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가 유리에게 요리를 가르쳐줄뿐인 이야기

사일로시빈 2015-02-19 10

"세하야! 나 궁금한게 있어!"

"수학은 못 알려줘. 나도 못하니까."


 유리는 언제나처럼 기운이 넘치는 눈치다. 건전지를 막 갈아 불빛이 번쩍이는 로봇 장난감마냥 눈동자가 푸른 휘광을 발한다.

답답하다며 느슨하게 풀어헤친 복장이라던가 군데군데 삐친 긴 생머리라던가, 말할 때마다 보이는 덧니도 여전하다.


"너 수학점수 나랑 비슷하잖아!"

"너보단 높거든?"

"이럴 때 쓰는 표현이 도토리 쪼개기지?"

".....음... 뭐, 비슷했어."


 만약 전생이란게 존재했다면 유리는 강아지였을 것이다. 매일 아침 멍멍!하고 말랑한 발바닥을 들어 인사를 한다.

헥헥하고 흥분한 기색으로 혀를 내민채 빙글빙글 돌고, 꼬리는 풍차처럼 휘몰아친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면 뛰어올라와서 끙끙거리며 발로 배를 눌러대겠지.

사료를 쏟아놓고 기다리라고하면 침을 질질 흘리며 눈을 빛낼 것이다.

만사에 호기심을 왕성하게 보이면서 코를 박고, 조금이라도 반응을 보이면 기뻐서 뛰어다니고, 쓰다듬어주면 눈을 찡긋거리고.

그러다가 손가락 총을 날리면 발라당 드러누워 복종의 표시로 토실토실 살이 오른 배를 보여주며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복종!이라고 말하며 요원복을 끌어올려 뽀얀 배꼽을 보여주는 유리의 모습이 겹쳐지듯 상상되어, 서둘러 망상을 끝냈다.


"세하야?"
"뭐, 뭔데. 너무 가깝다고."


 퉁명스레 대꾸했지만 유리는 자일리통 함량이 높은 상쾌한 미소로 화답했다.


"미안미안. 그보다 너 요리 잘 하지?"

"잘 하기는. 굶어죽지 않을 정도지."

"내가 이번에 친구들이랑 일식집을 갔거든?"

"그러셔."

"그래서 돈까스를 먹었단말야."

"정말 고기 좋아하는구나."

"근데 내가 평소에 먹던 돈까스랑 튀김이 다르더라구!"


 유리가 손을 허공에 오물조물 거리면서 흥분한 표정으로 눈을 빛낸다.


"뭔가, 더 폭신-하고 바삭했어! 대체 뭐가 달랐던걸까?"

"어휘력이 상당히 부족하지만 뭘 말하고싶은지는 알겠네. 그건말야, 그게 일식 돈까스라서 그런거야."


 유리가 얼굴을 찌푸리며 묻는다.


"일식집에서 먹은 돈가스니까 당연히 일식 돈까스지! 세하 혹시 나보다 바보야?"

"너보다 바보는 은이 누나밖에 없을걸."

"뭐야?! 은이 언니한테 다 이를 거야!"

"하나도 안 무섭네."

"슬비한테도 이를 거야!"

"아냐, 역시 내가 잘못했다."


 급격한 태세전환을 시도하며 공손해진 자세로 사과했다. 리더님이시라면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분명 딱딱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세.하. 차원종이 눈 앞에서 칼을 들고 뛰어드는데 게임을 하고있던 바보는 어디의 누구지?"


 라며 게임기를 나사 하나하나 낱낱히 분해하곤 절망하는 내 모습을 꼴좋다며 내려보려 할 것이 틀림없다.

나쁜 녀석은 아니지만 너무 귀찮다. 비슷한 수준의 귀찮음이라면 유리쪽이 훨씬 편하다.


"이 정도는 TV에도 몇번 나온 상식이지만 궁금해하니까 귀찮지만 알려줄게."

"귀찮다는 말은 빼는게 더 좋았어."

"일단 돈까스는 일본식 표현이야. 원래는 포크 커틀릿. 돼지고기 튀김이지."

"나도 아는데?"

"원조가 되는건 오스트리아의 슈니첼이란 음식이야. 이쪽은 우리가 아는 돈까스처럼 생겼지만 송아지 고기를 쓰지."

