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레비-옷
색다르게아플거야 2019-09-25 5
"이봐, 꼰대. 레비아 못 봤어?"
나타가 주변을 둘러보며 트레이너에게 물었다.
"레비아라면 지금쯤 바이올렛과 같이 쇼핑에 나섰을 것이다. 옷을 사러 간다는 군. 나간 지 얼마 안됬지만 금방 들어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 부잣집 여자랑? 웬일이야? 레비아 옷 사는 건 항상 당신 몫 아니었던가?"
"지금 난 사냥터지기 팀의 오퍼레이터이자 김유정 임시지부장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앨리스 양의 보조를 해줘야하는 입장이다. 마음대로 옷 사러 간다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지. 더구나, 바이올렛이 꼭 자기랑 같이 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더군."
"....그러겠지. 당신이 레비아 옷을 사러 가면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게 눈에 선하니까 말이야...."
"으음? 방금 뭐라고 했지?"
"아무 것도 아니니 신경 끄시지."
나타는 트레이너가 레비아와 같이 옷을 사러 나가지 않았다는 것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솔직히 부잣집 여자를 칭찬해주고픈 마음은 없었지만, 매사 쓸데없이 진지한 데다가 나름 사납게 생겼다고 자부하는 나타 본인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어린애, 심지어 여자애 옷을 사러 간다? 상상만 해도 웃기면서도 끔찍했다. 게다가 트레이너는 항상 실용성을 중시한 성격이었기에, 나타가 봐도 여자애한테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의 옷을 산 전적도 많아 레비아가 곤란해했던 적도 많았다. 본인은 애써 괜찮다고 했지만, 그게 말로 해서 되는건가? 될리가 없지.
"근데 레비아는 왜 찾는 거지? 레비아에게 무슨 볼 일이라도 있는 건가?"
"시끄러, 당신이 신경 쓸 일 아니니까 본인 일이나 열심히 하시지."
-----------------------------------------------------------------------
"휴우, 이곳저곳 둘러보느라 힘드네요."
"저..죄송해요, 바이올렛님. 괜히 저 때문에..."
"아니에요. 저도 오히려 이 부산 시내를 확실히 알게 된 것 같아 신선한 기분이었어요. 다음에도 같이 나가주실 거죠?"
"네! 물론이죠. 근데....이 옷 정말 제가 입어도 되나요?"
레비아는 자신이 들고 있던 쇼핑백에 들어있던 옷을 조심스레 꺼내들었다. 딱 봐도 고급스런 느낌의 하얀 안감에 금색 인그레이빙 무늬 라인이 인상적인 원피스였다.
"그럼요, 레비아에게 딱 맞는 옷이 그거밖에 없던걸요? 그동안 계속 자기 자신을 제대로 꾸며본 적도 없는 만큼, 이번에는 레비아도 확실히 자신을 꾸며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까 탈의실에서 입은 걸 봤을 때 정말 레비아를 위한 옷이라고 전 판단했어요. 그렇죠, 하이드?"
"물론입니다, 아가씨. 레비아 양에게 딱 어울리더군요."
"우우....성의는 감사하지만....."
레비아는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 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입은 모습을 보여주죠. 그래야 더욱 확신이 설 것 같으니까요."
"네,네?!"
"괜찮아요. 제가 보장하죠. 다들 이쁘다고 칭찬할 것이라고."
------------------------------------------------------------------------------------
'제가 곁에 있을게요. 나타 님의 곁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리고 나타님께서 정말로 호프만을 해쳐 모두에게 쫓기게 된다면...그 옆에 서서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드리고 싶어요.'
".....빌어먹을..."
나타는 읽고 있던 책을 덮어놓고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두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책을 읽을 땐 집중력이 좋은 나타였지만, 오늘따라 책의 내용이 전혀 들어오고 있지 않았다.
'제가 곁에 있을게요.'
'그 옆에 서서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드리고 싶어요.'
"그 망할 기집애가...."
독일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나타는 요근래 레비아를 많이 의식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밝힐 수도 없었던 자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준 그녀였기에, 괴로운 길일게 뻔할텐데도 자신의 곁에 있어주겠다는 그녀였기에 나타는 레비아를 점점 의식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하면 호들갑을 떨 정도였다. 순수한 호의였던 소마의 레비아를 향한 콘서트 제의도 그랬다. 소마가 차원종을 싫어했던 것도 있지만, 레비아가 혹여 크게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었다.
"망할.....어쩌다 이렇게 된거지..내가 왜 그딴 애를...."
"나타, 잠깐 나와봐요!"
문 앞에서 바이올렛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뭔데, 나 지금 나가기 귀찮으니까 건들지 말고 얼른 **."
