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아이들에게
가슴이시키는유리쨔응 2015-02-21 17
처음에, 우리는 열 명이었다.
그 때는 아직 차원종이라는 명칭도, 위상력이라는 개념도, 클로저라는 존재도 없었다. 애당초 우리는 그런 것도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우리가 아는 것은 정체를 모를 괴물이 세계 각지에 나타나서 사람들을 죽이고 도시를 파괴하고, 군대도 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다는 것 정도.
어느 날부터 우리는 하늘을 날 수도 있었고, 몸에서 불을 뿜을 수도 있었다. 염동력을 쓸 수도 있었고, 자기장을 조종할 수도 있었다.
그래, 마치 만화나 영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우리는 그 괴물들에게 맞서 싸울 능력이 있었다.
괴물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도시, 습격당하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우리는 각자 힘을 이용해 싸웠고, 그 싸움의 도중에 우연히 만났고, 같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에 손을 잡았다.
우리는 경찰도 군인도 맞서 싸우지 못하는 괴물들에 맞서 사람들을 지키고, 도시를 구하고, 괴물들을 쓰러트렸다.
어렸을 적 봤던 만화 속 영웅들처럼, 우리는 각자의 능력에 이름을 붙이고, 각자의 이름들을 짓고, 웃고 떠들면서.
처음에는 그저 부활동 같은 행동이었다. 아니면 동아리 활동 같은 것. 연락을 주고 받고, 모여서, 괴물들을 쓰러트린다. 게임을 하는 것처럼.
재미있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었겠지. 즐거웠으니까.
남들은 가지지 못한 특별한 힘. 그리고 그 특별한 힘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상황과, 숨기지 않고 오히려 쓰면 쓸수록 칭찬받는 무대까지.
각자 생각은 달랐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 우리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리더였던 누나의 제안으로, 우리는 울프팩이라는 명칭으로 스스로를 부르게 되었다.
늑대 무리처럼, 리더인 알파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괴물들을 사냥하는 무리.
그리고 그 안에는,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막내인 나도 있었다.
*
상용이 형이 죽었다.
이상용. 막 입학한 평범한 대학생이던 형은 이명 같은 건 부끄럽다면서 지으라고 권하던 지수 누나의 말에도 늘 거절하던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이었다. 언제나 자신보다 지켜야 할 사람들을 신경 쓰던, 멤버 간의 사소한 말다툼도 싫어하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다.
힘을 가졌으니까, 어쩔 수 없이 싸운다고 하던 사람이었다.
괴물의 칼날에 몸이 반으로 잘려 피와 내장을 흘리며 죽어있는 모습을, 싸움이 끝난 다음에야 우리는 발견했다. 어렸던 내 눈을 누군가 가렸지만, 이미 봐버린 뒤였다.
입에서 피를 흘리며, 초점 없는 눈으로 우리 쪽을 바라보던 그 마지막 얼굴까지.
그 날 나는 배 속에 들어있던 것을 남김없이 토했다.
우리는 아홉 명이 되었다.
*
우리처럼 세계 각지에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싸우는 사람들이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국 곳곳,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하나 둘 씩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이 싸움을 시작했다.
괴물과의 싸움에서 조금씩 밀려가던 정부는 우리 같은 능력자들을 받아들여, 조직을 만들어 보다 효율적으로 싸움에 임하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서 받아들였다, 는 거지, 실제로는 협박과 위협까지 동원된 강제 징병이었다.
우리는 반발했지만, 알파퀸은 결국 수용했다. 이대로 괴물들이 나타나면 해치우는 것 뿐만이 아니라, 더 이상 괴물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결정했으니까.
우리는 알파퀸의 명령에 따랐다.
*
블랙 타이드가 죽었다.
박수현. 아직 사춘기를 앓던 중학생 형이었다. 만화를 좋아했고, 능력을 가지게 된 것에 가장 기뻐한 것도 형이었다. 조금 잘난 척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동생인 나를 귀여워하고 자기가 재미있어한 만화들을 빌려주던 형이었다.
능력을 가졌으니까, 힘이 있으니까, 싸우고 능력을 쓰는 것이 사명이라던 형이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어느새 차원종이라는 이름이 붙은 괴물의 망치에 머리가 산산조각 나서 죽고 말았다. 짧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그 후로 한동안, 나는 그 광경이 떠올라 싸움에 참가할 수 없었다.
우리는 여덟 명이 되었다.
