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오하]여왕들의 회합 下

모연주 2019-12-02 8













  그런 세트의 모습에 각각의 반응들이 나타났으나,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외벽에 매달리게 한 채로 방치할 수는 없었으니 세트에게 가까이 두 사람은 각각 한 쪽씩 세트의 손을 잡고 끌어올린다. 두 사람의 손에 의해 끌어올려지는 세트의 모습은, 제 언니들의 손에 의해 대롱대롱 매달린 막내 여동생의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난간 안쪽의 옥상 바닥에 발을 들였다.

  “우씨, 리더 녀석아! 깡총이 녀석한테 갈 거였다면 나까지 데려갔어야지! 왜 너 혼자만 가서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느냐!”
  “미, 미안. 세트. 신경 쓰지 못했어.......”

  으르렁대며 얘기하는 세트의 압박에 쩔쩔매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슬비. 마치 동생이 제 언니한테 외출하면서 왜 나를 데려가지 않았느냐며 핀잔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온다는 말에 눈을 끔벅인 하피가 두 사람을 다시금 눈에 담는다.

  “저한테....... 오려했다고요? 그게 무슨.......”

  자신에게 올 생각이었다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의문이 들어 그렇게 묻는 하피. 그 질문에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를 고민하다, 슬비가 자신이 설명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리곤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부산에서의 사건을 종결하며 다음 지시가 떨어지기 이전까지, 부산의 치안 유지를 목적으로 부산시의 특경대와 협력하여 순찰을 돌기 시작한 이후로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하피가 트레이너와 관리요원인 엘리스에게만 따로 양해를 구하며 단독 행동을 요청했다는 걸 언급한다. 그때, 우연찮게도 멀지 않은 곳에서 슬비와 세트가 그런 요청을 보고 들었다는 것을 덧붙이면서.

  “그때 관리요원님께서도 선배님의 심경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게 아닐까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당시 트레이너 씨는 별말씀이나 행동을 취하진 않으셨어요. 하지만 이후에도 별다른 얘기는 꺼내지 않으셨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선 드러내지만 않았다 뿐이지 선배님의 팀원들도 선배님이 조금은 이상해졌다는 의견이 돌기 시작했고요. 어쩌면....... 지금쯤이면 걱정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슬비의 얘기에 착잡한 표정을 짓는 하피. 자신이 그렇게도 남한테 걱정을 끼치게 만드는 사람이었던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조금 돌이켜 생각해본 결과, 그럴만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어버린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자신도 정말 구제불능임이 틀림없었다.

  그런 의견이 나온 이후부터, 슬비와 세트는 다른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하피에 대한 정보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집중을 못한다며 답지 않다는 의견들을 들어오면서까지. 일과 종료 이후의 시간마다 두 사람은 하피의 행동패턴을 분석하며 적절한 시기에 맞는 순간을 기다렸고, 마침내 오늘. 지금의 자리에서 하피와 마주하고 있게 된 것까지 서술했다.

  물론 처음에는 각자의 팀에서 보는 외부인의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냥 넘어가려고 했으나 그때 두 사람이 목격했던 하피의 표정에는, 두 상관에게 단독행동을 자신 있게 요청한 것과는 반대로 자신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어 도움을 요청하려다 마음과는 다른 의견이 나왔다는 것에 제 스스로 좌절하는 표정이 서려있었다고. 그렇게 느꼈기에 슬비와 세트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설령 자신들의 만남이 한낱 오지랖으로 치부가 된다고 해도, 그렇게 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두 사람의 이야기에, 하피는 무언을 유지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정곡을 찔렸을 때 나오는 특유의 표정. 실제로 자신이 단독 행동을 요청했던 것도 지금과 같은 고민을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해보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 스스로는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인정하기까지의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원인은 제 스스로 불신이란 막을 무너트릴 수는 없었다는 것 하나.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닌, 자신을 향한 불신.

