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랑(龍狼) - 13
플루ton 2019-12-03 1
순간 차원종들은 자신들을 상대하던 남자의 얼굴을 직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이나 공포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호기심과 흥분으로 이루어진 기쁨뿐이었다.
■□■■■■■□----!!!!!!
이에 대다수의 차원종들이 공포에 휩싸여 비명을 토해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앞다퉈 도망치는 차원종들의 모습에 이를 지켜보던 늑대개와 특경대들은 할 말을 잃었다.
"차…. 차원종들이 도망을 택하다니…."
"저렇게 일방적으로 도망치는 경우가…. 있었던가?"
"살다 보니 이런 경우도 다 보는군."
특경대들이 어이없는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나타는 차분히 도망치는 차원종들을 바라보았다.
"흠~도망이라…. 뭐 싸워봤자 죽는다는 선택지 외에는 존재하지 않으니 그게 최선이겠지만…. 설마 쉽게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냐-?!!!"
기합을 내지르며 검으로 땅을 내리치는 나타. 그러자 강력한 충격파가 나타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
도망치던 차원종들은 충격파에 휩쓸려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그대로 나타에게로 밀려들어 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늑대개들은 모두 놀라며 탄성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나타가 사용한 기술은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기술이지만 나타의 기술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세하 요원의 [충격파]였죠 지금."
믿기 힘들다는 투로 주변에 동의를 구하는 바이올렛. 다른 팀원들도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이 충격에서 벗어나기 전에 나타는 검을 고쳐 쥐고 다음 기술을 이어갔다. 충격파에 휩쓸려 차원종들이 자신의 앞에 모이기보다 먼저 한발짝 앞으로 나서는 나타. 그 한걸음만으로 그는 공간을 뛰어넘어 밀려드는 차원종들을 검으로 베어 가르며 지나갔다. 그가 지나가고 나자 날카로운 풍절음이 뒤따라 한 박자 늦게 일어났고 차원종들의 머리가 허공에 흩날렸다. 이에 차원종들이 비명을 지르려던 순간 나타는 나타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콰과과과과곽---!!!
마치 대포라도 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리며 휘둘려진 주먹은 그때마다 강력한 충격파를 일으키며 차원종들을 난타했다. 수많은 차원종이 신체가 터져나가며 쓰러졌다. 개중에 튼튼한 일부 개체들은 발악하며 나타에게 달려들었지만, 나타는 단순한 백스텝으로 거리를 벌리는 것으로 이를 피해냈다.
"흐음…. 조금 귀찮은데?"
잠깐 쉴새 없이 주먹을 휘두르며 차원종들을 공격하던 나타가 공격을 멈추고 후방으로 크게 도약했다. 그렇게 수십m 정도까지 물러나선 강하게 발을 굴렀다. 그러자 부서진 건물이나 도로의 잔해들이 허공으로 떠올랐고 이를 확인한 나타는 전신에 흐르는 위상력을 조정해 방출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보라색 전격이 일어났다.
"이렇게 하는 걸려나? 이런 식으로 운용한 적이 없으니 감이 잘 안 오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집중하는 나타. 그의 움직임에 따라 적격이 일어났고 떠올랐던 잔해들도 이를 따라 허공을 맴돌았다. 그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사이 겨우 숨을 돌린 차원종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다수는 혼란스러워하거나 움직이니 못하는 상태였지만 일부는 도망치기 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가는가 하면 또 다른 일부는 나타를 공격하기 위해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수십m는 떨어졌던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었고 어느새 눈앞까지 들이닥친 차원종들을 차분히 바라보며 나타는 전격을 조종했다. 그러자,
콰-----앙---!!!!!
강렬한 굉음과 함께 전격을 휘감은 잔해가 빠르게 쏘아졌고 맨 앞에서 달려들던 차원종들의 신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차원종들은 그대로 힘없이 쓰러졌다.
"흐음~이런 느낌인가? 어디 그럼 다시 한번."
그런 차원종들은 신경 쓰지 않고 나타는 다시 전격을 조종했다. 그러자 다시 굉음이 일어나며 전격을 휘감은 잔해가 쏘아졌고 멀리서 도망치던 차원종의 신체를 종잇장처럼 쉽게 꿰뚫었다.
"제법 괜찮군. 그럼 다음은 뭘 시험해볼까?"
잔해를 맞고 쓰러지는 차원종들을 지켜보며 나타는 즐거워하며 다음 할 행동을 고민했다. 그런 나타의 모습에 늑대개들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서유리의 [음속베기], 제이의 [EX.오메가 3 러시], 거기에 이슬비의 [레일건]이라. 터무니없군."
