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20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15 2
"혹시 SNS를 보는 거야?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 유니온 요원들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법이 최근에 개정 되었으니까. 가능하면 요원들의 사생활을 기록한 글은 올리는 건 법으로 금지 되어있어."
그런 법이 있었나? 처음 들었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위험 인물로 판단 되어서 그런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건가? 뭔가 좀 불공평한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겪어왔던 거라 별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카트를 끌면서 계산대 앞까지 갔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지만 사진만 찍을 뿐, SNS에 올리지는 않았다. 분명히 내 사진을 찍었다고 말하겠지.
* * *
계산을 하고 나왔다. 봉지에 한 손을 든 채로 돌아간다. 위상력으로 빠르게 갈 수 있지만 오늘은 그냥 도보로 가기로 했다. 슬비는 아직도 내 옆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혹시 내가 됐다고 말할 때까지 이럴 생각이었나?
"저기, 슬비야. 이제 충분한데, 그만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착각하지 마. 우리 집 방향이 이곳이라서 그런 거 뿐이야."
차가운 대답, 너무 딱딱하게 구니까 어색하다. 그나저나 이 중학생이 뭔가 안 좋은 과거를 가져서 저런 성격으로 변해버린 걸까? 어느 게임에서 나오는 캐릭터 정보에 그런 부분이 가끔 소개되기도 했었다. 험한 꼴을 당해버려서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린 그런 사람처럼 보인다고나 할까? 흔히 눈이 죽어있고, 딱딱하게 구는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걸어가는 것도 내 보폭에 맞춰서 걸어가는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대형마트에서 그녀가 식재료를 고를 때 손바닥을 한 번씩 본 적이 있었는데 흉터가 많이 남아있었던 것을 보았었다. 아까는 식재료에 집중하느라 흔한 일이라면서 넘겼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마음에 걸렸다. 뭔가에 베인 상처도 있고, 화상자국도 포함해서 다양하게 있었다고나 할까? 클로저의 수가 줄어들었다보니 그만큼 할 일의 분량이 많아져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 투입된다고 하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사람 한 명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렇게 금방 나아지는 것도 아닐 거다. 톤파 기술을 베우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위상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려져 있다. 푸른 불꽃으로 어떠한 기술을 사용해야지만이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하는 것 뿐이니까.
위상력을 사용하는 기술은 자기가 직접 만들어야 된다. 누군가가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다. 만화에서 보면 이능력자가 누구에게 배웠다는 설정도 없이 자신의 스킬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가?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지나가기도 하지만 현실을 경험하는 클로저 입장에서는 신중하게 모색해야 될 때였다.
"그럼, 조심히 가."
"어, 응."
슬비는 세 갈래 길에서 좌측으로 향했다. 우리 집은 아직 직진으로 향해야 된다. 슬비의 뒷 모습이 어쩐지 쓸쓸해보인다. 발걸음의 보폭 속도가 갑자기 조금 빨라졌다. 저건 나보다도 빠른 수준이었다. 일부로 내게 보폭을 맞추려고 저런 것이었을까? 궁금하니까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관두기로 했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만 집으로 가서 식사 준비를 해야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 * *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만들었다. 오늘은 통조림에 들어있는 햄과 양파를 볶은 요리를 만들었다. 이 요리도 은근히 맛이 좋다. 엄마는 평소처럼 강아지 같이 행동하시면서 식탁 위에서 기다렸다. 반찬을 식탁 위로 올리는 데 엄마가 갑자기 내게 말을 걸었다.
"아들, 오늘 여자와 같이 갔다왔어?"
"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에이,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여기 사진이 다 올라왔잖아."
아, 그런 거였군. SNS에는 안 올라와도 사진으로 나와 함께있는 상대방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채로 올리는 방법도 있었다. 엄마가 휴대폰으로 모자이크 한 사진 속 슬비와 함께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지나가던 시민이 올린 거겠지. 그래도 슬비에 대한 글은 안 적혀 있으니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와 엄마는 위험 인물이라 사생활 침해가 어느 정도 허용되는 편이었으니까.