  어느 누구에게나 철저히 자신을 감춰온 삶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갈 수 있었던 기반이었으므로, 하피가 하려던 행동은 스스로 그 기반을 무너트리기 위한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도전이 처참하게 실패하여 체념하는 중이었고. 때문에 체념하며 오늘도 그 깊은 한숨을 쉬었는데. 그러던 중 두 사람이 이렇게 찾아온 것은 정말이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러면....... 제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 있었어요?”

  그것을 뒤로 미루며 두 사람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하피 스스로도 잘 알고, 그만큼 꾸며놓은 특성을 따라올 만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어지간한 경험과 안목이 아니라면 자신의 위치를 감지하거나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후배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슬비의 경험과 안목만으론 자신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그래서 그 질문만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하피였다.

  하피의 말대로 슬비 역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나 신출귀몰한 하피의 특성이라는 것에 골머리를 앓았었다. 때문에 하피가 늘 입에 담고 다니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는 말을 기용해, 고층 건물들을 후보로 잡는다 해도 부산시에는 신서울과 비견될 만큼 고층 건물들이 곳곳에 있었다. 지금처럼 하피에게 접근하려면 특유의 신출귀몰함을 과신한다는 점을 역이용해야하는데, 그러려면 하피가 있을만한 곳을 특정해야했고, 그것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내가 찾았다! 깡총이 녀석아!”

  어떤 대답이 나올까를 기다리고 있었던 그 때, 슬비의 옆에 있던 세트가 바로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그런 하피를 찾았다는 말과 함께.

  “....... 세트 양이 저를요?”

  이건 또 무슨 얘기일까. 그런 눈빛으로 세트를 내려다봤을 때, 슬비가 허탈한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마치 그 당시에 자신이 했던 고민이 제대로 무의미해졌다는 걸 인정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네. 세트가 선배님을 찾았어요.”
  “응! 내가 깡총이 녀석의 냄새를 맡아서 찾았다!”

  세트의 대답 이후, 슬비가 정확히는 선배님의 체취로 찾았다며 정정했다. 그런 두 사람의 답을 듣고 난 뒤, 하피는 머릿속이 무언가로 강하게 맞은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귀가 잘못된 건 아닐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제 귀는 정상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마쳤을 때.

  “....... 세상에, 그럼 세트 양의 후각으로 저를 찾았단 말이에요?”

  믿을 수가 없다와 놀랄 수밖에 없다가 섞인 목소리로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묻는 하피. 생각지도 않았던 방법으로 자신을 찾았다는 것에 당황하고 만다. 다른 것도 아니고, 설마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를 추적해서 찾을 줄이야. 제대로 당했다. 하피는 결국 인정하며 허탈한 미소를 지어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선 깡총이 녀석의 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금 실망하긴 했다.......”

  분명 자신이 한 일은 맞지만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잘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시무룩해진 아이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슬쩍 눈으로 담은 슬비가, 세트의 손을 잡아주었다. 마치 그런 얘기는 하지 말라는 것처럼 잡아준 슬비의 손길에 조금 놀랐는지, 세트의 시선에 슬비가 온전히 담겼다.

  “그랬으니까, 찾을 수 있었어요. 세트는 특정 냄새가 언제 났는지까지 구별할 수 있으니까요.”

  슬비가 이후의 얘기를 더 잇지는 않았지만, 하피는 그것이 자신의 체취가 오늘 이 자리에서 나고 있었다는 얘기로 이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신뢰하는 눈빛이 있다면 슬비가 지금처럼 보이고 있는 눈빛은 아닐까. 세트를 신뢰하는 슬비의 모습이, 지금의 자신에게선 찾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이전에도 없었던 무언가일지도.

  굳은 믿음으로 자신을 직시하는 슬비의 눈빛에 하피는 무언가를 간파당한 것처럼 그 시선을 외면했다. 그렇게 외면했기에 하피는 볼 수 없었다. 자신의 행동에 조금은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바뀐 슬비의 시선을.

