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랑(龍狼) - epilogue2
플루ton 2020-02-04 0
쏴아아아…! 쏴아아아아……!
귓가에 울리는 시원한 파도 소리. 환한 햇살과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그 아래에서 햇빛을 받으며 에메랄드 빛깔로 반짝이는 바다와 새하얀 백사장. 수많은 인파가 각자의 방식으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곳은 최고의 휴양지 중 하나인 몰디브였다.
그리고 해변을 매운 사람들 가운데 한사람, 나타가 해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긴 청발을 하나로 묶고 무릎까지 오는 새까만 수영복과 마찬가지로 검은색 바탕에 푸른색이 가미된 겉옷을 입고 한쪽 어깨에 파라솔을 메고 반대쪽 손 한가득 짐을 든 나타가 휘파람을 불며 감탄했다.
“휴~. 경치 좋은데? 지금까지 둘러본 해변 중에서 단연 최고인걸?”
나타와 레비아가 신혼여행으로 세계일주를 시작한 지 어느새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전체 여행 기간에 절반 정도가 지난 현재 수많은 자연경관과 다양한 관광지를 들른 나타였지만 그런 그가 보기에도 현재 서 있는 해변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나저나 화장실 좀 갔다 온다더니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조용히 해변을 감상하던 중 아직 소식이 없는 레비아를 떠올리고 걱정스레 호텔로 이어진 길을 돌아보았다. 해변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수는 많았지만, 그 사이로 레비아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고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 나타가 직접 찾으러 갈지 고민하던 때였다. 인파 사이에서 반짝이는 익숙한 은발이 나타에게 포착되었다.
“아! 나타님~! 늦어서 죄송해요~!”
레비아 쪽에서도 나타를 찾아냈는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 모습에 나타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레비아를 맞이했다.
“죄송해요. 제가 좀 많이 늦었죠? 화장실에 사람이 좀 많아서.”
“별일 없었다면 상관없어.”
무심한 척 사과를 받아주는 나타의 모습에 미소짓는 레비아. 겉으로 보이는 태도랑 달리 사실은 걱정하고 있었단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곤 주변의 경치를 둘러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적당히 대답하는 나타였지만 그 시선은 이제 해변이 아니라 레비아에게로 고정되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봐왔던 얼굴이었지만 전혀 질리지 않는다 생각하며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 나타님?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어서 가자고.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빨리 자리를 잡아야겠다.”
빤히 쳐다보는 것을 눈치챘는지 레비아가 돌아보며 물었지만, 나타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하며 앞으로 걸어갔고 레비아도 그 뒤를 따라갔다. 걸을 때마다 사박사박 소리가 울리는 백사장을 걷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헤헤~ 그나저나 정말 멋진 곳이네요. 경치도 좋고 사람들도 많고.”
“그래 정말 좋은 곳이야. 사람만 좀 적었으면 말이지.”
뒷말은 레비아에게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리는 나타. 그러면서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해변을 메우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 그중 남자들의 시선이 레비아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그 시선에 담긴 욕망을 쉽사리 눈치챈 나타는 작게 혀를 찼다.
‘망할 놈들. 남의 여자를 무슨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거야.’
속으로 불만을 토하면서 레비아를 돌아보았다. 햇빛 아래에서 더욱 그 존재감을 내비치는 은발은 포니테일로 묶어 올렸고 덕분에 새하얀 목덜미가 그대로 드러났다. 거기에 피부가 타는 것을 막으려고 입은 얇은 겉옷 걸쳐 입었음에도 확연히 두드러지는 굴곡진 몸매와 허벅지 아래로 숨김없이 드러난 새하얗고 쭉 뻗은 다리까지.
아직 수영복은 차림은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해변의 남성들의 시선을 강탈하기에 충분한 매력을 풍기고 있는 레비아의 모습에 나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레비아에게 부적절한 시선을 던지는 남자들만 느낄 수 있도록 핀포인트로 살기를 뿜었다.
“““““...............!!!!!!!!!!!!!”””””
순간 남자들은 자신들의 목에 칼이 닿는 듯한 감각에 오한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자연스럽게 레비아에게 모여들던 시선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이에 만족하며 나타는 바다와 적당히 떨어진 장소에 파라솔을 세우고 자리를 잡았다.
“후~. 좋아. 대충 자리는 잡았고, 이제 바다로 들어가 볼까?”
