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산의 휴가는 클로저들을 돈독하게 한다
레일든 2019-07-06 4
햇빛이 세차게 내리쬐는 여름날. 사람들은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전기세를 아깝다고 느껴 시원한 에어컨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하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 금쪽같은 휴가철에도 자신의 목을 옥죄어오는 수많은 업무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직장에서 살인과 같은 더위에 맞서 묵묵히 업무를 해결하는 직장인들도 존재한다. 얼마전까지 유니온의 클로저들도 그랬다.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차원종들의 위협감에 유니온 상층부는 클로저들을 쉽게 해방시켜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한 제재가 풀리게 된 것은 미하엘 총장이 자신의 만행이 드러나자마자 도망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전부터 여러 사람들이 보기에 청렴하지 않은 치부들을 많이 드러내보인 유니온 상층부는 미하엘 총장까지 도망간 것을 계기로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위험성을 느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산하의 관리요원들과 클로저들이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지속적인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팀 별로 장기적인 휴가를 주면서 팀이 휴가를 편히 즐길 수 있게끔 휴가 지원금을 지급했다.
"상층부에서 휴가를 준다고 통보가 내려왔어요."
유니온 신서울지부의 부국장인 김유정이 하달받은 공고문을 쭉 읽어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이럴리가 없다는 생각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유니온이 단순히 사람 편하게 쉬라고 휴가를 준건 아닐테지. 지금껏 해온 것이 있을테니 무마하려는 수작인게 분명하오."
얼굴에 있는 흉터와 거구에서 뿜어져나오는 기백이 느껴지는 트레이너는 왼손의 주먹을 꽉 쥐며 유니온을 비하하는 말을 했다. 그에게서 당장 유니온을 좋아하는 감정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사냥터지기 팀은 물론이고 다른 팀의 클로저분들도 연이은 작전으로 인해 많이 지치셨을테니까 휴가는 받아들이는게 맞지 않을까요?"
음침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타인이 듣기에 굉장히 차분하면서도 나긋한 음성이 특징인 사냥터지기 팀의 관리요원 김재리는 살짝 화가 난 것 같은 트레이너를 진정시키고 대화를 이어나가려 했다.
"물론 휴가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아직 검은양과 우리 늑대개가 뭉친지도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 거기에 사냥터지기 팀까지 합쳐지면 휴가가 원활히 진행되는데 부담스럽게 여기지지 않을까 싶소."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은 그 인연이 꽤 길다. 당장 신강고등학교에서부터 일면식이 있었으며 국제공항에서 협력하여 칼바크 턱스에 맞서거나 비공정인 램스키퍼를 같이 타면서 동고동락한 사이이기도 하다.
그에 반면 사냥터지기 팀을 만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어느정도 말은 텄지만 아직 친밀감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트레이너는 싸우는 자에게도 휴가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색한 사이끼리 억지로 붙여놓는 휴가에 대해서는 조금 걱정스러웠다. 또한 트레이너는 저번 사건에서 다른 늑대개 팀의 진심어린 말들까지 들어가며 겨우 마음을 바꿔 호프만의 체포에 일조했지만 놓쳐버린 것에 대해 극심한 상실감을 느낀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의 양식을 얻으며 편안함을 누리는 것이 휴가인데 서로 같이 있고 얼굴을 보는게 어색하다면 휴가가 무슨 소용이냐는게 트레이너의 생각이었다.
"그건 너무 성급한 생각입니다. 트레이너 씨."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앨리스가 트레이너의 말에 반문했다. 단순 수뇌부 직속의 오퍼레이터이던 그녀는 미하엘 총장이 도망가버리면서 와해된 총 본부 오퍼레이터에서 신서울지부의 관리요원이 되었고 입던 옷에는 사냥터지기 팀의 마크와 더불어 유니온의 마크가 새겨진게 특징이었다.
"확실히 사냥터지기 팀이 다른 팀의 클로저분들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기는 합니다. 하지만 세 팀은 도망친 미하엘 총장을 잡는 동안 계속 협력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후일을 대비해서 이러한 휴가기간에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클로저분들에게 더욱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논설문의 주장을 읽는 것 마냥 깔끔하고 명료한 그녀의 주장은 매우 타당하여 반문할 거리가 없게 만들었다.
