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쥐팀/미래,철수] 외출 上
Forgetter 2020-01-25 14
※ 배경 시점은 시궁쥐 시즌1 재해복구지역쯤
※ 2020년 첫글은 시궁쥐팀으로 엽니다.
“...”
“...”
한겨울의 광장이라는 곳은 정말 묘하게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광장이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우선적으로 사방이 뻥 뚫려 있는 공간이다. 그 말은 이런 장소의 한가운데라도 서 있으면 사방으로 몰아치는 모든 바람을 다 맞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무려 방금 앞선 장소를 묘사하는 말 중에는 ‘한겨울’ 이라는 수식어도 들어가 있었다. 한겨울의 바람은 옷을 단단히 여의지 않으면 도려내는 듯이 따갑고 아프다.
그리고 이런 장소 한가운데에, 두 사람이 망망대해에 떠 있는 무인도에 떨어진 느낌으로, 즉 고립된 느낌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남자 한 명에 여자 한 명이다. 사이드 포니테일을 한 여자의 머리카락은 햇볕에 반짝이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눈부신 은발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머리칼을 닮은 하얀 옷에 꽁꽁 싸매어 있었다. 하얀색 코트에, 보기만 해도 따뜻해 보이는 하얀색 털장갑, 부츠까지도 하얀색이었던 건 아니었지만 대신 부츠에 달려있는 솜뭉치 장신구는 하얀색이었다.
그에 비해 여자의 옆에 있는 남자는 여자와는 정반대의 검은색 정장 계열의 캐주얼 – 브랜드가 좀 있는 옷이었다 – 차림이었다. 여자와는 달리 좀 차가워 보이는 검은색 가죽장갑을 어루만지는 남자의 폼은 약간 어색해보였다. 이런 일상복이 어색하다는 듯이. 그뿐만이 아니다. 쓰여진 안경이 무척 잘 어울리는 남자의 시선은 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마치 오늘 안경을 처음 쓴 사람인 것처럼. 자꾸 눈살을 기묘하게 찡그리는 것이 지금 자신의 이런 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잘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이런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하얀색과 검은색의 대조라니. 이 두 사람이 눈에 더욱 안 뜨일 수가 없었다. 지나가던 어떤 사람은 두 사람을 보고 ‘바둑알’ 이라고 생각했고, 또 다른 행인은 ‘체스의 말’ 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만큼 두 사람의 현재 옷차림은 눈에 확 들어왔다. 물론 평소처럼 입고 나갔으면 더욱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뻔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여겨 자리를 떠나든지 할 텐데, 두 사람은 그런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무엇을 해야 할지 지금까지도 정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가장 컸다.
남자가 조금 얼어붙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바람이 차군.”
“...응.”
여자는 같은 강도의 목소리로 작게 대꾸했다. 이곳에 한참동안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서 있었다는 걸 그대로 증명해주듯이, 두 사람의 코끝은 빨개진 상태였다. 남자는 생각했다.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 날 텐데, 라고. 상대적으로 옆에 있는 소녀의 상태가 양호했다고 해도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왔다면 자신이 모를 병치레 하나 정도는 크게 앓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 남자는 여자에게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일단 좀 걸어보도록 할까?”
“응...”
여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앞서서 걸어갔다. 남자가 내민 손이 무안할 정도로. 그러나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것이 자신과 미래 사이의 딱 알맞은 거리였기에.
* * *
이런 다소 뜬금없는 의뢰를 받은 건 처음...은 아니었지만 남자는 의뢰 내용을 듣고 약간 당황했다. 남자는 지금 자신이 들은 게 사실인지 재차 되물었다.
-무슨 의뢰라고?
-호위 임무요.
-누구를?
-미래 씨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미래 또래의 남자 아이가 싱긋 웃었다. 아이들의 저런 얼굴에 무척 마음이 약한 남자는 좀 겸연쩍게 질문했다.
-그런데 왜 하필 나지?
