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2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1-21 1
벌쳐스는 뉴스에도 가끔 언급되는 기업 이름인데 자신이 거기로 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곳은 대기업이나 다름 없어서 상위 5%도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 그 건물 앞에 섰다. 고층 빌딩이라는 건 물론이고, Vurtures라는 문구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건물에 새겨져 있었다.
"자, 들어가시죠."
꼭 내가 여기에 입사하는 신입사원처럼 느껴지지만 지금은 그 기밀 문제 때문에 가는 거라는 건 알고 있다. 거기서 어떤 처분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죽이지 않는다면 다행이라고 판단했다. 지금 내게는 아무런 힘이 없으니 저항해봤자 무의미할 테니까. 이거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벌쳐스는 지금 나쁜 일을 꾸미려고 하는 거라는 사실을.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경비원이 정중하게 인사한다. 바이올렛은 살짝 손만 들어서 인사를 받아주었고, 우리는 이대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엘리베이터, 이곳을 타서 30층까지 이동한다. 점점 가까워질 수록 긴장감이 더해져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과연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 * *
드르륵-
문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책상에 앉아있던 아줌마가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두 경호원이 부동 자세로 서 있었다.
"어머, 당신인가요? 우리 벌쳐스 일에 휘말렸다는 불쌍한 사람이?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홍시영, 벌쳐스 처리부대 감시관이죠."
상대방을 기선 제압하듯이 차가운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저절로 부동자세를 유도할 수준으로 섬뜩했다. 마치 그녀의 목소리가 움직이면 죽는다고 말하는 듯이 들렸다. 그러니까 나는 기밀을 들은 게 없는데, 이런 말을 해도 들을 거 같지도 않았다.
"하, 한석봉이라고 합니다."
"오, 한석봉이군요. 당신에 대해서는 조사가 막 끝났어요."
서류 한장을 들면서 씩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건 마치, 내 개인정보가 순식간에 털리는 거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중요한 기밀이길래 다른 사람에 대해서 뒷조사까지 하는 걸까?
"한석봉, 신강고등학교 2학년, 클로저 이세하와 친한 친구사이, 성적은 나쁨, 게임 플레이어, 편의점 알바생, 그리고 모험가인 아버지를 두고 있음."
아주 철저히 조사했지만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건 클로저 이세하와 친한 친구사이라고 언급했다는 점이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데 어떻게 알아낸 걸까? 그것도 벌쳐스의 능력일까?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한 모양이군요. 우리 벌쳐스는 정보수집능력이 뛰어나답니다. 유니온과 손을 잡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지요. 클로저에 관한 정보라면 거의 모르는 게 없어요. 뭐, 좋아요. 빨리 집에가고 싶을 테니 간단한 절차를 즐기도록 하죠."
"저, 정말로 전 기밀에 대해서 아무것도 들은 게 없어요. 거짓말... 거짓말 탐지기로 시험해봐도 되잖아요."
"거짓말 탐지기가 100% 잡아낼 수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어디까지나 높은 확률로 잡아낼 뿐, 그걸로 완벽한 거짓말을 잡아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요. 저는 그 정도로 허술하지 않거든요."
그 말대로였다. 거짓말 탐지기라해도 모든 게 완벽하다는 건 아니다. 그건 몸 내부 변화를 중심으로 알아내는 거다. 만약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은 걸로 느껴지니까. 두 남자가 와서 한석봉을 붙잡았다.
"저, 뭐하시는 거에요?"
"지금부터 당신의 기억을 지울 거에요. 편의점에서 그 사람을 만난 것부터 지금까지 기억을 전부 없앨 거니까요."
홍시영 감시관 주머니 속에서 뭔가가 나왔다. 소형 만년필같은 모습이다. 그곳에서 붉은 레이저가 나를 향해 비춘다. 그걸로 목표로 삼아서 내 기억을 지우겠다는 건가? 아, 상관없었다. 나는 이런 위험한 조직과 관련되고 싶지 않으니까. 지금 관련되어봤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했으니 그걸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죠. 기억을 제거하겠어요."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눈을 감았다. 물어볼 게 산더미만하지만 호기심은 죽음을 재촉할 수 있는 법이기도 하니까.
찰칵!
사진 촬영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면서 섬광이 빛났다.
* * *
"이제 됐어요. 귀가 시키세요."
