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5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5-31 3
유니온에서는 인원 보충을 위해 다른 클로저들을 구하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은퇴한 전직 클로저들을 대상으로 말이지. 하지만 우리 엄마나 나는 해당되지 않았다. 국가에서 받은 혜택이니까. 그런데도 유리가 정식으로 요청하는 걸 보면 그만큼 급한 상황인 모양이었다.
"저, 잠깐만."
치맛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냈다. 'UNION' 이라고 써진 약병이었다. 상처에 바르는 건가? 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몸을 돌려서 조심스럽게 붕대를 뜯고 있었다.
"도와줄까?"
"아니야. 나 혼자 할 수 있어. 부탁인데, ** 말아줄래? 상처를, 보여주기가 좀."
"어, 알았어."
보이고 싶지 않다면야 어쩔 수 없지. 우선 그녀가 하라는 대로 몸을 돌려서 게임기 전원을 켰다. 일을 끝낼 때까지 랭킹을 확인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고 보니, 유리가 방금 꺼낸 약병은, 어디에 쓰는 약병일까? 어우, 소독약 냄새가 강하네. 여기까지 올 정도라니. 가만 있자, 이 냄새가 강한 것은 분명히 화상에 바르는 약이라고 생각하는데. 차원종들 중에 화상을 일으키는 녀석도 있는 모양이다. 다양하게 있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다 됐어. 세하야."
"어, 그래."
종료하고 몸을 다시 돌려서 그녀를 마주보았다. 새 붕대로 갈아져 있었고, 썼던 붕대는 그녀의 손에 쥐어지고 있었다. 새빨간 피가 묻어있는 모습, 클로저를 둔 가족 입장에서는 걱정이 들기도 할 것이다. 부모님이 안계시더라도 그녀의 동생들이 이 상처를 본다면 얼마나 울지 상상이 안 된다.
"세하야.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까? 클로저가 되어주었으면 해."
"미안해. 그건 거절하고 싶어. 지금 내가 차원종과 싸워야 될 이유가 없어."
두 눈을 아래로 향한 채로 힘없는 말투로 답했다. 그러자 유리는 한 동안 어두운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활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울다가 웃는 표정을 지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더라? 그런 건 중요하지 않는다. 그녀가 분위기를 어떻게 해서든 좋게 전환하려고 하는 시도를 보이는 편이니까.
"응, 그렇겠지? 미안해. 이런 말을 해서."
"아니야. 유리야. 너도 사정이 있어서 이런 말을 한 거잖아. 혼자 싸우는 거 힘들지?"
"아니야. 나도 동료가 있으니까. 그건 괜찮아."
당연히 동료와 싸워야지. 혼자서 모든 차원종들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안 그래도 돌봐줄 동생들도 있을 텐데 너무 위험한 일을 하다가 전사하면 곤란하지. 그런데 그녀의 말이 신경쓰였다. 인원이 갑작스럽게 줄어들 이유가 없다. 대부분 클로저들은 차원종들을 상대할 만한 기본적인 전투능력을 가지니까, 이건 억측일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클로저들이 하나 둘씩 살해당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서도 살인사건 기사도 많이 나오기도 했으니까.
"저기, 유리야. 혹시 말이야. 클로저들이 누군가에게 습격당하고 있다거나 그런 거 아니야?"
"응? 그런 거 아니야."
이마에 땀이 한 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두 눈을 감은 채 어색한 미소를 보인다. 유리는 거짓말을 잘 못하는 편이다. 너무 착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구별하는 데 쓰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타입은 얼굴에서 거짓말이 다 드러나는 법이지. 그래도 억지로 캐물을 생각은 없다. 아니라면 아니라고 그냥 대충 넘기는 게 좋지. 유리도 분명히 숨기려고 하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아무튼 유니온이 밝히지 못할 만큼, 중대한 사항이라는 거겠지.
"이만, 가볼게. 점심 시간 끝나겠다."
가을이고, 2학기인데 벌써부터 여름이 다시 돌아온 걸로 착각한 것처럼 보인다. 한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발걸음을 빠르게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곡을 찌른 발언을 좀 해서 그런 모양이다. 어라? 도시락도 먹다 말고 그냥 가버렸네. 나참, 덜렁거리는 면도 있는 모양이다. 3단 도시락이 그대로 열린 채로 있는 걸 보았다. 천천히 도시락 뚜껑을 닫으면서조심스럽게 담았다. 그런 다음에 내 도시락을 빠르게 먹어치운 뒤, 그녀의 도시락통을 같이 들고, 교실로 돌아갔다.
