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평화 - 6. 변화 (3)

Dadami 2019-08-11 0

  "그게, 정말인가요?"


  램스키퍼 내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어본 그녀, 유정에게 흑지수는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이야. 미르, 그 녀석은 굳이 말하자면 나와 같은 실험체이자 피해자이고, 성공작이지."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이번 고성 안에서 습격자들 전원을 죽였어. 그게 그 안에서 있던 일이야."


  흑지수의 옆에 있는 그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표정의 구김도, 감정의 동요도 없이 의연하게 앉아 있었다. 마치 이런 일이 늘 있는 일인양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모습은 유정에게도 복잡한 마음을 들게 했다.


  "쿠로, 아니, 미르 씨라고 해야 되나요?"

  "웬만하면 쿠로라고 불러주세요. 흑지수 씨도 미르라고는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요."

  "왜지? 너의 본명이잖아?"

  "굳이 말하면 이것도 본명이 아니에요. 애초에 고아에게 이름이 어디있어요?"


  그는 숨길 것따위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그, 그래도 어릴 적에 쿠로 씨를 키워준 사람들이 있잖아요?"


  유정이 찾은 그에 대한 정보에는 어릴 적, 고아원에서 키워졌다고 나와 있었다. 자세한 내역은 알 수 없었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이름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고아원이라는 이름의 마피아 집단입니다. 제게 붙여졌던 건 이름도 아닌 이명이에요. 걸음마를 뗐을 때부터 살인 기술을 가르치려 들었던 쓰레기 집단이죠."

  "그런……."


  유정과 쿠로의 나이차는 그다지 나지 않는다. 쿠로가 그녀보다 어리지만 성격이나 행**지로 봤을 때는 그가 지나치게 어른스러워 도리어 그가 연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둘은 만난 경위에 의심스러운 것이 많았어도 비교적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녀가 계속해서 그를 경계하긴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그를 믿고 돌아와서 검은양들을 봐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와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살아온 이야기가 달랐다.


  "……너 어째서 검은양 팀에서 도왔던 거야?"

  "갑자기 무슨 소리죠?"


  흑지수의 물음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답한 그에게, 그녀는 한숨을 쉬며 바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멀리서 자신들을 보고 있는 아이들, 그 중 정말 걱정스런 표정으로 단 한 명만을 보고 있는 서유리가 보였다. 이미 무너진 고성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들었지만, 소녀는 여전히 그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너, 알고 보니까 유니온에 들어가지 않고도 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옮겨지기 전에 있던 곳에서 말이야."

  "아, 그 얘기였나요. 그나저나, 소식을 듣지 못했을 줄은 몰랐는데요."


  그는 의외라는 듯 흑지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연구소 폭발 붕괴. 일부 파견 인원 제외 전원 사망."

  "연구소, 폭발 붕괴……?"


  유정은 눈을 감으며 과거에 있었던 사건 사고들을 되짚어봤다. 유니온 특성상 여러 사고가 나든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어지간해서는 상부에서 막지 않는 이상 그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되새겨봐도 유니온 관련 연구소가 폭발로 붕괴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었다. 연구소가 폭발할 정도면 일반인도 알만한 정보인데도.


  "엄연히 말하자면 유니온 관련 사고가 아니니까 유정 씨는 모르는 게 당연해요."


  그는 마치 머릿속을 들여다본듯 조용히 그녀에게 답했다. 한숨을 쉬며 잠시 눈을 감자, 흑지수는 어떤 연구소인지는 눈치챘지만 폭발에 대한 것은 들은 적이 없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연구소,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고 들었는데? 폭발 붕괴면 다시 지었다는 의미가 되거든?"

  "맞아요. 다시 지은 거죠. 그 이후에 유니온에 소속되어 연구를 진행중이니까요."


  그는 이 독일 지부의 고성과 비슷한 느낌의 장소의 연구소가 대외적으로 움직이고는 있으나, 많은 곳이 비밀리에 어떠한 연구들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유정은 입술을 깨물며 총장의 치부가 드러난 자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혹시 이 무너진 고성 안에도 그런 것들이 있나요?"

  "사냥터지기 아이들과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릅니다. 이 고성의 지하는 이미 폭발에 없어졌지만, 분명 차원종과 인간의 경계 없이 이미 도망친 간부들의 실험체들이 묻혀 있을 거에요. 습격자들의 명령을, 정확히는 간부의 명령을 받은 차원종 역시 존재했으니 확실할 겁니다."


  습격자들은 인간이었기에 그 사체가 남아 있었지만, 차원종들은 죽은 즉시 입자가 되어 사라졌기에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여자, 유라가 의식을 회복했을 때 이야기를 들은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해 보류 중에 있었다.


  "……."


  유정은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대체 왜 유니온에 들어온 건지, 그 연구소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몇 년 전 일본에서 발견되어 유니온에 소속되었을 때, 그 긴 시간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고, 그 전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그저 베일에만 쌓여 있는 그가,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그녀와는 다르게, 흑지수는 이미 많은 것을 눈치챈듯 조용히 그를 보고 있었다. 그녀 역시 실험체로서 살아왔던 시간이 있기에 길진 않지만 그와도 만났던 때가 있다. 다만 그때의 그와 지금의 그는 무언가 비슷하면서도 달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랐다. 웬만한 사람들에게서 마음을 닫은 그녀였지만,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줬던 건, 자신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 지옥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오르지도 못한 그가, 연구소 내부에서 남다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본래라면 나는 유니온 타워에서 계속 연구 자료로 사용되고 그곳에서 쓰여져야 했었는데, 왜인지 신서울로 이동되었거든? 내가 널 본 건 유니온 타워 내부였어."

