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익숙한 것과의 이별
설원 2019-11-10 8
※ 클로저스 애니메이션 3화 & 부산 챕터2 세하 스토리 극초반부 참고
※ 제목과는 달리 그렇게 시리어스하지 않습니다.
익숙한 긴장감이 공기 중에 맴돈다. 항상 검을 들고 자세를 잡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다.
긴장이라는 단어를 택한다면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겠지만, 나한테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부터 내가 좀 독특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걸까? 어쨌든 나는 내 몸을 감싸 도는 이 긴장감에 익숙해져 있고, 그렇게 싫어하는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이 긴장감을 즐기는 쪽이었다. 너무도 많이 잡아서 손잡이 부근의 패인 홈이 내 손에 안성맞춤으로 되었을 적에, 상대방과 승부를 벌일 때마다 나를 잡아매려는 긴장을 오히려 가지고 놀던 적의 나는 그야말로 검도를 누구보다도 좋아했다. 또한 나는 아주 운이 좋게도 좋아하는 것과 재능이 있는 것이 적절한 교집합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는 운이 참 좋았다.
주변의 기대에 힘입어 나는 승승장구하였다. 마지막으로 치룬 결승전에서 나는 승리를 직감했다. 몸이 너무도 가벼웠다. 검도부 코치님께서 나에게 항상 검도를 즐기는 것은 좋지만, 어느 정도의 침착함을 가지고 있으라고 내게 당부를 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에 대한 기쁨을 나는 잘 주체하지 못하는 천성이었다. 감정 표현이 시시각각 얼굴에 내비치는 것과 일맥상 통하는 일일 것이다. 그 마지막 대회에서, 나는 확실히 흥분했던 거 같았다. 경쾌한 탁- 소리와 함께 휘슬이 불어졌다. 시합은 종료, 나는 같은 검도부원들과 함께 결과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후배들의 감탄어린 시선, 동기들의 질투가 조금 섞인 눈빛 등등. 그 찰나의 순간만큼 즐거웠던 적은 회상해보라면 별로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 찰나라고 하는 그 순간만큼은, 이제는 돌아오지 않기에 더 값지고 눈부시다고 생각한다.
우승을 직감하던 순간조차도, 무언가 이상한 것은 있었다. 첫 번째는, 아무리 기다려도 우승자의 이름이 방송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이건 우리뿐 아니라 관객들마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지 수군거리는 소리가 좀 들렸었다. 두 번째는 심사위원들과 코치님의 대화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게다가 코치님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을 때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또 느꼈다.
나는 잠시 회상했다. 내가 너무 들떴나? 너무 들떠서 과한 공격이었던 거 같다고 심사위원 쪽에서 무엇이라고 한 걸까? 아니, 그런 게 아닐 거야. 그저 난 내 몸이 평소보다 컨디션이 훨씬 좋았고, 흐름도 아주 매끄러웠고...
“...”
경기 중에는 늦은 오후였기에 반사된 햇빛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조금 부자연스러운 위치에서 빛났다는 것을 왜 그렇게 감이 좋게 떠올렸는지...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닐 거야. 물론 나는 위상능력자가 실제로 위상력을 쓴 걸 본 적이 없었기에, 그런 생각은 섣부른 판단 겸 비약적인 상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때의 상황에서는 왜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좋았던 감(感)일까, 나쁜 감일까.
잠시 후, 내가 치른 결승전의 결과의 안내 방송이 떴다.
실격패란다. 사유는 위상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 * *
그 날만큼은 아무리 나라도 좀 힘들었다. 부원들과 코치님도 내 기분이 평소답지 않다는 걸 알았는지, 나를 빨리 귀가시키는 데에 급급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내가 진정이 되면 하자면서.
학교에서 익숙하게, 집으로 걸어가는데 이상할 만큼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실격패를 받았다. 그것도 위상력을 썼기 때문이란다. 위상능력자는 신체적인 능력이 일반인에 비해 훨씬 뛰어나기에 선수로서 활동하는 이력은 전혀 없다. 그렇기에 이제 서유리는 검도 선수로서 활약할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
아,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조금 눈물이 날 거 같긴 하네.
