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3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1-22 1
벌쳐스 사장은 기억 제거가 안 된다는 소년 이야기를 듣고 눈이 휘둥그레 했다. 소년의 신상 정보만 해도 특별한 건 없는데 자랑하는 회사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기억 제거 장치가 통하지 않은 인간이 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위상력 능력자도 아니고 민간인이 통하지 않은 일은 드물었다.
"이상한 일이군. 왜 그 소년에게 통하지 않았다는 거지? 그건 그렇고, 상의도 없이 멋대로 결정하다니, 자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잇는 건가?"
"그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장님."
홍시영이 불쾌한 시선으로 보는 그의 눈빛에 정면으로 맞섰다. 자기는 잘못한 거 없고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말하는 듯 했다. 벌쳐스 사원은 상위 5% 미만이 들어오게 만들었는데 그런 소년을 벌쳐스 안으로 끌어들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 말대로 다른 방법은 없었다. 뒷골목으로 데려가서 적당히 제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소년이 실종된다면 벌쳐스와 연관되어있다는 의혹이 생기니까.
"솔직히 말해서 저도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소년을 제거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의외로 순순히 협조적으로 나오더군요. 어떠십니까? 사장님. 이번 기회에 소년의 능력을 시험해보시는 게? 어쩌면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지금 말이 되는 소리를 하는 건가? 그 소년에 대한 정보는 나도 들었다. 학업 성적이 좋은 편도 아니고 그저 편의점 알바나 하는 하찮은 녀석에게 뭘 기대하는 건지 모르겠군. 뭐 좋아. 미성년자를 죽이는 건 뒤처리가 좀 귀찮으니까 특별히 자네를 믿어보도록 하지."
한석봉을 충분히 제거할 수 있기는 했다. 편의점 CCTV기록은 지우면 되는 거고 점장의 기억도 지우면서 사건을 은폐, 축소하면 되는 일이었다. 벌쳐스는 조직이다. 조직을 이끄는 건 인재, 그 인재가 될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다면 반드시 놓치지 않는 게 조직 방식이다.
"우리 벌쳐스 조직의 기밀이 절대 알려져서는 안 돼. 일단 당분간 그 소년을 감시할 사람을 보내도록 하지. 그건 그렇고, 이번에 편성된 처리부대는 어떻게 되었어?"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워낙에 문제가 많은 자들이라 위가 좀 아픕니다."
"상관없어. 그게 있는 한 우리 계획이 틀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사장의 말에 홍시영은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 *
다음 날, 방과 후에 벌쳐스로 왔다. 편의점 일은 계속 하고 싶었지만 점장님에게 말씀드리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벌쳐스에 도착하자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나를 안내해준다. 전에 찾아갔던 그 30층 건물, 그리고 감시관 님이 계신 방으로 들어갔다.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올리신 채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어서 와요. 한석봉 학생. 여기 앉으시겠어요?"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보였다. 이제 함께 일하는 식구나 다름없으니 친근하게 대해주겠다는 뜻인가? 하지만 저 미소에는 차가운 본성이 숨겨져 있는 듯한 오로라가 느껴지는 거처럼 느껴진다. 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으면서 평소처럼 긴장한 태도를 유지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벌쳐스는 차원종 잔해를 연구해서 그들에게 대항할 만한 장비를 만들어내는 회사에요. 유니온과 동업자인 셈이죠. 학생은 클로저 이세하에게서 현재 상황을 잘 들었겠죠?"
"세하와 만난 지는 너무 오래 되었어요."
"세하와 만난 지는 너무 오래 되었어요."
"클로저 이세하, 어머니인 알파퀸을 두고 있는 잠재력이 높은 위상능력자, 조세훈 박사의 아들 조재현의 타임머신 계략을 멋지게 저지시키고, 지금은 유니온에서 새로 창설된 검은양 팀의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죠. 조재현은 유니온에 체포되었지만 누군가가 데려간 상황이고요."
서류를 넘기면서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하듯이 말했다. 세하에게서는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재앙은 사라졌고, 평화를 되찾았다고는 했다. 설마 타임머신이라는 게 실제로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메카 차원종이라는 말까지 언급되자 조금 놀랐다.
"우리 벌쳐스는 조재현이 만들어 낸 메카 차원종이 클로저 인력에 대신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어요. 한석봉 학생, 당신은 클로저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데 사실인가요?"
"네. 클로저 분들이 우리를 위해 싸우고 계시지만, 상처를 매번 입고 다니시는 게 걱정 되어서요. 그래서 저는 클로저를 위해 뭔가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순순히 우리 조직에 들어온 거군요. 마음에 둔 클로저라도 있으신 건가요?"
"그래서 순순히 우리 조직에 들어온 거군요. 마음에 둔 클로저라도 있으신 건가요?"
"네."