  “슬비 양의 말대로, 제가 가진 이 마음가짐을 누군가에게 언제든 털어놓을 수 있었을 지도 몰라요. 다른 건 몰라도, 언제까지고 제가 가진 걸 숨길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요.”

  시선을 외면한 채로, 하피는 자신이 갖고 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말을 아끼고 이야기를 듣기로 한 두 사람의 시선이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방황하는 하피의 느린 발걸음을 뒤따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제대로 제 마음을 드러내본 적이 없었어요. 제 마음은 철저히 숨기고, 저를 대하는 누군가에게 맞춰가며 살아왔던 삶이었으니까요. 그 때문인지,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누군가에게 얘기해본다는 것 자체를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있었어도, 금방 포기해버렸거든요. 제가 보여주는 변화로 누군가의 낯선 반응을 바라보는 건.......”

  힘들었으니까요. 그게 또 다른 이유라고 말하듯, 걸음을 멈춰서며 달이 몰고 오는 어두운 하늘을 제 시선에 담는 하피.

  “감춰진 감정이 조금이라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가 저를 달라졌다며 바라보는 시선에,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몰랐으니까요. 어쩌면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럴 것 같을 때면 항상, 말을 돌리며 원점으로 되돌리기 일쑤였어요.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면서, 제가 살아갈 수 있었던 방식이기도 했고요.”

  하피에게 있어 아카데미를 벗어난 이후의 삶은, 그야말로 무법천지나 다름없는 세상이었다. 이론적인 지식만으로는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고, 제 자신에게 틈이 생길 때마다 해가 되는 상황을 겪은 일들은 말해봐야 입이 아플 정도였다. 심지어는 금전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제 능력을 기반으로 비도덕적인 행위에도 손을 뻗었다. 물론 그것을 사적인 이익으로만 쓰지는 않았지만, 비도덕적인 행위라는 것은 벗어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불신이 내려앉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가면을 만들었고, 자신을 포장하여 남을 속이고 살아온 날들이 어제의 일처럼 떠오른 하피. 그렇게 제 나름대로 삶의 풍파를 겪었고, 이후에는 다시 맛보고 싶지 않을 만큼의 쓴맛도 경험했다. 너무 썼기에 자유를 갈망했던 제 자신도 잊어버릴 만큼.

  그러다 한 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는 걸 떠올리며 아카데미에 있었던 시절을 기억해내는 하피. 아카데미에서의 답답하고 진절머리가 났던 제 생활에, 문을 박차고 떠났던 날. 자유에 대한 낭만이 가득했던 치기어린 시절의 자신을 감당하기 어려워 처음으로 화를 냈던 그 순간들을 떠올렸고, 그런 자신을 붙잡으려던 대상인 아카데미의 교관에게 화풀이를 했던 걸 기억하고 만다.

  교관과 조금의 대화라도 해봤던가를 고민한다면, 답은 아니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대화라고 해봐야, 구속과도 같았던 아카데미에서의 삶을 경멸하는 글귀를 담아 편지를 하나 남긴 것만이 대화라면 대화였다. 물론 지금은 그것이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통보라는 걸 알았지만, 어느 누구의 설교도 듣고 싶지 않았던, 아무 것도 모르는 그 당시의 어린아이는 그걸 제 나름대로의 대화방식이라고 합리화 시키건 아니었을까. 하피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교관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대답을 들을 수 없는 무수한 질문들이 안개처럼 퍼지며 자신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 누군가와 진솔한 대화를 하는 건, 못하겠어요. 저한텐 너무....... 어렵거든요.”

  결국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결론을 내렸는지 두 사람을 보며 그렇게 얘기를 이었다. 제 입으로 어렵다고 말하긴 했으나, 두 사람은 하피가 무슨 심정으로 말했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체념해버린 눈빛에는, 제 스스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 눈빛을 본 슬비는 조금 전, 자신의 어깨를 흔들던 제 선배가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는 질문을 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 그 순간에는 몰랐는데, 지금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를 보고....... 그 사람들이 저를 믿어줄 수 있겠어요?”

