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어느 저녁날
REDS 2015-02-21 11
어둠이 땅에 내려앉았다.
어둠속 건물들은 하나둘씩 밝은 불빛으로 어둠을 밝혔고, 그 불빛이 야경의 아름다움을 더해갔다.
이 어둠속에서, 세하는 굴하지않고 방에 형광등하나 밝히지않고, 게임기로 현란한 비트를 울려대고 있었다.
"읏...으읏!!....이게..!!"
세하의 집 안에서는 어둠이 바탕을 장식하고, 똑딱거리는 시계소리와, 게임기를 두드려대는 비트소리만이 울려퍼졌다.
한창 똑딱거리는 시계소리에 맞춰 비트소리가 절정을 향해 연주되던 와중에, 게임기의 액정화면이 -GAME OVER-를 출력하자, 게임기의 비트소리가 멎고 말았다.
"아....기록 깰 수 있었는데..하아아아아아아.."
마치 세상을 다 산 노인마냥 한숨을 길게 내쉬던 세하는, 폐활량에 한계가 왔는지 컥컥대다가 숨을 가다듬고는, 어둠에 잠긴 방 안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게임은 이제 재미도 없고....엄마는 해외연수....심심해 죽겠다.."
모처럼 세하를 포함한 검은양팀은 강남 사태이후, 모든 정리를 끝마치고, 한 달간 휴가를 받아내는데에 성공했다. 세하는 아무런 방해도없이 게임을 할 수있다는 생각에 매우 기뻐했지만, 막상 휴가를 받고나니 3일만에 게임이 질리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일이."
세하도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이 심하게 당황스러웠다. 게임폐인인 자신이 게임기 자유이용권 만기까지 28일을 남겨두고 벌써부터 녹다운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치겠네."
세하는 왼손에 들고있던 게임기를 침대위에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후, 자신이 배를깔고 누워있던 방바닥에서 일어났다.
"밥이라도 해먹을까.."
오늘따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세하는 거실로 향하여, 냉장고를 열었다.
"...어머니 너무 하신거 아닙니까...."
냉장고 안에는 반찬이나 식재료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오직 김치가 담겨진 락X락 밀폐용기가 두 개있었다. 그리고, 냉장고의 앞에는 어두워서 **못했던, 포스트잇 하나가 붙여져 있었다. 세하는 냉장고 문을 닫고는, 한숨을 내쉬며 거실의 불을켜서 주변을 환하게 한 후, 소파에 앉아 포스트잇을 읽어나갔다.
'우리 아들은 라면만 먹어서 김치만 놔도 간단하다니까~ 선반밑에보면 저번에 사둔 라면 다섯박스 정도 있으니까 부족하면 더 사다먹어~ 사랑해 우리아들~ 가끔은 밥이라도 해먹어. 너무 라면만 먹지말고.'
"..실수였다."
세하는 과거 게임기를 두드려대느라 먹고싶은반찬이 있으면 해놓고 가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건성으로 자신은 라면만 먹어도 괜찮다고 대답한 자신을 원망했다.
"후우우우우.."
그렇게 수십 분후, 자신에 대한 원망을 끝마친 세하는, 자신의 방으로 향해 지갑을 꺼내들어 유니온 트레이닝복에 대충 집어넣고는, 집 앞 마트로 발길을 돌렸다.
'1인분이면..얼마나 사야하지..'
세하는 밥을 차릴때에도 검은양 팀원들과 항상 시끌벅적한 식사를 했던터라 항상 5인분내지 7인분정도를 기준으로 잡으며 요리해왔다. 덕분에,세하는 오랜만에 혼자먹을 저녁밥의 양을 어느정도로 조절해야 하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지. 것보다도 저녁 메뉴를 뭘로할까..'
세하는 항상 밥상을 차릴때에도 팀원들로부터 의견을 받아 밥상을 차려왔기 때문에, 혼자 저녁밥으로 뭘 먹을지도 고민해야했다.
'이런, 것보다도 거실불을 켜놓고왔잖아?'
의외로 이런면에서 결벽증이 있던 세하는, 다시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러던 와중에, 비틀거리는 그림자와, 그 그림자를 감당하느라 진이 빠져보이는 그림자가 세하의 시선으로 들어왔다. 세하는 두 눈을 찌푸려 그 두 그림자를 주시했다.
"....."