"그것도 그렇군. 알겠소."
원래 말수가 많은 편에 속하지도 않는 트레이너는 이 이상 반대해봤자 좋을게 없다고 여기고 빠르게 수긍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정해야 하는 건 휴가를 어디로 갈지에요. 세 팀에게 합쳐서 들어온 지원금이다 보니 조금 풍족하긴 하지만 시기상 해외 휴가는 힘들고 국내에서 정해야 해요."
김유정이 휴가지를 어디로 정할지에 대해서 의견을 물었다. 이런 것은 휴가를 즐길 당사자들에게 물어보면 더욱 좋지만 그들의 인원수가 많고 각자의 취향도 다르다보니 의견다툼이 심해지면 결정이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김유정은 4명의 선에서 휴가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휴가라고 하면 유원지들을 둘러보는 게 의미있지 않을까요."
"이런 더운 날씨에 유원지를 간다고 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오. "
김재리가 곧바로 의견을 하나 제안했지만 트레이너에 의해 묵살당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늑대개 팀 대원들에게 덥다고 불평을 들은 트레이너였다. 유원지 같은 곳을 휴가지로 잡았다간 얼마나 더 시달릴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여름 하면 역시 바다잖아요. 바다는 어때요?"
앨리스가 좋은 걸 생각해냈다는 표정으로 손벽을 딱 치면서 말했다.
"바다도 좋죠. 볼프도 VR이 아니라 진짜 바다를 가면 더욱 좋아할테고 파이 씨랑 루나 씨 소마 씨 세트 씨도 즐거워하실거에요."
"괜찮은 생각이로군. 차가운 물 속에 있으면 덥다고 불평하지는 않을테지."
앨리스의 제안에 김재리와 트레이너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바다라는 말에 김유정 역시 좋은 장소가 떠올랐는지 곧바로 휴가에 대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설명은 모두들 들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은 그동안 고생해주셨으니까 이번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휴가를 즐기시면 될 것 같아요."
김유정이 휴가를 위해 대여한 버스 안에서 간단한 설명을 위해 마이크를 집은채로 말하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을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보니 각 팀의 팀원들은 잠깐 잠을 자고 있었지만 김유정이 마이크에 대고 목소리를 내자 곧바로 일어났다.
"자는 것도 좋지만 유리창 밖을 한번 봐보세요. 잠이 싹 달아날걸요."
"아오...저 아줌마 뭘 보라는거야?"
한창 깊은 잠에 취해있었던 나타는 안쪽에 앉은 레비아와 함께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야말로 절경이 펼쳐져 있었다. 밤이라서 더욱 부각되는 저 먼 발치의 건물들의 아름다운 불빛과 은은한 분위기와 함께 수도 없이 터지고 있는 아름다운 불꽃의 향연. 여름날의 깊은 추억으로 남겨도 좋을 혼자서만 보기에는 아까운 경치가 눈앞에 연출되고 있었다.
"여기는 다이아몬드브릿지라고도 하는 광안대교에요. 숙소에서는 이 광안대교의 모습을 볼 수 있을테니 이따가 확인해보세요."
마치 여행 가이드처럼 자세하게 설명하는 김유정은 자신이 정한 행선지에 대해서 자부심이 있는지 한껏 어깨가 올라가 있었었다.
"그냥 불꽃놀이잖아. 저런건 내 위상력으로도 할 수 있다고."
나타는 저런게 뭐가 즐거운거냐면서 잠을 깨운 것에 대해 불평했다. 그러나 다른 클로저들은 저 아름다운 불꽃놀이에 굉장히 만족한 듯 했다.
"정말 멋있었어요. 그렇죠 세하형!"
"어? 나 게임하는 중이라 잘은 못봤는데...예쁘긴 하더라."
"게임좀 그만해 이세하. 부숴버린다?"
"휴가중인데 그건 좀 봐주라..."
