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46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7-11 2

"이세하라고? 누군가와 이름이 닮았군. 내 악몽에서 벗어난 인간은 네가 처음이다. 도대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던 거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분명히 그 악몽에 사로잡혔을 지도 몰라. 나는 살아온 환경이 다른 사람과는 차이가 있는 법이거든."

 세하의 톤파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티어매트는 그의 푸른 불꽃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 뒤에 손톱을 다시 안 쪽으로 집어넣고나서 한 발을 들어올렸다가 지면에 내려찍었다.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강한 풍압이 세하를 덮친다. 톤파를 쥔 채로 얼굴을 보호하면서 버텨낸 세하는 티어매트의 몸이 변형되는 것을 보았다. 피부 안에 숨어있었던 껍데기 부위가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크으으아아아아!!"

"큭. 역시 쉽지 않겠군."


 세하의 어머니도 겨우 봉인한 상대다. 티어매트가 강자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도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외부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인데 당연한 일이다. 무전기도 휴대폰도 다 먹통이었으니까. 티어매트가 이대로 힘을 길러서 지상으로 올라간다면 모든 사람들은 악몽의 세계에 빠져들어서 티어매트의 양분이 될 게 뻔했으니까.


 엉덩이에서 꼬리가 길게 자라나는 것까지 변형이 완료되었다. 얼굴은 아까보다 더 붉은색 근육섬유가 양쪽 귀 밑에 생긴 게 보였다.


"이 모습을 한 것도 오랜만이다. 인간. 너의 힘은 아무래도 내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모양이군. 하지만, 그런 거야 맞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법이다."

"그럼 맞히면 되는 거야!"

 톤파를 든 채로 티어매트에게 달려들지만 그녀는 씨익 한 번 웃으면서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쾅!


 세하가 전진하는 방향 바로 코앞에서 불기둥이 치솟아올랐고, 그의 턱이 어퍼컷을 맞은 것처럼 위로 올라갔다. 그 상태로 포물선을 그리면서 몸 전체가 공중에 떠올랐다가 지상에 추락했다.


"뭐야 이건?"


쾅!


 지면에 추락한 뒤에 곧바로 상체를 일으켜서 상황파악하려고 할 때, 그의 발 밑에서 또 다른 불기둥이 솟아오르면서 불에 휩싸이면서 뒤로 또 다시 나가 떨어졌다. 지면에 추락하자마자 곧바로 일어나서 움직이며 세 번째 불기둥은 피해냈다. 티어매트가 음흉한 웃음소리로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그가 이동하는 방향 앞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세하는 티어매트의 손가락 움직임을 보면서 달려가다가 멈칫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불기둥 피해를 피해냈다.


"커헉!... 헉... 헉......"


 티어매트는 지금 예측한 지점에 폭발을 일으켜서 그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챘기 때문에 일부로 빠르게 움직이는 척 하다가 멈칫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코앞에 솟아오르는 불기둥에 휘말리지는 않았지만 풍압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호오, 제법이구나. 인간. 내 공격의 패턴을 벌써 알아낸 거냐?"

"이러한 패턴은, 어디서 많이 봤었거든."
"나처럼 공격하는 패턴을 사용하는 군단이 있다는 것이냐? 이거 참 놀라운 일이구나."


 티어매트는 착각하고 있었지만 세하는 게임 보스 공략을 떠올리면서 한 행동이었다. 현실과 게임은 차이가 있기에 바로 적용하는 것은 어렵지만 위상력 능력자고, 훈련을 받아온 몸이었기에 어느 정도 재현은 가능한 편이었다. 어려운 보스라도 계속 하다보면 패턴을 파악하게 되어서 공략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 그게 바로 플레이어의 무서움이다. 외국 게임회사에서 만든 게임이 있다. 그 게임의 난이도가 높아서 개발진들은 그것을 깨는 데에 일주일 이상은 걸릴 거라고 확신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단 8시간안에 최종보스까지 클리어한 한국인 유저가 있었던 사례가 있었던 것을 세하는 떠올렸다.


"후훗."


 그 생각이 나서 그런지 세하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흘렸다. 그것도 잠시, 불기둥을 피하기만 해서는 티어매트에게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톤파를 들어도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하나로 합체해서 건 블레이드로 만들었다.


"참 신기한 무기구나. 둘로 쪼개졌다가 하나로 합쳐지다니, 인간의 무기개발은 참으로 흥미롭군. 그 무기를 누가 만든 건지 궁금하구나."

"그런 건 당신이 알 필요 없어! 당장 모두를 풀어줘!"

"어머, 기껏 잡은 내 양분들을 내놓으라고? 주란다고 순순히 줄 거 같아?"

"쳇."


 불기둥에 의해 온 몸에 검게 그을린 화상을 입긴 헀지만 불기둥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이상 더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공격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 상황이라서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이었다. 건 블레이드로 발포를 하려고 해도 불기둥 때문에 다 막혀버렸으니까.


 세하는 도끼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걸 보니 아직 힘을 다 개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덜 개방한 상태에서 자신이 고전하고 있다는 건 분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으니까. 다만, 티어매트가 파고든 마음 속이 하필이면 면역이 된 거나 다름없는 부분이었으니까.



*  *  *



 티어매트는 보통 녀석이 아니었다. 이번에 변형된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2단계로 진화를 했다고 봐야 될 것이다. 진짜 게임에서 본 설정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유로운 것을 보니 아직 뭔가 더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공격을 중단하고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묻는다.


