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15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10 2
새하얀 공간에 나 홀로 서 있다. 울고 있는 소녀가 보인다. 검은색 머리를 하고 있는 소녀, 아직 어린 소녀가 두 개로 이어진 묘비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울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슬퍼진다.
"엄마! 아빠! 흑흑!"
부모님을 잃은 자식의 슬픔은 나도 안다. 나도 아버지를 잃어서 많이 울었으니까. 그녀의 모습과 내 모습이 겹치게 느껴지고 있었다. 내가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흘렸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슬픔을 나누어주었다. 그 때의 나와는 다르게 소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왜 아무도 없는 걸까? 그녀를 위로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걸까?
불쌍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내가 곁으로 다가가서 소녀의 옆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아이의 부모님이 사고를 당해서 돌아가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고아가 된 상황이다. 나는 엄마가 있었기에 고아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이 소녀는 아니었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 여기."
소녀는 손수건을 순순히 받으면서 눈물을 닦아내다가 갑자기 나를 껴안으면서 얼굴을 내 가슴에 묻힌 채 더 세게 울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웠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럴 때는 조용히 달래주는 게 좋은 법이니까. 소녀가 얼마나 슬퍼했는지는 짐작이 된다.
전에 아버지가 말씀하신 게 떠올랐다. 여자는 마음이 쉽게 무너져 내리니 잘해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세상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강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누구나 다 견뎌낼 수 있다. 아버지가 이럴 때는 보수적이셨다. 요즘 같은 시대는 여성들도 클로저를 하면서 용감하게 싸우는 편이라서 남성을 넘어설 수도 있는데 잘해주라니, 말도 안 된다.
지금 내가 소녀에게 대해주는 건 내가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싶어서 이러는 거 뿐이다. 이 애가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었어도 나는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엄마도 강한 사람이지 않는가? 유니온에게 감시를 받으면서 사생활 침해당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프실 텐데도 금방 이겨내셨으니까.
그녀가 울면서 내뱉는 입김이 내 가슴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옷에 땀이 젖을 정도였다. 여자애의 입김이 이렇게 뜨거웠나? 어느 새 온 몸의 땀이 흐르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뜨거운가 궁금해서 일단 소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려고 했다.
* * *
따르르르릉-
알람 시계가 울리면서 나는 두 눈을 곧바로 떴다. 꿈이었다. 그 어린 소녀의 맨 얼굴이 궁금했고, 왜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저것이 내 의도를 망쳤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더운 거야? 이불도 두꺼운걸로 덮고 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다. 아무튼 아침이 되었으니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몸을 일으켰는데 이상하게도 몸이 무거웠다.
"응?"
그 원인을 곧 알게 되었다. 내 몸을 완전히 껴안은 채 새근새근 잠들어 계신 자칭 미녀 아가씨가 내 옆에 있었다. 아니, 누가 보면 오해받을만한 상황이겠네. 아무리 가족관계라지만 이제 좀 자제할 때 안 되었나? 나는 이제 어린 아이가 아닌데 말이다.
"엄마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어쩐지 덥다 했더니."
어우, 정말이지. 어느 새 내 침대 안으로 들어와서 나를 안고 자냐고요. 어깨를 흔들어서 깨우자 엄마는 한 손으로 눈을 비비면서 하품을 하신 채로 일어나셨다.
"하암, 벌써 아침이니? 세하야. 좋은 아침."
"뭐가 좋은 아침이에요!! 왜 여기서 주무신 거야?"
"으음, 글쎄. 화장실에 갔다가 문득 아들 생각나서 여기로 와버렸어. 데헷."
아니, 이 사람이, 저런 건 또 어디서 배운 거야? 한 손으로 쥔 주먹으로 살짝 자기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혀를 내밀면서 윙크를 하는 깜찍한 모습을 보이다니. 어우, 소름 돋아. 우리 엄마 정말로 나이 먹은 아줌마 맞아? 거기다가 잠옷차림도 중요부위가 조금씩 노출되고 있었다.
"엄마, 좀 가려요! 옷이라도 좀 제대로 입지."
"에이, 아들은 왜 그렇게 매정하니? 어렸을 때는 엄마와 같이 자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는데."
"아니, 그 얘기를 왜 하는 거야!"