"소고기! 나 소 좋아해!"


 먼 미래에 유리에게 남자친구나, 혹은 남편이 생긴다면 굉장히 고생할 것이 틀림없다.

이런 녀석이 "자기, 나 오늘은 한우가 먹고싶어-"라며 아양을 떤다면 지갑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돈까스는 넙적하고 고기가 상대적으로 얇아. 튀김옷으로는 밀가루를 쓰고. 이쪽을 양식 돈까스라고 해.

남산이라던가 가면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돈까스를 먹을 수 있지. 일식 돈까스는 고기가 두꺼워. 그리고 이쪽은 빵가루를 써.

그래서 상대적으로 더 바삭한 느낌이 나고, 네가 말한 것처럼 폭신한 느낌이 드는 거야."


 유리가 팔꿈치로 쿡쿡 옆구리를 쑤신다.


"올- 이세하! 제법인데! 돈까스 박사네!"

"별로 듣고싶은 별명은 아니네. 아, 일본에는 밀푀유 돈까스란 것도 있어. 이건 얇게 썬 고기를 층층이 쌓아올린 거야.

우리나라에서도 25겹 돈까스같은 이름으로 들어와서 먹을 수 있어. 식감이 좋다더라. 난 안 먹어봤지만."


 검색해서 사진을 보여주니 유리는 금방이라도 침을 흘릴듯한 칠칠맞은 표정으로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올리고 방긋 웃는다.


"그럼 세하가 만들면 되지!"

"야, 난 요리사가 아니라고. 간단한 거만 겨우 만든단말야."

"그럼 월급 받으면 먹으러가자!"

"...으엉?"


 유리의 어쩐지 고기를 썰지않고 야성적으로 포크로 찍어들고 물어뜯는 야성적인 식사장면을 상상해버렸다.

그리고는 "앞으로 자주 같이 맛있는거 먹으러다니자!"라며 파릇파릇하게 웃는다던가.

뭐야 그거, 절대로 데이트잖아. 데이트 이벤트가 연쇄로 터지는 거잖아.

물론 이 녀석은 언제나 그렇듯이 별 생각없이 하는 말일 터다. 적당히 흘려들으면 그만이다.


"너도말야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할 줄 아는 편이 좋아."

"왜?"

"그야 너도 나중에 결혼하고 그럴텐데, 남편 아침 정도는 차려줘야할 거 아냐. 남자의 로망이라고."

"..........그래? 세하도 로망이야?"


 어쩐지 조심스레 물어보기에, 게임기로 눈을 돌린다.


"뭐, 글쎄다. 난 나랑 같은 게임을 해주는게 로망인데."

"하아, 세하답네. 세하랑 결혼할 사람은 걱정이다."

"너야말로."

"뭐 임마?! 내가 어디가 어때서!"

"너말야.... 됐다."

"뭔데?! 제대로 말해!"

"넌 생일이라고 미역국 끓여달라고하면 다시마국을 끓일 거 아냐."

"뭐가 다른데?"

"아직 네 레벨에 배울 지식이 아니야."


 유리는 심통이 나면 눈가에 특유의 주름이 지곤 했는데, 어린애가 어울리지 않게 화를 내는듯한 묘한 귀여움이 있다.

꽤나 중독성 있는 표정인데다가 반응이 재밋어서 무심코 괴롭혀주고 싶어진다. 

뒤에서 몸을 기댄채 괜히 게임기의 버튼을 마구잡이로 눌러대는 심술을 부리며 유리가 툴툴거린다.


"열받네!? 그렇게 내가 요리하는게 걱정되면 세하가 해주면 되잖아!"

"야, 그럼 뭐 나는 앞치마만 하고 사냐?"

"세하는 앞치마가 제일 잘 어울리는데?"

"됐네. 네가 앞치마 두르는게 훨씬 볼만할 거라고."

"내 요리가 먹고싶은 거야 내 앞치마가 보고싶은 거야?"

"전혀? 넌 너무 얻어먹는 것만 좋아한다고. 내가 언제까지고 너한테 사과 깎는 것부터 가르쳐줄 순 없단말야."

"흥, 보나마나 게임하느라고 그렇겠지!"

"네 몫까지 요리하느라 게임할 시간도 없겠다 야. 야야, 그거 전원버튼이야!"

