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14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09 2

분명히 내 눈으로 봤다. 그 습격자에 대한 모습을 전체적으로 봤다. 무슨 신사 이미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유리같은 여자에게도 차가울 정도로 냉혹함이 있는 인상이었다. 그런데 나를 보고 그냥 가다니, 그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 아버지의 무기를 보고 도망간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그 이후에 유정 누나에게 그 남자에 대한 생김새를 다 말해준 뒤에, 유리가 입원한 병원으로 와서 상태를 보고 있었다. 동생들도 있을 텐데, 이렇게 무리하면서까지 클로저로서 싸우다니, 정말로 안타까웠다. 처음 봤을 때처럼 다정하고 순수해보이는 그녀에게는 클로저라는 이미지가 잘 안 어울린다. 위상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클로저가 되어야 되는 사명을 받아들이면 부정적인 감정이 들기 마련인데, 가족을 생각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반면에 나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딜가나 누군가에게 감시나 받고 있는 처지였으니까. 엄마는 그러한 삶을 진심으로 싫어하셨을 것이다. 아무리 위험한 힘을 가졌다고 하지만 사생활 침해당하는 것은 참기가 어려운 법이니까.  의료팀이 도착해서 그녀는 목숨을 건졌지만 기다리고 있을 남동생들이 걱정이 되었다. 직접 찾아가는 게 낫겠지.


"보호자 분이신가요?"

"네? 저는 그러니까, 얘랑 친구 관계인데요."

"실례했습니다. 환자 분은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이만 귀가하셔도 좋습니다."


 여기는 유니온 병원이다. 클로저들에게는 보호자같은 거 필요없다. 여기 병원에 입원하는 자들이 대부분 클로저들이니까 실력이 좋은 자들이 밤새도록 교대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편이었다. 물론, 보호자가 없는 고아출신에 한해서다. 유리와 그녀의 남동생들은 고아나 다름없지.


 유리의 자는 얼굴을 보았다. 그 모습도 어쩌면 저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여기에 새하얀 화장품을 바르면 더 하얗게 빛나는 피부가 잠자는 공주님 이미지로 어울릴 정도였다. 지금은 그런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다. 내가 지금부터 할 일은 이미 정해졌으니까.



*  *  *



 엄마에게는 전화로 늦는다고 말하고, 유정 누나에게서 알아낸 유리의 집을 방문했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1층 주택이었다. 우선 벨을 누르자 안에서 걸어나오는 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누나, 왔어?"
"어? 누나가 아니네."


 유리의 남동생들, 5~6살 쯤 되어보인다. 그녀에게 사전 허락을 안받고 여기 온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어린 동생들이 상처받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할 거다. 나중에 병원에서 깨어나게 된다면 동생들을 챙겨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죄책감에 빠질 테니까. 그걸 최소한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 내가 왔다.


"안녕, 얘들아. 나는 너의 누나 친구란다. 누나는 오늘 일이 있어서 못 올거야. 대신에 형이 너희를 보러 왔어."

"형이라고?"

"누나의 남자친구?"

 아니, 어린 애들이 벌써부터 저런 걸 생각해? 저런 건 어디서 들은 거야? 목소리를 들어보니까 나이 어린 애들은 맞는데 남자친구라는 개념이 그들의 입에서 벌써 나올 수도 있는 거였나? 아, 뭔지 알겠다. 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니까 그런 거겠지. 요즘 아동 애니메이션에는 벌써부터 이성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됨으로서 애들도 벌써부터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거겠지.


"얘들아. 형은, 누나의 남자친구가 아니라, 그냥 친구란다. 너희, 배 고프지? 먹고 싶은 음식 있어?"

"수제비."

"수제비."


 번갈아가면서 대답한다. 수제비를 좋아하는 구나. 여기에 수제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있으려나? 부엌을 **보면 나올 만한 일이었다. 집 주인에게는 나중에 사과해야겠다. 멋대로 들어와서 집안물건을 뒤지는 꼴이었으니까. 엄마는 어른이니까 혼자서 라면이나 끓여드실 수 있으니 걱정할 것도 없었다.



*  *  *



 수제비를 만들어주었다. 동생들이 식탁으로 와서 수저를 들어서 수제비를 하나씩 맛을 본다. 어린아이의 입맛에 맞추려고 노력했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들이 입 안에 넣는 것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맛있어."

"맛있어."

"그래? 다행이다."

