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4 검은양 스폐셜(Happy Valentine's Day)
Forgetter 2020-02-14 6
※ 2020년 밸런타인데이 특집(검은양 위주)
※ 외전 격으로 썼습니다
이번 밸런타인데이 때는 한 가지 약속을 정하였다. 각자가 초콜릿을 준비하되, 준비해온 사람은 초콜릿을 특정 사람에게만 주는 것이 아닌 모든 팀원들에게 나눠주기로 하자는 것. 이 결정에 대해 검은양 전원은 좀 뚱-한 반응이었다.
이를 제일 먼저 제안한 사람은 바로 유정이었다. 유정 왈, 팀 내에서 어떤 사람은 받고 못 받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서 서운한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될 거 같다, 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말을 잠자코 듣던 세하는 유정에게 물었다.
-그럼 유정 누나는 모두를 위해 초콜릿을 준비하실 생각인 거예요?
-어? 어어, 물론이지...!
당황하는 폼이 무슨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지, 고등학생 3인방의 의혹을 품기에 충분했지만, 그렇다고 유정이 말하는 취지가 나쁜 것은 아니라서 넘어가기로 했다.
오히려 모두의 초콜릿을 준비해야하는 밸런타인데이라는 것이 더 흥미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이들 중에서 가장 들떠 보이는 사람은 슬비였다. 요리 관련 사이트에서 레시피를 찾아야 하나, 라며 중얼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세하가 직접 물어보았다.
-초콜릿, 누구한테 주었던 적 없었던 거야?
곰곰이 생각하던 슬비가 답을 내놓았다.
-딱히...? 그야 아카데미에 있을 때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었으니까.
-여유라...
세하가 보기에는 슬비는 아카데미 시절보다 좀 더 바쁜 생활을 하고 있어서, - 리더라는 자리가 괜히 겉치레가 아님을 증명하듯이 - 객관적으로 보면 지금이 더 시간적인 여유는 없어보였다. 여유라는 것도 물리적인 시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라 세하는 그냥 거기서 대화를 마쳤다.
유정은 물론, 슬비도 기대하는 눈치에 비해 유리는 생각 외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건 유리가 평소에도 많이 활기찬, 분위기 메이커이기 때문일까? 하긴 지금의 유리는 평소의 유리와 똑같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활기차게, 모두의 근황을 물어보고 다니는 중이었다.
세하는 의자 깊숙이 몸을 늘어뜨리며 잠깐 생각했다.
곧 밸런타인데이라...한 1주일 정도 남았던가? 그리고 세하는 곧 깨달았다.
매년 밸런타인데이마다 세하가 맞이해야하는 관례가 올해에도 결코 예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 * *
“...이게 무슨 일이야, 동생?”
제이가 세하를 향해 뜨악거리는 눈빛으로 물어보았다. 세하는 그런 제이의 말에도 입을 야무지게 다문 채, 그냥 묵묵히 자신이 가지고 온 짐 보따리를 푸는데 여념이 없었다.
제이의 옆에 있던 테인도 잔뜩 놀란 눈치였다.
“세하 형! 이게 다 뭐에요?”
“...초콜릿이야.”
“초콜릿인건 알겠는데 동생, 이건...좀...”
...너무 많은 양이 아닌가? 제이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동아리방에 먼저 도착했던 제이와 테인은, 잠시 후 도착한 세하가 만만치 않은 봇짐을 들고 도착한 것에 깜짝 놀라던 참이었다. 게다가 그 짐이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나 있었다는 것에 두 번째로 놀랐다. 이 많은 걸 어떻게 혼자 다 짊어지고 왔다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놀란 점은 그 짐에는 죄다 초콜릿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건 마치 초콜릿 방문판매 사원 같은 모습이잖아...!! 세하가 이렇게 산더미처럼 많은 초콜릿을 짊어지고 나타난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하가 직접 설명해주었다.
“...엄마의 취미에요.”
“응? 누님 말이야?”
세하가 말하는 엄마, 제이가 말하는 누님, 둘 다 알파퀸 서지수를 뜻했다. 세하는 아저씨라면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라며 운을 띄웠다.
“엄마가...한 번 요리 할 때마다 엄청 많이 만들어내는 거요...”
“아, 그렇지...누님은 손이 큰 편이었지.”