"게임도 좋지만 직접 돈을 안들이고도 이런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는건 좋은거잖아."
"그럼. 이 건강차와 함께하는 불꽃놀이는 또 새롭군."
그 나이대의 어린아이답게 불꽃놀이에 엄청 들떠 세하와 즐기고 싶어하는 미스틸테인과 숙소까지는 가는 시간에도 열심히 게임기를 돌리고 있는 이세하. 그리고 작전중은 아니지만 너무나 게임기만 해대는 이세하에게 게임기를 부순다고 협박하는 이슬비,불꽃놀이와 돈일 빗대어보는 서유리와 이 순간에도 건강을 챙기고 있는 제이까지 검은양 팀의 분위기는 한결 같았다.
"드디어 제대로 된 휴가를 받아보는군.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아예 은퇴하고 싶은데."
"그건 안돼요 선배. 휴가가 끝나면 다시 해야 할 일을 해야죠."
"볼프강 선생님. 사명감 있는 클로저라면 그만둔다는 말은 쉽게 담으시면 안돼요."
"사명감이라. 허울은 참 좋은 말이지..."
"볼프쌤. 제가 쌤 VR기기에 해둔 선물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뭐...어이 소마! 또 VR 캐릭터를 죽인거냐?!"
"선생 녀석이 분홍이한테 화를 내고 있다. 왜 그런 것이냐 파이?"
"아무래도 소마가 장난을 친 모양이네요."
사냥터지기 팀은 아까까지 자고 있었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을 정도로 활기찼다. 볼프강은 VR기기를 확인하며 장난을 쳐 둔 소마에게 진심은 아닌 화를 내고 있고 루나는 존경스러운 선생님이지만 매번 은퇴를 입에 담는 볼프강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말한다. 파이는 볼프강의 말을 적당히 받아치면서 세트와 어울려주고 있었다.
"제가 한창 날릴 때는 저런 밤하늘을 자주 보고는 했죠."
"확실히 부산은 괜찮은 도시네요. 나중에 따로 와도 괜찮겠어요."
"아가씨. 나중에는 더욱 좋은 행선지로 알아보겠습니다."
"역시 아이스크림은 인류의 보물이다. 너도 먹겠나 레비아?"
"아니요. 전 괜찮아요. 나타님에게 주시는게 어때요?"
"그렇군. 먹어라 나타."
"맘에 안드는 깡통 녀석. 우걱우걱."
늑대개 팀은 전부가 공통된 대화를 나누기 보다는 자신의 과거나 기분에 맞는 대화를 했다. 하피는 자신이 프롬 퀸이였을 적의 기억을 떠올렸고 바이올렛은 어릴적에 다니던 여러 휴양지가 아닌 부산에 관심을 갖고 하이드와 다시 와도 괜찮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티나는 레비아에게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권했지만 레비아는 나타에게 양도했고 나타는 티나가 준거여서 별로 마음에 안들긴 했지만 일단 먹을거여서 받아먹었다. 언뜻 보면 팀 사이가 안좋은게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늑대개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팀 분위기가 있다. 그들은 쓸데없는 간섭은 하지 않는 주의다.
"숙소에 도착했다. 방 배정표를 불러줄테니 카운터에 가서 룸메이트들끼리 모여 열쇠를 받길 바란다. 이세하,미스틸테인,볼프강 슈나이더,나타 4명이 한 방이다. 이슬비,하피,세트,파이가 한 방. 서유리,티나,루나,바이올렛이 한 방. 레비아,소마,김유정 부국장,앨리스 요원이 한 방. 그리고 나와 제이,김재리 요원,하이드씨가 한방이오. 혹시 이견이 있소?"
이러한 방 배치는 친목도모를 위해서 세 팀이 골고루 섞일 수 있도록 나눈 배치였다. 방에 배정된 인원들은 왜 편한 같은 팀끼리 배치하지 않은지 의구심이 든 듯 했지만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그럼 내일 다시 모이기 전까지 방에서 푹 쉬도록."