  질려서 외면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않을까요? 제 머릿속에선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던 하피가 자조적으로 그렇게 말하곤 입을 닫았다. 정말로 모든 걸 손에서 내려놓으려는 것처럼, 얘기를 끝내자마자 두 사람의 시선을 벗어나려고 완전히 등을 돌릴 때였다.

  “그건 깡총이 녀석의 얘기를 그 녀석들이 듣지 않고는 모르는 거다!”

  하피의 말을 전부 귀담아듣던 두 사람 중 세트가 자신들을 외면하려는 하피의 팔을 붙잡아 시선을 자신에게 오게끔 만들면서 그렇게 외쳤다. 마치 더는 그런 생각을 갖지 말라며 하피에게 호통을 치는 것 같았다. 뒤이어 슬비 역시 하피의 남은 팔을 붙잡으며 필사적으로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깡총이 녀석은 바보다! 이미 스스로 답을 알고 있는데, 그걸 외면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깡총이 녀석은 정말로 바보다!”

  자신의 기준에선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톤의 목소리로 하피를 나무라는 세트. 그런 하피에게 많이 실망했다는 걸 내비치기에는 충분했다. 인상이 약간 일그러진 하피가 그런 세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 숙녀를 이렇게 거칠게 붙잡다니, 바보도 이렇게 다루진 않는다고요.”

  세트를 보며 얘기했지만, 자신의 다른 팔을 붙잡는 슬비한테도 해당되는 이야기를 꺼내는 하피. 그러니 어서 놓으라는 뒷얘기를 꺼내지는 않은 채 두 사람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제 손에서 떨어트리지 않겠다고 다짐이라고 했는지, 세트가 자신의 팔로 하피의 팔을 끌어안듯이 붙잡았다.

  “그래! 세트는 깡총이 녀석이나 리더 녀석보다 아는 게 많지 않아서 바보일 수도 있다! 어쩌면 바보가 맞을 지도 모른다!”

  뒤이어 자신은 그런 하피의 독설에 적극적으로 긍정하며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하피의 시선을 꿰뚫듯 마주했다. 하피는 그래서 어쩔 거냐는 세트의 되받아치는 반응에 되려 당해버린 표정을 지어버렸다. 이렇게 쉽게 인정할 줄은 몰랐는데. 하피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세트는 자신이 할 말을 안고 계속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이야기에선 세트보다 깡총이 녀석이 더 바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세트는, 적어도 세트는! 말해야하는 때에 말하지 않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으니까! 그 때 말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나빠질 수 있는 걸 아니까 말이다!”

  움찔. 세트의 답변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린 느낌을 받은 하피. 지금의 자신에게, 제대로 된 정곡을 찌른 것에 의한 반응이었다. 그러자, 자신의 앞을 가리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 녀석들! 깡총이 녀석들의 동료들이 어떻게 나올지를 생각하지 말고, 먼저 깡총이 녀석이 리더 녀석한테 얘기했던 것처럼 말하고 싶었던 걸 동료들한테 솔직하게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된다! 그래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세트 역시 하피가 얘기했던 마음가짐에 관해서 들었던 걸까, 속으로 부끄러움이 한층 더 쌓인 기분이 들어 다시금 얼굴이 붉어지는 게 아닐까하는 불안함에 휩싸인 하피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 그 다음은요?”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그런 질문이 담긴 시선으로 세트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건네는 하피. 그런 세트에게서 제가 풀지 못하는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찾아왔다. 이제야 자신의 얘기를 듣는 것 같다고 생각한 세트가 뭘 더 고민하냐는 표정으로 답했다.

  “당연히 그 녀석들의 얘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깡총이 녀석의 얘기에 그 녀석들의 생각을 들어봐야 하지 않느냐!”

