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26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21 2
하루가 지났다. 유리는 건강한 모습으로 학교에 등교를 했다. 그런 일을 당했음에도 태연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 강한 모습이 새삼 부러웠다. 아마 어렸을 때도 괴롭힘을 당했는데도 주눅이 들지 않고, 다시 일어설 사람처럼 보였다. 나라면 왠지 불가능할 거 같았지만.
어제 유리의 동생들에게 물어봐서 알아낸 것은 이게 전부다. 그녀는 어떠한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동생들을 생각해서 참고 견디는 강한 타입이다. 반면에 나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스스로 생각해본다. 어렸을 때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알파퀸의 아들이라는 이유 만으로 괴물 취급을 받으면서 험난한 시절을 보내왔다. 엄마가 있었어도 나는 한 없이 울기만 했었다. 결국 그녀에 비해 나는 마음이 한참 약하다는 뜻이다.
그녀처럼 강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버지가 말씀하신 게 아니었을까? 외로움은 축복이다. 그 생각으로 견뎌내면서 해맑은 미소를 유지할 수 있는 강인한 마음, 지금의 유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아버지가 진정으로 바라던 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세하야. 안녕."
"어, 안녕. 좋은 아침이야."
"어제 고마웠어. 또 도움을 받았네."
시선을 내게로 집중하지 못한 채 얼굴을 붉히면서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꼴 사나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자책감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부터는 병원에 좀 제 떄 갔으면 했다. 붉은 스캐빈저에 의한 상처 때문이라지만 병원 가면 금방 나을 수준이었으니까.
"아니, 그건 별로, 이제 몸은 괜찮은 거야?"
"응, 덕분에 많이 나아졌어. 동생들도 돌봐줬다면서? 고마워."
"어, 응. 아니야."
이번에는 내가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지금의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이런 걸까? 검지로 볼을 긁으면서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다른 남학생들도 느꼈다시피 유리가 웃는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저 활짝 웃는 미소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을 겪었다고 해도 그녀의 웃는 얼굴 한 번이면 그것도 다 해소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두워진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전환시켜줄 존재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남학생들이 그래서 유리를 좋아하는 거겠지. 그 부분은 인정하고 있다. 지금도 끈덕지게 달려들어서 유리에게 말을 거는 남학생들을 보았고, 그들을 상대해주는 유리를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여전히 고생이 많군.
* * *
점심 시간, 평소처럼 옥상에서 먹으려는데 유리가 도시락을 가져왔다. 이번에는 답례로 닭튀김이 담긴 도시락 통을 꺼냈다. 지금까지 한 번도 ** 못한 새로운 도시락 통이었다. 같이 먹으려고 손수 만들어왔다며 뚜껑을 개봉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도시락 식당에서 파는 그 닭튀김 그대로 같았다. 침이 저절로 고일 정도로 표면이 갈색으로 보일 정도로 잘 튀겨진 닭튀김. 벌써부터 젓가락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다.
"후후후, 정말 맛있어 보여? 먹고 싶지? 자, 입을 벌려봐. 먹여줄게."
"에?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에이, 조금 당황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가 내 손으로 먹을 수 있는데 왜 굳이 먹여주려고 하는 걸까? 그리고 당황?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던가?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나는 젓가락을 들어서 한 입 먹어봐도 되냐고 허락을 구한 뒤에 승낙을 받자마자 한 입 넣었다.
뜨거운 튀김과 짭짤한 소금기, 그리고 닭고기의 부드러운 육질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내 입안에서 살살 녹는 느낌이었고, 씹히는 감촉이 느껴질 때마다 그 맛이 입안 전체로 퍼졌다. 당장이라도 고개가 뒤로 넘어갈 수준의 굉장한 맛이었다. 유리가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너무 뜨거운 나머지 말하기가 조금 곤란했지만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몸짓을 보이자 그녀는 활짝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아침에 만들었을 텐데, 아직도 뜨거울 수가 있나?"
"아, 이거 가열도시락이야. 여기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전자레인지처럼 가열시켜주는 도시락이거든."
