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22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17 2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간만에 나와 데이트를 했다면서 좋아하신다. 꼭 활발한 여자애처럼 너무 좋아하신다. 엄마가 기뻐하시니 나도 만족한다. 나는 학교에 가지만 엄마는 집에서 혼자 따분하게 계셔야 되니까 그 외로움을 채워줘야하는 것도 가족인 내가 할 일이다. 아버지가 계셨으면 더 행복하셨을 텐데, 내가 과연 아버지 대신 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학살자라고 이명을 펼쳤던 우리 엄마. 지금도 정부가 두려워할 정도로 무서운 이미지가 남아있다. 그런 우리 엄마를 저렇게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아버지다. 가능하면 이 상태로 계속 유지시켜드리고 싶지만, 아버지처럼 할 자신이 없다. 도움만 받았던 내가 그 사람처럼 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아들, 오늘 저녁은 뭐야?"

"엄마, 그 전에 좀 씻으셔야죠."

"어머, 우리 아들. 엄마와 같이 씻을까?"
"으엑, 무슨 소리 하시는 거에요? 장난하지 마시고 빨리 들어가세요!"

 우리 집은 샤워실이 하나 밖에 없다. 그러니 한 사람씩 들어가는 게 낫다. 아무리 가족관계라고 하지만 엄마와 단 둘이 그런 모습으로 들어가는 건 사양이다. 나도 이제 눈을 뜰 나이니까 그런 거다. 어렸을 때는 전혀 몰랐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 때와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아잉, 우리 아들, 엄마 몸매를 보고 반할까봐 그러는 거야?"
"장난치지 마시고, 빨리 씻으세요."


 음흉한 표정으로 말하는 우리 엄마, 차가운 학살자 이명과 합쳐보면 교활한 서큐버스 이미지가 잘 들어맞을 거 같다. 서큐버스도 저렇게 음흉하긴 하지만 속내는 무서운 표정을 숨기고 있는 마족이라고 알고 있다. 처음에는 좋다고 달려들겠지만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 이미 덫에 걸려버려서 생기를 빨아들이게 된다는 설정을 가진 공포 게임을 해봤으니까. 그 게임을 해봐서인지 엄마에게서 그 무서운 서큐버스 이미지가 떠오른다.


 엄마는 적당히 장난하시고 목욕탕으로 들어가셨다. 씻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가 40대 나이인데도 젊은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조금 놀라웠다. 평소에 어떻게 피부와 몸매를 관리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건 내가 알 필요는 없는 부분이다.


딸깍-


 메세지 도착 알림음이다.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유정 누나에게서 온 것이다. 내일부터 정식으로 현장 투입 준비과정에 들어간다고 했다. 드디어 내일인가? 방과 후에 교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마중 나오시려고 그러는 건가? 뭐, 상관없겠지.


"아들, 목욕 끝났어!"

"으악! 엄마, 좀 가려요!"


 아니 왜 타올 한장만 걸치고 나오시는 거야. 부끄럽게. 중요한 부위는 노출되지 않아서 다행이긴 했지만, 오늘따라 엄마가 평소에 안하던 행동을 하네. 왜 이러시는 거지? 기분이 너무 좋아서 정신을 못 차리신 건가?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았다. 한 번 기분이 좋아지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까.


"엄마, 무슨 일 있었어요? 갑자기 이러시니 뭔가 수상한데요?"

"응?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기분이 좋아서랄까?"


 뭔가 숨기는 것 같았다. 단지 그것 뿐일까? 내가 지그시 쳐다보자 엄마는 고개를 저으면서 갑자기 어딘가로 보고 있었다. 흐음, 말하기가 정말로 곤란한 모양이었다. 억지로 캐물을 생각은 없지만 지나친 애정행각은 삼가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러는 건 엄마 답지 않으니까.


"응, 미안해. 세하야."

"고민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아버지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어요."
"응! 다음에 그렇게 할게."


 다시 기운찬 목소리로 답하셨다. 정말로 기분이 좋아서 들뜬 것 뿐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  *  *



배경이 하얗게 보인다. 여기는 무의 공간인가? 왜 내가 이런 곳에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잠시 후에 하얀 배경에서 그림이 그려지듯이 시골에나 있을 법한 가난한 초가집의 내부가 비춰졌다. 한 엄마가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2명의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신다. 엄마의 속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차려준 밥상에서 웃으면서 식사할 뿐이었다. 엄마는 아이들 만큼이나 적게 밥을 먹은 뒤에 나머지 밥솥을 살펴본다.


 아이들이 잠든다. 엄마는 외로운 곳에서 조용히 연탄을 이용해 방 안을 따뜻하게 한다. 차가운 바람이 집을 금방이라도 무너뜨릴 기세로 달려들지만 집은 흔들리기만 할 뿐, 무너지지 않는다. 엄마는 매일 같이 잠을 ** 않고, 연탄을 갈면서 방 안을 따뜻하게 한다.