"검은양분들의 기술을 전부 카피한 걸까요? 정밀이지 말도 안 되는 센스네요."
티나가 나타가 방금까지 사용한 기술의 명칭과 사용자를 열거하자 하피가 어이없어하며 맞장구쳤다.
"정확히 말하면 어느 정도의 어레인지를 추가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대단해요. 정말로."
바이올렛과 레비아도 니타가 벌이는 기행에 놀라며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전투 센스는 뛰어난 녀석이었다. 위상력의 한계를 극복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거라 예상은 했다만…. 생각 이상으로 더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군."
트레이너도 팀원들에게 말하면서 눈은 나타에게 고정한 체로 한순간도 때지 못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위상능력자로 싸워오고 또 가르쳐온 그였기에 지금의 나타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위상력을 사용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익숙한 한가지의 형태를 바탕으로 실력을 키워나간다. 그중에 일부 실력자의 경우 전혀 다른 형태의 사용방법도 연습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의 나타처럼 이런 단시간 안에 두 손으로 꼽아야 할 만큼 다양한 형태로 사용하는 경우는 그의 기억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트레이너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나타는 또다시 새로운 형태로 위상력을 운용하고 있었다.
"하아아아압-!!!"
하늘로 높게 뛰어오른 나타는 주먹에 보라색 불길을 휘감고 그대로 땅을 향해 휘둘렀다. 허공에 파문을 일으키며 쏘아진 커다란 불덩이가 대지를 부수고 차원종들을 태웠다. 이어서 허리에 걸쳐둔 검을 집어 들더니 위상력을 집중시켜 거대한 위상력의 칼날을 생성하곤 차원종들에게 달려들었다. 빠르고 직선적인 움직임으로 차원종들의 목을 차례차례 떨어뜨리며 이동하는 나타. 수차례 이동하며 참격을 날리던 나타는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추고 크게 팔을 휘두르며 땅을 할퀴었다. 그러자 그의 움직임에 맞춰 지면으로부터 날카로운 보라색 원판이 생겨나더니 정방의 차원종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흐음~이 정돈가? 사냥터지기들의 기술은 전용 무장이 없으면 재현하기가 힘들 것 같네."
손을 털며 자세를 가다듬은 나타는 차분히 남은 차원종들을 바라보았다. 처음에 끝이 보이지 않던 대군은 어느새 백여 마리만이 남아있었고 그중 대부분은 이미 상처투성이였다.
"자…. 그럼 마무리다. 조금 화려하게 가볼까?"
얼굴에 미소를 띠며 나타는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위상력을 양다리에 한계까지 집중시켰다. 그에 따라 다리에서 일어난 강력한 기운에 주변 땅이 무너져내렸다.
"[익시드-초월]…!"
준비를 마친 나타는 한걸음 발을 내디뎠다. 다음 순간 지면이 폭발하며 나타는 눈으로 좇는 게 불가능한 속도로 질주해 나아갔다. 순식간의 차원종 무리의 중심으로 파고들었고 그대로 다리를 휘둘러 지면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노블레스 스톰]……!!"
그러자 강력한 충격파와 함께 지면이 터져나가며 뒤엎어졌고 이에 휘말린 차원종들 또한 신체가 터져나가며 절명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나타는 멈추지 않고 다시 다리를 휘둘렀다. 위상력을 집약시킨 다리는 칼날과도 같이 차원종들의 신체를 베어냈고 그때마다 나타는 더욱 가속하며 다리를 휘둘렀다.
"[루나틱 타이푼]-!!!"
한참을 공격하던 나타는 마지막으로 다리를 크게 휘두르는 것으로 특대 참격을 날렸다. 날아간 참격은 수많은 차원종을 가르고 나아가며 지면에 깊고 긴 상처를 새겼다. 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인 나타는 움직임을 멈추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서 4줄기의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불기둥은 나타의 손으로 모여들어 소용돌이쳤고 곧 거대한 자염의 구체가 완성되었다.
"[심판하는 별]……. 아니 내식대로 이름 붙이면 [처형하는 별]이려나?"
그저 떠 있는 것만으로도 발생하는 열기에 주변이 타들어 가는 구체를 들고 나타는 희희 나락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에 차원종들은 반대로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지만 이미 만신창이였던 신체는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고 이를 바라보며 나타는 가볍게 손에든 구체를 던졌다. 천천히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파멸의 빛을 바라보며 차원종들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었고 다음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구체가 폭발하며 세상을 보라색으로 물들였다. 터지는 것과 동시에 구체는 거대한 불기둥으로 변하며 그대로 하늘을 조차 불태울 기세로 솟구쳐 올라가며 타올랐다. 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나타는 웃음을 터뜨렸다.
