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3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5-30 3
방과 후에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유리는 유니온 클로저 일 때문에 먼저 하교했고, 나 또한 만날 친구도 없었기에 어디 들리지 않고 곧장 집으로 왔다. 중간에 기자들이 사진을 찍는 것에 조금 거슬리기도 했었지만 어느 정도 참으면서 왔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엄마 때문이다. 집에서 혼자 있으시기 때문에 많이 외로우셨을 테니까.
"다녀왔습니다."
"아! 들!"
"우왓! 껴안지 좀 마요. 아들 죽어요."
다들 알고 있지만 엄마는 전직 클로저다. 전투에서 살아온 몸이기 때문에 힘도 장난 아니게 세다. 한 번 껴안으면 온 몸의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굉장히 아팠다. 내가 위상력 능력자라고 해도 말이지. 엄마가 이렇게 해주는 것은 나쁘지는 않는데 힘 조절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으응, 아들 냄새, 오늘도 좋구나."
"그만 하시라니까요."
엄마의 볼이 내 볼에 접촉한다. 부드럽고 탱글탱글한 느낌, 만약 이성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엄마 때문에 면역이 되어버릴 거 같은 느낌이었다. 두 손으로 엄마의 얼굴을 밀어내면서 후끈 달아오는 얼굴을 진정시킨다. 후우, 이런 아들 바보 엄마를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아빠가 있어도 막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 오히려 엄마를 도와주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었으니까.
"오늘 저녁밥은 뭐야?"
"기다리세요. 저 아직 교복이잖아요. 오자 마자 아들에게 밥 부터 달라는 엄마가 어디있어요?"
"아잉, 뭐 어때서? 아들 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잖니."
어우, 닭살. 진짜 한대 쥐어박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엄마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휴우, 조용히 커다란 숨을 내쉬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엄마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외로웠으니까. 학교에서 나는 유리를 만나서 조금은 이야기 나누는 사람이 생겼지만 엄마는 아직 아니었으니까.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그러니까, 식탁에 앉아서 기다리고 계세요."
"네. 아드님!"
어우, 저 귀엽고 깜찍한 포즈는 어디서 배우셨을까? 오른손으로 군인식 거수 경례를 하고, 혀를 왼쪽 입술로 삐죽 내민 채로 왼쪽 눈만 감는 모습, 어느 만화에서나 나오는 귀여운 여자애캐릭터라고 느껴질 정도다. 아예 이 참에, 실사 영화로 캐스팅 해달라고 영화사에다가 연락을 해버릴까?
* * *
옷 갈아입고 부엌으로 왔다. 냉장고를 열어본다. 역시나 안에 넣어놨던 김치전이 사라졌다. 범인은 안 봐도 뻔하다. 내가 무섭게 노려보자 엄마는 휘파람을 불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셨다. 어휴, 정말로 저러고 싶으실까? 뭐, 진정하자.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실 테니까 뭐라도 드시기도 하겠지. 우선 오늘의 저녁메뉴를 만들기 위해 재료들을 모아본다. 좋아. 오늘은 돈가스 덮밥이다. 냉동보관해놨던 돼지고기 등심을 꺼내고, 고기망치로 두드린다. 외식으로 먹을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방식 때문에 나는 습관처럼 수제로 만들게 되었다.
"어머, 아들이 요리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멋지다니까. 꼭 그이같아."
엄마가 행복한 얼굴표정을 지으면서 양 손을 모아서 턱을 받치고 계신다. 아빠가 그러셨지. 엄마는 요리를 조금 못하시기 때문에 아빠가 자주 만들어주셨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엄마는 클로저로써 매일 같이 전장에 나가셨으니까. 공복이 올 때마다 아버지가 나서서 엄마에게 수제요리를 제공해주셨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아버지는 수제 요리야말로 그 어떠한 요리와 비교할 수 없는 정성이 가득한 최고의 요리라고 말씀하셨었다. 그 이후로 요리 연습을 많이 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고기망치로 두드린 다음에 밀가루와 계란, 빵가루를 거쳐서 기름에 튀긴다. 그러고 나서는 요리 집게로 그것을 꺼내 접시에 담는다. 그 다음에 덮밥 소스를 레시피대로 만들어서 그것을 밥에 얹은 뒤에 돈가스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마무리로 달걀물까지 넣어서 완성이 된 게 바로 돈가스 덮밥이다.
"자, 완성 되었어요. 돈가스 덮밥입니다."
"우와! 우리 아들이 만들어준 밥이다!"