도대체 엄마와 아빠, 동생들에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나 사실 위상능력자였대!’ 라고? 아니, 이건 너무 밝아. ‘위상능력자라서 실격패 당했대.’ 아니, 이건 너무 음침해. 잘못하다가는 눈물 많은 아빠가 내 앞에서 우실지도 모른다고.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할까? 아마 이런 생각이 든 근본적인 원인은 이것 때문일 것이다. 뭘 어떻게 설명하든, 내가 검도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기에 검도를 잘하는 자랑스러운 딸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라는 것.
“...”
이것도 좀 마음이 아프네. 아니, 조금 아픈 정도가 아니라 많이 아팠다. 내가 검도에 재능이 있고, 이로 인한 기대를 내가 한꺼번에 무너뜨린 것이었기에.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 이제 도대체 무얼 하면 되는 거지?
검도만 생각하고 살았다. 내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검도를, 이렇게 갑작스럽게 빼앗기니, 이런 인생 고민을 차분하게 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좋아하는 것만 보았다. 좋아하는 것은 검도, 취미도 검도, 특기도 검도, 장래 희망도 어쩌면 검도 관련. 그것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갑자기 중간쯤 왔는데 커다란 낭떠러지를 만난 기분이다. 그리고 그 낭떠러지 앞에는 이런 표지판이 붙여져 있겠지.
-주의! 이 앞은 낭떠러지임! 다른 길을 찾으시오!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것조차 만만치 않은 여정일 테고, 원점으로 돌아간다 한들, 다시 이만큼이나 올 수 있을까? 싶은...
한마디로 그 때의 나는 이런 것과 저런 것 때문에 눈앞이 캄캄한 지경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것은 물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여러 번 부르던 소리를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깨달았다. 아마 마지막으로 나를 부르면서 내 어깨를 툭- 쳐서 알아차린 걸지도.
“...서유리!”
“...으앗, 깜짝이야! 누, 누구세요?”
“뭐야, 그 반응은.”
“아, 이세하다...”
나를 먼저 부른 사람은 같은 반의 이세하. 부루퉁한 표정을 보니 내가 아마 세하에게 무슨 실례를 저지른 듯 했다. 나는 물었다.
“저, 세하야...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그냥, 몇 번이나 불렀는데 네가 못 듣는 것 같아서.”
“그래? 내가 생각에 잠겨있었나 봐...미안, 미안.”
“아니, 그건 별로 미안할 건 아니고, 그보다...”
너야말로 표정이 안 좋아. 무슨 일 있어?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잠깐 잊고 있었던 것이 불현 듯 떠올랐다.
주마등이 스쳐지나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까? 학교에는 아직 이야기가 안...돌려졌을 테고, 어찌 되었든 세하가 지금 내 사정을 모를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아니, 이런 걸 따지기 이전에 일단 눈물부터 차올랐다. 부원들과 코치님 앞에서는 담담하게 있던 아까와는 달리, 세하를 보자마자 그냥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난 되도록 덤덤한, 아무렇지도 않은 본래의 서유리 표정을 지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는데, 잘 안 된 모양이다. 이세하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너, 무슨 일 있었던 거야?”
“...”
아, 감정 표현이 금방 금방 드러나는 게 여기에서는 안 좋단 말이야...여기까지는 그래도 눈물이 흐르는 건 혀를 깨물어서라도 참을 수 있었는데, 이 다음에 이어진 세하의 말에는 좀 면역은 없었나 보다.
“괜찮아?”
“...”
괜찮냐니. 아니, 안 괜찮았다. 괜찮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길 한복판에서 그렇게 울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날의 일은 세하한테 많이 미안하다. 그냥 길을 가다가, 오늘 대회에 나간 같은 반 애가 있어서 그냥 안부 차 물어본 건데, 갑자기 울어버리기나 하고. 그러네, 좀 민폐였네.
이 점은 나중에 정식으로 사과해야겠다.
* * *
내가 진정이 될 때까지 세하는 내 옆에 끈덕지게 같이 있어주었다. 게다가 진정이 되기 전 횡설수설한 것과 진정이 얼추 되고 나서 조리 있게 다시 설명해주는 말도 참을성 있게 다 들어주었다. 그렇기에 내가 세하와 만났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떠 있었던 것에 비해, 내 이야기가 끝났을 때에는 이미 해는 완전히 져버린 뒤였다.