* * *
방과 후, 하품을 하면서 집으로 가게 되었다. 오늘도 집에 가서 가사일을 하면서 게임보내는 걸로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생각했는데, 경보음이 울렸다. 그리고 전봇대에 달린 확**를 통해 목소리가 들려온다.
[차원종 경보가 발생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은 안전한 장소인 대피소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대피소라, 다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그러겠지만 나는 아니다. 대피할 이유가 없으니까. 나도 나름대로 위상력 능력자다. 그렇기 때문에 차원종과 충분히 싸울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실전 경험은 없다. 이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게임에서도 그렇듯이 처음 겪는 사냥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걸 안다. 고 레벨 몬스터인지도 모르는 레벨 1 유저가 덤벼들어서 쉽게 리타이어 당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어쩌면 그 게임 유저처럼 나도 그렇게 될 지도 모르겠다.
쾅!
폭발소리, 클로저가 차원종을 상대로 싸우는 거겠지. 일단 클로저들이 어떻게 싸우는 지는 구경해야 될 거 같았다. 유리의 말대로라면 클로저 인원이 줄어들어서 시민들을 상대로 차원종을 전부 다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을 테니까. 그러면 내가 어쩔 수 없이 싸워야 되는 거다. 엄마에게서 배웠던 싸이킥 무브를 사용한다. 몸 속에 숨겨진 푸른색 위상력을 이미지화한다. 그리고 그것을 양쪽 다리에 집중시킨다. 그게 다 완료되면 곧바로 점프한다. 이게 사이킥 무브의 원리였다.
건물 옥상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충돌음이 가까운 지역까지 왔다. 그곳에 도착하자, 눈에 보이는 게 있었다. 망치를 들고 있는 괴상한 외계생물처럼 보이는 차원종과, 한손에 검을 들고, 또 한 손에는 권총을 들고 있는 유리의 모습이 보였다. 유리가 차원종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저 차원종은 엄마가 가지고 계셨던 차원종 도감에서 본 적이 있었다. 트룹 포레스트, 거대한 망치를 들고 있는 트룹족 전사로 B급 차원종으로 분류되어있다. 그 차원종을 상대로 유리가 혼자서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주변에 쓰러져 있는 트룹계열의 차원종들의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그림을 보니 딱 나온다. 유리 혼자서 조무래기들을 다 쓰러뜨리고, 이제 지휘관과 싸우는 모습이었다.
카앙! 타타탕!
유리의 검과 녀석이 휘두르는 망치가 충돌하면서 불꽃을 잠깐이나마 일으켰다. 충돌과 동시에 유리의 권총이 녀석의 몸을 향해 난사를 한다. 총탄에 맞은 채로 뒤로 밀려난 트룹 포레스트, 온 몸에는 작은 불씨로 인해 불이 발생한 것처럼 새카만 연기가 5군데 정도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녀석은 물러서지 않았다. 두 손으로 망치를 쥐며 이번에는 지면에 강하게 내리치자 아**트 도로가 금이 감과 동시에 여러 조각으로 쪼개지듯이 산산조각났다. 그와 동시에 녀석과 유리는 무너진 파편과 함께 지하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유리야!"
순간 걱정이 되었다. 저렇게 떨어져도 과연 클로저들은 무사할 수 있을까? 검은 배경으로 꺼진 지하 내부에는 불꽃이 잠깐 생겼다가 꺼짐과 동시에 굉음을 내고 있었다. 근접전으로 합을 이루고 있다는 증거겠지.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둬도 괜찮을지 의문이었다. 책가방을 벗어서 한 쪽에다 내려놓고, 뛰어내려갈까 생각했지만, 순간 망설여졌다. 실전 경험이 없는 내가 간다고 해도 그녀에게 방해만 될 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유리는 지금 다친 팔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데 가만히 내버려두면 정말로 큰일을 당할 거라는 가능성도 있다.
"**, 어쩌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될 때다. 개입한다면 유리에게 짐이 될 가능성이 있고, 개입하지 않으면 그녀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으니까. 두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뛰어내렸다. 유리를 도운다. 그게 내가 선택한 선택지였다. 지하에서 불꽃이 튀는 곳으로 뛰어 내리면서 위상력을 방출한다. 내 위상력은 푸른 불꽃, 어두운 지하라도 불꽃이 비춘다면 약간이나마 어둠을 밝힐 수 있는 거니까.
푸른 불꽃으로 감싸진 내몸이 강하함과 동시에 어둠이 살짝 걷히기 시작하면서 녀석의 망치와 유리의 검이 맞부딪친 것을 보았다. 목표확보, 몸을 녀석의 머리 위로 이동해서 그대로 주먹으로 정확히 내리꽂았다. 놈이 뒤늦게 눈치채고 위로 올려봤지만 이미 늦었다.
쾅!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