"그나저나 인간, 궁금한 점이 있다. 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거지?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다."

"영웅에게서 구원을 받았다고 할게. 날 바른 길로 이끌어주신 그 영웅 말이야. 티어매트. 너는 내가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절망에 빠질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어렸을 때 자신이 인간이 아니고 괴물 취급을 당하면 괴롭게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어. 그 이유가 바로 고정 관념 때문이었어. 괴물은 인간과 다르기 때문에 배척받는 존재라는 고정관념이 말이야."

 고정관념, 그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존재일 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자살로 몰아넣을 수 있는 언어의 무기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니까. 다른 클로저들이 나처럼 따돌림을 당하면서 괴물 취급을 당하면 우울증에 이기지 못해 자살하거나 위상력을 사용해서 그들을 죽였을 지도 모른다.


 괴물, 아버지가 한 말을 떠올린다. 괴물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이 속할 수도 있다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아버지만큼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꾹 참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가 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역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사고를 당해 얼굴에 화상이 생기면서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을 때 아이들이 귀신이라면서 돌멩이를 던지던 그 시절도 있었다고 알고 있다. 평범한 외모가 아닌 이유만으로 어른들에게까지 배척을 받아야 되는 불행한 사례 이야기도 들었다.


'아들아. 잊지 마렴. 세상에는 너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많이 있단다.'


 아버지의 말씀에는 근거가 있었다. 실제로 그러한 사람도 있었으니까.


"전혀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고정관념을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얘기냐?"
"그런 것도 있지만, 영웅에게서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할 수 있어."

"흥, 너희가 말하는 그 알파퀸이겠지."

"아니, 달라. 그 사람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다."
"뭐라고? 알파퀸보다 더 강한 인간이 있단 말이냐!?"


 이런 이런, 티어매트도 따지고 보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인간에 대해서 제대로 모른다는 근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웃고 싶어졌다. 오랜시간동안 봉인을 당해서 인간에 대한 지식의 일부가 사라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티어매트에 대한 공략법은 지금부터 생각하면서 찾아내면 된다. 게임을 오래할수록 공략법을 찾듯이, 싸움을 최대한 길게 끌면 반드시 알아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역시 현실과 게임은 달랐다. 어째서인지 슬비가 갇힌 물방울 색이 검게 변하고 있었다.


"슬비야!"

"오호호호! 아무래도 저 여자애의 어둠이 생각보다 강렬한 모양이네. 이렇게나 쉽게 무너져 내리다니, 아주 굉장한 양분이 되겠어. 아까까지만 해도 기세가 좋았는데 너무 빨리 죽어버리는 거 같아서 문제네."
"뭐라고?"

"저 물방울 색이 완전히 검게 변하면 저 여자애는 죽게 돼. 어머, 표정 봐라. 저 여자애와 아는 사이인가 **? 어떻게 할래? 빨리 구해내지 않으면 정말로 죽을 텐데."

 어느 새 상황이 역전된 것처럼 보였다. 방금전까지 도끼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분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다가 갑자기 차가운 미소를 보이면서 나를 깔보듯이 얄밉게 말하는 티어매트였다. 정말 짜증나는 녀석이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즐기듯이 말하는 흉악범처럼 보였으니까.


"저 물방울을 부수면 되는 건가?"
"그건 불가능해. 강제로 물방울을 부수려고 하면 그 안에 갇힌 녀석은 곧바로 죽게 되거든."

"그럼 네녀석을 없애버리면 되는 거겠지!!"

"나를 없앤다고 해서 돌아오는 것도 아니야. 이미 저 물방울의 영역은 갇힌 녀석들의 의지로만 깰 수 있지. 타인이 억지로 깨려고 한다면 무조건 죽게 된다는 거야."


 **, 그럼 방법이 없다는 건가? 이런 상황에서도 슬비의 물방을의 절반 정도가 검게 변하고 있었다. 안에 갇힌 그녀가 두 무릎을 가슴에 끌어들여서 둥글게 만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는 게 보였다. 도대체 무슨 악몽을 꾸길래? 설마 국장님이 말한 그 괴로운 시절을 떠올렸던 걸까? 에잇,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가만, 그러고 보니, 하나의 영역이라고 했지. 파괴하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들어가는 건 가능할 거라고 확신이 들었다.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사이킥 무브로 그 물방울 안으로 뛰어들어가자 검은색 그림자 손이 물방울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강제로 나를 그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아앗! 이런!"

"오호호호호! 설마 이렇게까지 멍청할 줄은 몰랐어. 그 영역은 어둠으로 둘러싸인 곳, 당연히 악한 기운이 물든 공간에는 악한 본능이 작용하는 법이지. 지옥으로 동반하려는 사악한 마음, 이세하, 너의 마음 속 악몽은 이겨낼 수 있지만 다른 마음 속 악몽은 다른 사람이 아닌 한 절대로 깰 수 없다. 네가 생각하는 계집과 함께 사이좋게 저승길로 가라! 오호호호호!"

 녀석은 다행히 내 의도를 모르고 있다. 게임을 생각해서 도박을 한 번 걸어봤다. 물방울을 강제로 부술 수 없으면 남은 선택지 중 하나는 그녀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서 악몽을 같이 공유한 상태로 그녀를 어떻게 해서든 해방시켜주는 것, 그것 밖에 없다. 실패하면 나도 그녀와 함께 죽게 되는 위험한 도박. 티어매트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었지만 곧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확신한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23:5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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