 행복한 얼굴로 잠들어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엄마는 미소를 짓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내 가슴이 아파진다. 머리가 무거워져서 땅 아래로 떨궈지려고 한다. 그녀의 슬픔이 나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 엄마도, 저런 분처럼 많이 힘드셨을 거다. 겉보기에는 안 그렇게 보이지만 사물을 넓은 시야로 봐야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될 필요가 있다.


"잘 자렴. 얘들아. 나중에 크면, 엄마처럼 살지 말아주렴."


 눈물을 흘리면서 자고 있는 아이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뭔가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할 거 같았다. 지금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을까? 돈이라면 줄 수 있다. 이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는 현실이 아니다. 누가 봐도 여기는 꿈 속, 내가 갑자기 이런 곳에 나타날 이유가 없으니까. 다만, 뭔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  *  *



 다음 날, 방과 후에 교문 앞으로 나오니 검은색 리무진 차량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UNION 신분증을 달고 다니는 검은색 정장 차림을 입은 경호원이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세하님. 모시러 왔습니다."


 딱딱한 말투로 공손하게 인사한 뒤에 리무진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반가운 얼굴을 하고 계시는 높은 분이 앉아있었다. 데이비드 국장이었나?


"여어, 어서오게. 기자들이 성가시게 하기 전에 어서 타게나."


 그러고 보니 지금도 기자들이 질문공세를 하고 있다. 유니온에 데려가서 무슨 일을 줄 거냐는 말과, 클로저로서 앞으로 활약을 기대해도 좋냐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것에는 답을 해주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일단 차에 탑승한 뒤에 경호원이 기자들을 밀어낸 뒤에 앞좌석에 탔다.


 차 안은 넓었다. 사람이 편안하게 앉을 만한 테이블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데이비드 국장님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린 채로 다리를 꼬고 있었다.


"흐음, 역시 닮았군. 이번에 정식으로 현장 요원이 된 것을 환영하네. 그 동안에 훈련도 성실하게 잘 이행했더군. 훈련 성적도 역대 이상으로 뛰어난 편이라고 들었네."

"칭찬 감사합니다. 이번에 현장 투입 준비과정에 들어간다고 들었습니다."
"음, 이걸 받아주게. 자네의 요원증과 무전용 이어폰이야. 이걸 항상 귀에 꽂고 다니도록 해주게."


 하얀색 보청기처럼 생겼다. 워낙에 조그마한 호루라기처럼 생겼다. 귀에 꽂아본다. 손으로 만져보니 이 무전기가 멀리서 잘 안 보일 것처럼 느껴진다.


"요원들끼리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무전이야. 켜고 끄는 기능으로 할 수 있는 거지."


 요원들끼리 서로 연락이 가능하다는 건가? 채널이 클로저 한정으로 되어있어서 본부에는 연락이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본부에 연락을 할 때는 따로 휴대폰을 사용한다고 해야 된다고 설명하셨다. 그리고 요원증은 클로저를 증명하는 신분증이라고 했다. 내가 받은 건 이게 다였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자네, 서유리 요원과 잘 지내고 있나?"

"네? 뭐,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기는 한데요."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지 않았나? 훈련 중에 잠시 동안 멍 때리는 일이 많아져서 혹시 자네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네."

"그런 일 없었습니다."


 유리가 훈련 중에 멍 때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흐음, 매일 같은 클로저 활동 때문에 지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뻔한 거 아니겠나?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괴감이 드는 경우도 있으니까. 자기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하듯이.


"그래서 말이네. 이세하 요원. 당분간 그녀와 함께 활동해주지 않겠나?"


 활짝 웃으면서 당당하게 제안하신다. 조금 놀랐다. 인원이 부족하다고 할 때는 언제고, 한 명이 따로 임무 수행에도 모자랄 판인데 왜 갑자기 함께 행동하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왜 그래야 되냐고 묻자 그 분은 안경을 끌어올리면서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답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자네가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러니 부탁하네."

"음, 뭔지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고맙네. 자, 그럼."


 국장님께서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차가 갑자기 정차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문이 열리더니 경호원이 내게 눈짓을 보였다. 내리라는 건가? 받은 것을 가지고 내렸다. 여기는 우리집인데?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그럼, 내일부터 잘 부탁하네. 이세하 요원."

"네? 이게 준비 과정이었어요?"

"그래. 그럼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겠네. 그럼."


 문을 닫은 뒤에 경호원도 앞좌석에 탑승한 뒤에야 리무진이 떠나갔다. 이런 식으로 요원증과 무전을 나눠주는 거였구나. 흐음, 내일부터는 무기를 휴대하고 다녀야 될 거 같았다. 현장 요원이니 당연한 일이겠지. 그나저나 왜 국장님이 그런 제안을 하신 건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일단 한 번 시키는 대로 해볼까?


To Be Continued......

2024-10-24 23:23:2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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