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8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03 5
"언제는 들어가도 된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갑자기 왜 정색하세요?"
엄마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전에는 클로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니, 갑자기 생각이 바뀌신 건가? 장난으로 한 소리였겠지만 사실은 내가 클로저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었던 모양이다. 물론 나는 클로저가 되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자꾸만 마음이 걸린다. 정말로 이대로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으니까.
"세하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금 전직 클로저들이 죄다 모여들어서 차원종 처리하고 있으니까, 그 생각은 접어두고, 평화롭게 학교만 다니는 게 어때?"
엄마가 오늘따라 말이 조금 빨라졌다. 왜 이러시는 거지? 원래 엄마의 본심이 그런 사실이었다는 건 예상하지 못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 서유리인가 뭔가하는 애 때문이니?"
"네. 부모를 잃고, 혼자서 동생들을 돌보면서 클로저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해요. 거기다가 부상까지 입으면서 싸우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 보이더라고요."
"그래."
엄마도 나와 같이 고개를 숙이면서 힘없이 대답했다. 오늘따라 엄마가 왜 이렇게 얼굴이 창백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혹시 내가 정말로 클로저 활동을 할까봐 그런 걸까? 아니면, 그 요원에게서 요즘 클로저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자 때문에 내가 큰일을 당할까봐 걱정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게 더 자연스럽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클로저 활동을 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복귀 제안을 한 요원에게서 사태의 심각성을 전해들은 뒤로는 요원활동을 안하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하신 모양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도 이해가 된다. 솔직히 아들인 내가 그런 위험 인물에게 당할까봐 걱정되기도 하겠지. 그렇다고 해도, 유리가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자꾸 마음이 흔들린다.
"엄마, 미안해요. 방에 들어가서 생각 좀 해볼게요."
"응. 그러렴. 세하야. 엄마는 네가 클로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유리라는 애도 잊어버리는 게 어떠니?"
"엄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사람의 인생은 한 번 밖에 없어.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생각을 하는 게 목표야. 괜히 다른 사람을 도왔다가는 그 사람처럼 될 거니까."
"혹시, 아빠 말하는 거에요?"
그 말에 엄마는 내 시선을 피한 채 조용히 고개를 숙이면서 풀이 죽어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따지고 보면 과로사였지. 다른 사람의 연구 영역까지 손을 대셨다고 들었다. 어디까지나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정말로 과로사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의 시신을 직접 내 눈으로 봤으니까 확실히 돌아가신 건 맞다. 그리고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돌아가시기 몇달 전부터 집에 돌아오시지도 않았었지. 어디서 뭘 하고 계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과학자의 사정이라고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역할을 충실히 하시려던 아버지였다.
엄마의 말이 일리가 있다. 내게 유리한 조건을 우선시해야 된다. 그래야 앞으로 살아가는 데 힘이 들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도 나는 그녀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동생들을 직접 돌본다고 했으니까. 유정 누나에게서도 그게 사실이라는 것까지 들었으면 의심할 여지는 없다.
게임기를 켰지만 그냥 바로 전원버튼을 눌러서 꺼버렸다. 게임할 기분이 아니었으니까. 차원종은 계속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과 맞서 싸우려는 클로저들이 항상 뛰어든다. 전직 클로저들이 있으니 지금은 괜찮다고 느껴지겠지만 습격자가 전직 클로저들마저 무력화시킨다면, 사태가 심각해질 수도 있으니까.
"하아, 아버지, 이럴 때는 어떻게 말씀하실래요?"
어렸을 때 나는 알파퀸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왕따 당했다. 너무나 강력한 위상력을 가져서 위협이라고 느낀 애들의 편견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애들이 너무 생각 없이 행동했다. 정말로 위험하다면 학교에서 다니라고 하겠는가? 그런 말은 안하겠지. 진작에 퇴학을 당했어야 정상이지만, 그래도 내 편을 들어준 부모님 덕분에 나는 버틸 수 있었다. 특히 아버지가, 내게 힘을 주셨었지. 자연스럽게 몸에 힘을 빼면서 눈을 감는다. 내일도 학교가야 되니까.