트레이너는 그 말을 마치고 곧바로 자신이 속한 방의 열쇠를 받으러 들어갔고 각자 자신이 속한 방의 룸메이트들을 찾아 배정된 방으로 올라갔다.
"우와. 방 진짜 커요!"
"그러게. 유니온이 이렇게 돈을 많이 줬을까?"
이세하,미스틸테인,나타,볼프강이 배정된 방에 미스틸테인이 제일 먼저 짐을 풀며 감탄사를 연발했고 이세하도 방의 크기와 위용에 감탄한다.
"잘난체하다가 호프만 녀석을 놓쳤으니 돈으로 무마하려는 속셈인건가. 뻔하군."
"나타. 아직도 그거 마음에 담고 있는거야?"
"아직도? 그때 감정에 휩쓸리지만 않았어도 그 녀석은 진작 썰어버릴 수 있었어. 너희의 그 안일한 생각을 들어주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되버린거라고."
"저기, 나타 형. 우리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같이 산책이라도 가요~"
"넌 좀 빠져있어!"
감정이 격앙되어 있는 나타는 생글맞게 말하는 미스틸테인에게 매몰차게 화를 냈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이세하도 표정이 찡그려졌다.
"나타. 그건 어쩌다가 벌어진 실수야. 그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화를 내야겠어?"
"난 그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나타와 세하 사이에서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기류가 감돌고 미스틸테인은 말리고는 싶지만 끼어들지는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걸 보다못한 볼프강이 한숨을 쉬며 둘의 사이를 중재했다.
"둘다 진정해. 지금은 클로저가 아니고 휴가를 즐기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기엔 둘이 싸우자고 온게 아니야."
볼프강이 중재하자 둘도 일단은 싸움을 멈췄다. 그 사이 미스틸테인은 방에 있는 창문을 열었고 침울해있던 표정에 다시 밝음이 생겼다.
"저기 봐요 형들! 아까 유정이 누나가 말했던 그 다리인가 봐요."
미스틸테인이 가리키는 곳에는 광안대교가 밤하늘 아래서 빛나는 불빛에 휩싸여 그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브릿지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게 아름답게 빛났다.
볼프강은 광안대교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모처럼 휴가이니 첫날밤을 그냥 보내면 아쉽지. 너희들도 따라와라."
볼프강은 다시 나갈 채비를 하며 다른 3명에게 따라나오라고 손짓했다. 원래 나갈 생각이 가득했던 미스틸테인은 곧바로 반응했고 당장 잘 기분과 게임할 기분이 아니었던 나타와 이세하도 그를 따라서 방을 나왔다.
"어디가는 거에요 볼프강 형?"
"이런 휴가날에는 맛있는 걸 먹으면서 술을 마셔주는게 최고거든. 물론 너희한테 마시게 할 생각은 없으니 걱정말고."
일과 관련된 일이라면 게으름 부릴 생각이 가득할 볼프강이였겠지만 지금은 명백한 휴가기간이고 오랜만에 찾아온 휴가인만큼 볼프강은 확실하게 보내고 싶었다.
볼프강은 걸어가다가 괜찮아보이는 가게를 하나 발견하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문을 잠깐 열었나 싶더니 곧바로 문을 닫고 뒷걸음질해 돌아왔다.
"무슨 일 있어요?"
이세하가 이상하다는 듯이 묻자 볼프강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저곳은 안돼. 다른 곳으로 가자."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나오자고 제안하면서 이끌고 있는 사람이 볼프강이었기 때문에 다들 군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못참는 것이 나타의 성격이다. 다시 걷자마자 나타는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었다.
"거기에 앨리스랑 김유정 부국장? 그 사람 둘이 있더군. 레비아와 소마를 양 옆에 앉혀둔채 말이야."
"그럼 누나들이랑 같이 먹었어도 좋지 않아요?"
"아니. 난 앨리스의 주사를 감당할 자신이 없거든. 이런 휴가에서까지 직장동료 여자랑 엮이는 것도 그렇고."
"헤에. 그렇구나."