"누나도 이거 만들 수 있는데, 형도 만들 줄 아네."


 수제비를 신기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면서 입을 벌리는 녀석들이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니까 저렇게 들뜬 것은 이해한다. 사실은 나와 유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수제비를 만들 수 있는 편이라는 걸 아직 모를 테니까. 솔직히 그런 건 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누나에게 배운 거 맞지 형?"

"역시 남자친구가 맞아. 가이언 맨도 여자친구에게서 요리를 배웠잖아."


 가이언 맨은 요즘 유행하는 아동 애니의 주인공 이름이다. 이거야 원, 못 말리겠네. 내가 유리에게서 배운 요리법이라고 아는 모양이었다. 만화를 너무 많이 보여준 거 아니니? 유리야? 뭐, 이들이 심심해하는 것은 이해하는데, 동화책이라도 읽게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동생들도 나이를 먹으면 현실을 깨달을 거다. 지금은 저대로 내버려둘까? 나중에 유리가 알아서 해명해주겠지. 그나저나 잘 먹네. 유리가 집을 하도 많이 비워서 그런지 그녀가 없어도 우는 표정을 한 번도 짓지 않고 있었다. 다쳤다는 이야기만 하지 않으면 그걸로 된 거겠지.


 애들은 금방 먹고 TV를 보러갔다. 아직 어려서 많이는 못먹으니 남긴 게 보였다. 나머지 뒤처리는 내가 해야 할 일, 녀석들은 만화를 보고 있었고,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았다. 매일 같이 동생들을 상대해줘야 되는 누나 역할도 참 힘들 거 같았다. 나도 매일 엄마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  *  *



 유리의 동생들을 재우고 난 뒤에야 문단속을 다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도 가서 동생들을 봐줘야 될 거 같다. 그러고 나서는 학교에 가는 거니까.


"응?"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어째서인지 불이 전부 ** 있었다. 스위치를 눌러서 전원을 키자 식탁 위에 머리를 올리신 엄마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니, 왜 식탁에서 엎드려 계시는 거야? 이유를 물어보니까 배가 고프다고 말씀하셨다. 저녁을 지금까지 안 드셨다니, 못말릴 정도군.


"제가 라면 끓여드시라고 했잖아요. 그 정도는 엄마가 끓여드실 수도 있는데."

"엄마는 아들이 해준 요리가 먹고 싶어서 그래."

"가끔은 혼자서 드실 줄도 아셔야죠. 나중에 제가 없을 때는 계속 굶으실 것도 아니잖아요."


 두 눈이 저절로 감겨질 정도로 감당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사실은 요리하기 귀찮아서 그러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아요? 만약 내가 내일 온다는 말을 했다면 분명히 혼자서 충분히 드셨을 지도 모르겠다. 오늘 내에 온다고 했으니 저렇게 말씀하신 거였겠지.


"그런데 어디를 다녀온 거니?"

"친구의 집에 다녀왔어요. 집주인에게는 허락받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유니온에서도 맡을 수 있었지만 내가 할 일을 남에게 미루면 안 되는 법이다. 다른 유니온 요원들은 안 그래도 그 웃는 얼굴 가면 쓴 녀석을 조사하느라 바쁠 텐데 유리의 동생을 돌볼 틈이 없었을 거다. 그래서 내가 나선거다. 내가 비록 클로저 신분이지만 현장요원이지, 정보분석하는 요원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임무만 내려오면 바로 출동해서 차원종 처리하는 게 전부니까.


 내일부터는 훈련이다. 방과 후에는 매일 몇 시간씩 훈련, 그리고 집에 와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잠드는 게 하루 일과의 끝이다. 유리도 내일이면 깨어난다고 했으니까 문제 없겠지. 어린 동생들의 말에는 다 흘려듣는다. 그냥 만화에서 본 것 가지고 착각을 한 거니까 이해하고 있었다.


"세하야? 무슨 생각해? 밥 부터 주면 안 될까?"

"알았어요. 금방 만들어드릴게요."


 밤이 늦었으니 간편하게 만들기로 했다. 달걀 볶음밥, 거기에 MSG를 적절히 넣어서 만들면 완성이다. 엄마는 내가 만든 요리라면 뭐든지 먹겠다면서 좋아하시면서 순순히 기다려주셨다. 저렇게 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법이었기에 요리하는 데에 손에 힘이 더 많이 간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23:2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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