* * *
"괴물! 저리가!"
"우리 엄마가 너랑 같이 놀지 말래."
"이 학교에서 **버려!"
노란색 공을 든 채로 울상을 짓는 황갈색 눈동자 소년이 울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떠나가고 있었고, 그의 주변에는 텅 빈 운동장이 있을 뿐이었다. 소년은 고개를 숙이면서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앞머리가 눈을 가릴 정도의 가린 눈매, 소년의 몸에서 푸른 불꽃이 솟아나고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건데?"
공을 쥔 두 손에 힘이 더 들어가서 펑! 하고 터져버렸다. 두 주먹을 쥐고 아이들을 태워죽일 각오로 나서고 있었지만 그런 소년을 말리는 사람이 있었다. 흰색 정장을 입은 깔끔해보이는 회사의 정사원 이미지를 하고 있는 안경을 쓴 남성이었다.
"세하야. 무슨 일이니? 아빠에게 말해줄래?"
"나더러 괴물이라고 말하잖아요. 저런 애들을, 혼내줄거에요."
"이 녀석아. 함부로 그 힘을 쓰면 안 된다고 했잖니."
"그래도 계속 참고만 있을 수 없어요."
"견뎌내렴. 지금 네가 이렇게 참고 견디면 나중에 좋은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단다."
소년의 아버지의 말에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참고 견디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아질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것만으로 살아가는 게 바보같은 일이라는 건 어린 소년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힘을 사용하지 않고 참으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 그래야 되는 건데요?"
"나중에 네가 어른이 되면, 이보다 더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남들보다 훈련을 먼저 받는다고 생각하렴. 외로움은 오히려 축복이란다."
그의 상냥한 말투에 소년은 쌓였던 화가 풀리는 게 느껴졌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아이 때보다 더 힘든 상황을 겪게 된다. 어떤 어른들은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까.
"네. 아빠. 그렇게 할게요. 힘들어도 견뎌볼게요."
소년의 대답에 그의 아버지는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면서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가 외롭게 산다는 것은 아버지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일도 있었지만 자식을 위해서 학교까지 날마다 와주었었다. 그러던 사람이 어느 날, 희미해지는 게 느껴졌다.
"아빠, 몸이 왜 그래요?"
신기루처럼 몸이 투명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소년은 그의 손의 감촉이 점점 사라지면서 마침내 투명인간처럼 변해지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가지 말라고 외치지만 아버지의 몸이 끝내 사라졌다.
"아빠!!"
* * *
"아빠! 헉, 헉......"
얼굴에 땀이 범벅이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타락하고도 남겠는데, 내가 지금까지 사고 안친 이유가 아버지 덕분이기도 하다. 몇 년동안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도 적응되었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것을 통해 외로움을 대신해서 달래주고는 했었다.
"큭큭."
웃음이 나왔다. 뉴스에서는 왕따와 따돌림이 자살을 일으키는 우울증에 시달리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우울증이 없었다. 나를 건드리는 녀석들이 없으니 오히려 마음놓고 게임기를 할 수 있었으니까. 거기다가 나는 학교 성적도 톱이다. 그러니 아무도 무시하지 못한다.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데, 남자애들이 내게 꼬투리 잡을 만한 게 하나도 없으니까.
세면과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방으로 돌아와 교복을 입는다. 오늘도 단정하게 입었다. 클로저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민중이지만, 오늘도 기분 좋게 등교할 생각을 한다. 아침은 간단하게 토스트로 때웠으니 준비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세하야. 학교 가는 거니?"
"네. 엄마. 오늘도 다녀올게요."
어제 일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도 밝은 미소로 엄마와 인사를 주고받은 뒤에 기분 좋게 학교를 등교한다.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엄마의 말대로 내 인생에서 유리한 방향으로 가는 게 훨씬 좋을 수도 있으니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