"큭-! 크하…! 크하하하하-!!! 좋네…. 좋다고! 이 전능감….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는 이 힘. 최고야…. 정말로…. 기뻐서 웃음이 멈추지 않는군…. 크흐…. 크하하하하--!!!!!'
정말로 즐겁다는 듯 소리높여 웃는 나타. 그 웃음소리는 순수한 소년의 웃음처럼 맑고 투명했다. 하지만 시체가 굴러다니고 피로 물들고 불로 그을린 대지 위에 홀로 서서 아이처럼 웃는 그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오래간만에 나타를 보고 무섭다고 느껴봤네요."
하피가 몸을 살짝 떨며 조용히 내뱉은 말에 다른 사람들도 동의의 눈빛을 보내었다.
"건강하고 강인한 육체, 안정적이고 거대한 위상력. 그리고 그걸 100% 이끌어내는 기술과 정신력…. 내 개인적인 평가지만 아마 지금 저 녀석 이상의 위상능력자는 최소한 우리 쪽에는 없다고 봐야겠지."
트레이너의 말에 늑대개와 주변에 있던 특경대의 간부들은 공포와 경외심이 뒤섞인 시선으로 불기둥으로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을 향해 웃고 있던 나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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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배…. 고파…."
깜깜한 한밤중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나타는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그리곤 자신의 아랫배를 문지르며 입맛을 다셨다.
"쯧…. 나름 든든하게 먹고 잔 거라 생각했는데…. 부족했나."
혼자서 차원종 대군을 쓰러뜨린 나타는 그 후로도 팀원들과 함께 몇 차례 더 전장을 돌아다니다, 해가 다 지고 나서야 본부로 돌아왔다. 그 후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곧바로 잠을 청한 나타였으나 양이 부족했는지 잠결에 느껴지던 허기에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밖으로 나온 나타는 그대로 식당 쪽으로 발을 옮겼다. 이미 늦은 시간이어서 사람은 없었지만, 밤낮없이 싸우는 클로저들을 위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보존식들이 식당 구석에 쌓여있었다.
"흠……. 조식 때도 그랬지만……. 역시 몸에서 요구하는 식사량이 생각보다 많이 늘었군. 이전에 먹던 것에 2배가량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다니. 연비가 너무 나쁜 거 아냐?"
불평하면서 나타는 쌓여있던 보존식을 빠르게 먹어치웠다. 그렇게 3개째 보존식의 포장을 벗겼을 때였다.
"....무슨 볼일이야?"
갑자기 배후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먹던 손을 멈추고 나타는 돌아** 않고 물었다.
"후후~일부러 기척도 숨겼는데 잘도 눈치채셨네요? 나타."
그러자 그림자 속에서 하피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 손에는 제법 비싸 보이는 와인병과 기타 음식 거리가 몇 개 들려있었다.
"그래서 볼일은?"
"오래간만에 좋은 술을 훔…. 구해서 말이죠. 한잔할까 하고 안주를 훔…. 가지러 왔죠. 그러다가 나타를 발견하고 놀라게 해줄 생각으로 다가왔는데…. 나타가 눈치채는 바람에 다 허사가 되었네요?"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타는 헛웃음을 흘리며 손에 들린 보존식을 입에 털어 넣었다.
"참나…. 전에도 물었지만 그런 걸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후후. 술은 맛보다도 분위기랑 기분으로 마시는 거라고요. 거기에 술 중에서도 이런 와인의 경우는 맛이 좋은 경우도 더러 있답니다? 어때요? 한잔 마셔보겠어요?"
천연덕스럽게 술을 권하는 하피. 어차피 나타라면 단칼에 거절할 거란 생각으로 한 제안이었다.
"흐음…. 그럼 한번 마셔볼까?"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나타는 제법 순순히 하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에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몇 번 깜빡였고 그런 그녀를 내버려 두고 나타는 부엌 쪽에서 유리잔을 2개 가져오더니 테이블에 앉았다.
"뭐해? 어서 한잔 따라보라고."
"...의외네요. 당연히 거절하실 줄 알았는데."
아직 의아해하며 하피는 나타의 맞은편에 앉아 능숙하게 와인의 코르크를 뽑았다. 이어서 내민 잔에 와인을 따르자 달콤한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나왔다.