“아, 그전에 잠시…….”
나타의 말에 뭔갈 떠올린 레비아는 가지온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곧 원하는 물건을 찾아내곤 이를 나타에게 건네며 주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건을 받은 나타는 그 정체를 확인하곤 눈살을 찌푸렸다. 건네받은 물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자외선 차단제였다. 이어서 벌어질 상황을 눈치챈 나타는 강렬한 두통을 느꼈다.
“죄송하지만, 자외선 차단제 좀 발라주시겠어요? 햇볕이 좀 강해서.”
“하~ 이럴 줄 알았다.”
예상대로의 전개에 나타는 깊은 한숨을 쉬며 눈가를 눌렀다.
“....일단 물어는 보겠는데…. 이것도 그 좀도둑이 가르쳐 준거지?”
“? 네 그렇긴 한데요?”
“역시나…….”
간단하게 이 상황을 만든 범인을 찾아낸 것과 동시에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신혼여행 직전 하피가 레비아에게 주입한 쓸데없는 지식은 첫날밤부터 시작해서 여행하는 내내 나타의 골머리를 썩이게 했다. 묘하게 사실과 거짓을 적절히 섞인 탓에 무작정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처음엔 상황을 무마시켜보려던 나타였지만 대부분 실패했고 지금에 와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경지에 올랐다.
“? 나타님? 왜 그러세요?”
그런 나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순진무구한 얼굴로 물어오는 레비아. 그 모습에 나타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이걸 발라달라고? 등에다가 발라주면 되겠냐?”
“아, 네! 부탁드려요.”
질문에 대답하며 입고 있던 겉옷의 지퍼를 내렸다. 그러자 가려져 있던 그녀의 수영복 차림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그녀가 입은 것은 레오타드 타입으로 흰색을 바탕으로 붉은색과 초록색의 선이 가미된 수영복이었다. 절대로 화려하지도 노출이 많지도 않은 기능성 위주의 단순한 수영복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덕분에 수영복보다 레비아 본연의 매력이 잘 드러났다. 무엇보다 몸에 딱 달라붙는 수영복 탓에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본능적으로 자신들에게 모이는 시선의 양이 늘어난 것을 눈치챈 나타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동시에 수영복을 고를 때 역시 좀 더 눈에 띄지 않을 거로 골랐어야 했나 고민했다. 물론 당시에도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어울리지도 않는 걸 입혀 레비아의 매력을 낮추는 짓은 용납 못 해!’
무의식중에 자리 잡은 예술가적 자존심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의 매력은 끌어올리되 노출은 최소한으로 하는 것으로 타협한 결과가 지금 레비아가 입은 수영복이었다. 결국, 이것이 최선이었단 결론에 도달한 나타는 다시 한번 살기를 내뿜어 모여드는 시선을 차단했다. 그러는 사이 레비아는 자연스럽게 나타의 앞에 엎드렸다. 한숨과 함께 자외선 차단제의 뚜껑을 열었다. 젤 타입의 차단제를 양껏 자신의 손에 짠 후 천천히 레비아의 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음……!”
차가운 젤의 감촉에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나타는 애써 이를 무시하고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등은 물론이고 새하얀 팔다리와 수영복으로 가리지 못한 목 주변까지. 거침없는 그 손길에 조금 부끄러워하면서도 레비아는 이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자, 끝. 이제 됐냐?”
“아, 네! 감사해요!”
잠시 후 빠진 곳 없이 꼼꼼히 차단제를 바른 나타가 손을 떼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레비아. 아닌 처 하지만 그 볼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나타 역시 손에 남은 부드러운 피부 감촉에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 갈까요?”
“아, 그러자고.”
부끄러워하면서 뻗은 레비아의 손을 붙잡고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인파가 적은 쪽을 골라 천천히 바다로 들어가는 두 사람. 어느새 허리 높이까지 잠길 정도로 들어서자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니 어느새 물에서 놀고 있던 사람들과 떨어져 있었고 이를 확인한 나타가 눈짓으로 신호를 주자 레비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바닷속으로 잠수했다. 뒤이어 나타도 숨을 들이마시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물속에서 눈을 뜨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레비아와 눈이 마주쳤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그녀를 이끌고 점점 깊은 곳으로 헤엄쳐갔다. 순식간에 해변에서 멀어져 수심 수십m 아래로 내려간 두 사람. 평범한 사람이라면 위험할지도 모를 깊이였지만 위상능력자인 두 사람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은 힘들었는지 뒤따라 오던 레비아가 표정을 찡그렸고 이를 눈치챈 나타가 위상력을 끌어올렸다.