그렇게 조금 더 걸었을까 이번에 들어간 가게에는 특별히 아는 사람이 없는건지 볼프강이 따라들어오라고 손짓했고 4명은 곧바로 자리잡았다.
"먹고싶은대로 시켜. 내가 낼테니까."
"그래도 돼요? 같이 내도 괜찮은데."
이세하와 미스틸테인이 각자의 지갑을 꺼내들면서 그렇게 말했다. 클로저도 나라에서 공무원 대우를 받기 때문에 계속 일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들어온다. 특히 이번 휴가에서는 개인당에게도 일정한 비용이 지급된 상태였으므로 같이 부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런건 원래 연장자가 사는거야. 아이들 가르칠때 간식도 전부 내 돈으로 샀거든."
"역시 선생놈이군. 일단 사준다니까 사양은 하지 않겠어."
"그래. 마음껏 시켜."
4명은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술,음료수를 주문했다. 술이 조금씩 들어가자 볼프강의 기분은 조금씩 업 되어갔지만 음료수를 마시면서 목을 축일뿐인 다른 3명은 그 기분에 동조할 수는 없었다. 볼프강의 외모가 준수한 덕인지 테이블을 합석하자고 제안하러 오는 여자들도 간혹 있었지만 옆에 미스틸테인이 앉아있는걸 보고 애딸린 아빠로 오해하고 금방 돌아가는 헤프닝이 벌어졌다.
볼프강은 혼자만 술을 마시려니 조금 적적한 기분이 들었다.
"너희들. 한번 술 마셔볼래?"
이 식당안에는 손님이 굉장히 많고 이미 볼프강은 신분증 검사를 끝낸 상태다. 원래의 볼프강이라면 하지 않을 제안이지만 지금 볼프강은 걸리지만 않으면 범죄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아니, 저 볼프강씨. 저희 술 마셨다가 취하면..."
"뭐야. 술 하나도 제대로 못 이기는거냐? 이 나타님은 술따위 가볍게 제압해주지."
"....그래. 약간만 마시면 괜찮겠지."
볼프강의 제안을 나타는 단번에 수락했고 이세하도 분위기에 휩쓸려 결국 술을 마시게 되었다. 주량이 제법 쎈 볼프강에 맞춰서 마시다보니 나타와 이세하도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술을 마시게 되었고 술을 처음 접하고 주량이 쎈 편이 아니었던 둘은 금방 취하게 되었다.
"이거 곤란하군. 나보다 늦게 마신 놈들이 먼저 취하다니."
볼프강은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이가 어린 미스틸테인에게 부축을 부탁할 수는 없어 건장한 청소년 남자 2명을 부축하며 천천히 걸었다. 그러나 그 자신도 취기가 감도는 터라 생각대로 걷기는 쉽지 않았다.
"이거 난감하군. 저기서 잠깐 쉬었다가 가자."
볼프강은 눈앞에 보이는 공원에 들어가 벤치에 둘을 눕히고 자신은 미스틸테인과 함께 다른 벤치에 앉았다. 그렇게 볼프강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으려니 미스틸테인이 볼프강의 옷길을 잡아당기는게 느껴졌다.
"왜 그러지."
"형들이 싸우려고 하는데요."
"뭐?"
미스틸테인이 가리킨 곳을 보니 잠든줄 알았던 둘이 어느새 몸을 일으켜 싸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술에 잔뜩 취해서 비틀거리는 모습이 좀 어색했다.
"이세하. 딸꾹. 각오는 됐냐!"
"우읍. 물론이지. 게임으로 단련된 힘을 보여줄게."
그렇게 둘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둘의 싸움은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주먹다짐이 아니었다. 바로 손바닥밀치기. 제자리에 서서 손바닥으로 밀쳐 상대방을 넘어뜨리면 되는 게임이었다.
"갑자기 저건 왜..."
"모르겠어요."
둘의 손바닥 밀치기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심지어 둘의 손에는 미약하게 위상력마저 실려있었다. 현란한 손의 움직임은 일반인은 전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이윽고 둘의 손바닥이 완전히 겹쳐지고 커다란 힘이 서로를 밀어냈을 때 둘다 동시에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요컨데 무승부였다.
