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먼저 손을 내밀어줄게 third (完)

SummerDia 2019-08-22 8

※ 개인적인 캐릭터해석 주의 + n년 후

※ 과거 설정 살짝 날조

※ 세하유리 요소 가미

※ 마지막 편

※ 이전편 – 1편 : http://closers.nexon.com/board/16777337/14663/

               2편 : http://closers.nexon.com/board/16777337/14716/

 

 

 

 

 

 똑같은 얼굴, 똑같은 표정...

 

 수많은 내가 나를 보며 서 있다. 왼손을 들으니 수 없이 많은 나도 똑같이 왼손을 들었다. 왼손을 들다 말고, 오른손을 조금 들어 올리자니, 그마저도 똑같이 따라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가 사뭇 다르다. 조금 용기를 내어서 수많은 나 중 한 명에게 다가가 벽면을 만져보았다. 내 바로 앞에 있는 나뿐만 아니라, 내가 등지고 있는 수많은 나도 어벙하게, 허공을 짚는 듯 한 행동을 취한다.

 

 매끈하고 차가운 벽면이 손에 만져졌다. 이런 촉감을 가진 물건은 대체로 큰 유리 거울이었고, 실제로 거울이 맞았다.

 

 수많은 거울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마치 그 풍경이 내가 아닌 내가 나를 감시하는 기분이 들어 묘한 기분을 주었다.

 

 이곳은 대공원에 새로 생긴 일명 ‘미러 라비린스(Mirror Labyrinth)’ 라는 곳이었다.

 

 계속 이렇게 쓰다듬으면 손으로 만진 태가 무참히 만들어질 테고, 거울에 이런 자국이 생기는 건 별로 보기 좋지 않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차마 멈추지는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부분만 어린 아이의 장난 어린 낙서가 그려진 것처럼 희끄무레한 것이 잔뜩 갈퀴어져 있었다.

 

 ‘그냥...심술이었겠지?’

 

 평소의 이세하라면 이런 행동 하지 않았을 거 같기도 하고. 따지고 보면 난 어렸을 때부터 거울을 똑바로 바라보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이렇게 거울에 둘러져 있는 상황 자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슬슬 거울에서 손을 떼었다.

 

 ‘혼자 구경하는 건 이정도로 하면 되겠고, 이제 슬슬 찾으러 가볼까?’

 

 가벼이 기지개를 폈다. 앞선 설명을 간략하게 하자면 미러 라비린스, 즉 거울 미로 속에 내가 자의적으로 들어온 건 아니었다. 그럼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언제나와 같이 어떤 이의 손에 붙들려서, 끌려와 이곳에 다다랐다. 나도 이런 곳에 온 것은 처음이라 잠시 따로 구경을 하자니 일행을 잃어버린 거고.

 

 과연, 이 상황 그대로 미로 한복판에 떨궈진 기분이다.

 

 여기서 내가 첫 번째로 할 일은? 미로 어느 곳에 있을 일행을 찾아내는 것.

 

 내 예상에 의하면 아직도 이 미로 어딘가에서 한창 구경 중일 것이다, 나를 여기로 이끌어준 장본인은. 그 아이는 나보다도 호기심이 왕성해,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세하, 세하! 저기 새로 생겼나봐! 들어가 보자!

 -어? 자, 잠깐만, 서유리! 속도 좀 늦춰...!!

 

 여기에 들어오기 직전의 우리 둘이 나눈 대화에서도 한눈에 알 수 있지 않나. 그녀는, 호기심이 많고 행동력 하나가 끝내주었다.

 

 그러니 높은 확률로 아직도 이 놀이 기구 안에 있을 거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이곳은 처음인지라 자칫하다가는 길을 잘못 들 수도 있으니, 조금은 서둘러서 찾기로 했다. 가는 길이 엇갈리는 것만큼 서글픈 일은 없기에. 안 그래도 이 놀이 기구의 이름에는 ‘미로’ 라는 단어가 들어가 나의 불안감을 더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서둘러 내가 있던 포인트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잠깐 이질감이 들어서 가던 길을 자연스럽게 멈추었다.

 

 거울 속의 수많은 내가 웃었다. 그 아이 생각을 한 번, 아주 잠깐 했을 뿐인데. 거울로 보는, 웃고 있는 나는 영 어색하기만 하다. 그냥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뒤는 다시 돌아** 않았다.

