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54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7-19 3
오랜만에 학교를 왔다.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수업 진도는 별로 나가지 못했다. 곧 있으면 기말고사가 찾아온다. 학교 오기 전에 공부를 좀 해놨으니까 이번에도 문제없을 거 같다. 솔직히 공부와 클로저, 둘 다 한꺼번에 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미리 앞서나가면 가능한 일이다. 게임에서 예상되는 퀘스트를 대비해서 미리 퀘스트 아이템을 모아놓고 NPC가 관련 퀘스트를 모으게 시킬 때 미리 건네준다면 곧바로 다음 퀘스트로 넘어가듯이 진도가 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 공부 방식도 이처럼 많이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오전 수업을 들은 것만해도 내가 공부했던 부분만큼은 따라오지 않는 퀘스트였다. 게임으로치면 다음 업데이트를 기다려야 되는 처지라는 게 되겠지.
"세하야. 오늘 슬비와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내가 잘 아는 분식집이 있는데 거기로 가보는 게 어때?"
"뭐? 으음...... 좋아. 유리가 추천한 곳이라면 한 번 가볼만도 하겠지."
"고마워! 세하야. 이제 슬비에게 문자 보내야지."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스마트폰으로 터치를 하는 유리였다. 한 번 정도는 상관없겠지. 아직까지는 아무런 지시도 없으니까 이럴 때는 같은 클로저들끼리 어울리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집에서 싸온 샌드위치를 하나 들어서 한입 베어문다.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로 맛이 있었다.
"저기, 세하야. 넌 정말로 대단해. 티어매트를 없애다니."
"나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거야. 슬비가 나를 도와줬었거든."
"그래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야. 티어매트는 복귀 클로저들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수준이라고 알고 있거든."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티어매트 녀석은 내 공격을 맞고도 계속 일어났었으니까. 최후에는 슬비가 처리했던 거 같다. 녀석에게 제대로 당해서 결국 기절했었으니까. 훈련을 통해 더 강해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이 든다. 좀 더 기술을 개발해야 될 거 같다. 더 강력한 기술을,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그걸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으니까.
"유리야. 시간이 나면 나와 또 대련해줄 수 있어? 아무래도 나는 좀 더 강해져야 될 필요성을 느껴. 그 흑백의 남자말인데, 아무래도 우리 아버지의 지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어."
"세하 너희 아버지와? 그러고 보니 티어매트의 봉인을 풀 수 있는 것도 봉인실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밖에 없다고 들은 거 같기도 했어."
녀석은 대체 뭘 노리는 걸까? 티어매트가 활동하고 있을 때 차원종 잔해를 대량으로 수집해갔다고 들었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벌였던 걸까? 뭘 노리려고 그런 것일까? 궁금한 게 산더미만했다.
짝!
"으앗!"
"분위기 무겁게 왜 그래? 복잡한 것은 그만두고 오늘은 방과 후에 슬비와 만나서 분식집에 갈 생각이나 하자."
"어, 그래. 알았어."
내 등짝을 치면서 해맑게 웃는 유리의 얼굴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이 애의 부탁은 거절할 수 없을 거 같았다. 표정이 그렇게 유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래. 오늘 하루는 그냥 맘 편하게 있어야 되겠다. 힘들어하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니까.
* * *
방과 후에 나는 유리와 함께 하교를 했다. 아직까지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기에 하교하는 길에 유리가 아는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오뎅과 떡볶이, 김밥 등의 분식 음식이 있는 곳이었다. 나와 유리가 먼저 자리를 잡아서 앉아 있었다. 지금까지 집에서 만들어먹는 밥만 먹어서 외식은 잘 안했던 편이라 주문하는 건 유리에게 맡겨야 될 거 같았다.
"아! 슬비야! 여기야! 여기!"
유리가 손을 흔들면서 그녀를 맞이한다. 슬비는 조용히 사람들을 경계하듯이 쳐다보다가 우리가 있는 자리로 왔다. 위상력 능력자를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게 아닌지 경계하는 것 같았다. 물론 실제로도 우리 테이블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느껴지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세하야. 너는 뭐 먹을래?"
"난 떡볶이. 매운 걸로."
"슬비 너는?"
"난, 그러니까... 다 처음 보는 것들 뿐이라."
이 애도 나처럼 집밥만 먹고 살았나? 그런 거라면 모를 만도 했다. 혼자만 몰라서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인다.
"아주머니. 여기 오뎅 3인분과 매운맛 떡볶이 3인분, 그리고 김밥도 3인분 주세요."
"어이, 잠깐! 왜 그렇게 많이 시키는 거야?"