*
괴물들에게만 차원종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능력에는 위상력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차원종은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들이며, 그들이 차원문을 통해 현실에 나타날 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 노출된 몇몇 사람들은 위상력을 손에 얻는다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 과정과 원인을 분석한 것은, 우리를 조사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불려가 온 몸을 샅샅이 조사당했다. 죽은 능력자들의 시신의 남아있는 모든 부분은 해부되어 포르말린 통에 담겼다.
그걸 보면서 나는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장 처음 사람이 죽는 것을 봤던 그 날보다, 나도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질렸던 그 밤보다, 그걸 보는 순간이 더욱 무서웠다.
어느 날 밤 털어놓은 그 말에, 지수 누나는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강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싸우는 것이 무서웠다.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
북 키퍼가 죽었다.
하아란. 책을 좋아하는 얌전한 고등학생 누나였다. 위상력이 각성했을 때 가장 당황해했던 것도 누나였다. 그런 아란 누나를 같은 학교에 다녔던 지수 누나는 능력을 가진 우리가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면서 팀에 권유했다고 들었다.
인간의 감정을 조종하는 차원종에게 당해, 아란 누나는 울면서 우리의 눈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입으로는 죽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손에 들린 칼날은 자신의 목을 찔렀다.
전투가 끝나고 구급대의 들것에 아란 누나의 시신이 실려 가는 사이, 지수 누나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본 것은 나뿐이었지만.
한밤중에 우리 능력자들을 수용, 정확히는 격리한 숙소에서, 지수 누나는 나를 붙잡고 울었다. 전부 자신의 탓이라고. 나 때문이라고.
내게 안겨 우는 누나에게, 나는 말했다.
어차피 능력자로서 어딘가 팀에 소속되어서 활동하게 됐을 거라고. 어차피, 싸우다, 죽었을 거라고. 지수 누나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하지만 그 눈을 보면서도 나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일곱 명이 되었다.
*
우리 능력자들에게는 클로저라는 이름이 붙었다. 차원종을 물리치고, 그들이 나타나는 차원문을 닫는다는 의미에서.
클로저들은 혼자는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여럿이 팀을 꾸려 차원종에 대항해 싸워나갔다. 가장 먼저 싸움에 나섰던, 그리고 가장 유명해졌던 우리가 단체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정부와 과학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차원문과 위상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클로저들이 아무리 차원종을 물리치고 차원문을 닫아도, 다시 열리고 나타난다면 끝이 없으니까. 그 결과 아직은 초기 단계였지만, 차원문이 열리는 것을 방지하는 위상력억제기가 개발되었다. 하나 둘씩 우리 클로저들이 확보한 지역에 위상력억제기들이 설치되어갔다.
*
브라보 투가 죽었다.
안수원. 무기와 군대를 좋아하던 밀리터리 매니아 형이었다. 군대가 괴물에게 질 리가 없다며 화를 내는 일도 많고, 다소 다혈질이긴 했지만, 언제나 우리의 등을 책임지던 든든한 사람이었다. 평범한 학생이라 군부대의 지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화를 내던 지수 누나에게 설명을 해주던 것도 형이었다.
차원종의 광선에 온 몸에 구멍이 뚫려 쓰러지는 것을 나는 막지 못했다. 막을 수 있었는데. 조금만 빨랐다면, 내가 조금만 어른이라서 몸이 커다랬다면, 지금처럼 어른이었다면, 형을 밀쳐서 구해낼 수 있었는데.
이제 와서, 하는 생각이다.
그때 나는 형이 쓰러지기도 전에 다음 적을 향해 주먹을 날렸으니까.
싸움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돌아**도 않았다.
우리는 여섯 명이 되었다.
*
위상력억제기를 통해 안전지역이 생겨나면서, 클로저들은 안전지역을 제외하고 위험지역으로 파견을 나가기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씩, 하나씩, 차원종이 나타나는 지역, 차원종이 점령했던 지역을 탈환했다. 그곳에 위상력억제기를 설치하고, 인간의 땅을 되찾아갔다.
다른 팀과 함께 일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더더욱 우리의 이름은 유명해졌다. 우리는 경험도 많았고, 가장 많은 곳에 파견되었으니까. 차원문이 열리는 곳에 오래 있던 우리는 더더욱 위상력이 강해졌고, 더더욱 많은 적을 상대했다.
더 이상 작은 전투들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전쟁이 되었다. 전면전이었다.
*
어느 순간부터인가 누군가 죽어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저 어쩔 수 없는 일, 혹은 예상했던 일. 그냥 그 정도.