  세트의 답변에 뜨끔했는지 하피는 다시금 정곡에 찔려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만다. 그게 가장 무서운 거였는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으나, 그런 중얼거림이 표정으로 드러났던 건지 세트가 하피의 얼굴을 보고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깡총이 녀석이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을 그 녀석들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깡총이 녀석이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일도 있다고 하지 않느냐? 사람과 사람의 대화라는 건 그런 거라고, 세트는 그렇게 배웠다.”

  제 표정을 읽고서 정답지를 내민 것 같은 세트의 이야기에 코를 꼬집을까를 고민했지만, 어린 아이가 가진 특유의 표정 때문인지 그런 마음이 수그러든 하피. 세트가 틀린 말을 하지도 않았으니 이견이 없다는 것도 한 몫을 했다. 그런데 대체 누가 그런 어른스러운 말들을 이런 어린 아이에게 가르친 건지. 그 가르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진 하피였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뒤로 미루기로 했다. 세트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녀석들이 깡총이 녀석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다면, 그 때부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여기서부터는 정말로 쉽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제 또래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제 나름대로 알려주기 위해 설명을 시작하는 세트. 그러다 조금 불편한 기색을 띠며 주변을 둘러다보더니, 가까운 곳에 설치된 벤치를 발견하곤 그쪽으로 두 사람을 이끌었다. 절벽을 연상시키는 건물 외벽을 올라와서 지쳤던 건지 조금 쉬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세트가 찾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두 사람이 하피를 가운데에 두고서, 각자 자신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것 같은 그림이 그려졌다.

  “우리 선생님 녀석이 그랬다. 사람 혼자선 모든 걸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사람에게는 각각 부족한 것이 하나쯤은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서로 보완해주기 위해 팀이 있는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서로를 보완해주면, 팀도 성장하고 스스로도 성장한다고 했다! 처음엔 나도 그게 무슨 얘기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안다!”

  그러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적을 떠올리며, 세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다가도 결국에는 제 나름대로 깨달은 것이 있는 사람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신과는 다르게, 표정이 참 다양하게 지어지는 세트의 얼굴을 보며 신기해한 하피는 어쩐지 흐뭇한 느낌이 드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어째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선생님 녀석도, 파이도, 땅딸이랑 분홍이도. 그리고 나도 모두가 하나씩은 부족한 게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혼자서 끙끙 앓지 않고, 서로가 힘을 합해서 같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 문제를 해결해온 거다! 혼자였다면 풀 수 있을까 싶은 어려운 문제를, 팀이 함께 고민했기 때문에 조금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냥터지기 팀의 녀석들도, 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팀이라는 거, 정말 대단하지 않으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혼자 맞서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해서 해결한다. 하피는 어느새 세트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제 나름대로의 해석과 정리를 동시에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를 시작으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관한 자가진단을 하기까지. 제 나름대로의 윤곽이 잡혀갈 때 즈음.

  “그러니까, 깡총이 녀석아! 스스로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거라! 깡총이 녀석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녀석들이 있다면, 그 녀석들에게 의지하면 된다! 그럼 그 녀석들도 깡총이 녀석을 믿고 의지할 거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그걸 확실하게 말하고 싶었던 건지 하피의 팔을 안고 있던 세트가 제 뺨을 하피의 팔에 기댔다. 마치 다른 사람이 없어도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어리광을 부리는 것처럼 보일만했으나, 하피는 그런 세트의 말과 행동들이 거짓말이어도 좋을 정도로 믿음직하다고 느꼈다.

  그러길 잠시. 무언가 퍼뜩 생각이라도 난 걸까, 하피의 팔에서 뺨을 뗀 세트가 벤치에서 일어나 슬비를 포함한 두 사람의 앞에 서고는 만세 자세를 취한다.

  “그래도 그게 못 미더우면, 하다못해 지금 모여 있는 우리 셋이서 한 팀이 되면 되지 않느냐!”

  주르륵. 세트의 갑작스런 발언으로 인해 하피의 고개가 모로 천천히 기울어졌다. 지금 세트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옆에서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슬비도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그게 무슨 얘기냐는 눈빛으로 세트에게 시선을 둔다. 하지만 즉흥적이라기엔 너무나 확신하고 있는 목소리였기 때문에, 이내 두 사람은 세트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했다.

