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43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7-08 2
봉인실 안쪽에서 나는 비명이 들리는 쪽으로 달려간 슬비는 감금실 앞에서 뭔가를 조작하고 있는 가면의 남자를 발견했다. 그는 버튼을 조작하면서 손쉽게 암호를 풀어버리고 있었고, 그의 주변에는 클로저 요원들이 전부 널브러져 있었다.
"지금 뭐하는 거죠? 당장 그만 두세요!"
"이미 늦었어."
두 개의 단검으로 무장을 했지만 이미 그는 감금실을 여는 버튼까지 꾹 누른 뒤였고, 잠시 후에 감금실 중앙이 양 옆으로 열리면서 모습을 드러낸 티어매트가 분홍색 연기를 구름처럼 사방에 뿌리고 있었다. 티어매트, 마치 성인 여성이 차원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괴물이 된 것처럼 보였다. 봉인실 주변 내에 분홍색 구름이 내부를 뒤덮었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럼 수고 하시게나."
가면의 사내는 한 손으로 살짝 흔들어서 작별인사를 한 뒤 곧바로 통로 밖으로 달아난다. 슬비는 그를 잡으려고 했지만 티어매트의 봉인이 풀려난 것을 보고 움직이지 못했다. 하얀 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감금실 안에서 묵직한 발걸음으로 나온다.
빠드득- 빠드득-
고개를 좌우로 한 번 흔들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녀의 두 눈동자는 붉은색 핏줄로 충혈되어있는 눈동자로 보였다. 마치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처럼 도끼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인다. 그 인간. 날 여기에 가두다니... 죽인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합성된 목소리였다. 슬비는 그녀에게서 강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주변이 분홍색 연기로 가득하지만 그림자와 위상력 기운은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잠시 후에 연기가 서서히 사라져가면서 내부의 모습이 점점 드러냈다. 입에서 담배연기를 내뱉듯이 하얀 숨을 내뱉은 뒤에 눈 앞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인간, 너도 클로저냐? 재미있군. 마침 힘이 부족하던 참이었는데... 내 힘의 양분이 되어줘야겠다."
"뭐라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분홍색 연기 사이에서 그림자들이 생성되고 있었다. 사람만한 크기를 가진 꼭두각시 인형이었고, 좀비처럼 상체를 앞으로 구부린 채로 양 팔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슬비는 지원 요청으로 하려고 무전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되지를 않자 혼자서 상대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면서 분홍색 위상력을 방출한다.
* * *
시간이 지나도 그녀가 오지 않는다. 내가 가봐야 될 거 같은데 자리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하니까 망설여지기도 했다. 원래 경계 임무가 그런 거다. 경비를 선 병사들은 자리에서 이탈할 수 없다는 건 경계 임무의 기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다.
쾅! 쾅!
안쪽에서 폭발음이 들린다. 한참 싸우고 있는 건가? 대체 누가 온 걸까? 혹시 그 가면의 사내인가? 만약 그런 거라면 혼자 싸우게 놔둘 수는 없다. 경계 임무고 뭐고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거 같았기에 안 쪽으로 향해야 될 거 같았다.
탁탁-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다. 혹시 슬비인지 확인해보았지만 그림자를 보니 그녀가 아니었다. 건 블레이드를 꺼내들어서 경계한다.
"거기 누구냐?"
내가 부르는 목소리에 상대방은 달리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천천히 걸어오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코트를 입고, 하얀장갑을 끼었고, 검은색 실크햇 모자에 흑백가면을 쓴 인물, 전에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클로저 이세하.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기계음성으로 변조된 목소리였다.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밝히고 싶지 않는 건가? 저 녀석이 여기 왔다는 것은 설마 슬비가 당했다는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안 쪽에서는 또 다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뭐지? 싸우는 상대가 따로 있다는 건가? 설마 안드로이드?
"당신, 도대체 목적이 뭐야? 저 안쪽에서 뭐한 거야!?"
"티어매트의 봉인을 풀었을 뿐이다. 거기서 여자애 혼자서 용감하게 싸우고 있지."
