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53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7-18 2

유니온 신서울 지부, 티어매트 봉인실 사건 보고서를 꼼꼼하게 읽던 차재욱 지부장은 약간이나마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런 뒤에 그는 왼손 검지로 보고서를 툭툭 치면서 자신의 앞에 정자세로 서 있는 데이비드를 보며 말한다.


"결국 그 자의 아들이 티어매트를 없애버렸단 말이지?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군. 그건 그렇고, 티어매트 봉인실이 절차대로 해체되었다고 했나?"

"네. 어느 부분도 파손된 흔적이 없이 절차대로 열렸습니다. 그것을 열 수 있는 사람은 그 봉인실을 설계한 이세진 박사 외에 한 명뿐입니다. 지문 인식으로 되어있었으니까요."

"지문인식이라고? 이걸 설계하고 연구하는 데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사람은 딱 한 사람인가?"
"네. 조세훈 박사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범인일 리는 없습니다. 18년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졌습니다."

"18년 전?"


 지부장은 두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아래로 내리깔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18년 전이라면 차원전쟁이 발생했을 때였다. 그 당시에 수많은 사고들이 많이 일어났기에 그걸 일일이 다 기억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뭐, 그 당시는 지옥이었을 테니까. 서울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그나저나 조세훈 박사와 이세진 박사, 둘 다 사망했는데 그걸 푼 인간이 또 있었다는 건가?"

"한 가지 의심가는 사람이 있기는 합니다.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조세훈 박사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었습니다. 지금쯤 성인이 되었을 거라고 판단합니다."

"아들이라고? 자세히 말해보게."


 눈이 번쩍 뜨이면서 답을 재촉하자 데이비드는 곧바로 답변을 한다.


"조세훈 박사는 아내를 잃고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단 둘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18년 전,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그대로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이름은 조재현, 당시에 14살인 소년이었습니다."


 차재욱은 그의 말에 유심히 고민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재현, 조세훈 박사의 아들, 아버지를 잃고 잠적을 감춰서 지금도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만약 그런 거라면 앞 뒤가 들어맞는 편이었다. 조재현에 대한 단서를 찾아야 되지만 장갑을 평소에 습관처럼 끼고 다니는 것처럼 보여서 찾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았다. 유일한 단서는 흑백 가면, 그것 뿐이었다.


"데이비드, 내 생각이지만 분명히 지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는 게 분명해.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녀석이 혼자서 일을 저지르고 있지만 그를 지원해주는 누군가가 반드시 있어. 나는 그렇게 생각해. 내 생각에는 말이지, 분명히 재벌 그룹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판단해. 차원종 잔해를 수집하는 비행물체도 그렇고, 녀석이 이용한 장비도 그렇고, 하나 같이 거금으로 들어가는 것들 뿐이야. 이 일은 검찰청에 요청을 해야겠어. 재벌그룹을 모두 **봐야겠네."


 그만한 거금을 지원해줄 수 있는 건 재벌가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혼자서 거금을 벌어들이지는 못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차원종 잔해를 수집하려고 하는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정체로 의심되는 자를 찾았으니 이제는 그를 지원하는 재벌 그룹만 찾아내면 그걸로 끝이라고 판단했다. 곧바로 수화기를 들어서 검찰총장에게 연락을 취한다.


"검찰총장님. 유니온 신서울 지부장입니다. 급히 수사를 해주셔야 될 게 있어서요."



*  *  *



 퇴원했다. 어우, 이제 좀 살 것 같네. 몇 주 동안이나 병원에 갇혀서 따분할 정도였다. 물론 엄마가 병실에서 닭살돋게 사과나 깎아주면서 어린애취급하듯이 입을 벌리라고 말할 때는 엄청 소름이 돋았지만. 어우 끔찍해. 누가 보면 닭살돋는 커플인 줄 알겠다.


 내일부터 학교가기로 결정했다. 오후에 아직 시간이 있어서 잠시 거리 좀 돌아다니기로 했다. 슬비는 나보다 일찍 퇴원했으니까 지금 어디서 뭘하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전보다 표정이 조금 밝아진 거 같았으니까. 그건 그렇고, 편의점도 안 가본지 꽤 오래 되었네. 생계활동을 하느라 잘 가지도 않았는데, 편의점 음식도 맛이 있었지. 안으로 들어가볼까?


"어서오세요."

"석봉아. 오랜만이야."

"어, 세하야! 정말 오랜만이다. 이게 몇 년만이지?"