도대체 애를 몇 시간이나 붙들고 있는 거야, 서유리! 이성도 같이 돌아오자 나는 그저 지금 이 자리를 박차고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미안했고, 내일 또 보자!”
“...뭘 그렇게 급하게 가냐.”
“응...?”
“그냥, 좀 더 들어줄 수 있는데.”
짐을 서둘러 챙겨서 도망치려는 나에게 세하는 의외로 태연하게 말했다. 게다가 좀 더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는 의사도 표현했다.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꺼내는 말은 그렇게 냉정하지 않아서 나는 반쯤 일으킨 몸을 다시 벤치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내가 횡설수설했던 말들을 그래도 점잖게 다 들었는지 세하는 나를 열심히 공감해주었다.
“그러게...힘들겠네.”
“솔직히 지금 당장 무슨 일부터 해야 할지 감이 안 와.”
“...그러게. 나라도 그랬을 거야.”
세하는 잠시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항상 게임하는 세하의 앞에 서서 열심히 나 혼자 이야기를 했었기에, 이렇게 바로 가까이서 세하의 옆모습을 보는 건 또 처음이었다.
“나는 네가 검도하는 모습, 무척 멋있다고 생각했거든.”
“이세하 너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 기분이 묘하네.”
“그런데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위상능력자라도 취미로 검도를 할 수 있다고.”
“그런 말을...하기는 했었지.”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말 했던 내가 그렇게 말할 처지는...아닌 거 같다. 그렇게 낙담하고 있는데 세하가 말했다.
“그러니까, 나라도 괜찮으면...”
“응...?”
“나라도 괜찮으면...내가 상대 정도는 해줄 수 있는데.”
“어??”
눈앞이 조금 밝아진 기분이다.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은 찰나라 나는 그저 세하를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세하는 겸연쩍은지 뺨을 긁적이고 있었다. 주변이 어두룩해서 잘못 본 걸 수도 있지만, 뺨 부근이 살짝 붉었다.
세하가 이렇게 용기를 내서 먼저, 이렇게 제안을 해준 것에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장난기 가득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검도 초보께서, 이 서유리 님께 도전하겠다는 거야?”
“배, 배우면 되지! 네가 나보고 배울 사람 없으면 검도 가르쳐준다며.”
“...그랬네, 그랬었지.”
그 말 하나가 이렇게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이제는 이렇게 웃음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아까만큼 입안이 씁쓸하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지 조금 감도 잡힌다. 좋은 징조다.
“그런 말 해줘서 고마워. 이 서유리 님이 기운이 나신다!”
“그럼 다행이네.”
“응...이런 말 조금 쑥스러울수도 있지만, 고마워.”
“...그런 말 안 해도 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니, 이 자식 멋진 척 하네. 그 당시 별로 친하지도 않은 애의 고민을, 몇 시간동안이나 들어주고, 그렇게 우리가 나누었던 작은 부분에서 위로를 해주려는 거...그거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도 아니야.
그냥 그 때는 세하가 고마웠다. 그리고 나는 그날, 가족들 앞에서 별 어렵지 않게, 무거운 짐 없이 후련하게 말할 수 있었다. 아마 거기서 조금 용기를 얻었을지도.
* * *
“내가 검도 가르쳐준다고 했었는데! 언제 그렇게 배운 거야?”
세하와 첫 검도 대련을 마치고 남은 쉬는 시간에 나는 세하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세하는 ‘그냥 속성으로 배운 거야. 좀 많이 허접했지?’ 라고 답했다. 나는 그 대답에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놀랐어.”
“뭐가?”
“내가 한 말이긴 하지만, 세하 정말 검도에 적합한 신체 구조를 가지고 태어났어.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던 거야.”
“네가 놀랐던 점은 따로 있었던 거구나...”
나는 세하의 손을 바라보았다. 여기 저기 묶인 반창고에 괜시리 마음이 안쓰러워졌다. 그리고 또 하나 드는 감정.
“아쉽다.”
“또 뭐가?”