‘이 정도로 떨어졌으면 아무 문제 없겠지?’
해변과의 거리를 계산하며 위상력을 조정하는 나타. 청자색 위상력이 두 사람의 주변에 투명한 보호막을 생성하였다. 이어서 안에 있던 바닷물이 빠져나가며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바닷물이 다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나타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호흡에 아무 문제가 없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레비아도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어디 이상한 곳은 없지?”
“후~. 네. 아무렇지 않아요.”
레비아의 대답에도 위상력을 사용해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는 나타. 잠시 후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정말이지 과보호한다고 생각하며 곤란한 것 같기도, 기쁜 것 같기도 한 미소를 지으며 레비아는 그 팔에 팔짱을 꼈다. 팔에 느껴지는 부드럽고 촉촉한 감촉에 순간 당황한 나타였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보호막을 조종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우와……!!!”
두 사람의 눈 앞에 펼쳐진 환상적인 광경. 햇빛이 투과되어 끝을 알 수 없게 펼쳐진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세계. 그리고 그 안을 헤엄치는 수많은 열대어. 각양각색 저마다의 빛깔을 발하며 반짝이는 열대어들의 모습은 마치 살이 있는 보석 같았다. 거기에 발밑을 매운 다양한 종류의 산호초들까지.
해변에서 본 것과는 또 다른 절경에 멍하니 감탄사를 내뱉는 레비아.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타도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사이 처음 보는 사람의 등장에 흥미를 느끼고 보호막 주위를 맴도는 열대어들. 이에 나타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흠~. 레비아. 방어막 해제한다. 숨 들이마셔.”
“? 아, 네!”
곧바로 숨을 들이마시는 레비아. 이를 확인한 나타는 손가락을 튕기며 보호막 해제했고 가로막던 장벽이 사라지자 열대어들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순간 당황한 레비아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열대어들의 몸을 쓰다듬으며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 나타는 챙겨왔던 수중카메라를 꺼내 들고 레비아의 주변을 헤엄치며 사진을 찍었다.
‘비싼 돈 들여서 준비한 보람이 있군. 좋은 광경이로군.’
여러 열대어에 둘러싸여 즐거운 듯 미소를 짓고 있는 레비아의 모습 마치 설화 속에 나오는 인어를 연상시켰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 듯한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신비함이 한데 어우러진 장면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
.
.
몇 시간 후,
“후~ 정말 재밌었어요.”
한참을 바닷속에서 놀던 두 사람은 점심때가 다 돼서야 해변으로 돌아왔다. 펼쳐놓은 돗자리에 앉아 만족스럽게 웃는 레비아의 모습에 나타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다. 최고의 휴양지란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네.”
“정말로요. 이 정도면 얼마를 머물러도 즐거울 것 같아요.”
“그럴지도. 뭐 아직 봐야 할 게 많이 남았지만 말이지.”
“? 그게 뭔데요?”
“지금 가르쳐주면 재미가 없으니 나중에 알려줄게.”
잠시 담소를 나누며 잠시 숨을 고른 나타는 먹을거리를 사 오겠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자신이 없는 사이 그녀에게 같잖은 작업을 거는 사람이 없도록 옅은 살기를 뿌리고 추가로 주변의 남자들을 가볍게 째려봤다. 덕분에 레비아의 미모에 이끌려 다가오던 남자들은 순식간에 흩어졌고 한산해진 주변을 보고서야 안심하고 자리를 떴다.
“흐흐 흠~♪……. 점심을 먹고 나선 뭘 하면서 좋을까요? 수영은 충분히 즐겼으니 느긋하게 기념품 가게를 구경할까요. 아니면 이번엔 좀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 보자고 할까요? 후후 기대되네요~♬”
혼자남은 레비아는 여전히 즐거운 표정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기다리는 동안 음식이 오면 바로 먹을 수 있게 준비를 마쳤고 방금까지 찍었던 사진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렇게 즐겁게 나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레비아. 하지만,
“......늦으시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사러 간 나타는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길을 헤매는 것이라 기다리던 레비아는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나타가 위험에 처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위험에 처할 수준이면 지금 이곳은 이렇게 평화로울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걱정되는 것은 별개였는지 음식점이 모여있는 쪽으로 걸어가며 나타의 모습을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하늘빛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다가가려 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발견한 나타는 한 손에 포장된 음식을 든 체로 여러 여성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노출도 높은 수영복을 입고 여성들은 친한 척 나타에게 들러붙으며 외국어로 무슨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 보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레비아는 급격한 불쾌감을 느끼며 볼을 부풀리더니 천천히 나타에게로 다가갔다.