 

 

 

* * *

 

 

 

 생각 외로 잘 만들었다. 조금 길을 헤매다보니 저절로 내려지는 평이었다. 원래 이 놀이 기구가 있던 자리에는 다른 놀이 기구가 있었는데, 그 놀이 기구를 철거하고 새로 급하게 만든 놀이 기구 치고 짜임새도 제법 있었고,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었다. 거울 미로라는 소재는 어디에서나 써 먹을 수 있는 좋은 것이었으니까.

 

 문제는 지금 혼자서 이렇게 길을 헤매는 사람이 거울로 둘러싼 장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호기심뿐이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거울을 보는 걸 질색해서 세안을 할 때에도 눈을 꼭 감고, 세면대 위에 있는 거울조차 보는 걸 꺼려하는 사람이었다.

 

 거울이 있으니, 반사되어 보이는 풍경으로 공간은 더 넓은 것처럼 보이지만, 난 이 넓은 공간도 갑갑하게 느껴졌다. 얼른 서유리를 찾아서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평소라면 유리를 놓칠 일이 없는데 – 항상 눈으로 나도 모르게 그녀를 좇으니까 – 오늘은 특이했다. 유독 많은 거울이 있어서일까. 오로지 한 곳에만 집중하던 정신이 유독 흐트러진 기분이다.

 

 -... ...

 “어?”

 

 방금 말소리가 들렸다. 이 근처에 사람이 있나? 혹시 서유리일까? 다급하게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이상하게 내가 들은 거 같은 소리는 좀 더 깊숙이, 그러니까 미로의 깊은 곳에서 들렸다.

 

 이대로 더 깊이 들어가면 나중에 빠져나갈 때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몸은 이미 그곳을 향해 틀어져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서유리가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냥 따라가는 건, 아마 그 웅얼거리는 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해서였다.

 

 미로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아까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거울들이 즐비해 있었다. 아마 구역마다 배치된 거울의 크기가 저마다 다른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넓이며, 높이까지 큰 거울은 흔치 않게 볼 수 없는 거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 압도당했다.

 

 내 앞에 서 있는 거울에서도 당연히, 반사면이 비추었다. 다만 신기한 것이, 18살의 내가 아닌, 그보다는 훨씬 작은 내가 비추어진다는 것이었다.

 

 ‘아, 이거 설마...’

 

 거울 중에 일명 마법 거울이라고 있었다. 정확한 명칭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의 모습보다 작게, 혹은 크게 왜곡시켜서 보여주는 거울말이다. 내가 앞에 맞닥뜨리고 있는 거울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깐만 생각을 좀 더 해보면 그런 류의 거울의 왜곡은 아니라는 것이 금방 밝혀졌다.

 

 하나, 거울 속의 나는 지금의 나와 입고 있는 옷이 다르다. 나는 오늘 서유리가 가볍게 입고 오라고 신신당부하여 입고 온 스포티 룩 차림이었던 것에 반해, 거울 속의 나는 꽤 단순한 티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둘, 거울 속의 나는 지금 밖에 서 있는 나와 눈동자 색이 달랐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눈에 띄는 걸 싫어해서 항상 고동색 계열의 컬러 렌즈를 끼고 다닌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고동색 눈동자가 아니었다.

 

 노란색, 혹은 황금색, 본래의 내 눈동자 색이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이 결코 현실에서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는 데는,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좀 당혹스러웠다. 과거의 모습을 추측해서 보여주는 첨단 기술을 종합한 거울이 있는 건 절대 아닐 테고, – 있다 해도 들어본 적이 없다 – 그럼 지금 이 상황은 도대체 어떤 일인 걸까?

 

 그냥 든 생각은 일단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는 것.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랬을 터인데...

 

 그 직후, 누군가의 농락질도 아니고 깔끔하게 의식을 잃어버렸다. 그러니 내가 자리에서 떠나려고 한 직후에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그 이후의 있는 일들은 내게 있어 놀랍고 중요했다.

 

 

 

* * *

 

 

 

 땅거미가 지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이 가까워졌음을, 혹은 이미 도달했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였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마치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는데, 불행히도 머리부터 부딪힌 경우처럼.

 

 아마도 그 탓에 의식을 잃었던 게 아닐까. 난 내가 기절하기 직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잠시 생각했다. 이상한 거울을 봤다, 어서 이 자리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빨리 서유리를 찾아서 좀 이상한 일을 겪었다고 말을 해줘야 겠다...

 

 “...”

 

 신기하기도 하지. 그 직후, 누가 가위로 싹둑 자른 듯 깔끔하게 기억이 없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내가 있는 곳이 냉방이 잘 되어 있는 어느 건물의 안이 아닌, 바깥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알려주었다.