시민들을 지키지 못해도, 함께 싸우던 군인이나 다른 팀의 사람이 쓰러져도, 지금까지 함께 싸웠던 동료가 죽어도, 그 어떤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다.
능력이 있으니까 싸워**다는 생각도, 싸우기 싫다는 생각도, 싸워서 영웅이 되겠다는 호승심도,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늘 하는 일. 반복해서, 또다시, 계속해서.
더 이상 즐겁지도, 재미있지도, 두렵지도, 무섭지도, 슬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몇 번이나 피를 흘리고, 쓰러지고, 병원의 모르는 천장을 보며 눈을 떠도, 익숙했다.
시간은 흐르고, 또 흘렀다.
그리고 우리는 다섯 명이 되었다.
*
차원종들에게 급이 붙여지기 시작했다.
기존의 무기로도 쓰러트릴 수 있는 E급부터 수많은 클로저들의 목숨을 앗아가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S급까지.
그 중에서도 한 녀석은, 우리 울프팩과 몇 번이나 마주쳤다.
클로저들에게도 급이 붙여졌다. C급부터 A급까지.
A급 요원들은 드물었다. 우리 울프팩의 인원이나, 산들바람 베기의 김기태 같은, 안 그래도 수가 적은 클로저 중에서도 정말 엄선된 인원만이 A급의 칭호를 받을 뿐이었다.
그 녀석은 그런 우리의 수를 몇이나 줄였다.
알파퀸조차 그 녀석과는 무승부 이상을 내지 못했다.
우리는 네 명이 되었다.
*
우리는 세 명이 되었다.
*
마침내, 우리는 두 명이 되었다.
알파퀸과, 나.
서지수. 최초의 클로저 중 한 명. 최초의 S급 클로저 요원.
차원종의 원수. 대량학살 마녀.
평범한 학생이던 소녀는,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전 세계의 영웅이 되었다.
모두의 환호 속에서 영웅으로 당당히 서는 그녀의 모습을, 나는 기록으로 밖에 ** 못했다.
그 무렵 나는 사느냐 죽느냐의 갈래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으니까.
몇 번이나 되는 전투. 부상. 실험. 조사. 배신. 이용의 끝에.
겨우 의식을 회복하고 병원에서 나왔을 때, 이미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클로저들은 더 이상 국가나 그룹의 일원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클로저들을 담당하는 유니온이라는 단체가 생겼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일원이 되어 있었다.
셀 수도 없는 상처와 흉터가 남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
그런 몸으로는 영웅이 될 수 없었다. 영웅은 하나로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조차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뒤를 돌아본 적은 없었으니까.
*
그 뒤로는, 부끄러워서 아이들에게는 말 할 수도 없다.
들어낼 수 없는 작전들. 말할 수 없는 싸움들.
내가 하는 일이, 내가 했던 일이 무의미하지는 않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돌아보는 순간이 찾아오는 법이었다.
의심이 커질수록, 믿음이 희미해질수록, 내가 옳은 길을 걸었다고,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보며 확신을 가져야 하는 순간이 오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결과, 마침내 내가 하는 일이, 내가 했던 일이 무의미했다고 깨달은 순간.
나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
나는 싸우는 것을 거부하게 되었다.
매일같이 악몽을 꾸었다.
죽은 동료들이 밤마다 나타나서 나를 그저 지켜보았다. 죽어가던 그 모습으로.
마치 너는 왜 그곳에 있냐는 듯. 왜 너만 그곳에 있냐는 듯.
더 이상 아무도 싸우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그런 내게, 누군가 말했다.
그렇다면, 대신 다른 누군가가 싸우게 하자고.
힘을 가졌으면서 쓰지 않으려고 하는 네 대신, 다른 누군가가 싸우면 너는 싸우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비겁하게도, 그때 내게는 그 말이 구원이었다.
다시는, 다시는 싸우고 싶지도, 악몽을 꾸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내가 가진 마지막 힘을 뽑아, 나 대신 싸울 존재를 만들기로 했다.
드디어 이 지옥에서, 싸움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기뻤다.
그 결과물을 봤을 때, 나의 이기심이 또다른 누군가를 그 지옥에 던져넣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가장 신뢰하던 사람을 의심하고, 싸워야만 했다.
나는 싸움을 그만뒀다.
*
누군가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진다. 직업병이나 후유증 같은 거다.
좋은 점은, 그 어떤 악몽에서도 금방 일어난다는 점일까.
“제이 아저씨, 괜찮아요?”
선글라스 너머로 걱정하는 소녀가 보인다. 그리고 그 너머의 모습들도.