  “리더 녀석은 똑똑한데다 셈을 잘하고, 깡총이 녀석은 멀리 내다보고 결단을 내릴 줄 안다! 그리고 난 너희들이 쉽게 못하는 걸 할 수 있다! 내가 깡총이 녀석을 냄새를 맡아서 찾은 것처럼 말이다! 이 정도면 우리 셋이서 팀이 되어도 뭐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제가 아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각각 두 사람의 강점들을 언급하며 제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를 늘어놓았다. 어린아이의 면모가 많은 세트였기에 억지가 덧붙여진 이유들을 늘어놓을 줄 알았던 두 사람이었으나, 직접 세트가 늘어놓은 이유들을 듣고 난 뒤 그 모든 것에 타당성은 충분했다고 판단한 두 사람은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설득을 당해버린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에 설득되기라도 한 걸 아는 걸까, 세트는 기대된다는 눈빛을 띠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그럴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운명으로 묶인 하트의 여왕들이니까 말이다! 깡총이 녀석이 그 때 그랬지 않았느냐!”

  삐걱. 하피는 세트가 했던 그 말들을 곱씹으며 점차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세트가 말한 그 때는 세 사람이 한 팀이 될 수 있게 해준 장소인 연무극장에서, D백작의 의견을 받아 태스크포스의 명칭을 정하려 했었던 때였다. 결과는 두 사람이 각각 작명한 팀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이 기각했었다. 그 의견에 불평을 늘어놓던 세트가 바이테스와의 전투 이후에 마술을 보여주겠다던 하피의 말을 기억해내며 마술을 보여달라며 요청했고, 하피는 그 요청을 받아들여 카드 마술을 보여줬었다.

  하트의 여왕. 세트가 뽑은 그 카드를 하피는 퀸 오브 하트라고 부르며 여러 번의 카드마술을 세트에게 선보였다. 세트는 어떤 카드를 뽑아도 나오는 하트의 여왕으로 인해 믿을 수 없는 눈빛과 말도 안 된다는 반응으로 하피를 바라봤고, 하피는 처음 뽑았던 하트의 여왕을 이후에도 연속해서 뽑았다는 것을 빌미로 그것을 운명이라고 설명했었다. 그 뒤로 이어진 하피의 언변에 설득당한 두 사람의 승낙으로 지어진 팀의 이름은 퀸 오브 하트. 말 그대로 운명으로 묶인 하트의 여왕들이 되어 연무극장에서의 기억을 안고 다시금 여행길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때 자신이 직접 얘기했던 것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의 입에서 지금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 건 정말이지, 부끄러운 일이라고 다시금 깨닫는 하피였다. 운명으로 묶인 하트의 여왕들이라니. 어디서 누군가가 듣는다면 두고두고 놀림감으로 쓰기엔 충분한 소재이지 않나 싶어서. 그러니까, 하피는 부끄러움 없이 얘기하는 지금의 세트에 대한 면역이 없었다. 얘기가 끝난 이후에도 하피에게 자신이 팀이 되어주겠다며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는 것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게 그 증거였다.

  세트의 그런 격한 반응에 어떻게 좀 말려보라는 눈빛으로 슬비를 설득해보는 하피.

  “....... 저도 세트의 생각과 같아요.”

  그런 무언의 부탁을 받아들이기 위함인지, 자리에서 일어난 슬비가 공세를 퍼붓는 세트를 천천히 진정시켰다. 그러자 무슨 얘기를 하기 위해 자신을 말린 걸 아는 건지, 신기하게도 얌전해진 채로 슬비에게 시선을 주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세트의 모습. 그런 세트의 시선을 받으며 말하진 않았을 뿐, 자신 역시 세트와 같은 생각이라는 눈빛을 띠며 얘기를 잇는 슬비였다.