윽박지르게 만들게 화끈 달아오르는 아침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반응하는 내가 귀엽다면서 키득키득 웃고 계실 뿐이었다. 어우, 진짜 못말려. 오늘부터는 문을 잠그고 자야겠다.
* * *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곧바로 책상 위로 머리를 박았다. 어우, 진짜 못살아. 엄마 때문에 가을에도 여름을 경험한 기분이었다. 하루 이틀이 아닌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나에게는 엄마밖에 가족이 없듯이, 엄마도 나밖에 가족이 없어서 그러신 거겠지. 그런 거라면 나도 어쩔 수 없다.
"하아."
한숨이 나온다. 혹시 앞으로 걱정되어서 일부로 어리광같은 거 부리신 거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 가면의 남자에게 큰 일을 당할까봐 그러신 걸까? 그 부분은 누나가 조사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잘 되려나 모르겠다. 범죄 수사에 대해서도 조금 안다. 장갑을 끼고 있어서 지문이 남지 않고, 감시 카메라를 다 부서버려서 목격한 증언만으로는 범인을 잡아내지 못한다. 가만, 그러고 보니 왜 내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후퇴한 거지?
그게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혹시 아버지가 만드신 건 블레이드를 보고 놀라서 그런 건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만약 그런 거라면 범인은 아버지와 관련된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클로저들을 수많이 습격해놓고 이제 와서 나에게는 습격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한 거니까.
"유리 왔다!"
"오오 진짜!?"
유리가 왔다고? 오늘 깨어날 거라고 했지만 곧바로 퇴원해도 되는 건가? 상처가 깊을 거라고 판단하는데 너무 무리하는 거 같았다. 고개를 들어올려서 그녀가 문열고 들어와서 남학생들과 인사하는 게 보인다. 평소처럼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복부에 상처는 완전히 가린 모양이었다. 대체 뭐에 당했기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세하야. 안녕! 오늘 점심에 시간 내줄 수 있어?"
"어? 응. 물론이지."
"고마워. 그 때 보자."
여전히 상냥한 말투네. 다른 남학생들의 따가운 시선이 또 느껴진다. 굳이 들을 필요가 없는 쓴 소리까지 듣고 있지만 창문쪽을 보면서 커다란 한숨을 내쉰 채 조용히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꿈 속에 있던 소녀는 뭐였을까? 분명히 부모를 잃고, 슬퍼하는 아이들 중 한 명일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왜 그게 내 꿈에 나타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들 조용, 조례를 시작한다. 곧 있으면 중간 고사니까 다들 배운 거 복습하면서 좋은 결과를 받기를 바란다."
시험준비를 해야 된다는 건가? 나는 걱정이 없겠지만 유리는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공부 못한 부분이 있으면 내가 가르쳐주기라도 해야 될 지도 모르겠다. 유리는 아무 일도 안당한 사람처럼 멀쩡했다. 다른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상처부위를 옷으로 완전히 가렸다. 팔에 붙여진 붕대는 이제 풀었던 모양이지만 새로운 상처가 그녀를 아프게 하고 있을 것이었다.
안타깝게 느껴진다. 상처를 달면서 하루를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건지 잘 알고 있다. 그런 걸 다 참아내는 유리가 너무나도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분명히 동생들을 생각해서 강하게 살고 있는 거겠지. 벌써부터 동생들을 돌보는 입장이니까 불쌍하게 보이기도 했다.
"자, 다들 그렇게 알고, 방과 후에는 가능하면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라. 요즘 들어서 차원종이 많이 나온다고 하니까."
"네!!"
조례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이 나가고, 국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오늘도 평소처럼 수업을 할 텐데 유리가 내게 조용히 내게 귀에 대면서 귓속말로 말한다.
"세하야. 미안한데, 노트 좀 보여줄 수 있어?"
"응. 물론이지."
유리는 클로저 일 때문에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진도가 나가지 못했을 거다. 나도 곧 그렇게 될 거 같지만 미리 예습까지 다 해버렸으니까 문제 될 일은 없었지만. 너무나 간결하게 잘 쓴 노트 정리를 본 유리는 감탄하면서 자기 노트에 비슷하게 옮겨적고 있었다. 노트 검사도 나중에 교과목 평가에 반영된다. 다만, 클로저인 유리 같은 경우에는 베껴써도 선생님이 뭐라하지는 않는다. 학교 수업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당연한 거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