“내가 세하의 첫 검도 사부 되어보고 싶었는데.”
“너, 은근 미묘한 곳에 뚝심을 가지고 있다...?”
왜, 뭐 그런 거다. 하나도 밟지 않은 설원(雪原)에다가 발자국을 처음으로 남기려고 할 때의 그 짜릿한 기분? 이 검도의 검도 모르는 생초보한테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할 때의 그 짜릿함을 맛보고 싶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나의 이 말에 세하는 어째서인지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깜짝 선물을 해주고 싶어서. 그리고 실제로 검도하는 사람한테 배운 거 아니야. 영상을 통해 그저 검 몇 번 휘두른 것뿐이야.”
“...”
“그러니까, 실제로 누군가한테 배운 거 아니니까...나 네가 말하는 생초보 맞아...”
나는 눈을 깜빡였다. 이 말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 말은 내가 지금이라도 세하 너의 첫 검도 사부 될 수 있다는 소리야?”
“...이제야 얼굴이 좀 피네.”
“그건 또 무슨 뜻이야! 내 표정 또 안 좋아보였어?”
“조금? 지금은 괜찮으니 별로 신경 쓰지 마.”
세하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니 묘하게 더 신경이 쓰이는 건 기분 탓일까. 세하가 말했다.
“검도 하고 싶으면 말해. 언제든지 응해줄게.”
“...세하 같은 사람 알게 된 게 내 행운일까?”
“갑자기 또 무슨 소리야.”
“그냥 세하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말이야.”
이 뒤의 말은 나중에 전하기로 하자. 대신 나는 오기가 하나 생겼다.
“그래도 세하가 좀 기술 잘 익힌 다음에 하자. 내가 세하를 전문가로 만들어주겠어.”
“여기서 또 프로 정신이 나오네.”
세하는 웃었다. 싫지 않은 기색이다.
* * *
그리고 현재. 지금 우리는 부산에 있다.
쉬는 시간에 건블레이드를 손질하고 있는 세하의 뒤에 가서 왁! 하고 놀래 켰다. 그런데 세하는 이제 이런 내 장난에 익숙하고, 대비를 하는지 예전만큼 놀란 기색은 없었다. 그냥 차분하게 ‘서유리야?’ 라고 대꾸한다.
그 심심한 반응에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치, 요즘 세하는 재미없어.”
“내가 놀라는 걸 보고 싶으면 그 방법을 자주 써먹지 말아야지.”
“하지만 세하만 보면 뒤에서 놀래 키고 싶다고.”
장난 가득한 마음 절반, 알리고 싶지 않은 것 절반의 마음으로.
“그러고 보니 우리 대련 한지 오래되었네.”
“아, 검도?”
이제 세하는 내가 ‘대련’ 이라는 말만 꺼내도 자연스럽게 검도를 떠올리는 경지에까지 올라갔다. 세하가 물었다.
“그럼 지금 할까?”
“됐어. 지금 당장 말고. 휴가 받으면 그 때 한 번 하자.”
“그래? 괜찮겠어? 지금 하고 싶으면 난 괜찮으니까...”
“아니야. 이제는 익숙해져야지.”
처음에는 내 손에 죽도가 아닌 다른 것을 잡아**다는 것에 무력감마저 느껴졌는데, 이제는 아니다. 물론 여전히 죽도는 내 손에 잘 맞는다. 허나 이제는 죽도 말고도 다른 의미의 세검이, 또한 총도 손에 잘 맞는다.
익숙해진 어떤 것과의 이별은 참으로 슬프지만, 그래도 이제는 괜찮았다. 또 다른, 그에 버금가는 소중한 것을 얻었으니까. 지금은 손에서 느껴지는 그 따스한 온기를 느끼고 싶을 뿐이다.
“나중에 대련하면서 봐야겠네? 세하 실력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으, 여기서는 항상 프로 정신이 넘치신단 말이야.”
“어쩔 수 없어. 난 그 당시 검도 천재로 불렸던 사람이라고.”
“그랬었지.”
나는 몰래 세하의 손을 잡았다.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한 번 더 눈에 밟히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나보다 커진 그 손의 감각까지 하나하나 다 알고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