  “처음에는, 저도 저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내가 완벽하게 해내야해, 내가 잘해야 해. 심지어는 내가 완벽하게 하면 모든 게 잘 해결될 거야. 그런 생각까지 했었으니까요. 팀에 대한 믿음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당시의 저한테는 그런 어린애의 치기가 있었어요.”

  그것이 지금은 잘못 판단했다는 걸 깨달은 사람처럼 회고하는 슬비. 그리고 그 얘기를 듣던 하피는 그런 슬비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슬비와 처음 만나서 얘기를 했을 때마다 모두를 위한 선택에 필사적이었기 때문. 사소한 의견 마찰에도 제 생각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던 슬비를 이해하기 어려웠었는데, 그와 같은 때가 슬비에게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된 하피는 그 때의 슬비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째서 D백작이 자신을 포함한 지금의 세 사람에게 독선적이었다고 얘기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은양 팀에 들어간 순간부터는 그러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게 만용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그렇게 제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다른 팀원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됐어요. 그런 저를....... 팀원들도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줬어요. 그렇게 팀원들과 함께하면서 머리를 맞대며 서로간의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있었고, 그걸 보완할 방법을 서로 고민하고 하나씩 해결해나갔고요. 세트가 사냥터지기 팀에서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검은양 팀에서 그렇게 해오며 지금까지 오게 된 거예요.”

  물론 고민 상담도 그에 포함되어 있었고요. 그런 뒷 얘기까지 나왔을 때, 슬비가 자신의 양손으로 하피의 손을 감싸듯 잡았다. 두 사람 모두 장갑을 끼고 있는 손이었으나, 서로 간에 전달되는 체온이 느껴진 건 기분 탓이었을까. 분명 따뜻한 날씨는 아니었을 텐데. 그런 기분이 든 하피는 아주 잠깐. 자신의 손을 잡은 슬비의 양손에 시선이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에 가진 걸 얘기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알 수 없어요. 내가 힘든지, 기쁜지, 아니면 슬픈지....... 그런 자신을 알아봐주길 원해도,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어느 누구든 짐작만 할 뿐 섣불리 나설 수는 없으니까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런 중얼거림이 귀에 들어온 두 사람이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후배인 저랑 세트도 이렇게 극복해냈는데, 선배님이라곤 못하시겠어요? 선배님이라면 저희 둘보다 쉽게 해내실 거라 믿어요.”

  중간에 나는 후배가 아니라고 말하려던 세트의 발언이 슬비의 손에 의해 막혔다. 세트가 손을 허우적대며 슬비의 손을 거두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대체 자신의 무엇을 보고서 이렇게 믿음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든 하피였지만, 짚이는 점은 없었다.

  “그래도 정말 그게 어렵다고 하신다면.......”

  그런 세트의 모습에 안심한 슬비가 다음 얘기를 꺼내려고 했을 때, 이걸 어떻게 얘기해야할지를 두고 깊은 고민에 아주 잠깐 빠졌던 슬비. 뭘 얘기하고 싶길래 이렇게 뜸을 들일까. 그런 고민이 끝났는지, 슬비가 입을 열었다.

  “....... 저, 저도 이렇게 세 명이라면 한 팀이 될 자신이 있어요. 세트의 말대로, 저는 정보 분석이 빠른데다 정확하고, 세트는 사전조사를 통해 현장에서의 확실한 정보들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거기에 선배님의 통찰과 결단력이 함께한다면 최적의 결과를 낼 수 있을 테고요. 이 정도면 우리 셋이 한 팀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해요.”

  세트가 앞에서 냈던 결과를 슬비 역시 꺼내자, 세트가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는 시선으로 눈을 빛냈다. 그만큼 슬비의 이야기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슬비가 그런 세트를 힐끗 보며 미소를 짓고는 하피에게 시선을 돌리며 얘기를 잇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운명으로 묶인 하트의 여왕들이니까요. 그 때 선배님이 얘기해주셨던 것처럼 말이에요.”