-미래 씨가 도시 구경을 하고 싶어 하셔서요. 그래서 안내를 할 사람이 있어야 할 거 같아서...
-...나는 그 임무에 적절하지 않다. 나 또한 이 도시가 처음인 것을.
-그래도 지하철이랑 버스 환승 방법은 알잖아요.
지도도 볼 줄 알고요. 도시 구경을 하는데 이동할 때마다 사이킥 무브를 쓰는 건 별로 좋지 않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수현은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는 타입이다. 바로 얼굴에 드러나기도 하고, 정직한 성격 탓인지 곧장 입으로 사실을 내뱉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호위 의뢰라는 건, 반은 거짓말이고요, 이참에 철수 형도 하루뿐인 휴일을 즐기고 오라는 의미에요.
-...
-신서울에 와서 줄곧 제대로 쉬었던 적이 없잖아요?
-...그런 쓸데없는 짓을.
-쓸데없다뇨. 적절한 휴식은 오히려 일의 능률을 높인다고요.
저건 다분히 관리요원 지망생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내일 미래 씨와 휴일을 즐기고 와주시겠어요?
그리고 저럴 때의 민수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철수는 이번에도 자신이 패배했음을 시인했다.
-...알겠다. 너희의 뜻이 그렇다면...
-그리고 저희 선물은 필요 없으니 마음껏 즐기고 오세요.
-...이런.
벌써 속마음까지 들켜버린 것인가. 가벼운 선물 하나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마저 극구 사양을 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는다. 수현의 이렇게 눈치가 빠른 점에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이럴 때에는 조금은 그 감(感)이 옅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수현은 잠시 철수의 얼굴부터, 찬찬히 위에서 아래쪽으로 뜯어보았다. 그 유심한 시선을 느꼈음에도 철수는 아무 말도 없었다. 철수는 본래부터 말이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닐뿐더러, 먼저 말을 거는 타입도 아니었다. 철수를 위아래로 몇 번 훑어본 수현은 말했다.
-아무래도 그 옷차림은 눈에 많이 띌 거 같네요.
-그런가?
-현재 형이 입은 옷은 아무래도 전투에 적합한 옷이다 보니까요.
온통 검은색 가죽 재질의 옷을 입고 있어서 딱히 눈은 안 뜨일 거라는 생각은 한다만. 하지만 수현의 의견은 달랐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러니까 새로 옷을 마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
-...옷을?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제가 주는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냥 수현이 철수에게 옷 선물을 하기 위한 작은 변명이었던 걸지도. 대충 이런 목적이 같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수현에게 옷을 선물을 받아 입어보기까지 했을 때였다. 한 번 착용까지 한 선물을 그대로 돌려주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철수는 그냥 잠자코 수현이 부탁하는 대로 따라주었다.
아, 맞다. 수현이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해준 것이 있다. 그것은 수현의 얼굴에 착용해져 있는 안경과 비슷한 디자인의 안경테. 수현이 설명하길, 렌즈는 없으니 그냥 코디용으로 부착해도 될 거라고 했었다. 시력이 좋은 편인 철수는 구태여 자신에게 안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수현은 앞서 말한 대로 코디용으로 안경테만 준 것.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형은 눈매가 날카로우니까.
-...
-안경을 쓰면 좀 인상이 바뀌지 않을까 싶어서요. 응, 역시 훨씬 괜찮네요.
-그런가?
난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지만. 철수는 거울을 잠시 응시했다. 인상이 크게 뒤바뀐 거 같진 않은데, 오늘 하루만 철수의 일일 코디네이터인 수현은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 듯 했다.
-형은 핏이 좋아서 뭐든지 다 잘 어울리네요.
-그런가? 내가 보기에는 너무 유난을 떠는 거 같군.
그냥 요 앞의 도시 구경을 잠깐 가는 것뿐인데. 철수를 챙겨주는 수현의 태도에서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서려 있음을 철수는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영 불편한 기색의 철수에게 수현은 말 한마디를 쐐기에 박았다.
