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6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01 3

저질렀다. 차원종 녀석에게 처음으로 싸움을 걸었다. 기습적으로 머리를 내리꽂으면서 단 번에 엎드리게 했다. 주먹을 빼지는 않고, 그대로 푸른 불꽃을 녀석의 몸에 주입시켰다. 녀석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해야 된다. 기습을 시도할 생각이라면 상대방을 즉사시킬 위력으로 해라. 이게 바로 게임에서 흔히 말하는 기습공격의 팁이라고 할 수 있다.


"헉, 헉."


 현실과 게임은 달랐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겨우 주먹 한 방날렸을 뿐인데 호흡이 빨라지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내 몸이 이상반응을 일으켰다. 녀석을 향해 내리치지 않았던 나머지 손이 고압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떨리면서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팔 안에 있는 혈관에 피가 안통할 정도로 쪼그라지는 느낌, 두 다리도 고압 전류로 인해 쪼그라들면서 물이 부족한 채로 시들어가며 썩어버린 나무 뿌리가 되어버릴 거 같은 불안감.


"쿨럭!"


 급기야 내 입에서 이물질이 나올 정도로 구토증상까지 보인다. 오른손으로 입을 막은 채 상체를 구부렸다. 위상력이 부족해서 이러는 건 아니었다. 이건 뭐랄까? 다른 증상이다. 혹시 처음으로 차원종을 상대로 싸워서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세하야!"


 다급하게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 쳐다** 않아도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내 몸을 붙잡고, 곧바로 지상으로 올라왔다. 뭔가에 의해 던져진 기분이었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두 눈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하면서 잠이 들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져간다.



*  *  *



 푹 잠을 잔 기분이다. 깨어나보니 병원이었다. 이제 몸은 멀쩡하다. 왜 아까는 위상력을 썼을 뿐인데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위상력을 처음 썼을 때는 그저 푸른 불꽃으로 가스불을 대신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른손으로 이마에 손을 짚어본다. 싸우는 데에 위상력을 처음으로 써봐서 그랬던 거 같았다. 그렇겠지. 나는 원래 클로저가 아니었으니까 유니온에서 훈련 받은 일도 없었다.


 병실 문이 열렸다. 우울한 표정으로 들어오던 유리, 깨어난 나를 보자마자 두 손으로 입을 잠시 가린 뒤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내게 달려온다.


"세하야. 일어났구나, 정말로 다행이야."


 내 품에 뛰어들어서 안도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많이 걱정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우울해졌다가 내가 깨어난 것을 보고 다시 표정이 밝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미안함을 느꼈는지 눈물이 고여있는 게 보인다.


"정말로 다행이야."

"유리야. 몸은 괜찮은 거야?"


 유리는 다행히 무사했다. 유리가 여기 있다는 것은 그 차원종을 쓰러뜨렸다는 얘기겠지. 부드럽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너무 붙어버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녀에게까지 들리는 게 아닌가 불안하기도 했지만.


"응. 그런데 왜 그런 짓을 했어? 무모하잖아. 전투 훈련을 받지 않는 능력자가 차원종과 싸우면 의식을 잃어버릴 수 있었던 걸 몰랐던 거니?"


 두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들이대면서 상냥하게 말한다. 얼굴이 너무 가깝다. 시선을 돌리면서 조심스럽게 너무 가깝다고 작은 소리로 말하자 유리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는지 재빨리 내게서 떨어지면서 얼굴을 붉혔다. 가만, 전투 훈련을 받지 않는 능력자가 차원종과 싸우면 의식을 잃어버린다고? 이런 건 들어**도 못했는데? 그러고 보니 엄마가 어렸을 때 유니온 클로저를 양성하기 위한 아카데미에 강연간다고 했던 걸 들었는데, 그 아카데미가 전투훈련을 받게 하는 곳이었던 모양이다.


"응, 모르고 있었어. 당시에 나는 면제였으니까."


 엄마와 아빠의 활약 때문에 나는 강제로 유니온에 들어가는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이미 세계를 구한 공로가 있고, 클로저에 대한 관심은 없었으니까. 선택권이 나에게 주어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유리의 말을 듣고 클로저의 수가 줄어가고 있다는 말을 들어서 나도 언젠가는 차원종과 싸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대비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싸우는 것을 구경하다가 이렇게 되어버렸다.