동시에 넘어진 둘은 곧바로 옷을 털고 일어나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이세하. 생각보다는 강한데."
"나타. 너야말로."
"....저 둘은 앞으로 술은 안먹여야겠어."
"저도 커서 술은 안먹을래요..."
이세하와 나타의 이상한 모습에 볼프강과 미스틸테인은 둘다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볼프강은 문득 깨달았다. 아까 방에서까지는 매우 험악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지금은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좋고 나쁨으로 따진다면 오히려 좋은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상능력자는 술에 취할지언정 취기가 풀리는 것은 일반인보다 훨씬 빠르다. 어느정도만 휴식을 취해주면 정상적인 판단은 가능해질 정도가 된다.
지금쯤 저 둘도 취기에서 조금 벗어나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닫고 있을 것이다.
이세하와 나타는 서로가 붙잡고 있던 손을 살며시 뗐다. 그리고 서로가 술이 안깬 척하기 위해 여러 연기를 했다.
"후식이나 먹고 들어가자. 다들 따라와."
볼프강은 다시 앞장섰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4명은 편의점에 들러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게 되었다. 4명중 가장 나이가 많고 경력또한 많은 볼프강은 먼저 입을 열었다.
"잘 들어. 지금 우리는 휴가지만 휴가가 끝나면 다시 힘을 합쳐서 도망간 총장 녀석과 호프만 박사를 잡아야 해. 이건 너희 모두 알지?"
3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양과 늑대개 사냥터지기의 협력관계는 미하엘과 호프만 박사를 잡을때까지였다. 그런데 둘다 놓치고 말았으니 협력관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난 오랫동안 이 빌어먹을 일을 해오면서 수없이 많은 불합리한 일을 마주했어. 처음엔 미칠듯이 짜증나고 괴로웠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란 말을 믿고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지.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건 분명히 있었어. 모든 이들을 나락에 빠뜨리려는 그 악행들은 익숙해질래야 그럴 수 없었지. 그렇기 때문에 난 나타,이세하 너희둘의 입장을 모두 이해한다."
둘은 볼프강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할말은 있을지도 모르나 그것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난 어느쪽이 옳다고 동조하지 않을거야. 그러나 꼭 해야 할 말은 하나 있다. 지금 우리의 공통된 목적은 바로 미하엘이나 호프만 같은 녀석들을 그대로 두면 벌어질 그 악행들을 완전히 막고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끔 방지하는거야.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힘을 합치고 있는거지. 원초적인 목적을 잊어버리고 그 방식을 두고 싸우는건 본말전도라는 말이지."
사냥터지기 팀의 2분대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이다보니 스스로에게 배어버린 남을 가르치는 말투가 드러났다. 이세하,나타는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미스틸테인은 그 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에 그 모습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아까전 싸웠던 때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둘의 내면에는 아주 큰 변화가 있었다.
다음날 모이기로 공지한 시간에 모이자 다들 제시간에 준비를 끝마치고 모여있었다. 볼프강이 적당히 서 있으려니 앨리스가 볼프강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저기 요원님."
"앨리스잖아. 무슨 일이야?"
"혹시 어제 밖으로 나오셨어요? 어제 식당에서 얼핏 봤던 기분이 드는데..."
"...기분 탓일걸."
볼프강은 괜히 꼬투리 잡히기 싫어서 둘러대었다.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제에 비해서 세 팀간의 사이가 굉장히 원만해보였다.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은 지경이었다.
"아. 요원님이 보기에도 변화가 느껴지시나요?"
"어. 이쪽은 어제 난리도 아니였지만 다른 곳은 한결 나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바로 사이가 좋아질 줄은 몰랐는걸."
"하긴 요원님 방은 상당히 시끄러웠을것 같아요."
"그랬었지. 그래도 덕분에 한결 나아진 것 같지만."
볼프강은 이세하와 나타가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여성진들처럼 밝고 화기애애한 정도는 아니었으나 미스틸테인을 사이에 두고 게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아 관계가 상당히 개선이 된 듯 했다.