그것도 보통 느낌으로 큰 것도 아니라, 그냥 특대, 무조건 특대 사이즈 같은 느낌의 손이 큰 편이었다. 세하의 설명에 의하면 해마다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초콜릿 만드는 재료를 왕창 사와서 부엌에서 하루 종일 초콜릿을 만들고, 그 완성품을 지인의 지인에게까지 선물 형식으로 준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제이는 여러모로 서지수답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지수가 만들었다는 것에서부터 가장 신경이 쓰였던 부분이 딱 하나 있었다.
“맛은...보장할 수 있는 거지, 동생?”
“...복불복이에요.”
이에 대해 세하는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서지수의 요리 솜씨를 예전에 많이 겪어본 제이가 이 점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물론 엄마가 만든 것만 있는 건 아니에요. 저도 매년 초콜릿 만드는 거 도와드리거든요.”
“응? 동생, 초콜릿도 만들 수 있는 남자였던 거야?”
“어쩔 수 없잖아요...안 그러면 재료가 남아버려서 냉장고 칸을 다 꽉 차게 되어버리니까...이렇게라도 소모할 수밖에 없다고요.”
세하 왈, 올해는 정말로 많이 사버렸다고. 심지어 초콜릿 이번에는 검은양에게 나눠준다고 하니 힘을 좀 더 팍- 써야 한다면서 도중에 추가 구매까지 해버렸다고...
서지수는 묘하게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어서, 특히 이런 일과 관련해서는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다. 그걸 아주 잘 아는 세하는 대신 이런 방법을 선택했다. 줄일 수 없다면, 이왕 있는 재료 전부를 다 없애주겠어! 라고.
제이는 모든 설명을 듣고서 책상 위로 널브러져 버린 초콜릿을 보았다. 아무리 두 사람의 합작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많은데...심지어 초콜릿 별로 포장도 정성껏 다 되어 있었다! 제이는 용기를 내어 초콜릿 하나를 집어 입 속에 굴렸다. 테인도 제이를 따라 제이가 집은 근처에서 하나 선택했다. 세하는 무표정하게 두 사람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둘의 감상평은 의외였다.
“오! 이거 제법 맛있는데?!”
“초콜릿 맛이 나요!”
“초콜릿이 초콜릿 맛이 나는 건 당연한 거겠지...”
세하도 두 사람을 따라 초콜릿 하나를 입 속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잠시 후, 일그러지는 세하의 표정에서 제이와 테인은 세하가 복불복에 실패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옆에 있던 물을 들이마신 세하는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설탕과 소금을 헷갈리시다니...”
“...누님이 사랑을 듬뿍 넣었나보군.”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에요. 어느 적에는 불닭 소스 같은 걸 넣으셔가지고...”
“...”
제이는 오소소 돋는 소름을 느끼며 생각했다. 역시 누님은 누님이구나. 그 뒤의 세하의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제법 먹을 만 했어요, 그것도.
한창 뒷정리를 하는데, 유정과 슬비, 유리까지 합세해 검은양 팀 전원이 모였다. 뒤늦게 온 세 명 또한 어마어마한 수의 초콜릿을 보고 놀라워했다. 그리고 이걸 매년 거침없이 해내는 서지수 모자(母子)에 놀라움을 넘어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며칠 전 미리 약속해두었던 대로 각자가 전부 공평하게 나누어먹을 초콜릿을 준비해와 나눔을 갖는 시간을 가졌다.
제이와 테인은 만드는 재주는 없다며 시중에서 파는 것을, 유정과 유리는 간단한 요리 솜씨로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제품을 통해 만든 것을, 슬비는 아예 장인 정신을 발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가진 것을 가져왔다.
너무 힘을 준 거 아니냐는 세하의 질문에 슬비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힘든 거 아니야. 요리 프로를 틈틈이 봐왔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그걸 아무나 못한다는 게 문제라는 거야...”
“슬비는 대단하구나...”
유리가 눈을 예쁘게 반짝이면서 슬비를 우러러 보았다. 이런 시선 처리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슬비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뭐, 나는 5명분을 준비하면 되었지만, 이세하 네 쪽이 오히려 더...”
슬비의 시선은 책상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초콜릿 산(山)이라고 명명해도 될 만한 것에 닿아 있었다. 이에 대해 세하의 태도도 슬비와 비슷했다.
“난 매년 하던 일이니까. 뭐, 올해는 좀 많긴 했지만.”