"그런데 여자애라는 건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당연히 알지. 여자는 여자를 알아보는 법이란다. 우리 아들, 제법이네. 벌써 여자 친구를 다 사귀고."
"푸합!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어딜 봐서 여자 친구로 보인다는 거에요?"
하마터면 이물질까지 뱉어낼 뻔했다. 아무리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해도 그렇지, 너무 그렇게 단정지으시면 어떻게 하냐고요. 예전에도 그랬다. 내가 여자애와 같이 있는 것을 보기만 한다면 꼭 여자 친구가 아니냐고 물어보신다. 같이 있으면 무조건 그 사람인 것이라는 편견은 버려주시기를 바란다.
"흐응, 아니야? 아쉽네. 그나저나, 빨리 주말이 왔으면 좋겠네. 우리 아들과 빨리 데이트를 하고 싶어."
엄마가 반찬을 내려다보면서 말씀하셨다.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느껴진다.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지도 얼마 되지 않았었지. 물론 나가게 되면 사람들이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다. 분명히 화제거리라고 생각하면서 SNS글이 폭주하겠지. 그렇게 되면 데이트가 방해될 지도 모른다. 가볍게 공원에 가서 산책하는 거 뿐이니까 그 정도라면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
* * *
평소보다 더 많은 피로가 느껴졌다. 유리는 남들보다 위상력 잠재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혼자서 차원종 다수를 상대하고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 건 알파퀸 서지수를 포함한 고 위상력을 지닌 클로저들 뿐이었다. 그 중에는 세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도 훈련이 종료되면 곧바로 실전에 투입되기 때문에 그가 보여줄 활약도 기대가 될 정도였다.
세하가 나서준다면 일이 편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지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지만 그 웃는 가면을 쓰고 있는 사내가 언제 나타날지 몰라서 불안해하고 있었다.
"후우, 이걸로 마지막이네."
스캐빈저 계열의 차원종들이 그녀 주변에 쓰러져 있었다. 인원 부족으로 인해 처리해야 할 차원종의 수가 많아져서 평소보다 더 뛰어다녀야했다. 슬슬 날이 어두워지고 있으니 이만 집으로 돌아가서 동생들에게 밥을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분좋은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어서 임무보고를 했다.
"유정언니, 임무 끝났어요. 이걸로 끝이죠?"
[그럼, 수고 했어, 유리야. 오늘은 이만 퇴근하렴.]
"네! 언니!"
유리는 통화를 끊은 뒤에 사이킥 무브로 현장에서 벗어났다. 일이 끝났으니 동생들에게 빨리 가봐야 될 거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앞선 것이었다. 그곳에는 차원종의 잔해로 남아있는 채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를 크게 내면서 천천히 다가오는 웃는 가면의 사내, 그는 차원종 잔해들을 한 마리씩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캐빈저가 가진 검을 하나 들어서 자신의 손에 쥐어보고 조금씩 흔들어보았다.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주변에 있던 CCTV와 전기선이 전부 끊어지고 있었다.
사내는 주머니에서 붉은 버튼 하나만 있는 리모컨을 꺼내 그것을 눌렀다. 그러자 구름 위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물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대한 군용수송기처럼 보이는 비행물체, 예전에 유명했던 미국 군용 수송기인 C-130 을 조금 변형시켜서 개조한 모습이었다. 양쪽 날개에 프로펠러가 각각 하나씩 돌아가고 있었고, 고층 건물 평균 높이 만큼 내려와서 차원종 잔해들을 향해 노란 광선을 쏴서 그것을 하나하나 빨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기다란 조명이 비추면서 청소기처럼 빨려들어가듯이 말이다.
잔해를 모두 수집한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향해 광선을 쏘게 했고, 그 광선의 힘으로 빨려들어가서 비행물체 안으로 들어갔다. 지면을 깔끔하게 청소한 일을 마친 비행물체는 엔진 부분에서 푸른색 불꽃을 뿜으면서 구름 위로 빠르게 날아갔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