솔직하게 답변했다. 감시관님은 냉담한 말투로 내게 계속 질문한다. 그 질문에 거짓을 대답하면 오히려 나에게 위험이 찾아올 거 같아서였다. 벌쳐스에 들어오게 한 것도 분명한 이유가 있지, 절대 내가 잘나서 들어온 게 아니니까 조심해야 한다. 감시관님은 내 말에 의심하는 눈치는 없었다. 평범한 학생이 조직을 상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
"제가 당신을 여기로 불러들인 건 클로저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마음 때문이에요. 대부분 민간인들은 클로저를 두려워하죠. 자신과 다른 존재, 그 힘으로 인해 생명이 위험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겁쟁이들의 논리를 펼치면서 말이죠. 정말 어리석다니까요. 누가 자신들을 지켜주는데 그런 식으로 배척하다니 말이에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클로저가 민간인을 지키는 거 따위 너무 우습죠."
저렇게 독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줄은 몰랐다. 혹시 민간인들에게 원한이라도 가지고 계신 건가? 민간인들은 단지 살고 싶어서 겁먹은 거 뿐이다. 물론 클로저들을 지나치게 멀리하는 건 안 좋은 일이다. 세하처럼 겪게하는 건 분명히 잘못이지만.
"한석봉 학생. 당신은 오늘부터 벌쳐스 처리부대 감시 요원으로 활동하게 될 거에요. 저도 조직 내에서 할 일이 있으니까 24시간 그들을 감시할 수 없는 노릇이죠. 당신이 할 일은 처리부대를 만나서 제가 지시한 일을 처리부대에게 전해주시고, 활동 보고서를 제출하시면 되는 거에요."
"하루도 빠짐 없이요?"
"네. 물론이죠. 그것만 해주시면 되는 거에요. 어때요? 간단하죠? 봉급은 한달에 1000만원 정도 어때요?"
"네? 처... 천만원이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편의점 월급보다 더 높은 수준이었다. 과연 대기업, 대한민국 상위 5%가 들어가지 못할 수준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홍시영은 곧바로 계약서를 내밀어서 미소를 보였다.
"자, 여기에 계약서에 사인만 해주시면 되요. 이것에 서명하는 순간 당신도 벌쳐스의 일원이에요."
"네."
계약서에 사인한다. 정식으로 나는 벌쳐스 사원이 되는 거다. 감시 요원, 처리부대라면 분명히 위상력 능력자겠지? 그 사람들을 감시하고 활동보고서를 감시관님에게 제출하는 게 바로 내 일이었다. 일은 조금 간단하게 들리지만 막상 하다보면 힘들 거라고 판단했다. 쉽지 않은 일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 * *
편의점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서 조금 아쉬웠다. 돈이 안나와도 그래도 정이 좀 가는 직장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기밀을 알아버렸다고 그러시니까. 만약 그들이 나쁜 짓을 했다면 반드시 그 진실을 알리는 게 정의겠지만 실제로 나는 들은 것도 없고, USB도 빼앗긴 마당에 정의감을 발휘해서 조직에 안 들어가겠다고 말하면 개죽음 당할 수가 있었으니까.
"당신은 정말로 바보군요. 벌쳐스가 어떤 회사인지 모르면서 들어오겠다고 하다니, 클로저를 도와주고 싶다고요? 정말 웃기는 군요."
회사 입구로 나오자마자 양손으로 가슴을 끌어안은 채 폼을 잡고 있는 아가씨가 내게 독설을 날렸다. 저렇게 나오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판단했다. 그런데 굳이 나에게 말을 걸어도 될까? 벌쳐스 사장의 따님이신데, 나같은 하찮은 신분에게 말 거는 거 자체를 혐오할 줄 알았는데.
"돈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당장 그만두시는 게 좋아요. 그 돈 하나에 당신 목숨이 위험할 수 있어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이야기는 들었어요. 처리부대 대원을 감시하는 일이라면서요? 그건 당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거에요. 처리부대 대원 한 명마다 문제가 있는 편이거든요. 그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몇몇 감시 요원이 그들에게 살해당했다고 했으니까요."
문제가 있는 클로저들 뿐이라고 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악명높은 문제아라는 건가? 조금은 겁이 났다. 그렇지만 그녀를 생각하니 도망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괜찮아요. 조직이 제게 그런 일을 겪게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클로저들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제가 동경하는 그 사람 곁에 설 수 있을 테니까요."
"클로저 한 명 때문에 그런 위험한 일에 끼어든다는 건가요? 정말 바보 같군요."
"죄송해요. 아가씨. 제가 여기 있는 건 제 의지에요. 클로저를 돕고 싶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드리고 싶으니까요."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답했다. 이대로 잘 될지는 의문이다. 분명히 나에게 수많은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친구도 그런 일은 수없이 겪었다. 그 친구도 이겨냈는데 나라도 못 이겨낼까? 난 반드시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친구 아버지도 해냈다면 나도 할 수 있으니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