한편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나타는 난감한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곤란하군.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음식을 사고 돌아오던 중 자신에게 다가온 한 무리의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달라붙어 맨살을 비비며 호감을 표하는 통에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거기에 하는 말을 해석해보니 자신에게 호감이 있으니 같이 놀지 않겠냐며 작업을 걸고 있었다.
‘레비아에게 남자가 꼬이는 것만 생각했지 그 반대는 생각 못 했군.’
별로 신경 쓰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는 어지간한 남자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의 미남이었다. 깔끔하고 날카로운 인상에 눈길을 사로잡는 하늘빛 머리카락과 눈동자. 훤칠한 키와 모델 뺨치는 비율. 거기에 훈련으로 다져진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까지. 전혀 관심 없던 자신의 매력을 재확인하며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을 모색하는 중이었다.
‘슬슬 귀찮아지는데 그냥 위협해서 쫓아내 버릴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짜증이 올라온 나타가 비평화적인 수단을 생각할 때였다.
“나타님~~~!”
애교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한쪽 팔에 감기는 익숙한 감촉에 나타는 시선을 돌렸다.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레비아가 팔짱을 끼며 자신에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기다리고 있으랬더니.”
“헤헤~ 나타님이 안 오시길래 찾으러 왔어요.”
나타가 의아해하며 묻자 대답과 함께 팔을 끌어당기는 레비아. 그러자 자연스럽게 나타의 팔이 그녀의 커다란 가슴 사이에 끼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얇은 수영복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부드러움에 얼굴을 붉힌 나타였지만 그 이상으로 레비아의 태도에 의아함이 들었다.
‘왜 이러지 이 녀석? 남들 앞에선 부끄러워서 이렇게 달라붙지 않았는데.’
잠시 고민하던 나타는 이내 레비아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무르지 않고 곁눈질로 주변의 여자들을 흘겨보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그 이유를 파악했다.
‘설마 질투하는 건가?’
마치 이 사람은 자신의 것이라고 과시하는 것처럼 몸을 밀착시키고 달콤한 목소리로 애교를 부리며 주변 여자들을 경계하는 그 모습에 나타는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아는 레비아는 욕심이 없는 성격이었다. 항상 주변에 양보하고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는 그런 헌신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에게만 소유욕을 발휘하고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런 사실이 나타에게 형용하기 힘든 만족감에 휩싸이게 했다.
“킥-!”
“꺅?! 나, 나타님?!”
넘쳐흐르는 만족감에 웃음을 터뜨리며 레비아를 마치 공주님처럼 안아 들었다. 역시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이런 자세는 부끄러웠는지 약하게 발버둥 쳤지만, 나타는 이를 무시하고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는 멍하니 자신들을 바라보는 여자들을 돌아보았다.
“sorry. but I belong to her. so I refuse to your invite.”
외국어로 확실히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곤 당당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나타. 여전히 레비아를 공주님처럼 안아 든 상태였기에 해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품 안에서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린 레비아를 내려다보았다.
“왜 그래? 뭐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냐?”
“...몰라요.”
능청스러운 나타의 질문에 여전히 뾰로통하게 답하는 레비아. 평상시 그녀라면 절대 볼 수 없었을 태도에 흥미가 동해 한동안 그대로 내버려 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자각한 나타는 쓴웃음을 지으며 사과했다.
“미안. 바로 거절하고 돌아가려 했는데 생각보다 끈질기게 들러붙어서. 불안하게 했어?”
“...조금이요.”
“다음부턴 무시하고 그냥 돌아갈게. 그러니까 그만 기분 풀어.”
“......아니에요. 저야말로 괜한 거로 투정 부려서 죄송해요.”
그렇게 화해한 두 사람은 곧 자신들의 상황이 웃겼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자리로 돌아와 사 온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돌아다니며 해변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노을이 지는 시간대가 되었고 붉게 물든 세상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숙소로 돌아왔다.