그 두 그림자가 가로등 불빛에 비춰져 알아볼 수 있는 형체로 드러나자, 세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정..누나...??제이아저씨....???"
술에 취한듯, 한 남성에게 매달려 비틀비틀거리는 밤색머리의 여인 한명과, 그 여인을 부축하느라 기가 다 빠진듯한, 온 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인 백발의 남성한명이, 어둠이 내려깔린 그 거리를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다.
"흐...흐흑..내가 왜...엘리트..김유정님이...흐흐흑..."
"이봐..헉헉.. 유정씨. 정신 단단히 잡으...라고! 헉헉.. 슬슬.. 한계인데..."
"...제이아저씨..?"
"내가..헉헉... 형이나 오빠..헉..라고 부르라....고 누누히...헉헉.. 얘기...어라...동생님..이잖아."
백발의 남성은 뒤돌아보며 세하를 쳐다보며 거친 숨을 내몰아쉬면서도,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했다.
"...되게 지쳐보이네요 아저씨."
"그니까..형이라고...헉헉..아니...됐다...됐어.."
제이는 슬슬 한계가 왔는지, 유정을 벽에 기대어놓고서는, 자신도 벽에 기대어 앉았다.
"후...이제야 살겠구만..하마터면 죽을뻔했어."
"것보다 누나는 왜 이지경이 되도록 술을 마신거에요? 그것도 한밤중이 아니라 지금같은 초저녁에.. 완전 꽐라가 되셨네.."
"...그놈의 회식이 항상 문제지.."
세하는 유정앞에 쪼그려앉아 한껏 술주정하고 있던 유정을 웃기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으으...내가 다 부숴버릴거야...부숴버릴거라고....으으으.."
"동생..유정씨 무게가..장난이 아니야.. 이대로 옮기다가는.. 분명히 사람하나.... 죽어..."
"아저씨. 유정누나 집 알아요?"
"아니..알리가있나.."
"그럼 어디로 데려가려고 한거에요?"
"...헉헉..사무소..."
".....진짜로 죽겠네요."
그 골목으로부터 사무실은, 적어도 버스를 타고 10정류장 정도는 떨어진 거리였다. 그곳에 도착할때까지 제이가 멀쩡할리가 없었다. 세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이에게 제안했다.
"...어쩔 수 없죠. 근처에 저희집이 있어요. 거기에서 재우죠 뭐."
"....."
제이는 어째서인지, 유정을 들쳐엎고 움직이던 낯빛보다도 더 사색이되어 세하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라면 앞으로 세달은 집에 없을거니까 걱정마요."
"휴...다행이군... 그럼 어서 옮기지."
세하의 말에 안심한 제이는, 순간 다시 혈색이 정상으로 돌아와서는, 유정을 업었다.
"동생! 집으로 안내하라고!"
".....네에..."
어쩜 저리 죽어가던 사람이 팔팔하게 살아날까. 세하는 다시한번 어머니의 무서움을 되새겼다.
둘이 유정을 들쳐업고는 낑낑대기를 5분정도 흘렀을까, 제이와 세하는 유정을 소파에 눕히고는 그 자리에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죽겠네."
"그러게요.."
그렇게 둘이 한창 멍을 때리다가, 세하가 핫 하며 정신을 차리더니, 제이에게 제안했다.
"아저씨 저녁드시고 가시죠?"
"..그래 안그래도 그럴생각이었어. 것보다 형.."
"그럼 기다리고 계세요. 금방 갔다올테니까요."
"....집에 밥없니?"
".....네."
"허..."
깊은 한숨을 내뱉던 제이를 뒤로하고, 세하는 다시 마트로 발길을 돌렸다.
한창 시간때의 마트는 굉장히 붐볐다. 세하는 특가세일품목을 잡느라고 이리저리 정신없이 치이고, 뛰어다녀야했다.
"...너무많이샀네."
정신을 차리고보니, 세하는 어느새 자신과 제이가 먹을것보다도 훨씬 많은 양을 계산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굉장히 싼 가격에 여러품목을 구입했지만, 어쩐지 세하는 손해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세하는 그 짐들을 비닐봉지에 쑤셔넣고는, 마트 바깥으로 향했다.
"정말 더럽게 무겁네..!!"
오늘의 짐들이 묵직하게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양 손에 든 세하는, 아까 유정을 집까지 옮긴 노동보다도 더 강도가 높은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으윽...제이아저씨라도 데려올걸.."