"으, 응. 그래. 차원종과 싸움을 하는 건, 군대가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과 똑같아. 실제로 전장을 처음 경험한 사람은 심리적으로 공포심이 밀려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잖아."


 조금 진정된 유리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쉽게 말해서 처음 전장에 나간 사람에게 두려움이 밀려와서 신체적으로 이상이 발생했고, 그 신체의 변화로 인해 위상력의 흐름이 비정상적으로 흐르면서 사용자의 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어 의식을 잃게 된다는 얘기였다. 그것을 극복하려면 실전전투에 사용하는 전투 훈련을 받아야 된다고 했다. 그런 거였군. 그래서 아카데미가 있는 거였어.


 위상력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아무데서나 싸울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실전같은 훈련을 꾸준히 받으면서 몸이 완벽하게 전투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저, 세하야. 왜 뛰어든 거야?"

"어? 으음,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위험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응? 그렇게 위험한 편도 아니었는데, 아무튼, 도와줘서 고마워."


 진심을 다해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한다. 내 도움이 없이도 차원종을 물리쳤는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몸이 정상이 아니다. 팔에 심각한 화상으로 추정되는 상처를 입었으니까. 화상의 고통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피부의 쓰라리는 느낌이 강하게 작용하게 되면 자꾸만 신경쓰여서 다른 전투에 집중이 잘 안될 테니까.


 머라고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 솔직히 나도 왜 도와줬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아니, 이유는 없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했을 일이었으니까. 지나가다가 차량에 깔린 시민을 발견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차량을 들어올리는 데 동참하고, 119구급대에게 인계하는 편이었으니까.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당연히 할 일을 했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런 거다. 만약을 대비해 싸움 구경하려고 했다가 하필이면 부상을 당한 클로저가 위험해 보였기에 행동으로 이유없이 나갔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웠다. 이제 몸이 다 나은 거 같으니 이만 일어나려고 했는데 병실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국장님. 유정 언니."

 국장? 언니? 유리가 정자세로 거수경례를 하는 것을 보면 유니온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둘 다 'UNION' 이라고 써진 명찰을 착용하고 있는 편이었다. 한 분은 나보다 나이는 많아보이는 긴 생머리를 하고 있는 누나였고, 다른 한 분은 파마머리를 한 것처럼 보이는 안경을 쓴 아저씨였다.


 우선 아저씨가 유리를 지나쳐서 천천히 내 앞에 서다가 정중히 인사를 하면서 자기소개를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데이비드 리, UNION 미성년자 클로저 관리국장입니다."

"처음 뵙겠어요. 저는 김유정, UNION 미성년자 클로저 관리요원입니다."


 미성년자 클로저 관리국장과 관리요원이라, 일단 나도 침대에서 내려온 뒤에 두 사람처럼 공손하게 인사하면서 내 소개를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세하라고 합니다. 격식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제가 아무리 그 사람이 아들이라고 해도, 그런 식으로 취급받는 것은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럼, 편하게 하지. 자네가 활약한 것을 전해들었다네. 그대는 클로저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기 있는 서유리 요원을 도와서 차원종을 쓰러뜨렸다더군. 거기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하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마, 다른 사람도 뛰어들었을 거라고 판단합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첫 인상부터 부드럽고 영국신사같은 모습이었다. 신분이 높고 예의가 바른 중세시대 귀족으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정도로 온화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 하도 중세시대 판타지 배경이 있는 게임을 하다보니까 그런 생각이 나는 거 같다. 그리고 옆에 있는 누나도 격식을 따지는 것처럼 무표정한 모습이지만 유리가 언니라고 부르는 걸 보면 미성년자에게는 친밀하게 대하는 친언니나 친누나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몸이 무사해서 천만 다행이네. 하지만, 두 번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주게. 전투 훈련을 받지 않는 클로저는 차원종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위험하니까."


 싸늘한 말투로 말하면서 안경을 끌어올린다. 잘못된 것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데이비드 국장님이다. 반박할 수는 없었다. 나는 주의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고는 국장님이 옆에 서 있는 유정 누나에게 말한다.


"유정씨, 난 상부에 보고할 게 있어서 먼저 갈 테니까, 이 젊은 친구를 집까지 모셔다줘."
"네! 국장님."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누나. 국장님은 급한 일이 있었는지 발걸음을 빠르게 하면서 그대로 병실 밖으로 나갔다. 무지하게 바쁜 모양이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23:2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