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10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05 2

 대피소에서 학생들은 각자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이돌 얘기나 게임, 만화, 판타지 소설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이어폰을 양쪽 귀에 다 꽂은 채로 게임기를 조작한다. 굳이 이어폰을 꽂은 이유가 있다.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위상력 능력자인 내가 클로저로서 참여하지 않는다고 수군거려서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거슬려서 그런 거다. 아예 안 듣는 게 훨씬 나으니까.


"저 녀석은 왜 저러는 거야?"
"클로저면 우리를 지켜줘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이어폰을 꽂아도 들려온다. 그래도 참아야지. 볼륨을 좀 더 크게 늘리자 그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아서 좋았다. 남들이 뭐라하든, 그냥 게임만 하면서 재미를 보면 되는 거다. 이미 욕을 얻어먹으면서 자라온 환경에서 10년도 넘게 살아왔으니 지금 수군거리는 것은 참을만 했지만, 아직도 거슬리기도 하다.


"유리는 괜찮을까?"

"괜찮겠지! TV에서도 자주 활약하는 모습 보이잖아."

"몸매도 죽이는데 캬!"

 유리 얘기하니까, 게임을 일시정지해서 화면을 보고 있는 상태로 귀만 쫑긋거린 채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유리가 TV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나 보다. 게임에서 활약하는 매력 넘치는 여캐릭에 푹 빠진 유저들 수준을 보는 거 같았다. 그 여캐를 보고 차마 못봐줄만한 수준의 댓글을 다는 유저들도 있고, 넘치는 사랑 때문에 선을 넘어버리는 댓글도 있을 수준이었다. 여기 있는 남자애들도 딱 그 수준이다. 유리가 돌아오면 싸우는 모션을 보여달라고 하겠네.


 유리에게는 SNS를 ** 말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랬다가는 마음의 상처를 받을 테니까. 고소가 가능하다고 해도 그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거다. 안 그래도 가사 일과 학업까지 부담해야 되는데 그런 상처까지 입으면 그녀가 불쌍해서 못봐줄 지경이다.


 이 자식들을 지금 당장 경고라도 해주고 싶은데 어쩔까? 하도 대피소를 제집마냥 들락거려서 긴장이 완전히 풀려서 저러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하지? 아니, 관두자. 쟤들 중에는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의 자녀도 섞여있을 수도 있으니까. 공부를 잘한 사람이라면 세상 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대충 알고 있다. 대통령 밑에 청와대 직원들, 그리고 국회의원, 재벌가 등등. 여러가지 신분이 있었다.


 뭐, 나에게는 건드리지 못하겠지만 괜히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이런 녀석들을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봐야겠지. 유리가 이 자리에 없어서 천만 다행이다. 만약 엿들었다면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테니까. 유리 성격이라면 고소까지는 안 가겠지. 그 녀석도 다정하고, 착한 애니까.


-차원종 경보 해제. 학생들은 즉시 교실로 복귀해서 수업을 재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정확히 3교시 때부터 정상 수업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전 11시 부터 정상수업에 간다는 거다. 지금 10시 40분 정도니까 2교시 수업까지는 잘 못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교육과정은 무시할 수 없으니 수업은 계속 하겠다 이건가? 올바른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클로저들이 잘 지키고 있는데 경보를 울릴 때마다 미래의 꿈나무들의 교육과정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집에 귀가시키는 게 낫겠지만.



*  *  *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가 되었다. 교문을 나오면서 집에 가는 길, 여전히 혼자서 가는 상황이었지만 누군가가 담에 등을 기대고 두 손으로 뒷짐을 진 채로 서 있는 게 보였다. UNION 마크가 그려진 검은색 자켓을 입은 걸 보면 분명히 클로저다. 분홍색 머리에 푸른색 눈동자, 나이는 한참 어려보이는 체형, 중학생인가? 키도 나보다 30cm 정도 작아보이는 것처럼 보이니까 한참 나이가 어리다고 볼 수밖에 없겠다.


"혹시, 네가 이세하니?"