'분명 온몸에 알이배기고 말거야' 라고 생각한 세하는, 무겁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한걸음 한걸음 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세하는 집에서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게되는 일이, 그렇게 기쁠수가 없었다.
"이런게 바로 소소한 행복이구..나?!"
갑자기 양손에 들고있던 짐들이 가벼워지더니, 세하의 양 쪽에서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뭐지?"
'환각이라도 보나? 내가 너무 힘들어서 기절했나?? 자각몽인가???' 등 여러가지 의미없는 생각에 휩싸인 세하의 뒤에 2명의 여성이 서있었다.
"이세하하하하하!!!"
한 명은 쾌활하고 단순하고 먹보인 긴 흑발의 여성이었다.
"..무거워 보이네 이세하."
한 명은 도도하고 시크하신 분홍빛 머리의 여성이었다.
"...서유리? 이슬비? 오랜만이네."
"그래봤자 3일밖에 안됐지만!!"
유리는 덧니를 내보이며 활짝웃었다.
"...게임이나 하면서 라면만 먹고있을줄 알았는데.. 장이라니. 의외인걸?"
슬비는 푸른색 눈빛을 반짝이며, 세하를 바라보며 신기하다는듯이 말했다.
"..날 너무 무시하는걸.."
세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셋이 나란히 골목길을 걷던 도중에 세하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짐 집까지 옮겨주는거야?"
"뭐... 어쩔수없지."
"세하야! 대가로 저녁해줘!!"
"뭐? 저녁 안먹었냐?"
유리가 저녁을 굶어서 배고프겠다는 걱정보다도 유리를 집안에 들여놨다가는 집안의 모든 음식이 남아나지 않을거라는 걱정에, 세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이지!! 슬비랑 외식하러 나왔는데 마침 네가 저녁거리를 사가지고 지나가지뭐야!"
"날 어떻게 알아본거야?"
"그 유니온 트레이닝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흔한가 뭐!"
'어쩐지 마트에 돌아다니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구만' 하고 생각하던 세하는, 유리와 슬비의 저녁마저 챙겨줘야 한다는 현실에 순응하기로 결정, 어차피 너무 오버해서 구입한 이 짐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이건 찬스라는 생각에 다다른 세하는, 모든걸 놓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세하의 집 앞 아파트 복도에 도착한 그 셋은, 세하의 집 문 앞에 서있는 왠지모르게 낯익은 세 명의 사람들을 봤다.
"....이건 또 무슨.."
"..맨 뒤쪽부터 데이비드씨,세린 선배,은이 언니.."
"야호!!! 다들 왠일이에요!!!"
"어라? 유리랑 세하랑 슬비잖아?"
은이는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왜 여기에 있는거야..?"
세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설마."
데이비드는 모든 상황파악이 끝난듯 보였다.
"네 그 설마입니다."
세하는 집 열쇠를 들어보이더니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아넣은 후, 문을 열었다.
"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환영합니다."
어째서인지 거실에서는 유정이 집에 도착한 여섯명을 정신이 반쯤 나간채 해롱해롱하며 반겼고, 제이는 거실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세린과 은이는 들고있던 봉지를 거실바닥에 내려놓았고, 세하는 제이를 재빨리 깨운 후, 상황을 묻기로 했다.
유정은, 재빠르게 비닐봉지를 개봉했고, 세린과 은이가 들고있던 비닐봉지에서는 온갖 야식거리와 술이 쏟아져나왔다. 한시간 전만해도 텅 비어있던 거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진짜 많이 사오셨네요 언니!!!"
유리가 눈을 반짝이며 닭다리를 집어들며 말했다.
"당연하지! 난 항상 넉넉하게 사온다고!"
은이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맥주캔을 따며 말했다.
"부어라!!! 마셔라!!!!"
유정은 거실에 앉아 술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조용히 쳐다보던 세하는 잠시 정신을 놓고있다가 날아가는 정신줄을 겨우겨우 붙잡고는 머리를 좌우로 뒤흔들었다.
"후..세린 선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세하는 세린을 부엌으로 불러낸 후, 제이와함께 조용하게 물었다.
"아. 여기..."
세린이 보여준 액정화면에는 유정이 보낸 문자메세지가 표기되어있었다.
"...유정씨가 내가 잠든사이에 셋에게 2차 달리자고 문자한거 같군."