“내가 보기엔 세하 너는 하기 싫었지만, 아주머니가 억지로 끌고 간 거 아니고?”
“...”
유리의 장난 섞인 추측에 말이 없는 걸로 보아 그런 점도 적지 않게 있기는 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두루두루 초콜릿도 실컷 먹고, 주고받고 하는 이벤트의 흔치 않은 밸런타인데이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 *
늦은 저녁, 아직도 동아리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도 제이는 별로 놀란 기색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야 동아리방으로 와달라고 먼저 부탁했던 사람이 있었으니까.
제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낯이 익은 뒷모습이 먼저 보였다. 푸른색 계통의 정장 차림. 짙은 밤색의 기다란 머리카락. 제이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제이를 여기로 부른 것도 동일인이었다.
“유정 씨?”
“오셨어요, 제이 씨?”
제이가 부르는 소리에 유정은 제이를 기다리느라 걸터앉아있던 책상에서 내려왔다. 제이는 퇴근시간이 이미 한창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유정이 여기에 남아있는 것, 그리고 자신을 굳이 따로 이렇게 불렀다는 것, 이 두 가지 사항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전자 같은 경우는 이런 추측을 할 수도 있지만.
“혹시, 유정 씨 오늘도 야근인가?”
“야근까지는 아니고 잠깐 잔업은 있어요.”
“그래도 그 잔업에 시간을 뺏기면 야근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긴...하죠.”
유정의 시선처리가 애매했다. 지금 유정이 짓는 표정은 ‘이런 이야기를 할려고 따로 부른 건 아닌데!’ 였는데 제이는 그 시점까지는 유정의 표정을 전부 눈치 채는 그런 대단한 사람까지는 아니었다. 지금 제이는 유정이 아직도 잔업에 치인다는 사실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그럼 이러지 말고 빨리 끝내라고. 밸런타인데이에, 야근이라니...그건 좀 가혹하다고 생각하다만.”
“그럼 제이 씨가 도와주실 건가요?”
살풋, 유정이 싱긋 웃었다. 제이는 잠시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다. 유정의 저런 상쾌한 미소는 볼 때마다 마음이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제이는 멋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이, 이런 나라도 도움이 된다면...도와줄 수는 있지, 당연히.”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한 와중인데, 도와준다는 것이 사람의 손이라면 더욱 거절할 이유가 없죠.”
유정은 익숙하게 제이의 손을 잡았다. 보드라운 감촉에 제이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 그 굳어버림도 제이가 부드럽게 잡아끌면서 금방 풀려버렸지만.
뭐지, 무언가 은은하고 따사로운 바람 하나가 불어오는 거 같다.
같이 잔업 처리를 하던 와중에, 제이는 문득 창문에 걸린 달을 보았다. 보름은 이미 지났기에 완전한 보름달은 아니지만 그래도 온전한 동그라미 형태를 예쁘게 유지하는 달이 보였다.
이렇게 달이 보기 좋은 날에는...제이가 유정에게 물었다.
“유정 씨.”
“네?”
“만약에 이 잔업을 30분 안에 끝낸다면, 저녁에 시간 있어?”
“...뭐, 그렇죠. 퇴근하면 간단하게라도 저녁 먹을 생각이긴 했는데...”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니고 딱 적당하게 놓여진 상황. 누군가가 제이에게 외치고 있었다. 질러! 지금은 그냥 과감하게 질러버려!
“그러면 저기 나랑 같이...”
“...?”
“오랜만에, 포장마차에서 술이라도 마실까, 싶어서 말이야...”
“...”
유정은 잠시 말이 없었다. 제이는 곧장 자신을 책망했다. 아니, 여기서는 과감하게 데이트 신청하는 거 맞다면서! 어디 사는 누가 그렇게 이상한 말을 해대가지고! 그와는 다르게 유정은 아주 침착하게 자신의 상황을 돌이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이성적인 계산을 다 끝낸 유정은 상쾌하게 웃었다.
“좋아요.”
일이 끝난 후의 한 잔을 위해 빨리 끝내도록 하죠, 라며 기운차게 다시 서류에 집중하던 유정이 제이를 먼저 부른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러고 보니 제이 씨에게 깜빡 잊고 안 준 것이 있어요.”
“깜빡 잊고?”
유정은 옆에 있던 가방 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한눈에 보아도 잔뜩 힘주어 포장한 티가 나는 선물 상자였다. 제이는 상자를 받고도 영문을 모른 채, 잠시 어리둥절해 있었다.