우와, 그런 도시락이 있었어? 처음 알았다. 어디서 파냐고 물었더니 유니온 기술 개발부에서 만들어낸 거라고 했다. 최근에 나온 걸 보니 아버지가 만든 건 절대 아니다.
"유리야. 저기 말인데, 혼자 너무 많은 걸 떠안고 있는 거 아니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거 같아서. 다친 상처인데도 네 몸을 돌** 않고, 곧바로 동생들에게 가려고 했잖아."
"그건,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런 거야. 나는 괜찮아."
항상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항상 긍정적으로 살겠다는 그 마인드가 싫지는 않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슬픈 순간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억지로 이겨내려고 해도 끊임없이 괴롭히는 우울증상이 항상 따라오는 법이니까. 데이비드 국장님도 이러한 점을 염려하신 거겠지.
훈련 중에 잠시 멍 때린 것만 해도 그녀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저렇게 행동하지만 한계가 다다를 때가 있는 법이니까.
"세하야.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나는 정말로 괜찮다니까.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이미 익숙해졌어. 그러니까, 불쌍한 사람으로 보는 눈으로 ** 마."
"유리야. 나는 너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클로저가 되었어. 매일 같이 무리하면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너를 보면서,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어."
유리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한 손으로 가슴부위의 옷을 쥔 채로 침묵을 이어져 나갔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인 채로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서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결국, 나 때문이었구나."
"아니, 그런 건 절대로 아니야.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의지였다. 그렇게 말했는데 그녀는 조용히 도시락을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왜 저러는 거지?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면서 유리의 손을 잡았지만 그녀는 내 손을 가볍게 쳐냈다.
"유리야."
"미,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먼저 가볼게."
점심도 다 먹지 않았는데 먼저 가버렸다. 손을 뻗어서 그녀를 잡으려고 했지만 아까처럼 뿌리칠까봐 그러지 못할 거 같았다. 내가 실수한 걸까? 나는 그저 유리를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거 뿐이었는데, 내가 잘못한 걸까?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면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 * *
방과 후에 교문 밖으로 나선다. 오후 수업 내내 유리와는 어색한 관계였다. 아무래도 내가 실수를 좀 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밖에서 또 리무진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에 봤던 데이비드 국장님의 리무진이다.
"여어, 이세하 요원. 어서 타게나."
"아, 네."
어차피 유니온 본부로 가는 길인데 얻어 타도 될 거 같았다. 마침 할 이야기도 있었으니까.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서 차량에 탑승한다. 여전히 넓은 공간을 가진 곳이었고, 안에 있던 국장님은 평소처럼 위엄이 있게 앉으신 모습이었다. 본부로 가는 길에 국장님께서 내게 말을 거신다.
"자네는 언론 기자에게 자주 노출 되는 편이라서 주의 사항을 알려주려고 불렀네."
"네. 국장님."
주의 사항이구나. 우선 국장님의 말씀부터 듣기로 했다. 평소에 기자들에게 사진을 찍히고, 어딜 가든 감시당하는 편이니까 국장님께서 나를 여기로 끌어들이신 것, 그래도 감시가 벗어난 건 아니다. 국장님이 바로 앞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나오면 유니온과 정부측에서도 뭐라하지는 않는다. 감시자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
"기자들을 조심하게. 유니온에 관련된 질문을 하게 될 것이네. 특종거리를 잡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이세하 요원 근처에 잠복해서 조금이나마 힌트가 될만한 것을 알아내려고 할 걸세."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죠?"
"특종을 위해서네.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러는 서바이벌의 본능이라고 해주게. 기자들도 하는 행동을 보면 선을 넘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도 죽기아님 살기로 저러는 것이니 말일세."
그랬군. 그래서 유리가 다쳤을 때도 카메라 플래시로 그렇게 죽기살기로 인터뷰를 요청했던 건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특종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건가? 왠지 모르게 기분이 불쾌해졌다. 국장님은 여기까지가 자신이 할 말이라고 말하자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하기로 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