.
.
.
“저…. 나타님 이런 시간에 어딜 가는 건가요?”
“일단 따라와 봐. 반드시 마음에 들 테니까.”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해가 져서 완전히 어두워진 거리를 걷는 레비아의 눈에는 안대가 씌워져 있었으며 그런 그녀를 부축하며 나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 도착했다. 안대 벗겨줄 테니까 천천히 눈을 떠봐.”
얼마나 걸었을까?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한 나타는 레비아를 멈춰 세우고 안대를 벗겨주었다. 이에 나타의 말대로 천천히 눈을 뜨던 레비아는 자신의 눈에 비친 광경에 놀라 할 말을 잃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푸른 빛으로 발광하는 바다였다. 조명은커녕 별빛조차 희미한 밤하늘 아래에서 스스로 빚을 내며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빛나는 파도가 모래사장을 때렸고 그때마다 잔잔한 파도 소리가 해변에 울려 퍼졌다. 마치 이야기에서나 나올 것 같은 환상적인 광경에 레비아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것 이외에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파도에 떠밀려온 식물성 플랑크톤이 해변과 충돌하면 그 충격으로 발광을 하게 된다곤 하는데…….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어때 마음에 들어?”
나타의 말에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레비아. 나타는 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이끌었다. 파도가 일렁이는 곳 근처에 도착하자 신고 있던 샌들을 벗은 두 사람은 잔잔한 파도를 밟으며 해안가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푸른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처음 겪는 신기한 현상에 신기하면서 동시에 해맑게 웃는 레비아.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타도 그 옆에서 함께 웃음 지었다.
잠시 후. 나란히 바닷가에 걸터앉은 두 사람. 오가는 말 없이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레비아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뭐가?”
갑작스런 감사에 의아해하자 레비아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타를 돌아보았다.
“전부요. 이런 멋진 곳에 데려와 주신 것도. 여행하는 네네 저를 신경 써 주시는 것도. 저랑 결혼해 주신 것도. 그리고 저를 구해주셨던 것도. 정말로 뭐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새삼스럽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왠지 낯간지러워져 퉁명하게 고개를 돌렸지만, 레비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와서는 나타의 뺨을 손으로 감싸더니 자신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먼저 입을 맞췄다. 갑작스런 키스에 당황한 나타가 굳어있는 사이 벌어진 입 틈새로 조심스럽게 혀를 집어넣더니 어색하지만, 혀를 얽혀오며 적극적으로 키스를 이어나갔다.
“...묘하게 대담한데 이것도 좀도둑이 알려준 거냐?”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만족했는지 입을 땐 레비아를 올려다보며 묻는 나타. 이번에도 하피에게 이상한 지식을 받은 것인가 의심했지만 레비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이를 부정했다.
“아니요. 방금 건 제가 스스로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한 거예요. 항상 나타님 쪽에서 해주셨는데 한번 해보고 싶어서… 혹시 싫으셨나요?”
흘러내린 은발을 귀 뒤로 넘기며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선 묘한 **마저 느껴졌다. 이대로 덮쳐버릴까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고개를 젓는 나타. 이에 레비아는 해맑게 미소짓더니 자연스럽게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고 나타도 이를 반사적으로 마주 안았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이런 멋진 광경을 보고 있으니 참기 힘들어져서요. 이런 멋진 장소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서. 확인하지 않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읏……!”
그런 그녀의 말에 안고 있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뭐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거냐며 당장 숙소로 돌아가 억누르고 있는 욕망을 해방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만 하는 말이 있다며 마음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나야말로. 이렇게 내 곁에서 함께 있어 줘서 고마워. 그리고 좀 오글거리지만…. 이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아무도 없는 고요하고 신비로운 해변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다시 한번 이루어진 맹세.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천천히 입을 맞췄다. 단순히 입술이 맞닿은 순순한 입맞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한 두 사람은 천천히 입을 때고 미소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만족할 때까지 서로를 바라본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천천히 왔던 길을 돌아 숙소로 돌아갔다.
-----------------------------------------------------------------------------------------------
끝. 저번글은 수위탓에 짤리는 바람에 이번엔 좀 자제했습니다.....다음화까진 그렇고 그런 장면은 없을 겁니다. 그럼 즐감하셨길 바라면선 다음주에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