"괜찮아. 우리 세 명이서 다 먹을 수 있으니까."
유리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많지 않아? 자신만만한 표정이 뭔가 맘에 걸린다. 이미 저질렀으니 상관없겠지.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당연하지. 3명이서 3가지 메뉴를 각각 3인분 정도 시켰으니까 말이다. 나는 음식을 많이 먹는 편도 아니다. 슬비는 더더욱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다면 남은 건, 유리인가?
잠시 후에 메뉴가 나왔다. 커다란 3개의 접시에 담긴 각 메뉴. 다른 손님들에게 나누어줬을 때처럼 동일했다. 클로저에 대해서는 차별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돈을 주는 손님이니까 소홀히 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만약 그 정도까지 차별을 보였으면 클로저들이 차원종들을 상대로 싸우는 보람을 못 느낄 거니까.
그나저나 매운맛 떡볶이 3인분은 나는 괜찮지만 두 사람에게는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괜찮으려나? 어렸을 때부터 매운 음식을 먹는 습관을 들여서 내성이 있는데 두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우선 가볍게 포크를 들어서 떡볶이 하나를 입에 넣는다.
"맛있네."
오랜만에 먹어봐서 그런지 입에 맞았다. 유리는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포크로 떡볶이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어보았다. 그러자 잠시 후에 내가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우웁!"
잠시 경직하더니 컵에 가득 담은 물을 단숨에 들이키며 억지로 목구멍에 넘기는 게 보였다. 그러고는 혀를 내밀면서 한 손으로 부채질을 하듯이 휘두른다.
"아, 너무 맵다. 이걸 어떻게 먹지?"
"어유, 매운 거 못 먹으면 그냥 시키지 말지. 왜 3인분을 시키는 거니?"
"세하 너는 남자가 확실해."
"무슨 의미야? 그거?
이 와중에 슬비는 진지한 얼굴을 하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원래 남자인데 왜 굳이 그런 걸 강조하는 거지? 그 뒤에 그녀가 내뱉는 말에 내 고개가 저절로 휘청거렸다.
"남자는 매운맛을 먹어야 된다고 들었어."
"그건 명백하게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해. 그런 말이 어디있어? 사람 마다 매운맛을 못 먹는 사람도 존재하는 법이라고."
"그래? 그럼 넌 어떻게 매운맛을 먹을 수 있는 거야?"
"어렸을 때 습관을 들여서 그런 거야. 겨우 이런 일에 진지해지지 마라."
도대체 어렸을 때 뭘 배웠길래 저렇게 변한 거야? 하긴 부모님 없이 살아서 고정관념이 머리에 딱 달라붙은 모양이었다. 유니온에서 살아왔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지.
"슬비 너도 한 번 먹어보는 게 어때?"
"뭐? 유리야. 나는 그러니까......"
아직도 매운맛에 고통스러워하는 유리가 이번에는 슬비를 노린다. 혼자만 죽을 수 없다는 건가? 뭐 이런 녀석이 다있어? 어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려나? 둘이 친한 친구사이인데 저런 건 단순한 문제라 내가 중재하기도 애매하다. 한 손으로 이마에 손을 대면서 현기증이 오는 게 느껴졌다. 겨우 이런 곳에 오는데 벌써부터 두통이 오는 느낌이랄까?
"서유리, 그만해."
"하나만 먹어봐."
"읍! 크으으으으읍!"
떡볶이를 강제로 먹이자 슬비의 얼굴이 급속도로 붉어졌다. 온몸은 마치 전기의자 고문을 당하듯이 위 아래로 잠시나마 흔들리다가 테이블 앞에 있는 물컵을 들어서 그대로 원샷을 한다.
"푸하! 헉... 헉... 이게 무슨 짓이야!?"
"헤헤, 미안. 슬비 너도 매운맛을 먹을 줄 알았어."
"이건 너무하잖아! 혀가 타버릴 거 같아. 이세하. 넌 잘도 이걸 먹는 구나."
양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매운맛을 내보내려고 억지로 공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정말로 맵긴 매웠나 보다. 결국 이 중에서는 떡볶이를 먹을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는 건가? 혼자서 3인분을 다 먹을 수 없는 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헤헤, 미안해. 슬비야."
"쓰흡, 후우! 그래도 맵지만 맛은 좀 있네. 유리야. 다음부터는 억지로 먹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응. 알았어."
이건 명백하게 유리가 너무 들뜬 탓이다. 사람마다 매운맛에 내성이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지. 조용히 포크로 떡볶이를 하나 집어먹으면서 숨이 가빠지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우리 엄마도 맵다고 해서 잘 안드신 건데, 아버지의 입맛을 닮아서 내성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