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평화 - 6. 변화 (2)
Dadami 2019-08-07 1
엄청난 소리와 함께 뒤를 돌아본 이리나와 시로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홀로 싸우고 있을 쿠로를 떠올렸다. 장소가 다르기에 모습도 보이지 않지만, 그의 정보대로라면 가장 위험할 그녀가 분명 그에게 갔을 것이다.
"간다. 멈춰있을 수는 없다."
"……네."
시로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섰다. 그곳에는 원격 폭탄이 있었다.
"역시 들여보낼 수는 없다는 건가."
저것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쿠로가 알려준 다른 한 명, '엘리엇' 을 상대해야 한다. 직접적인 전투도 발군이지만 여러 함정을 설치하고 상대를 혼란에 빠뜨려 뒤를 치는 정밀한 지략가이기도 하다.
"이 근처에, 우리를 보고 있어요."
그때 눈을 감은 채 입을 연 시로가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양손에 들고 있던 두 개의 차크람을 반대쪽 기둥에 던졌다. 그와 동시에 그 기둥 뒤에서 나타난 금발의 남성, 엘리엇이 거대한 총을 한손으로 든 채 발포했다. 산탄처럼 나가는 십수개의 탄알을 피한 둘은 바로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활과 차크람, 아니, 권인가."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거칠고 긁히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대로, 이리나는 활을 들고 있었고 시로는 권을 들고 있었다.
"권이라 해준 사람은 선생님 이후로 처음이네요."
차크람과 권은 언뜻 비슷해보여도 엄연히 다른 무기다. 차크람은 둥글게 만들어 던지는 투척 무기로, 보통 여러 개를 팔에 건 뒤 필요할 때 손에 쥐고 던지는데, 권은 직접 손잡이를 잡아 휘두르는 근접 무기이다. 보통은 양손에 하나씩 잡고 싸우는 클로와 비슷한 면이 있으나, 사용이 더 까다롭다.
"그걸 알려준 게, 그 녀석이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로에게 달려들어 휘두르는 그의 클로를 권으로 막아 바닥으로 흘린 소녀는 곧바로 그의 배에 돌려차기를 먹였다. 그다지 힘이 들어가있지 않은 공격에 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뒤로 살짝 빠졌다.
"……너무 약해."
그것은 시로를 향한 말이었다.
"약하겠죠. 힘으로 따지자면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과 비슷할 테니까요."
소녀는 현재 신입 클로저로 그의 보호 아래에 있지만 그가 직접 보증한 전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완력 자체는 일반인 남성보다 약간 강한 정도로 단순히 완력으로 승부한다면 웬만한 클로저는커녕 차원종과도 간단히 싸울 수가 없는 것이다.
"흘려, 보낸 건가."
익숙한 싸움 방식에 얼굴을 구긴 그는 거대한 머스킷 총을 재장전했다.
"뭔가, 잘 알고 계시네요."
"'미르' 가, 늘 썼다."
"'미르'……?"
누군가를 떠올린 듯한 말이었지만 소녀에게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몰라도 상관 없어."
"그런가요. 하지만, 이렇게 계속 얘기를 해도 상관 없나요?"
소녀는 일부러 대화를 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 없는 한 사람. 이리나가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눈치챈 그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주머니 속에서 작은 스위치 하나를 꺼냈다.
"이걸, 해제하러?"
"슬슬 끝났겠지만요."
"상관 없어."
그는 한손으로 스위치를 쥐어 부쉈다.
"……그게 무슨?"
"목적, 달성. 이제 여기서 뭘 해도 상관 없어."
그때, 소녀가 들고 있던 무전기에서 유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 쿠로 씨? 시로 씨? 누구든 좋으니 대답해주세요!]
"어, 어라?"
[아, 시로 씨인가요? 지금 바로 돌아와주세요! 거기 있으면 안 되요!]
"그게 무슨……."
"시로! 지금 바로 도망쳐라!"
"이, 이리나 씨?"
"고성 전체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사냥터지기 팀도 지금 김유정과 합류했다고 하니 빨리 철수한다!"
다급하게 외친 그녀가 활에 화살을 먹이며 엘리엇에게 겨눴다. 하지만 이미 전의를 잃었는지 딱히 무기를 내밀지 않은 그는 들었던 무기를 버리고 양손을 들었다.
"……항복?"
"응. 항복. 포로로 쓰든 뭘 하든, 상관 없어."
"대체, 뭐가 어떻게……."
혼란에 빠진 채 어쩔 줄 몰라하던 소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 이리나는 재빨리 달려 그의 양손을 등 뒤로 해 밧줄로 구속한 뒤 데리고 돌아왔다.
"일단 나간다. 이대로 붕괴되면 우리도 죽으니."
"아, 네!"
겨우 정신 차린 시로는 이리나와 함께 고성 밖으로 탈출했다.
* * *
"아, 오셨나요?"
고성 바깥에는 본진을 좀 더 먼 곳으로 옮기고 있는 요원들이 보였다. 고성이 무너질 때 이곳까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기에 옮기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 직접 지휘하던 유정이 탈출한 셋을 보며 다가왔다.