 

 ‘어느 틈에 바깥에...’

 

 제일 합리적인 추측은 누군가가 기절해 있는 나를 업고, 밖으로 옮겨주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대공원 근처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나름 환자를 이렇게 내버려두는 식으로 대처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머리의 두통도 서서히 옅어질 쯤, 그제야 내가 들었던 소리의 정체를 알았다. 아이들 여럿이서 모여서 쫑알거리는 목소리.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눈앞에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직 갑작스럽게 나타난 나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자신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는 상태였다.

 

 대화를 잠깐 들어보자.

 

 “내 풍선 예쁘지? 분홍색이야!”

 “내 풍선이 더 멋져! 파랑색이라고!”

 “내 풍선은 무려 빨강색...”

 

 풍선, 아이들에게 각각 들려있는 풍선, 자신의 풍선이 최고라고 자랑하는 아이들...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풍경을 나는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지금보다는 더 낮은 시선에서, 부러움이 잔뜩 담겨진 채, 어느 한 구석에서.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나는 하마터면 이렇게 소리 지를 뻔 했다. 다행히 실천은 하지 않아서 아이들의 시선을 이쪽으로 쏠리게 하지는 않았다.

 

 나는 재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밝은 다홍색의 풍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걸 들고 있는 아이는 당연하게도...

 

 “내 풍선 좀 봐! 노을색이야!”

 

 ...서유리. 역시, 그 때였다.

 

 좀 간단하고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그냥 놀이공원에서 불의의 사고로 과거로 떨어졌다. 그런데 하필 떨어지게 된 과거가 나와 유리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을 때. 나는 계속 잊지 못했고, 서유리는 잊고 있다가 방금 전에 떠올렸다. 아마 그 때의 자신의 풍선을 주었던 소년이 나인 것을 상상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럼 얘들아, 내일 봐!”

 “응, 바이바이~”

 

 해산 시간인지 아이들은 저마다의 손에 형형색색의 전리품을 들고 사라졌다. 내 기억 그대로 서유리는 모두가 떠난 놀이터에서 잠시 남아 있었다. 혼자 남아서 미끄럼틀도 타고, 그네도 뛰어보고 하는 등...전혀 심심해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 유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

 “처음 보는 아이다!”

 

 처음 보는 아이라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먼저 다가가는 유리의 모습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저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는 나한테는 잘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무슨 대화를 할지는 뻔히 알기에 여기서는 잠시 호기심을 짓누르기로 했다. 한 아이는 밝고 활기차게 대화를 이끄는 반면, 나머지 아이는 위축되어 있었다. 대화가 오고가던 중, 유리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 내민 손에는 당연히 자신이 받은 풍선이 들려 있었다.

 

 그렇게 내밀었던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얼른 풍선을 받아들였다.

 

 유리는 마지막에 손까지 흔들어주며, 자리를 떠났다. 나는 한동안 거기서 움직일 수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집에 들어가기 위해 놀이터에서 떠난 건, 이미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

 

 나는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갔다.

 

 무슨 마음에서 따라갔는지는 모르겠다. 왜인지 그렇게 해야만 할 거 같았기에, 무언가가 더 남아있는 걸 확실하게 알기에.

 

 뒤에서 따라오는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어린 시절의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은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내가 나한테 물었다.

 

 “아저씨, 누구세요?”

 ‘아, 아저씨...’

 

 그러고 보니 그랬다. 이 시절의 나는 웬만한 성인 남자들을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렇다보니 지금의 나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왜 ‘어떤 수상한 아저씨’ 라고 기억하고 있는지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일단 경계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은 들었는데, 정작 입 밖에 나온 말은 전혀 판이하게 달랐다.

 

 “아저씨 아니야.”

 “아저씨잖아요.”

 “아저씨 아니라고...아, 이건 그냥 넘어가자.”

 

 내가 뭐라 우기든 어렸을 때의 나는 나를 끝까지 아저씨라고 기억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관두었다.

 

 내 눈높이에 딱 머물러 있는 풍선을 보고 중얼거렸다.

 

 “풍선, 예쁘네.”

 “응...어떤 착한 애가 주었어요.”

 

 착하다, 라...응, 착하지.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해서 한편으로 걱정이 될 정도로. 풍선이 예쁘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나에 대한 상대방의 적개심도 어느 정도 줄어든 모양이다. 조잘거린다.