홍시영은 그렇게 말한 뒤에 뒤돌아서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사장의 지시대로 소년의 기억을 없앴다. 이걸로 된 거다. 괜히 민간인을 사살하는 짓을 했다가는 뒤처리가 꽤나 귀찮아질 수도 있으니 이걸로 해결한 거였다. 안도하면서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저, 이제 끝난 건가요? 기억 제거 과정은 아직 남은 거 아니에요?"
"뭣?"
소년을 제외한 모두가 동공지진이 일어났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히 기억이 지워져야 정상인데 소년은 방금 전 일을 똑똑히 기억하듯이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바이올렛과 하이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홍시영이 사용한 기억 제거장치가 통하지 않는 건 위상력 능력자 뿐이었다. 그런데 통하지 않는 자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말도 안 돼. 기억이 제거되지 않았다고?
"저, 감시관 님. 아직 뭔가 남은 거죠? 빨리 기억을 제거해주세요."
"아, 네. 다시 한 번 해드리죠."
홍시영은 다시 한 번 장치를 꺼내 한석봉을 제대로 조준한 뒤에 사용한다. 분명히 제대로 들어간 걸 확인했다. 한석봉의 기억은 이렇게 지워질 거라 확신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끝난 건가요?"
"아니!"
홍시영은 깜짝 놀라면서 엉덩방아를 찍었다. 두번째 시도에도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다. 경호원들은 그녀를 일으켜 세웠고, 바이올렛은 커다란 눈동자를 보이며 한석봉을 쳐다보았다. 본인은 왜 갑자기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저, 한석봉 씨. 지금 기억이 나는 건가요?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부터 지금까지 전부요?"
"네. 저는 벌쳐스 기밀을 알지 못하는데 만일에 대비해서인지 제 기억을 지우시려고 하시는 거 까지 기억납니다."
용기있게 말하니 바이올렛은 뒤로 넘어갈 지경이었다. 민간인 기억제거에 실패한 건 처음이었다. 홍시영은 커다란 숨을 내뱉으면서 잠시 숨을 고른 뒤에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말했다.
"흠, 일단 다른 거로 해봐야겠어요. 새걸로 가져와요."
"네!"
다른 장치를 이용해서 기억을 제거하려는 거였다. 이번에도 잘 되지 않는다면 사장에게서 뭐라고 한 소리 들을 게 뻔했다. 벌쳐스 기밀을 조금이라도 알아버려서 기자에게 전달만 한다면 의혹만으로 회사 이미지 타격이 적지 않을 테니까. 홍시영은 엄지손가락을 물면서 눈썹을 아래로 내렸다.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닌데.
* * *
기억 제거 장치를 새걸로 교체해도 마찬가지였다. 한석봉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자 골치가 아파졌다. 편의점 CCTV에 벌쳐스 사장 딸이 데려간 게 찍혔으니 어디로 가서 제거하는 건 불가능하다. 홍시영은 어떻게 할지 의문을 갖다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한석봉에게 제안했다.
"저기, 한석봉 학생. 제가 제안드릴 게 있어요."
"네?"
"우리 벌쳐스에 들어오시지 않으시겠어요?"
"뭐라고요?"
해맑게 웃으면서 말하자 한석봉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이 전부 놀란 표정을 보였다. 기억제거는 실패, 조용히 제거하기도 어려우니 남은 카드는 단 하나다. 한석봉을 벌쳐스로 끌어들이는 거다. 그러자 바이올렛이 반발했다.
"감시관 님.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민간인은 미성년자 입니다. 미성년자가 벌쳐스에 들어오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네. 들어갈게요."
"에?"
예상못한 그의 답변에 바이올렛은 그의 얼굴을 보며 말문이 막혔다.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자각을 못하는 듯 했다. 벌쳐스가 대한민국 상위 5%도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라고 하지만 그 대기업에 대한 내막을 모르면서 순순히 들어오려는 거 때문에 다소 어이가 없었다.
"좋아요. 이력서는 이미 저희쪽에서 확보했으니까 내일부터 출근해주세요."
"네. 감시관님. 하지만 저는 학교에 가도 되겠죠?"
"흐음, 좋아요. 방과 후에 야간 근무 몇 시간으로 하기로 하죠. 처음부터 정식사원으로 임명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아마 사장님께서도 허락하실 거에요."
사장에게 말도 없이 결정한 거였다. 한석봉은 그래도 괜찮은 거냐고 묻자 그녀는 기쁜 듯이 미소를 보이며 문제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직에 들어온 대신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절대로 기밀을 발설하지 말 것.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