-그렇게 큰 걱정 마세요. 형만 그런 건 아니니까.
-...?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그런 수현의 말은 다음날 미래를 만나고 나서 알 수 있었다. 미래 또한 평소 심부름꾼 일을 하기 위해 입는 옷을 입은 채로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머리모양도 평소랑 다르게 훨씬 단정했다. 미래의 말에 의하면 저수지, 감찰관, 심지어 캐롤이라고 하는 사람 – 총 3명 – 까지 나서서 자신을 이렇게 단장시켰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철수는 그래도 자신은 민수현 한 명이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왠지 모르게 그 네 사람은, 이 둘에게,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이루고 내리라는 설핏 광기와도 같은 감정을 가지고 이 둘을 단장해준 거 같았다. 말이 광기라고 했지, 그 안에 절대로 악의적인 감정은 없다는 것은 철수는 물론 미래도 잘 알았다.
그냥 이런 관심이 약간 부담스럽고 부끄러웠을 뿐이다. 둘은 감정 표현이 극한으로 서툰 사람들이었다.
* * *
일단 걷자고 해서 걷기는 하는데,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걷는 건 아니라 결국 찬바람에 노출이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느 건물이라도 들어가는 게 중요할 텐데, 딱히 이목을 사로잡는 가게도, 꼭 가고 싶었다던 가게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거리 사이를 흘러가던 중, 조금 앞서서 걷고 있던 미래가 우뚝 멈춰 섰다. 그 모습을 미처 ** 못한 철수는 멈출 타이밍을 놓쳐서 미래와 작은 접촉 사고가 났다. 그러나 미래는 그런 것 따위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철수의 코트 자락을 작게 잡아서 어떤 특정 방향으로 이끌었다. 코트를 잡지 않은 다른 쪽의 손가락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 또한 코트를 잡아끄는 방향과 일치했다.
미래가 작게 속삭였다.
“김철수.”
“...?”
철수는 가늘게 눈을 뜨고 미래가 열심히 어필하는 쪽을 바라보았다. 머지않은 곳에 딱 그것이 있었다.
“포장마차?”
뒤에 있던 세 글자는 일부러 뺏다. 그건 저 포장마차의 고유명사 같은 것이었고, 일단 미래가 외출을 하면서 첫 번째로 관심을 가진 것이 포장마차라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미래는 좀 더 구체적으로, 철수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포장마차가 뭐야?”
“...음식을 팔고 먹을 수 있는 곳.”
아마도. 일단 먹거리가 많이 보이니까 그렇게 설명했다. 미래는 답지 않게 계속 질문 공세 중이었다.
“저 물고기는?”
“물고기?”
포장마차에서 물고기를 팔 리가...이런 생각을 스스로 했다는 것 자체에 철수는 소름이 돋았지만, 미래가 열심히 말하는 ‘물고기’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미래가 말하는 물고기를 드디어 찾았다.
“붕어빵...?”
“붕어빵은, 물고기가 빵 속에 있는 거야?”
“그건 아닌 거 같군.”
잠시 침묵. 철수는 미래를 내려다보며 넌지시 제시했다.
“먹어볼 텐가?”
“...”
작게 끄덕이는 고개. 철수는 그대로 미래를 이끌고 가서 붕어빵 두 개를 주문했다. 밝은 인상의 젊은 여성이 웃으며 붕어빵을 건네주었다. 찬바람에서 몇 시간동안 돌아다닌 두 사람에게는 김을 모락모락 내뿜고 있는 작은 팥빵 하나가 무척이나 소중했다. 미래는 잠시 망설이더니 – 중간중간 철수의 눈치도 같이 보고 있었다 – 크게 한입 먼저 베어 물었다. 옅게 미소가 올라가는 미래의 옆얼굴을 보며 철수 또한 붕어빵을 입에 털어놓았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미래는 원래 말이 없는 편이다. 철수 또한 그렇다. 그래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자주 나누곤 했다. 예를 들면 처음 먹어본 붕어빵에 대한 소감이라든지.