 

 “이렇게 예쁜 거, 나한테 주더라고요. 그런데 나는 다시 돌려주고 싶어요.”

 “돌려주고 싶어? 풍선을 가지고 싶었던 거 아니야?”

 “아, 아니야...그냥 나한테 손을 내밀어주었던 걸 놓치고 싶지 않아서요. 다시 돌려주고 싶어요. 그런데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몰라요.”

 

 아. 맞아, 그랬다. 아까도 살짝 언급했었다. 나는 풍선을 가지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렇게 내밀었던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얼른 풍선을 받아들였다.

 

 나는 살짝 무릎을 굽혔다. 그러자 우리 둘의 눈높이가 어느 정도 맞아서 나는 내 얼굴을 정면에서 보면서 말을 걸 수 있었다.

 

 “그럼, 아저씨...가 그 아이에게 돌려줄까?”

 

 아저씨란 말을 내 스스로에게 하자니 조금 어색했다. 아직 18살이라고, 난...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눈앞의 수상한 아저씨에게 순간적인 믿음이 생겨버렸다.

 

 “진짜?”

 “진짜로.”

 “진짜, 진짜로? 돌려주는 거예요?”

 “그래.”

 

 아이는 두말없이 나에게 풍선을 건넸다. 아까 유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을 때에 쭈뼛거리던 태도와는 천지차이다.

 

 어렸을 때의 나는, 살짝 뜸 들이는 태도였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조금 남은 모양이다. 나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그러자 곧장 부탁을 하나 한다.

 

 “이 말도 같이 전해주면 좋겠어요.”

 “무슨 말?”

 

 아이는 부끄러운지 내 귓가에 대고 작게 말했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내가 늘상 서유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동공이 살짝 커졌다.

 

 아이는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비밀! 이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고맙다면서 꾸벅- 인사를 하고 집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잠깐 멍한 상태였다.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그렇게 큰 사건 이후의 후일담이 이렇게 비롯된 것이었구나. 이제 조금 퍼즐이 맞추어진다. 마지막 퍼즐 조각은 이 풍선을 서유리에게 전해주면 되는 건데...

 

 그런데, 이걸 어떻게 전하지? 지금의 난, 그 당시의 서유리의 집이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충동적으로 커다란 사고 하나를 친 거 같다.

 

 

 

* * *

 

 

 

 거울 미로를 다 뚫고 나오니, 출구 앞쪽에서 손목시계를 보며 기다리고 있는 서유리가 바로 보였다. 살짝 심통이 난 듯, 입이 삐죽 나온 모양새를 보니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모양이었다. 그래도 내가 땀범벅이 되어서, 헉헉거리며 나타나자 그 표정은 곧장 사라졌다.

 

 의외로 고전한(?) 티가 많이 나는, 내가 나타나자 서유리는 크게 놀랐다.

 

 “세하야? 너 왜 그래!?”

 “그냥...좀 어렵더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내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말이야 할 수 있지만, 그러면 너무 이야기가 길어질 테고, 이 한 순간의 동화 같은 일을 누가...믿어줄까.

 

 그래서 일단은 호흡을 진정하는데 신경을 집중하기로 했다. 유리가 말했다.

 

 “그치? 어려웠지? 난 그래도 세하가 먼저 나가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그러니까...이런 곳에서는...일행을 놓치면...안...된다고.”

 

 뭐, 지금 같은 경우는 차라리 서로 길이 엇갈린 게 나았던 같기도 했다. 정말 믿어지지 않겠지만, 풍선을 받아들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또 의식을 잃어버렸다. 두 번째로 의식을 차렸을 때는 내 옆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관리요원이 있었다.

 

 괜찮냐며 세 번이나 묻는 관리요원을 정중히 물리치고 나는 출구를 향해 달렸다. 그 때, 끝내 서유리에게 다시 가지 않았던 건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고. 이미 많이 늦어버린 거 같지만, 영원히 미궁 속에 묻힌 것보다는 이것이 훨씬...나을 거라고.

 

 그렇게 내 자신에게 여실히 최면 중이다.

 

 그래서 이렇게 되지도 않는 체력에 갑자기 뛰어서 땀도 나고, 헉헉거리는 것이었다.

 

 좀 호흡이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자, 때마침 서유리가 내게 물었다.

 

 “세하야, 이거 풍선은 뭐야? 어디서 났어? 안에 풍선 파는 데라도 있어?”

 

 아. 그제야 오른손에 들린 다홍색 풍선의 존재를 인식했다.