“이게...뭐야, 유정 씨?”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이에요.”
“밸런타인데이!?”
유정 씨의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이라면, 아까 나눠주지 않았던가? 라는 제이의 질문에 유정은 옅게 미소 지었다.
“그건 관리요원으로서 준 것. 그리고 이건...”
“이건?”
“이성으로서 주는 것.”
유정의 당돌한 대답에 제이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삽시간에 빨개졌다. 그 모습을 귀여워하면서 유정은 생각보다 여유가 잔뜩 묻어나오는 태도였다.
“사실 어떻게 해야 제이 씨한테 초콜릿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그래서 모두가 주는 초콜릿에 살짝 내 것만 끼워 넣으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며칠 전에 유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 사람에게만 주는 것이 아닌 전부에게 나눠줄 몫을 챙겨보자, 라고 한 것.
그게 그 눈속임을 위해서였는가! 제이는 유정의 큰 그림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헌데 의문이 하나 생겼다. 유정의 저 작전은 분명 성공했던 게 분명한데, 그럼 이성으로서 준다는 이 두 번째 초콜릿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해서 유정은 자기가 생각해도 부끄러웠는지 좀 뜸을 들였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만들다 보니...”
“...”
“...그래도 제대로 확실히 마음을 표현해야하기는 할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러한 복잡한 사유로 두 번째 초콜릿이 탄생한 것이라는 소리였다. 유정은 계속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아마 이렇게 늦은 시간임에도 따로 제이를 부른 건 그러한 이유였을 것이다. 유정에게 있어서 이 마음은 제이 당사자에게만 전해주고 싶은, 수줍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날이 아니면 무용지물일 될 물건이기에 꼭 오늘이어야만 했다.
제이는 조용히 유정을 불렀다.
“유정 씨.”
“네?”
“정말 고마워. 클로저로서 관리요원의 마음을 받은 것도, 그리고...”
“...”
제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유정은 뺨이 보기 좋게 물든 제이의 얼굴을 보며 작게 탄식했다.
뒷말은 왜 하지 않는 걸까, 이 얄궂은 사람이란.
사람이 있는 것이 분명한 검은양 동아리방의 불이 꺼진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 * *
집에 돌아온 세하는 그날도 밤늦게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꼭 깨야만 직성이 풀릴만한 구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가끔씩 새벽에 깨어있을 때의 세하는 입가심할만한 것을 찾는 편이었다. 이날은 팀원들에게서 받아온 초콜릿이 잔뜩 있었기에, 따로 방을 나설 필요는 없었다.
세하는 침대 바로 옆 탁상에 그 초콜릿을 올려놓았다. 한참 게임에 집중하다가 입에 무언가를 넣어야 할 타이밍이라 생각해 미리 뜯어놓은 상자 속에 초콜릿을 집어 입 속에 굴렸다. 쌉쌀한 다크 초콜릿의 맛이 입안 전체에 천천히 퍼졌다. 맛이 있어서 또 하나 집으려고 할 차에, 손의 위치가 엇나가서 초콜릿 상자 전체를 그만 탁상 밑으로 떨어뜨렸다.
세하는 급하게 게임을 일시정지 시키고 떨어진 상자를 주웠다. 그러다가 아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쪽지?”
초콜릿을 준 팀원들 중에서 누군가가 상자에 포장하면서 같이 끼워 넣은 듯 했다. 글씨체는...어디서 많이 본 글씨체이다. 그리고 세하는 이 글씨체를 가진 인물이 누구인지도 아주 잘 알았다. 그야 옆에서 자주 보던 것이니까 모를 수가 없었다.
쪽지의 내용은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세하에게 담아내는 것이었다. 세하는 문득 시계를 보았다. 0시 58분...옆의 날짜는 02/15를 가리키고 있었다.
세하는 조금 한탄했다. 그 날이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을 터인데, 용기를 내어 자신에게 준 감정을 자신은 조금 늦게, 그러나 결정적으로 특별한 날이 지나서 봐버렸다. 미안한 감정과 더불어 세하는 쪽지를 곱게 접어 서랍 깊숙이 넣었다.
이건 발견하지 못하는 것으로 치는 게 나은 것이겠지. 세하는 눈치가 빠르지 못한 자신을 아주 약간의 추궁을 하고 다시 게임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