  세트가 그랬던 것처럼, 슬비 역시 자신들을 운명으로 묶인 하트의 여왕들이라고 언급한다. 세트는 아직 어리고 당차기에 스스럼없이 그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하더라도, 늘 신중하고 진지했던 자신의 후배마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지금과 같은 발언을 꺼낸 것에 놀라버린 나머지 하피는 무슨 대답을 해줘야할지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 아하하, 하하핫.”

  지금과 같은 유쾌한 웃음을 짓게 되는 건, 어째서일까. 그 웃음을 시작으로, 하피는 함박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어째서- 라는 말이 많이 떠오르는 날이었지만, 하피는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것처럼 웃어버린다. 지금이라면 조금은 웃게 놔둬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그대로 두려고 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곧 그런 생각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 지금 저 울고 있는 거예요? 아하핫, 왜 울고 있는 거예요? 제가 왜.......”

  두 사람에게 묻는 건지 자신에게 묻는 건지 알 수 없는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하피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걸 인지한 순간부터는 어깨를 작게 떠는 것이 더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강도가 더욱 거세져 하피 자신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울기 시작했다. 마치 그간의 설움이 계속해서 터지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살아왔던가, 그 모든 것에 위로를 받은 것 같아서.

  뒤늦게 우는 모습을 감추듯 제 양손으로 얼굴을 가려봤지만, 이미 늦었다는 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우윽....... 흑.......”

  그래도 목놓아 우는 것만큼은 참아보겠다는 각오가 있었는지, 제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숨을 고르길 반복한다. 그게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건, 자신의 양 옆으로 슬비와 세트가 가까이 앉아 자신을 불렀을 때였다.

  “선배님.......”
  “깡총이 녀석아.......”

  그저 자신을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그 부름 한 번에 많은 질문이 들려오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안절부절 못하고 있지만, 어떻게든 자신을 달래보려고 애쓰는 두 사람의 모습에 결국 그녀가 마지막으로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게 했다. 그런 두 사람의 어깨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안고서.

  하피의 그런 행동에, 슬비는 어떤 대책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운다는 것을 본 경험이 많지도 않거니와, 자신보다 윗사람인 누군가가 운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울고 있는 그 대상이 자신이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하피였다. 늘 여유로운 모습의 선배가 처음으로 위태로워 보이는 표정을 지은 걸 봤을 때도 놀랐지만, 울고 있는 하피의 모습은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피가 울고 있는 동안에도 수많은 생각을 계속해서 떠올려봤지만, 나오는 답은 없었다. 슬비는 결국 하피가 원없이 전부 울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세트 역시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라, 그런 하피의 울음을 멈추게 해볼까를 고민했지만 결국엔 슬비와 마찬가지로 입을 닫았다. 슬비가 어떤 언질을 주지 않았음에도, 제 나름대로 그냥 두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언젠가 자신도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렇게 하피의 품에 안긴 두 사람은 하피가 울음을 멈추길 기다렸다.

  그런 자신을 기다려주는 두 사람이, 하피는 너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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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였다면 이번 편에서 이야기를 전부 끝냈어야 했는데, 분량조절 실패로 인해 후일담 편을 써야하는 상황이 됐군요. 이것도 이제서 가져왔는데, 남은 건 언제 써질지 장담할 수 없으니 조금 착잡한 마음도 들고.......

  하지만 이야기는 끝을 내줘야하는게 맞겠죠. 후일담 편을 갖고 찾아오겠습니다. 이전 편에서도 얘기했었지만, 언제 올라올지는 미지수지만요.


  마찬가지로 이번 편 역시 지인 분이 편하게 보실 수 있게 올려두는 글입니다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정말 놀랐습니다. 일일이 댓글을 달아서 감사를 표할까도 고민했지만, 너무 늦게 확인한 것이 걸려 고민만 하다가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이 글을 통해, 제 글을 좋게 봐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에도....... 언젠가는,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2024-10-24 23:28:0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