"...여기 집주소는 어떻게 알았나몰라."
정말 귀신같게도 유정이 보내온 문자에 적혀진 주소는, 세하의 집주소와 글자하나, 숫자하나 다르지않고 똑같았다.
"완전 소름돋네요..."
세하는 온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였다. 제이도 말은 안했지만, 온몸에 닭살이 일고 있었다.
"저기..세하야.. 정말 미안해..."
세린은 조심스럽게 세하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아니아니, 괜찮아요."
세하는 살짝 두통을 느끼긴 했지만, 아까 쥐죽은듯 조용했던 거실보다는 시끌벅적한 거실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에,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저녁은 고기로할까.."
거실의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그 뒤로 세시간쯤 지났을까, 술의 빈병이 한두개씩 늘어갔고, 고기들도 한두개씩 줄어들어만 갔다. 슬슬 술에 취해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이 늘어만갔다. 그럴때마다, 세하의 두통은 점점 심해져갔다.
"...이슬비. 너마저도 그모양이냐..?"
한사코 술을 마시지 않겠다던 슬비도, 분위기에 취해 술을 마시던 유리에 의해 억지로 들이마셔져 만취상태에 접어들어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유리는 이미 거실에서 나부러져 잠들어 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세린은 평소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게도, 술이들어가면 웃음이 굉장히 많아지는 타입인 모양이다.
"..의외인걸."
제이는 정말 의외라는듯이 말했다.
"그러게요...것보다 아저씨는 술 안드세요?"
"난 원래 술 잘 안먹는다. 것보다도 형이라고 부르라고."
"흠. 그래요?"
"너 형이라고..후.."
제이는 다시 한소리할까 싶었지만, 어차피 들어먹지도 않을거라 예상하여 말하지 않았다.
"부숴어버릴꺼야아아아..."
유정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픽 하고 쓰러졌다. '드디어 술잔치의 주모자가 쓰러졌으니, 조만간 끝나겠다' 라고 기대한 세하였다.
"동생. 끝을보려면 저것부터 처리하라고."
"...저건 그냥 답이 없어요.."
제이와 세하는 정말 보기만해도 지치는듯, 은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하하!!!! 나를 잡아보시라!!!!!!"
이리저리 방방뛰어다니는 은이는, 그 속도가 장난이 아니라 잡을 수 없을 정도였고, 만약 잡았다해도 괴력으로 탈출해버렸기 때문에, 제이-세하 선정 처치곤란 주사 1등급을 당당히 차지했다.
"..그냥 포기하죠. 때가되면 쓰러지겠죠."
"현명한걸.."
현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답을 내린 제이와 세하는, 픽픽 쓰러져있는 인원을 옮기기 시작했다.
"서유리..제발좀.."
"냠냠..고기...냠..."
유리를 옮기던 세하는, 자꾸 세하의 귀를 씹어대는 유리에게 시달리며 겨우겨우 세하의 방에 옮겨 놓을 수 있었다.
"부숴버릴거야아아아아아"
"오늘 그 말만 백번째듣는걸, 유정씨."
계속 재방송해대는 유정에 진절머리가 날 법도 한 제이는, 왠일인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유정을 침대에 눕혔다.
"..잘자라고 유정씨."
그렇게 말하고는, 뒷정리를 위해 제이는 다시 거실로 향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선배 1년치 웃음 다웃는 거에요..?"
"...."
"넌 얌전해서 좋다 야."
왼팔로는 세린의 허리를 감싸 질질 끌고가고, 왠지모르게 업혀오는 슬비를 떨쳐낼 수 없었기에, 오른팔로는 슬비의 다리를 지지하고, 세하는 다시 방으로 향했다.
"후.. 선배 잘자요."
"하...하아..."
왼팔을 풀어, 겨우 웃음이 멎은 세린을 땅바닥에 눕힌 후, 세하는 슬비를 침대의 여유자리에 눕히려 침대에 걸터앉아 슬비를 떨어뜨려 놓으려 했다. 그러나, 슬비는 팔로는 세하의 목을 강하게 감쌌고, 다리로는 세하의 복부를 강하게 눌렀다.
"?! 이슬..비?"
"...어.."
"뭐??"
"싫어어어...."
"뭐가 싫다는거야.. 좀 떨어져라!"
세하는 슬비를 떨어뜨려 놓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슬비는 더 강하게 세하를 감쌌다.