 반말? 나이도 한참 어려보이는데 초면부터 반말을 하다니, 이마에 힘줄이 생길 정도로 상당히 기분 나쁘다. 아니, 우선 진정하고 대답부터 하는 게 먼저겠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의외로 같은 나이일 수도 있으니까.


"어, 내가 이세하인데, 너는 누구야?"

"나는 이슬비라고 해. UNION 미성년자 클로저야. 오늘은 너에게 부탁을 하러 왔어."

"부탁?"


 뭔지는 말을 안해도 알 거 같았다. 클로저가 되어달라는 거겠지. 첫 이미지로 봤을 때 굉장히 딱딱한 말투에, 평소에 잘 웃지도 않는 얼굴, 학교에서 정해진 규정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조금의 실수도 봐주지 않는 타입으로 고지식한 성격인 것처럼 보였다. 아마 친구를 잘 못사귀겠지.


"부탁할게. 클로저가 되어줘. 차원종에게서 세상을 구해주는데 힘을 보태줬으면 해."


 역시 이거였나? 예감이 적중하다니, 이것도 공부를 잘하게 되어서 맞춰진 결과인 거 같았다. 아직까지는 고민중인데 어떻게 답변해야 될까? 솔직하게 답하는 편이 좋을 거 같았다.


"지금은 생각이 없어."

"지금은? 설마 나중이라도 되겠다는 거야? 차원종이 지금 어디서 활개를 치면서 사람들을 노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데, 우리 클로저의 일이 중요한 시기라고!"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클로저들이 지금 인원이 부족해서 차원종 소탕 문제에 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내게 더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 선택과 돕는 것 사이에서 내 마음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슬비는 두 주먹을 쥐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두 눈썹을 약간 구긴 채로 언성을 높였다.


"알고 있어."

"네가 정말로 알파퀸의 아들이라면, 이런 일은 당연하게 나서야 되는 거 아니니?"


 보수적인 발언이었다. 영웅의 자식이라면 영웅처럼 행동하라, 이런 건 옛날 때부터 이어져 오던 소리였다. 내가 어렸을 때도 그런 말을 들었지. 엄마가 영웅 클로저니까 아들도 똑같이 되라는 식으로, 그 말을 들을 때 굉장히 어른들이 싫어지게 느껴졌었던 기억이 난다.


 슬비는 고지식하고 보수적이다. 마치 정해진 규칙이 당연한 것처럼 말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한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 지금 학교에 학생들 중에도 있다. 그런 싫어하는 사람의 부류였다. 이걸로 확실히 결정했다. 나는 이 여자가 싫다.


"이만 집으로 갈게. 대답은 확실히 정했어. 나는 클로저가 되지 않아."

"그래? 알았어. 솔직히 너 같은 건 없이도, 충분히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으니까. 맘대로 해."


 약간 삐졌는지 두 눈매를 약간 내리면서 언성을 높이다가 뒤를 돌아서 어딘가로 높게 점프한다. 상당히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녀석이다. 기분만 괜히 안 좋아진 거 같다. 게임기를 꺼내서 조작을 하면서 걸어가기로 했다. 나는 영웅의 아들이지 영웅이 아니다. 그리고 내게는 거부할 선택지도 있어야 당연한 거다. 본인들의 자유만 중요하나? 내 자유도 중요하지? 다 같은 국민인데?


"세상 사람들이 요즘 중학생들을 융통성없게 만드는 거 같네. 유니온에서 요즘 저렇게 가르친 건가?"


 한숨이 나온다. 유니온 아카데미에서는 클로저가 차원종과 싸우는 게 당연한 거고, 꼭 해야 할 운명이라고 가르친 모양이었다. 엄마가 왜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지 알 거 같다. 뭐, 앞으로도 들어갈 일은 없을 거다. 라고 생각이 들지만 자꾸만 흔들린다. 유리 말고도 다친 클로저들이 많을 텐데,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니까, 게임에 집중이 안 된다.


"하아......"


 무거운 한숨,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클로저를 거부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 걸까? 혹시 내 마음은 클로저를 하기를 바라고 있는 건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꼭 해야 될 거 같다고 확신이 들 수준이었다. 일단 집에 가서 다시 한 번 고민해기로 해야겠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23:2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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