두 눈이 초롱초롱하면서 좋아하시는 엄마, 정말로 예전에 그 전설적인 클로저가 맞는건지 의심이 될 수준이었다. 강아지처럼 헥헥거리면서 좋아하는 모습, 어떻게 보면 귀엽다고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이 모습을 봤자면 청혼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쉽지만 엄마는 재혼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자신의 남편은 우리 아버지 외에는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었으니까. 재혼 이야기를 하면 화를 내시니 그 얘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내 것도 만들었다. 그런 다음에 식탁 위에 올려놓고, 엄마와 마주 앉았다. 먼저 수저를 드시고 돈가스와 밥을 같이 넣어보시고 내게 엄지손가락을 처억! 치켜들어올렸다. 나도 한입 먹어본다. 돈가스 안에 있는 잘 익은 고기의 육즙과 밥이 어울어져서 매우 맛이 있다. 돈가스만 먹으면 짠맛이 강하게 느껴지고, 밥만 먹으면 맛이 밍밍할 뿐인데, 둘이 같이 먹으니까 적당한 수준으로 간이 맞춰져서 좋았다. 역시 돈가스는 밥과 함께 먹어야 제맛이다. 식당에서도 돈가스 요리를 내올 때 꼭 밥을 내놓는다. 바로 이러한 맛을 내기 위해서다.
식당 요리사들도 정성을 다해 만들었지만 역시나 집에서 만든 수제요리가 제일 좋다. 맛이 문제가 아니다. 나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냈다는 성취감, 엄마같은 경우에는 가족이 만들어준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있기 때문에 돈가스 덮밥의 맛이 훨씬 좋게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아들! 한 그릇 더!"
"엄마, 또 만들기에는 재료가 부족해요. 당장 사오기도 귀찮은데."
"에이, 엄마를 위해 힘을 내줘라."
"오늘은 좀 참아 줘요."
마트 가기가 귀찮았다. 정말이지, 우리 엄마는 할 일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많이 드시려는지 모르겠다. 그래놓고 살이 안 찐다는 게 조금 신기하기도 하다.
* * *
결국 엄마가 하도 사정하는 바람에 밖으로 나와서 마트로 왔다. 목적은 하나, 돈가스 덮밥 재료를 사는 것, 다음부터는 더 넉넉하게 사와야 될 거 같다. 엄마의 식성은 정말로 못말릴 수준이니까. 마트에서 돼지고기 등심을 고르고, 야채코너로 왔는데 파를 집으려는 순간, 누군가와 손이 맞닿았다.
"어?"
"죄송합니다. 어? 세하야."
유리는 뒤늦게 알아봤지만 나는 한 눈에 알아봤다.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우리는 한 동안 눈을 크게 뜬 채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푸른색 눈동자, 저건 위상력 능력자를 상징하는 눈동자 구분법이다. 우리 엄마도 나도 황갈색이다. 참고로 나는 검은색 콘텍트 렌즈를 항상 끼고 다니는 편이라, 다른 사람들은 내 눈동자가 황갈색인 것을 잘 알아**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혹시, 야채를 사러 온거야?"
"응. 동생들 저녁 반찬 만들어주려고. 지금쯤 많이 배가 고플 거라서 저녁만들 반찬을 사고 있었어."
"그렇구나."
유리에게는 동생들이 있는 모양이다. 혹시나 그들도 위상력능력자냐고 묻자 그녀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유니온 클로저 일을 하면서 동생들까지 챙겨주려고 하다니, 좋은 언니 누나다. 학교에서도 선한 성품을 보여줄 정도였는데 집에서도 다정한 가족으로 취급받겠지. 그런데 부모님은 안계시나?
"저기, 혹시 부모님은 다른 일을 하셔?"
"그게,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셨어. 사고로."
유리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이런, 내가 괜한 것을 물어봤구나. 나는 곧바로 미안하다고 사죄했지만 유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서 괜찮다고 답했다. 곧 밝은 미소를 지으며 아까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해소하려고 한다.
"아, 내 정신 좀 봐. 애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만나서 반가웠어, 세하야. 내일 학교에서 보자."
"어, 응. 그래."
화제를 전환하듯이 밝은 미소로 말한 뒤에 카트를 끌고 재빨리 벗어났다. 안타까운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서 동생들을 돌보고 있는 상황이라니, 안타깝게 느껴졌다. 클로저 일을 하는 것도 위험하고 어려운 일인데, 동생들까지 보살펴야 되는 꼴이라니.
그런데도 저렇게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건 아마 우리 엄마와 같은 이유겠지.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생활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서 엄마와 상의를 해볼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