"뭐라고!?"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티어매트의 봉인실은 특수 암호로 잠금장치가 되어있어서 다른 사람이 쉽게 못 풀게 설계되어있다고 데이비드 국장님에게 들었는데 그것을 다 뚫어버리고 봉인을 해제했다고? 억지로 파괴해서 연 거라고 생각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았다.
"경계하지 마라. 난 너와 싸울 생각은 없다. 클로저 이세하. 너는 내가 존경할 만한 인물의 아들이니까."
"우리 엄마를 말이야?"
"아니, 알파퀸이 아니야. 이세진 박사님이다."
"우리 아버지를 존경했다고?"
"이세하, 당장 클로저를 그만둬라. 이건 경고다. 내가 하려는 일은 너에게 밝은 미래를 선사해주기 위하는 일이다. 너희 부모님도 바라는 밝은 미래를 허락하고자 하는 일이다."
밝은 미래라니,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다. 지금 이 나라 정부가 우리 가족을 감시하고 있는데 그 정부를 무력으로 무너뜨리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그러는 일이 티어매트의 봉인을 풀어버리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판단이 들었다.
"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거야!?"
"인간들은 자신들이 정의롭다고 착각에 빠지고 있지. 너희 클로저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사람들을 구하는 게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절대로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럼 당신이 하는 일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이야말로 올바른 일, 적어도 비극에 빠진 이들에게는 해당이 되는 일이다. 이세하. 너도 알고 있을텐데? 그 분의 아들로 태어나서 온갖 당해왔던 괴롭힘 말이야. 지금의 세상이 만족하다고 생각하나?"
그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어렸을 때에 따돌림을 당한 건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러한 세상에서 나 혼자 괴물취급을 받는 게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 괴물이고, 다른 또래의 아이들은 전부 정상인이었으니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이유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건 정말로 참기 어려웠었다. 유니온의 클로저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어른들은 강요하듯이 말하면서 나를 마치 사람들을 위한 소모품처럼 이야기했다.
"클로저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소모품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나를 막지 않고, 클로저를 그만둔다면 상처하나 없이 밝은 미래를 맞이하게 될 거다. 도구로 이용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클로저들도 그들과 똑같은 놈들이나 다름없다."
발걸음을 옮긴 채 나를 지나친 뒤에 뒤를 돌아** 않고, 조용히 모자에 손을 대면서 말했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가 말한 밝은 미래라는 게 대체 어떤 걸까? 괴로웠던 내 상황을 조금이나마 낫게 해주려는 걸까? 이 남자는 우리 아버지를 존경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아니었다.
"아니! 이건 잘못된 행동이야! 당신이 말한 대로 사람들은 어리석을 지도 몰라. 그래도 선한 인간이 존재한 법이야! 그러니까 당신이 말하는 건 잘못 되었어!"
"이 세상에 깨끗한 채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죄를 짓지 않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지. 모든 인간들이 전부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클로저와 차원종이 존재한 것 때문에 타락한 것이다."
"천만에! 원래 인간은 어긋난 존재라 타락할 수도 있어. 그래도 진정으로 클로저들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이 세상에는 썩은 가지를 다시 살려내려는 사람도 있단 말이야! 그런 사람들까지 배척하는 건 내가 용납못해!"
건 블레이드를 쪼개서 톤파로 만들었다. 이 남자를 쓰러뜨리면 된다. 싸워서 이길 거라는 보장은 없다. 원래 싸움은 승패를 생각하지 않고 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별로 내가 힘들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끝내 그렇게 말한단 말이지? 하지만 지금 내 상대를 할 시간이 있을까?"
쿠웅!
봉인실 안쪽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그가 말한 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티어매트는 우리엄마가 겨우 봉인한 차원종, 그녀를 상대로 슬비 혼자서 상대한다는 거 자체가 무리였다. 남자는 나와 정말로 싸울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었는지 양 손을 주머니에 꽂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은 슬비를 도와주는 게 우선일 거 같았다.
무전을 해보려고 해도 어째서인지 작동이 되지 않았다. **, 저 남자가 한 짓인가? 이를 악문 뒤에 곧바로 티어매트 봉인실 안 쪽으로 향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