작은 방. 가운데에 놓인 테이블. 네 명의 사람.
의자에 앉아 게임기를 뿅뿅 거리는 소년, 그 옆에서 한심하다는 듯 그 모습을 보는 소녀, 기웃거리며 내 모습을 살피는 소년인지 소녀인지 애매한 아이.
“식은땀 나는데, 정말 괜찮아요?”
걱정스럽다는 듯 손을 뻗는 소녀의 팔이 닿기 전에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 그보다 오빠라고 부르라니까.”
평소대로 말했지만, 여전히 유리의 표정은 걱정스러워보였다. 유리의 말 때문인지 세하도 슬비도 미스틸도 내 쪽을 돌아보고.
애들에게 이런 눈을 받는 건 어른이 할 짓이 아니지.
“앞으로는 수면제도 먹어야 하나…….”
“……약 좀 적당히 드세요. 몸 상해요.”
“약은 몸에 좋은 거잖아? 몸이 왜 상해?”
“정말…….”
내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괜찮은 모양이니 됐다는 듯, 곤란하다는 듯 각자 표정을 바꾸며 일로 돌아간다. 그래, 그러면 됐어.
“아이고 삭신이야…….”
일어나 기지개를 키자 몸이 비명을 지른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익숙해지진 않는다.
후유증이란 무서운 법이지.
“그래서, 왜 깨운 거야? 그냥 걱정되어서?”
“연락이 왔어요.”
슬비는 세하에게서 내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강남역 인근에 차원종 발생 경보가 떴으니까, 대기해**대요.”
“강남역 인근……? 거긴 안전 지역이잖아?”
“뭐, 별 일 아닐 거라고 하긴 했는데…….”
게임기를 두드리면서 세하가 지나가는 말투로 대답한다. 확실히 게임 하면서 대답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아무 일 아닐 것 같긴 하군.
“차원종을 사냥하는 게 우리 사명이잖아요? 빨리 출동해요!”
신이 난 건지 안달이 난 건지 미스틸은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러지 마라. 잡아당기면 허리가 아프다고.
“내가 일어나는 걸 기다리고 있던 거야? 이거 고마운데.”
“아저씨 안 일어나면 못 가니까요. 자, 출발해요.”
허리를 두드리며 말하는 사이, 우리 애들도 각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첫 임무라서 그런지 들뜬 모습들이 역력하다. 뭐, 젊은 대로 기운찬 건 좋지만 그럴 필요는 없지.
“렙업 해야 하는데…….”
“넌 그 게임기 좀 꺼!”
“갈 동안 할 것도 없잖아.”
“차원종 사냥 기대 돼요!”
서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애들. 이해는 가지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아이들이 싸우는 건,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런 평화로운 시기라면 더더욱.
꼭 나처럼 될 것 같아서, 말이지.
우리 애들도 똑같을 것이다.
만화나 영화 속의 영웅이 된 것 같은 기분. 남들보다 특별하다는 느낌.
강제로 끌려 온 녀석도, 사명감으로 싸우는 녀석도, 기회와 부와 명예를 얻으려는 녀석도, 그럴 수밖에 없던 녀석도, 모두 알고 있다. 모두 보아왔다.
그러니까 그 과정도, 끝도, 알고 있다.
가끔씩 생각한다. 내가, 그때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책임을 다했다면. 끝까지 싸웠다면. 어린 아이들이 싸우지 않아도 되도록, 대신 내가 싸웠다면.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다.
그러니까. 그걸 막는 게 어른인 내 일이겠지. 쓰레기 같은 어른이라도 어른이니까.
다시는 싸우고 싶지 않다. 지금도 밤마다 동료들이 나를 찾아온다.
그러니까, 싸워야 한다.
동료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이러기 위해서 내가 아직 이곳에 있다고, 비겁한 변명이라도 할 수 있도록.
예전과는 다르도록.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후회하지 않도록.
나처럼은 되지 않도록.
어른이 되는 것은 늦으면 늦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제대로 시간이 걸려서, 누가 등을 떠밀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발로 되는 편이 좋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애들에게는, 이 나날이, 그저 사소한 부활동 같은 일이 될 수 있도록.
웃고, 떠들고, 즐겁게. 상처 받지 않고, 그저 훗날 떠올릴 수 있는, 떠올리고 싶은 빛나는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얘들아, 무리하지 마라. 건강이 제일이다.”
그걸 바로, 평화라고 하는 법이니까.
우리, 검은 양 팀의 다섯 명은,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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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설정과 다소 괴리가 있을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시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