“달아.”
“그렇군.”
“초콜릿은 아닌 거 같은데...”
철수가 가끔 휴대하며 먹는 초코바를 같이 먹은 적이 있기 때문에 검은색의 단 맛이 나는 것에 미래는 자연스레 초콜릿을 먼저 떠올렸다. 이런 미래의 질문에 답해준 건 철수가 아닌 포장마차 여주인이었다.
“그거 팥앙금이야.”
“팥앙금?”
“초콜릿만큼은 아니지만, 맛있지?”
“...응.”
미래의 뺨에 보기 좋은 홍조가 피어오른다. 그런 미래의 모습을 사람 좋은 미소로 바라보는 여주인이 철수 쪽을 힐끗 보며 물었다.
“저기 같이 계신 분은...”
“...아는 사람.”
“아는 사람?”
“응. 아는 사람.”
가족이라는 답이 나올 줄 알았던 미래의 입에서 전혀 생뚱맞은 대답이 나와서 여주인은 좀 당황한 눈치였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귀엽고 엉뚱한 답변이라서 철수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참았다. 여주인은 철수를 향해 ‘지금 이 아이가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에 대한 변명 같은 걸 철수에게 요구하는 눈치였다. 이 말에 철수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는 사람 맞다.”
긍정일 수밖에. 포장마차 여우네의 주인인 소영은 참 특이한 손님이었다고 이 둘을 기억했다. 생김새로 보나, 말하는 태도로 보나 기억에 안 남을 수가 없는 인상의 소유자였다.
붕어빵을 다 먹고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두 사람은 또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붕어빵이 못내 아쉬웠는지 미래는 살짝 혀로 입술 주변을 핥고 있었다. 그걸 이미 진즉 눈치를 챈 철수는 가는 길에 붕어빵을 파는 데가 보이면 또 사주리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김철수.”
또 무언가를 발견한 미래가 철수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이제는 이런 끌림이 익숙해진 차라, 철수는 아주 자연스럽게 미래가 말하려고 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알록달록한 풍선이 일렬로 서 있었고, 그 앞에는 장난감 총이 몇 개 놓여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상품으로 보이는 인형들이 줄지어 있었다.
미래의 시선은 상품 중에서 하얀 쥐 인형에 꽂혀 있었다. 실제 쥐보단 꽤 귀엽게 생기기도 했고, 머리 위에는 철 지난 산타 모자도 쓰여 있었다. 어디로 보나 아무 생각 없이 길 가던 사람의 마음을 금방 사로잡기에 충분한 비주얼이었다.
철수가 미래에게 말했다.
“저 쥐를 갖고 싶나?”
“...”
“별 어려운 일은 아닐 거 같군.”
철수의 긍정적인 답에 미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철수는 그런 미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미래는 꽤 괜찮은 모양이었다.
철수는 미니 게임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가서 물었다. 저 쥐 인형은 몇 점일 때 주는 상품이냐. 꽤 고득점을 노려야 한다고 주인이 답했다. 1번 하는 데에 3천 원 정도 든다고 했다. 철수는 쿨하게 돈을 주인의 손에 쥐어주었다. 장난감 총이고, 실제로 쓰는 총과 구조가 완전히 달랐지만 어디까지나 총은 총이었다. 자세를 잡은 철수는 이런 예감이 들었다.
이건, 무조건 이긴다. 라고.
※ 분량 조절 실패로 中, 下 편으로 이어집니다.
※ 시궁쥐 팀 시즌1 스토리 배경은 정확히 잘 모르지만, 크리스마스 기념 마을에서 자주 돌아다니다보니 12~1월 쯤으로 자리잡고 썼습니다.
(다음편)
中-1 http://closers.nexon.com/board/16777337/15277/
中-2 http://closers.nexon.com/board/16777337/15289/
中-3 http://closers.nexon.com/board/16777337/15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