"역시 사람에겐 휴가가 있어야 돼. 그런 의미에서 난 휴가가 끝나면 사직서를..."
"요원님!!"
"농담이야 앨리스. 일단은 수영복 입은 미녀들을 보러 해운대부터 가는게 먼저 아니겠어?"
"그러게요. 저 같은 미녀가 수영복을 입으면 헌팅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
"정말 기대가 되는군. 음음."
"....무시하지 말아주시겠어요, 요원님?"
앨리스의 등에서 불길한 오오라가 방출되는 것을 본 볼프강은 슬쩍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슬쩍 파이와 세트가 있는 곳으로 갔다.
"어 선생아!"
"볼프강 선배네요. 잘 잤어요?"
"그래. 그나저나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 분위기가 괜찮은거 같은데."
"어제 저 키 큰 여자랑 카드뽑기 놀이를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했다! 세트는 부탁 잘들어주니까 알았다고 했다."
세트가 말하는 키 큰 여자는 여성진중에서 최장신인 하피를 말하는 듯 했다. 사람을 대하는건 어렵잖게 할 수 있을법한 그녀가 세 팀이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접점을 만들어준 모양이었다.
"늑대개 팀도 그렇고 검은양 팀도 매우 좋은 팀이었어요."
파이가 한줄평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다음으로는 루나에게 다가갔다.
"볼프강 선생님이네요. 무슨 일이에요?"
"두 팀이랑 제법 친해진 것 같아서 말이야."
"아아. 서유리씨가 여름밤에는 빙수가 최고 아니냐면서 느닷없이 빙수 먹기 대결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어째선지 늑대개 팀의 두분도 불타올라서 정신없게 참여하다보니..."
"풉. 그건 또 엄청나군."
"웃지 마세요!"
그 나름대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게 볼프강이 작은 실소를 터뜨렸고 루나는 조금 얼굴을 붉히고 비웃지 말라고 말했다.
"여 소마."
"볼프 쌤이네. 어제 일로 나를 혼내러왔어?"
"VR 캐릭터는 재리한데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면 되니까. 그것보다 어제 그 레비아라는 아이랑은 많이 친해졌어?"
"...그런 녀석하고 친해져야 하는 이유는 없잖아요?"
장난기 있던 소마의 눈빛이 한순간에 진지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워워. 진정해. 그녀는 다른 차원종들과는 다르다는걸 알잖아."
"그렇다고 해도 차원종인건 다를게 없어요. ...그래도 마냥 나쁜 녀석은 아니더라고요."
"그건 왜?"
"사람을 웃게 할 수 있는 차원종은 없으니까요. 그 녀석의 곁에 있는 늑대개 팀들은 매우 즐거워보였거든요."
"꽤나 특이한 이유네."
볼프강은 하루만에 그 어색했던 팀 간의 사이가 이렇게나 개선되고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이번 휴가가 끝날때 세 팀은 더욱 돈독해질 것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일을 그만둘때까지는 사이가 좋은편이 좋겠지."
볼프강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출발하기 시작한 다른 일행들을 따라갔다.
저번에 나타 시점으로 적은 공동전선의 휴가는 너무 딱딱하다는 느낌도 있었고 여러 캐릭터를 묘사하지는 못한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에 하나 더 적어보었습니다.
이것은 휴가라는 비일상을 통해서 세 팀이 앞으로 분열없이 잘 해나갈 수 있다는걸 암시하는 내용 정도로 적어보았습니다 여름 휴가의 소재들을 이용해서 말이죠. 다른 분들의 소설처럼 재미있거나 극적인 요소를 통해 연출하는 방식도 괜찮겠지만 전 클저의 기존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의 성격,인물들간의 관계를 고려하여 기존에 클저를 알고 계시는 분들이 괴리감을 느끼지 않게끔 개연성을 중요시하며 적어보려고 했습니다 팬소설이여도 사용되는 인물들은 클저 캐릭터니까요.
사담이 좀 많이 길어졌으니 이만 끝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