성적도 안 좋은데 그곳에 들어가 감시 요원이 되었다는 거 자체가 너무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봉급도 일반 사원처럼 받고 있다. 그래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거였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1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