"흠…. 향은 제법 괜찮네."
"그렇죠? 이 향 때문에 찾는 사람이 꽤 있답니다. 자~그럼 건배할까요?"
자신의 잔에도 와인을 따른 하피는 웃으며 잔을 앞으로 내밀었고 이에 나타도 코웃음 치면서 잔을 마주 대었다.
쨍~~~~....!
고요한 식당 안에 소리가 울려 퍼졌고 두 사람은 자신의 잔을 입에 가져갔다. 처음 맛보는 와인을 천천히 음미했다. 코로 맡았을 때보다 더 강한 향이 입안에서 퍼졌고 동시에 달콤한 첫맛이 혀를 감쌌다. 이를 즐기며 천천히 들이키니 부드러운 목 넘김과 함께 마지막으로 깔끔한 쓴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괜찮네."
"후후 그렇죠?"
솔직한 나타의 감상에 하피도 기분 좋게 웃으며 맞장구쳤다.
"아마 나타가 전에 맛봤다던 술은 흔한 소주 종류였을 거에요. 거기다 품질도 딱히 좋진 않았을 테니. 그런 건 처음 먹는 사람에게 권할 만한 건 아니죠."
"흐음~뭐 그렇다고 술 같은 걸 자주 마실 생각은 없지만."
하피의 말에 대꾸하며 나타는 잔에 남아있던 와인을 한 번에 들이켰다. 그 모습에 하피는 조금 의외란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생각보다 잘 마시네요? 이 술 생각보다 도수가 꽤 높은 건데."
"그래? 뭐 단맛이 덕분에 잘 넘어가긴 하네."
"그러고 보니 처음 술을 마셨다고 했을 때도 물이라고 착각해서 갈증이 해소될 때까지 마셨다고 했었죠? 그런 걸 보면 나타는 술에 강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가벼운 잡담을 나누며 술잔을 비워가는 두 사람. 어느새 들고 왔던 와인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쯤 하피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렇게 당신과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그러게 말이야. 나도 내가 너랑 술을 마실 날이 올 줄 몰랐다."
나타도 이에 씁쓸하게 웃으며 하피가 훔쳐온 것으로 추정되는 안주를 주워 먹었다.
"사실 술 같은 거 원래라면 살면서 먹을 생각도 없었어. 그러기엔 몸 상태도 안 좋았고 시간도 촉박했으니."
"네. 그래서 저도 나타에겐 술을 잘 권하지 않았죠. 뭐 너무 단칼에 거절해서 재미가 없었던 점도 있지만요."
키득거리며 말하지만 민감했던 부분이였던 만큼 두 사람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서로 팀 내에서 가장 냉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만큼 서로의 고충에 대해 잘 알고 있던 두 사람은 별다른 말 없이 그저 술잔을 나누며 그동안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정말 다행이에요. 당신도…. 그리고 우리 막내도 무사히 돌아와서.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결말이든 모두 함께인 편이 좋으니까요."
"그건 아니지."
잔을 내려놓으며 하피의 말을 자르는 나타. 그리곤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 보며 말했다.
"모두가 함께 살아서 전쟁에서 승리한다. 이거 외의 결말은 인정 못 해."
결의마저 느껴지는 나타의 말에 하피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픕…. 푸흐흐흐...!아하하하-!!!그렇네요. 확실히 가능하면 그런 게 좋죠."
"읏…. 그렇게 크게 웃지 말라고. 사람 무안해지게."
부끄러웠는지 하피에게서 시선을 떼고 잔에 남아있던 와인을 비우는 나타.
"후후. 미안해요. 근데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지금 상황이 그렇게 좋은 건 아닌데."
그런 나타를 보며 하피는 겨우 웃음을 멈추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진지하게 물었다.
"예전이라면 확답 못 해줬겠지만…. 지금은 달라. 안돼도 되게 만들겠어. 반드시 말이야."
이에 나타도 진지하게 대답했고 이에 하피는 만족한 듯한 미소를 띠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후~오늘은 기분 좋은 밤이네요. 이렇게 된 거 꿍쳐뒀던 술을 전부 꺼내와야겠어요. 나타도 어울려 주세요."
"...적당히 하라고. 내일 꼰대에게 잔소리 듣긴 싫으니까."
자신의 말에 질색하면서도 거절하지 않는 나타를 보며 하피는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술을 챙기러 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날이 새도록 술잔을 나눴고 다음 날 트레이너에게 잔소리를 듣게 되었지만, 이 또한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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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