"...미치겠네."
한숨을 내쉬던 세하는, 우선 거실정리부터 해야했기에 슬비를 업은채로 방문을 닫고 나왔다.
"굉장히 웃기는 꼴인걸. 동생."
어느새 잠든 은이를 옮기고 나온 제이가 세하에게 말했다.
"하나도 안웃겨요. 남자들은 여기서 자죠."
세하는 슬비를 업은채로 데이비드를 정자세로 눕힌 후, 허리를 곧게 세우며 신음했다.
"으으으..."
"동생. 정말 엄마같군."
"...아저씨가 아저씨 소리듣는게 어떤기분인지 알것같네요."
"뭐, 정리는 내가할테니 바람이라도 쐬고오던가."
"...그럴까요. 얘도 바람쐬고오면 술이 좀 깰지도 모르니까요."
세하는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밖으로 향했다.
"하-"
아파트 놀이터로 나온 세하는, 여전히 슬비의 새하얗고 얇은 두 팔을 목에 걸고, 팔로는 가느다란 두 다리를 지지한, 슬비를 업고있는 상태였다.
"..언제쯤 떨어질래..."
세하는 무거워하면서도 슬비를 업고있는 상황 자체가 싫지는 않았다.
"추워...엄마..아빠.."
"...."
세하는 그 말을 듣자, 얼어붙고 말았다. 부모님을 모두잃은 슬비는, 그저 따뜻한 품이 그리웠던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 세하는, 왠지 두 팔에 힘을 강하게 쥐었다.
"....이슬비."
"...."
"....걱정마. 난 절대로 차원종 따위한테 안죽어. 너도 소중한걸 놓지말라고."
세하는 잘 **는 못했지만, 왠지 슬비의 표정이 좀 더 편안해진 표정으로 바뀌었으리라 하고 생각했다.
다시 집안으로 돌아온 세하는, 다시 슬비를 눕히려 했으나..
"으응...싫어.."
"..아직이냐."
다시 거실로 나온 세하는, 슬비를 업은채로 소파에 걸터앉아 이녀석이 의외로 약한점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옅은 미소를 띠웠다.
"...그건 껌딱지냐?"
"아저씨.."
"정리는 다했으니, 이제 자면되겠네."
어느새 거실은 깨끗하고 정돈되있었고, 여러 쓰레기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5분만에. 대단한걸요?"
"..여기가 어떤집인지 잘 알고있으니 몸이 빨리 움직일 수 밖에 없더군. 없는데도 있는것같은 존재감이란.."
제이는 몸을 부르르떨며 전율했다.
"...아저씨."
"엉?"
"...아니에요."
"싱겁기는."
제이는 피식웃으며 다시 자리에 드러누웠다.
"사춘기 잘 넘겨라."
"...고마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제이도 잠에 든것처럼 보였다. 세하는 다시 문 밖으로 향했다.
"...."
"...이세하."
"....깼냐?"
"..조금."
"그러냐.."
그렇게 세하의 집 앞복도는 잠시 적막에 휩싸였다.
"..왜 안내려주는거야?"
"그냥..좀 이렇게 있자."
"...나 창피하단말야."
"너 볼꼴 못볼꼴 다봤으니 걱정하지마셔."
"무..무슨?!"
슬비는 두 팔을 풀고는 세하의 머리를 있는힘껏 내려쳤다.
"아!!! 아!!! 그런의미가 아니라고!!!!"
세하는 정말 아팠지만, 두 팔을 풀지는 않았다.
씩씩대던 슬비는 때리기를 멈추더니, 다시 두 팔을 세하의 목에 감았다.
"...미안해."
"괜찮아."
"그리고..고마워."
"..뭐가?"
"걱정...말라는거..안심..됐다구.."
"..?! 그거...들었냐??"
세하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버둥거렸다.
"뭐..어렴풋이."
슬비의 얼굴도 머리색처럼 분홍빛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살짝 웃으며 세하의 등 뒤에서 살짝 소근거렸다.
"..절대 안놓을거야."
세하는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띠우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듯이 말했다.
"...지맘대로라니까."
세하는 슬비를 여전히 업은채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유난히 별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왠지 엉망진창인 하루였지만, 항상 오늘만 같이 행복한 날만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세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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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끝끝입니다!!! 스압의 압박을 견디며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명절때 어른들께 술 권유받다가 번뜩 생각나서 끄적여본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