  "저는 이곳저곳 옮겨졌으니까요. 다녀** 않은 나라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정도네요."

  "뭐야, 배낭 여행을 갔다온 수준이잖아? 선물이라도 가져와야 되지 않았어?"

  "아쉽게도 경치 하나 제대로 구경한 적도 없었네요."


  연구소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콩트를 한다고 생각하며 유정은 어이없어했다. 그 표정을 그가 봤는지, 나긋한 표정으로 이런 시답잖은 농담이 그땐 평범한 조크였다며 이해해달라고 했다.


  "그럼 결과적으로는, 흑지수 씨가 쿠로 씨를 만나면 알게 될 거라고 했던 건, 직접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었네요."

  "그렇네요."

  "성격은 엄청 바뀌었지만 말이지."

  "많이 달랐나요?"


  흑지수의 말에 유정이 묻자, 그녀는 피식 웃으며 그를 봤다.


  "간단히 말하면 정말 나쁜 남자 스타일이었지."

  "그렇게 말하면 완전 이상한 사람 되는 거잖아요."


  나쁜 남자 스타일. 차갑게 대하는 것 같으면서도 계속 챙겨주며 신경 써주는 타입.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분들이네요, 두 분은."


  당최 어느 부분이 진짜 모습인지 알 수 없어 혼란이 가중되었다. 게다가 지금은 본론에서 조금씩 멀어져가는 중이었다.


  "그야 네가 지금 질문을 못하고 있으니 내가 여러 가지 물어보게 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시답잖은 농담도 하면서 답하고 있었죠."


  심지어 유정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중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유정은 뭔가 억울했다.



  *          *          *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심문을 하고 있는 방의 유리 너머에는 슬비, 유리, 제이, 이리나, 시로, 세트, 파이가 있었다. 다른 인원들은 아직 고성 근처에서 트레이너의 지휘 아래 아직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심문하는 것치고는 유정 씨가 꽤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군."


  슬비의 물음에 답한 제이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 녀석이 쿠로라는 녀석이냐? 까망이랑 똑같이 까맣구나!"


  호기심이 동한 세트가 눈을 반짝이며 호시탐탐 신하를 들이기 위해 노리고 있지만, 파이는 웃음으로 넘기며 방 안을 유심히 바라봤다.


  '저 사람이, 미르.'


  언젠가, 흑지수와 대화하는 도중 그녀가 신서울에 오게 된 것을 말해줄 때, 본인이 생각하는 한 가지 경위를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 옮기게 된 사람은 대부분 신서울로 같이 왔으나, 단 두 명이 같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만약 그 둘 중 하나가, 혹은 두 명 모두가 어떠한 일을 예상하고 자신들을 옮겨주었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 말이 된다고 하였다. 그 중 한 명은 이름을 모르지만, 자신과 대화를 많이 나눴었던 한 남자가 미르이고, 그와 굉장히 친하게 지냈던 여자였다는 것은 기억한다며, 만나게 된다면 그에 대해 물어볼 것이라고 했었다.


  "오빠는, 괜찮은 걸까요?"

  "그 질문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만…….


  여전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방 안을 지켜보던 유리에게 이리나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리나도 쿠로가 걱정되긴 마찬가지였다. 밤중에 쿠로와 단 둘이 밖에서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이미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눴었고, 그 뒤인 오늘, 그는 습격자 십수 명을 직접 죽였다. 그가 결심한 것이, 만약 그런 것이라면……. 그런 생각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시로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지만, 쿠로가 그런 행동을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시로는 그 상황을 직접적으로 대면했기에 충격이 컸을 것이고, 그 가운데에 자신의 선생인 쿠로가 있다는 것에 또 다른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윽고 이야기가 끝났는지 방 안에 있는 세 명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는 유정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괜찮은 척을 했지만, 평소와 같은 나긋한 표정의 쿠로와, 여전한 무표정을 하고 있는 흑지수 때문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 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까망아! 괜찮느냐?"

  "괜찮아, 임금님.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말이야."

  "충격적인 이야기라니, 무슨 뜻이냐?"

  "그건 말할 수 없어. 하지만 금방 알게 될 거야."


  평소의 흑지수와는 조금 다른 애매한 답에 세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파이는 그 말이 쿠로, 미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쿠로."

  "아, 제이 씨. 유리와 슬비도 있었네?"

  "네, 쿠로 씨. 괜찮은 건가요?"

  "응. 이야기만 했을 뿐이니까."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맞이한 제이와 슬비와는 다르게 정작 그가 나오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던 유리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중요할 때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자신을 떠올리며 자책했지만,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너무 걱정을 끼쳤어."

  "오빠……."

  "괜찮으니까, 유정 씨하고 이야기하러 가. 지금 트레이너 씨가 지휘하고 있는 게 끝나면 다들 부를 테니까."


  그런 말을 하면서 먼저 걸음을 옮긴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유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할 수 없는 자신을 생각하며, 터질 것 같은 감정을 꾹꾹 누를 수밖에 없었다. 가중되는 불안한 예감을 애써 무시하면서…….



  ─────



  떡밥을 회수하면 새로이 뿌리고 회수하면 또다시 뿌리는 반복 작업을 흔히 소설이라고 합니다.(작가의 주관적인 감상이지 객관성이라곤 조금도 없다는 것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2024-10-24 23:24:0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