 

 -이 말도 같이 전해주면 좋겠어요.

 

 지금의 나도 계속, 때가 될 때마다 계속 전하고 싶었던 말.

 

 “...서유리, 유리야.”

 “응? 왜 이름 두 번 불러? 불안하게.”

 “...그 때, 고마웠어.”

 “응?”

 

 아, 맞다. 기억의 언저리에 남아있다 해도 이렇게 고맙다고 하는 건 갑작스러운 거였다. 나는 처음부터 말을 다시 이었다.

 

 “그 때, 먼저 손을 내밀어줘서 고마웠어. 사실 풍선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어. 나는 그냥 네가 내밀어준 그 손 하나가 너무 좋아서...놓치고 싶지 않아서...그래서.”

 “...”

 “이거, 계속 돌려주고 싶었는데 이제야 돌려주네.”

 

 내가 내민 손에는 밝은 다홍색의 풍선이 들려 있었다. 내가 전해달라고 했던 말, 계속 전하고 싶었던 말. 정식으로 말을 해본다.

 

 “그 때, 먼저 손을 내밀어줘서 고마워.”

 “...”

 

 어느 누가 보면 망한 프로포즈 대사 같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난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데는 아직 많이 서툴러서...이것도 나름 최선을 다한 거다. 서유리는 풍선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이리 말했다.

 

 “이거, 돌려받는 거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

 “말 그대로야. 돌려받는 거 생각하지도 않았어. 그냥, 내가 주고 싶었거든.”

 

 유리가 웃었다. 그래, 내가 사랑하던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다. 밝고 활기차고, 착하고 꾸밈없고...

 

 아, 도대체 무엇 하나를 꼽을 수가 없다. 그냥 서유리 그 자체를 사랑하는데. 유리가 말했다.

 

 “역시 그 때의 그 애는 세하였구나.”

 “...미안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지?”

 “아니야.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잊고 지내기도 했었으니까, 내 쪽이 더 너무하기도 하지.”

 

 유리가 작게 딱밤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런 거, 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때 잠깐 닿은 온기와 촉감을 잊지 못하는 내 쪽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유리는 작게 자신의 다짐, 포부를 말했다.

 

 “앞으로도, 평생 동안 세하가 길을 헤매지 않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될게.”

 “아니.”

 

 이 말은 이제 부정해도 되겠지. 이때까지 나는 얼마나 이 앞의 사람에게 많은 것을 받았는가. 가끔은 이렇게까지 받아도 되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조금 용기를 내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큰 용기는 필요 없었다. 이미 가장 커다란 용기는 방금 전에 다 써버렸기에.

 

 “이제는 나도 그렇게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거야.”

 “응?”

 “나도, 앞에서 이끌어주며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고 싶어.”

 

 이번에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제는, 그럴 차례였다.

 

 

 

* * *

 

 

 

 “우리 차원과 외부 차원을 연결해주는 게이트, 일명 ‘차원문’ 은 공간과 공간 사이를 이어주는 것으로 대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간과 시간을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해.”

 “그렇다면...”

 “이세하 네가 겪은 그 일은 아마도 후자에 가깝겠지. 정확히 말하면 시간은 물론, 공간 이동도 같이 된 케이스지만.”

 

 전문가의 의견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나는 보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나갈 채비를 했다. 보나가 물었다.

 

 “어디 가는 거야?”

 “데이트.”

 “데이트, 아, 서유리 요원과? 둘이 아주 그냥 러브러브하네.”

 “지금 잘 해줘도 모자를 지경이라고.”

 

 나는 너털스럽게 웃었다.

  

 어느 찰나의 순간, 그 때 맞닿은 온기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작가의 말]


1. 마지막 편입니다.

2. 세하 1인칭 시점입니다.

3. 왜 세하의 유리에 대한 호칭(서유리, 유리)이 계속 바뀌냐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부릅니다.

4. 실제로 클로저스 관련 2차 창작 글은 많이 쓰고 있습니다. 다만 공식홈페이지에 올리는 글은 그 중에서도 추스려서 올리는 겁니다. 간단한 기준을 살펴보자면 <클로저스> 세계관에서 이어지는 2차 창작 글을 주로 공식홈페이지에 올립니다.(현대물 AU도 여기에 포함된다 생각해서 올리는 편.) 다른 세계관으로 쓴 2차 창작 글은 리퀘스트거나, 제가 보고 싶은 걸 쓰는 것이기에 공홈에는 어울리지 않는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5. 피드백 및 후기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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