"하! 알거든? 누를건데? 잘못했다고 말하면 봐줄게."

"그 전에 저장하면 되거든? 역시 너 바보냐."

"뭐야?! 그럼.... 뺏어야지!"


 뒤에서 쿠션 두개에 중력을 실어 이쪽을 꾸욱꾸욱 밀어대던 녀석이 어느새 게임기를 탈취하곤 혀를 내밀며 놀리는 표정을 짓는다.

붙잡으려고 몸을 일으키니 재빨리 테이블 반대편으로 돌아가며 으스거린다.


"야! 안 내놔?!"

"그래서 나야 게임기야?"

"당연히 게임기지!"

"그럼 안 줄건데?"

"어휴 저 바보가...."

"바보 금지야 이 바보야!"


 둘이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자니 어느새 녀석이 맑은 소리로 웃는다.

그렇게 웃으면 역시 진지하게 화낼 수가 없지만 일단은 게임기를 구하는게 우선인지라 손을 뻗어본다.

유리는 검은 양팀에서도 가장 재빠른 클로저답게, 미풍을 일으끼며 산뜻하게 손짓을 회피했다.

그런 민첩함은 내가 아니라 차원종한테나 좀 써줬으면싶다.

계속 당할 수는 없어 반격에 들어간다.


"그럼 넌 고기랑 나랑 고르라고 하면 뭘 고를건데?"

"어, 엉? 그야 세하지!"

"엑?! 왜!?"
"고기는 한번 먹으면 끝이지만 세하는 고기를 계속 사줄 수 있잖아!"

"그럼 그렇지."

"뭐가?"

"뭐."
"뭐가 그렇다는건데!"

"됐으니까, 이젠 그만하고 얌전히 게임기를...."


 어쩐지 유리의 얼굴이 하얀 도화지에 복숭아빛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것마냥 서서히 번지듯 달아올랐다.

이쪽도 제법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그건 역시 이 게임기 쟁탈전으로 격화된 열기 탓일 터다.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천천히 시야가 하강해 애꿎은 테이블을 노려보게되었다.


어쩌다 갑자기 분위기가 이렇게 된걸까,하고 탄식하는데 탁자 위에 놓여있던 무전기에서 심통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듣자듣자하니 이세하, 서유리. 무전 켜놓고 둘이 대체 뭐라는거니?]


 지옥 밑바닥에서 기어올라온 서슬퍼런 목소리가 마치 이글거리듯 방 안을 훑었다. 우리 리더님이 노여워하고 계신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대기실에서 호출 대기 중이었던지라,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게 무전기를 켜놓고 있었다. 실책이다....

게임기 때문에 잊고잇던 탓도 있지만, 역시 유리가 흥분해서 달려든 탓이 더 크지않나 변명해본다.


 유리는 다소곳하게 게임기를 내려놓고는 소파에 누웠다가, 이후 방석에 얼굴을 묻고는 괴성을 질러댔다.

때마침 제이 아저씨와 유정 누나가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을만큼 부끄러워져서 울고싶어졌다.

무전기를 끄자마자 유리가 울상을 지으며 이제 시집 다 갔다고 훌쩍거렸다.

차마 "그럼 내가 데려가주면 되냐?"라고 대꾸할 수 없어서, 목이 마르다는 핑계로 물을 마신다며 도망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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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세하유리 단편입니다.


 저번에 완결난 세하하렘물하고 이어지는건 아니고... 그냥 소소한 세하유리물입니다.

꼭 사귀지만 않을 뿐이지 하는 행동은 완전 커플인 푼수들이 있지요.

그런 녀석들은 그냥 좀 알콩달콩하게 사귀고 헤어지고 술이나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세하가 열심히 잘난척 했지만 실은 저 녀석도 고등학생인지라 지식이 정확한건 아닙니다.


 그러고보면 세하세린이나 세하정미도 도전해볼만한 소재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원하시는 커플링이 있다면 저에게 좋은 소재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네요.

란X시환쪽은 제가 G타워를 안 가서 잘 모르지만...


 남은 연휴기간 동안 세뱃돈을 많이 받으시거나, 세뱃돈을 적게 주는 날을 보내셨으면 하네요.

2024-10-24 22:23:3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