 평범한 검은 머리지만 눈 밑에 다크써클을 하면서 의욕이 떨어진 듯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한석봉,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준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 것을 우려해서 내 쪽에서 먼저 석봉이를 멀리했었다. 괜히 나 때문에 이 애까지 욕을 먹을 수 없으니까. 그 뒤로 문자로만 가끔 이야기할 뿐이었다.


"감시를 좀 따돌리고 왔어. 그 사람들, 정말로 질리지가 않나봐."


 나를 미행하는 클로저들을 따돌리고 오는 길이다. 티어매트를 없애버렸지만 여전히 나는 감시 대상이었으니까. 석봉이는 신경쓰지 말라고 했지만 내가 신경쓰이니까 할 수 없다.


"저기, 세하야. 그러지 않아도 돼. 나는 괜찮으니까."

"안 돼. 요즘 매스컴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너도 알잖아. 그건 그렇고, 무슨 고민 있어? 평소보다 더 의욕이 없어보이는데?"

"세하야. 클로저들은 지금도 차별받고 있지?"

"어, 응. 그렇지.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과 잘 지내는 클로저도 있어."


 서유리 같은 사람을 말하는 거다. 그 녀석은 밝은 이미지니까 누구라도 쉽게 접근한다. 절대 자신들을 해칠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 거지. 겉모습으로 그럴싸하게 보이면 누구나 믿게 된다. 반면에 나에게는 강한 위상력을 가진 거 때문에 멀리하는 것이지만.


"그게 세하야... 실은 말이야.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어. 그런데 다가갈 수가 없는 위치에 있어."

"여자애? 그게 누군데?"

"그게, 클로저야. 아직은 이름은 잘 모르는데, 거리가 좀 멀게 느껴져. 민간인은 클로저들에게 짐이 되는 존재 잖아."


 왜 이렇게 기운이 없나 했네. 민간인이라고 해서 클로저들에게 짐이 된다는 건 고정관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듯이 한석봉도 그렇게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저기, 우리 아버지도 평범한 인간인데 엄마와 만나서 결혼했잖아. 어려워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

"너희 아버지는, 거의 동등한 위치에 가까이 다가가서 그런 거잖아.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게 없어."

"어? 음."


 듣고 보니 그렇네. 아버지는 유니온 소속 천재 과학자 능력이 있었지. 거기다가 티어매트를 이겨버릴 만큼 강인한 정신력도 가지고 있었고. 반면에 석봉이에게는 별다른 재주가 없다는 얘기였다. 흐음, 이렇게 보니 녀석이 불쌍하게 보이기도 하다.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어. 너희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말을."

"너에게도 강한 힘이 있다는 거 말이야?"

"응. 물리적인 힘이라면 가능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그 애를 따라잡을 수가 없어. 민간인인 내가 클로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봤거든. 먼저 생각나는 게 하나 있었어."

"뭔데?"

"빠르게 도망칠 수 있는 능력이야. 알바가 끝난 뒤에 하루에 1~2시간 정도 달리기 연습하거든."


 달리기 연습, 아주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클로저 입장에서는 아직 도망치지 못한 민간인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구하러 가야 되니까. 그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 위험지역에서 빠르게 벗어나려는 달리기 능력도 어쩌면 필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석봉이 녀석은 평소에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편의점 일도 매번 하면서 무거운 짐을 하도 나르는 바람에 의외로 힘이 세다. 위상력만 있으면 이 애도 충분히 클로저로서 활약했을 지도 모르지.


 누구를 좋아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민간인과 클로저는 이어지기가 어려운 관계라고 알고 있다. 평소에 현장에 출동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나 민간인이 교제를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는 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저기 석봉아. 클로저와 관련이 되면 위험한 순간이 많아질 거야. 그래도 상관없는 거야?"

"응. 상관없어! 모든 일이 쉽게 이루어진다는 거도 아니잖아. 그리고 나는 이런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클로저들은 우리를 위해서 싸워주는 데 왜 차별받아야 되는 거야?"

"어? 음.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긴 한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웬만하면 하지 마. 석봉이 너까지 우리 일 때문에 욕먹을 필요 없잖아."


 이 녀석은 너무 오지랖이 넓다. 나보다 더 착해서 내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석봉이는 그냥 평소대로 이렇게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좀 더 나눈 뒤에 물건을 사고 편의점에서 나왔다. 여기는 가끔 찾아와야겠다.


 차별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두려움 때문이다.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위상력인데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 그렇기 때문에 멀리하는 거다. 그래도 나는 이미 익숙해져서 별로 상관없다. 지금은 그 흑백 가면 녀석을 잡아내는 게 우선이겠지? 국장님께서 곧 정체를 밝혀낼 거라고 하셨으니까 기다리면 될 거 같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24:0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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