"그 사람은?"
"고성 안에서 우리를 막던 둘 중 한 명이다."
"금발의 남성, 엘리엇이군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란 눈으로 보던 그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조금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얘기를 들어야겠지만, 일단 정리가 끝난 뒤에 하도록 하죠. 그런데, 쿠로 씨는?"
"탈출하는 길에는 보이지 않았다. 먼저 나온 거 아니었나?"
"아뇨, 아직 오지 않았는데요……."
그 말에 놀란 그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갑작스레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윽……? 가만히 있어라!"
"가야 돼. 가야 돼!"
아까와는 다른 다급한 느낌에 무언가를 알아챈 시로는 재빨리 가지고 있던 권으로, 구속했던 밧줄을 잘라버렸다.
"시로 씨! 대체 무슨……."
"엘리엇 씨, 허튼 짓하면 양팔을 잘라버릴 거에요."
지금껏 들어본 적 없던 냉정한 목소리에 순간 소름이 끼친 유정은 입을 다물었다. 눈에 생기마저 사라진 소녀에게 이를 악 물며 고개를 끄덕인 그는 재빨리 고성쪽으로 달려갔다. 시로 역시 그 뒤를 따르자, 이리나가 재빨리 같이 가려 했으나, 누군가가 그것을 막았다.
"내가 가지. 아무래도 그 쿠로라는 녀석이 신경 쓰이거든."
은발의 스트레이트. 흰 피부와 대조되는 검은색의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는 그녀, 흑지수가 대답을 듣지도 않고 뒤따라갔다.
"저 자가, 알파퀸의 클론인가?"
"……그렇네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유정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손으로 부여잡으며 말리기도 전에 들어가버린 모두가 무사히 돌아오길 빌 수밖에 없었다.
* * *
"유라, 유라, 유라!"
거칠고 긁히는 듯한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려퍼지고 있다. 곧 폭발할 고성 안에, 이미 여기저기 부서진 느낌의 복도. 하지만 그곳에는 분명 아무것도 없을 터였다. 탈출할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폐허와 같은 모습일 터였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었는지, 그들의 눈앞에 처참한 장면만이 남아 있었다.
"아, 아직 죽지 않았어. 살려야, 살려야 돼."
붉은 머리의 여성, 유라는 복부에 찢어진 흔적이 있었다. 내장을 피하고 깊이 찢어지지는 않았는지 내용물이 밖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이곳저곳 상처입은 것이 많아 출혈이 지나쳤다. 숨은 쉬고 있으나 몸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분명 숨이 끊어지리라.
"……선생님?"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비교적 흰 피부를 가져 본래 입고 있던 옷과는 완전히 대조되었던 그 피부는 완전히 붉게 물들었다. 본래 들고 있던 권총은 그 내구도를 자랑하듯 멀쩡한 채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으나, 임시로 들고 갔던 쿠크리는 이미 제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다. 그렇게 자신의 무기를 모두 잃어버린 그의 손에 있는 것은 분명 방금 전까지 본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을…… 사람의 팔이었다.
"우욱, 우에에엑!"
본모습을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널려있는 십수 명의 시체들의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하고 시로는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버렸다. 그로테스크한 그 모습을 보고 어지간히 비위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지만,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죽음보다 더한 수라장을 겪어온 사람들이었다.
"……네가, 쿠로야?"
마치 기계와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흑지수를 바라본 그, 쿠로는 손에 들고 있던 사람의 팔을 내던졌다. 그 팔이 들고 있던 무기는 그 손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나뒹굴었다.
"흑지수."
"……어째서 네가 그 이름을 사용하는 거지?"
아직까지는 미간을 조금 찌푸릴 뿐이었던 그녀의 표정이 완전히 구겨졌다. 그것은 불쾌라는 감정을 넘어선 경멸이었다.
"지금은, 쿠로. 당신이 기억하는 이름은, '미르' 였나?"
"미르……?"
기침을 하던 시로가 아까 전에 엘리엇의 입에서 들은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래, 미르. 어째서 네가 유니온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거하게 난리를 쳤잖아?"
"이야기는 나중에. 아마 이걸 알면 날 심문할 테니까."
"그렇겠지. 상황을 보니, 저 여자와 싸우는 도중 너도 습격을 받은 것 같지만 일단 가자. 여긴 곧 터져."
고개를 끄덕인 그는 그대로 그 광경에서 나왔다. 나오는 길에 시체가 있었지만, 그는 그대로 걸어오면서 밟고 갔다. 불안한 소리가 들리면서 시로가 귀를 막았지만 그의 모습에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이거, 정도연 박사의 도움 없으면 안 되겠는걸."
그렇게 말하는 흑지수의 모습은 정말 작은 차이로 조급함을 내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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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습니다─ 만, 시작부터 거하게 난리쳤네요. 음, 본래라면 이보다 표현을 더 하는 편이지만…… 그랬다간 높은 확률로 검열당할지도 몰라서 말이죠! 본래 쓰는 건 라노벨과 공포, 스릴러니까요!
이제 점점 본래의 스토리에서 나와져 본래 제작하던 중심의 스토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새로운 평행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즐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