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4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5-30 3
설거지를 한다. 이것만큼은 엄마가 같이 해주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었으니까 그런 거다. 그러다가 엄마가 갑자기 무슨 말을 하셨다.
"아들, 혹시 학교에 전학을 온 유니온 요원이 있니?"
"어, 있어요. 서유리라고, 유니온 클로저로 활동하고 있어요."
"흐음, 그래? 클로저 요원이 학교에 전학을 왔다고? 차원종과 싸우면서 학교생활을 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닐텐데."
내 생각과 마찬가지로 엄마도 의아하게 생각하셨다. 위상력 능력자였기 때문에 국가기관이나 다름없는 유니온에서 일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생들을 돌봐줘야 되고, 학교까지 다니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 힘든 일들을 혼자서 다할 수 있는 걸까?
"세하야. 혹시 클로저가 되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이 든 거 아니지?"
"그런 거 뭐하러 해요? 엄마처럼 싸우는 전투광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히잉, 엄마는 아들이 차원종을 쓰러뜨리면서 멋진 요원으로 뜨는 것도 보고 싶은데."
"안 돼요."
엄마는 예전에 못말리는 전투광이셨지. 차원종들을 상대로 학살을 일으켰으니까. 그들 사이에서도 알파퀸이었던 그녀를 요주의 인물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따돌린 녀석들을 위해 내가 왜 싸워줘야 되는데?
누군가가 인터넷 게시글로 올리기도 했지만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가의 세금으로 봉급을 많이 받는 클로저들인데 자신들을 위해 싸워주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클로저들도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것을 맘대로 하지 못하고, 무조건 임무랍시고 뛰쳐나가서 싸우는 게 당연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거부권이 있어서 클로저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내 힘에 두려워서 다들 피하고 다니는 것 뿐이었다. 유리 같은 경우에는 위험등급으로 지정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접근하는 편이었다. 확실히 누군가와는 차이가 난다. 내가 클로저가 되어도 마찬가지겠지.
"그래. 아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엄마는 아쉬워하면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납득해주기만 한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다. 설거지를 마친 뒤에 나는 곧바로 방에 돌아가겠다고 말한 뒤에, 발걸음을 곧장 옮겼다.
* * *
방 안에 들어와서 오늘도 예습과 복습을 끝내고, 게임기를 틀었다. TV에서도 공부에 관련된 문제가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내가 공부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딱 하나, 선생님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거 뿐이다. 사회적으로 집중조명을 받는 인물에게 경솔하게 접근했다가 온갖 의혹에 시달려서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 이러한 사실은 반드시 잊어버리면 안 된다.
클로저? 어린 아이들에게는 파워레인저 같은 존재들일 거다. 차원종이라는 괴물들을 상대로 지켜주고 있는 정의의 용사같은 애들이었으니까.
"후우, 오늘도 해볼까?"
게임기를 켠다. 이번에도 내 기록을 따라잡을 만한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내 압도적인 경험도 있지만 현질을 하는 것도 있으니까. 하지만 너무 지나친 낭비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집 생활비가 언제 끊기게 될 지도 모르니까. 거기다가 나도 유리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사회가 내 앞길을 막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고생하지 않는 사람은 그릇된 길에 빠질 가능성이 높았다. 재벌 2세들의 갑질이 특히 그런 식이었지. 고생을 안해봐서 남들의 고통도 모른 채, 갑질을 저질러서 폭행을 저질러놓고, 거액의 합의금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유도한 사례도 있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고생을 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그릇된 길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고통을 많이 겪은 사람만이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알고 강해질 수 있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언제 폭발해서 악당이 되어도 이상할 정도는 아니다. 이런 짜증나는 세상에서 착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역겨웠으니까.
"어우, 집중이 안 되네."
게임기를 바로 꺼버렸다. 그냥 내일 학교에 가기 위해 일찍 자두는 편이 더 나을 거 같았다. 뭐, 오늘도 외로운 순간을 겪었지만 그래도 그녀와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나눈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으니까.
* * *
다음날에도 하품을 하면서 창가쪽을 멍하니 본 채로 책상에 앉았다. 그런 다음에 유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어제처럼 웃으면서 손을 흔든 채로 인사하는 모습, 어라? 뭔가 이상했다. 그녀의 오른 팔에 하얀 붕대로 감겨져 있었다. 아아, 조금만 생각하면 금방 알게 될 일이다. 차원종이 출현해서 그들과 싸우다가 생긴 상처겠지.
"유리야. 어떻게 된 거야? 많이 다쳤잖아."
"괜찮은 거야?"
"응, 난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얘들아."
남학생들이 유리가 상처난 것에 대해서 호들갑이었다. 유리는 애써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아니었다. 저것들 바보 맞지? 클로저 요원이라면 당연히 상처 한 둘 정도는 가지고 다니는 게 기본이잖아. 아무튼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앉으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 세하야. 좋은 아침이야."
"어, 좋은 아침이야. 어제 차원종을 사냥하면서 다친 거야?"
"응? 어어, 맞아. 그런 거야."
응? 반응이 왜저래? 마치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것 같은 눈치였다. 혹시 차원종에 습격당하면 내가 걱정할까봐 얼버부리려다가 들켜서 그러는 걸까? 잘 모르겠지만 유리가 이마에 땀을 흘린 채 실눈표정을 보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면 뭔가 있다는 걸 의미했다.
"유리야. 너 왜 그래?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게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뭔가를 망설이고 있는 듯 했다. 다른 애들에게는 밝은 표정으로 말하는데 내 앞에서는 뭔가를 주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분명히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거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했다. 혹시 상부에서 뭔가 지시를 내리기라도 했나?
"저기, 세하야. 혹시 말인데, 점심시간에 시간 내줄 수 있어?"
"응? 그거야 어렵지 않는데, 왜 그러는 거야?"
"응? 아, 그런 게 좀 있어. 여기서 말하기가 좀 그렇거든."
"알았어."
오늘따라 왜 저러는 거야? 남학생들이 덕분에 따가운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잖아. 이렇게 보면 꼭 내가 유리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겠다.
* * *
점심 시간, 도시락을 들고 옥상으로 왔고, 잠시 후에 유리가 왔다. 우선 마주앉은 뒤에 도시락을 깐다. 어제와 비슷한 식단을 가진 그녀와, 편중된 반찬을 가진 내 도시락이다. 주로 나는 고기를 많이 먹는 육식이었으니까. 그 중에서 매운 음식을 많이 먹을 수도 있었다.
"저기,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말해줄래?"
"세하야, 이런 말을 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저기, 그러니까, 클로저가 되어줄 수 있어?"
"뭐?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게, 사실은, 언론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우리 클로저 전력이 가면 갈수록 줄어들어가고 있어. 그래서 인원 보충이 급한 편이라서, 그게..."
아, 그런 거였군. 사정은 대충알았다. 클로저들은 차원종들을 전부 처리할 만큼의 전력이 되지 못할 정도로 인원 부족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거였냐?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