"험악하게 굴기는. 레비아에게 새 옷을 사줬는데 당신이 봐줬으면 해서요. 다른 사람들은 다 이쁘다고 하던데, 당신에게만 의견을 못 들었네요."
"그런 건 다음에.....잠깐, 새 옷을 사줬다고?"
나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문 앞으로 가 문을 열었다. 거기엔 의기양양한 표정의 바이올렛과,
"야, 너...."
누가 봐도 비싸고 고급스런 티가 나는 아름다운 원피스를 입은 레비아가 서 있었다.
"........"
"........"
"........"
"...나타 님, 그렇게 쳐다보시면 부끄러워요...."
"으,응?! 내,내가 언제 뚫어지게 쳐다봤다고?!"
"호오, 그래요? 아주 침까지 흘릴 기세로 쳐다보던데요. 덕분에 좋은 사진 하나 건졌군요."
"내,내가 언제 침을 흘렸다고?!! 내가 그 ** 백발 꼰대랑 똑같은 줄 알아?!"
"후훗, 그래서...어떤가요? 당신이 보기에도 이쁜가요?"
"그...그건...."
바이올렛의 질문에 나타는 난처해졌다. 솔직한 감상 평을 내리자면, 얘가 정말 차원종 맞나 싶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모범생 여자가 늘상 보던 드라마의 얼굴이 예쁜 편이었던 주연 여배우 뺨을 후려칠 정도로 레비아는 이뻤다.
"저..잘 어울리나요...나타 님?"
레비아가 부끄러우면서도 조금은 기대를 한 눈으로 나타를 바라보았다. 부탁이다, 제발 그런 눈으로 날 ** 마라. 그런 표정을 하니까 더 이뻐보인단 말이다, ***.
"저..이뻐요?"
레비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걸 보고 안 이쁘다고 할 사람은 아마도 머리가 이상한 놈이거나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 허언을 늘어놓는 머저리이라.
"뭐,뭐야 이게!! 왜 애한테 이딴 옷을 입힌 거야?! 어,어울리긴 개뿔!!!"
그리고 그런 머저리가 바로 본인이었다는 사실을 나타가 깨닫는 데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뭐...예상은 했지만....역시 당신 눈이 특이한가 보네요."
"뭐,뭐가 어째?!!"
"됐어요, 기대를 한 우리가 바보였네요. 레비아, 돌아가요. 다음에는 다른 옷도 골라줄게요."
"...네...."
"야, 잠ㄲ...!!"
결국 나타가 부르기도 전에 그녀들은 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나타에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그는 레비아의 표정을 보았다. 그건 누가봐도 스스로에게 실망해 슬퍼하는 얼굴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이게 뭐냐고!!!"
나타는 머릴 쥐어잡으며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
"괜찮아요. 레비아도 알잖아요? 나타 눈이 특이한 거."
"맞아, 하여간 사부는 진짜 여자를 모른다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나타 형도 진심은 아니었을 거야."
"네...그렇죠..."
바이올렛, 유리, 미스틸테인의 진심이 담긴 위로에, 레비아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애초에, 쇼핑을 나가자고 제안한 것도 레비아였다. 새로운 옷을 사고 싶다고 **대던 것도 자신이었다.
그렇게까지 레비아가 새 옷을 사고 싶었던 이유는 당연히 나타였다.
레비아는 요근래 나타를 많이 의삭하게 된 것이었다.
나타는 사냥터지기 성에 있었던 일로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그는 아니라고 했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길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기에 동료들에게 이 길로 오지 말라고 외쳤다.
자신만 이 고통스러운 길을 걸으면 된다고, 난 칠흑의 어둠으로 떨어져줄테니, 너흰 찬란한 빛으로 향하라고 간접적으로 말해주던 나타였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신의 곁에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알아챈 레비아였기에 그녀는 그런 나타의 곁을 지켜주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나타 혼자 고통받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나타는 죽음만을 갈망하던 자신에게 삶을 가르쳐 준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 그리고 종족의 개념을 넘어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였다.
새 옷을 산 것도 사실은 나타에게 가장 잘 보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나타는 팍 성질을 부리며 안 어울린다고 평가했다.
다른 이들이 애써 진심이 아닐 거라고, 나타 눈이 이상한 거라고 위로해주었지만, 그런 건 전혀 레비아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죄송해요.....정말..."
"아,아아! 울지 마요! 울지 마! 레비아가 잘못한 게 아니니까!"
"그,그래!! 역시 사부 눈이 이상한 거라니까!!"
"레비아, 울지 마."
레비아가 눈물을 보이자, 나머지 3인방은 레비아를 위로하느라 애를 먹었다. 역시, 아직은 어린 애인건가.
------------------------------------------------------------------------------------------
"끄응......"
레비아의 방 번호가 적힌 문 앞. 나타는 그 문앞에서 발을 계속 동동 구르고 있었다.
'동료가 기껏 잘 보이려고 옷을 새로 입었는데, 그런 말을 해서 쓰나? 가서 사과 한 번 하고 오라고.'
'그건 그렇다, 나타. 동료의 성의를 무시해선 안되는 일이지. 가서 사과하도록. 명령이다.'
"이...망할 꼰대들이..."
사실 트레이너와 제이의 떠밀림도 있었지만, 솔직히 나타 본인이 잘못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사과하려고 선 것인데........
"끄으으으으으응!! **!!!"
나타 본인의 입장에선 말 그대로 '말로는 뭘 못해?' 이런 정도였다. 미안하다. 솔직히 나타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만큼 자존심이 굉장히 쎈 나타였기에, 사과 한마디조차 어려워했다.
"...나타 님?"
"우와아아악?!!!"
문을 등지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는 동안 문 열리는 소리도 못 들었던건지, 나타는 문을 열고 얼굴만 빼꼼 내밀은 레비아의 목소리에 호들갑을 떨었다.
"아, 죄송해요! 혹시 저 때문에 놀란 거..."
"아,아냐!!놀라긴 누가 놀랐다고!!"
나타는 애써 놀란 걸 부정하며 레비아를 쳐다보았다. 레비아는 그 세련된 원피스가 아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입어온 복장을 입고 있었다.
"..야...너...그..그 옷은..."
"네?"
"그 아까 나한테 보여준 옷 말야!! 그거 어딨냐고?!!"
"아...그거요...그거 아직 저한테 있긴 한데....내일 반품하려고요."
"뭐?"
"어차피 저한테는 너무 과분한 옷이기도 했고.....저랑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레비아가 씁쓸한 감정이 담긴 말을 하자 나타는 결국 자신이 크게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밖에 없었다. ***, 이게 대체 뭔 꼴이냐. 세상에 머저리도 이런 머저리가 없다,라고 나타는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냥 어울린다는 실없는 말이라도 해줬어야 했거늘. 이런 멍청한 자식 같으니라고.
"...입어..."
"...네?"
"입으라고....그....어울리니까...."
"나타 님..."
"아,아까는 말이 헛나온 것 뿐이니까! 어울리니까!.....그러니까 입어. 너 평생 그런 후줄근한 옷만 입고 다닐거냐?"
"....나타 님...."
"그,그리고 이거 받기나 해!!"
나타는 왼손에 쥐고 있던 걸 레비아에게 건네주었다. 나무로 만든 작은 소녀의 조각상이었다.
"나타 님...이건?"
"그...연습하다가 어쩌다보니 모양이 이따구로 나와서. 너 전에 나한테 연습하다가 필요없는 거 달라했잖아. 그래서 주는 거니까, 일단 받아."
그런 것치고는 조각상의 모양은 무척이나 섬세했다. 마치 나타가 레비아를 위해 애써 공들여 준비한 듯이.
"고마워요, 나타 님...."
"...뭘 이정도 가지고..야, 잠깐. 너 우냐?!"
"정말...정말 고마워요...나타 님..."
"야 울긴 왜 울어!! 하여간 약해빠져가지고는....울지 마, 뚝 그쳐!!"
"...네....훌쩍..."
"어휴....."
레비아가 간신히 울음을 참아내자 나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일단 된거겠지.
--------------------------------------------------------------------------
"어머, 레비아, 결국 반품 안하게요?"
"네, 생각해보니까 과분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쁜 옷이라서...좀 아까워서요..."
"잘 생각했어요. 내가 그랬죠? 레비아에게 분명 어울릴 거라고."
다음 날, 레비아는 유난히 다른 날보다 자주 웃고 다녔다. 아마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에게 인정을 받아서였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
"나타, 잠깐 어디 나랑 나갔다 오지."
"엥, 뭐야 꼰대. 나랑 어딜 가겠다고?"
"당연한 거 아닌가? 당연히 옷을 사러 가는 거지."
"뭐...?"
"너도 그 옷 입은지 한참 되지 않았나? 레비아를 보니 너도 새 옷이 필요할 거라 생각해서 말이다. 같이 가지."
"시,싫어!!"
"흠, 왜지. 기껏 호의를 베풀어주는데."
"당신 옷 고르는 센스가 최악이잖아!! 지난 번에 레비아한테 어울리지도 않는 옷 사줘가지고 레비아가 얼마나 속상해했는지 알아?!"
"으음..."
"하여간 싫어! 차라리 나 혼자 가서 고르고 말지, 옷 고를 줄도 모르는 망할 꼰대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