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2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5-30 3

 쉬는 시간이 되었다. 전학생이 오면 항상 일어나는 질문공세, 오늘은 내 옆자리에 전학생이 왔다보니 몰려드는 사람이 많았다. 평소에는 내 주변에는 얼씬도 안하는 녀석들이 전학생 한정으로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 학교의 인기인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으니 이 반에 있는 남학생들이 전부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유니온 요원이라고 했지?"

"평소에도 차원종이랑 싸우는 거야?"

"남자친구는 있어?"

"저기, 한 사람씩만 질문해주면 안 될까?"


 부드러운 말투로 대처하려는 그녀의 노력이 보인다. 남자애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큰 목소리로 환호하기도 한다. 시끄럽군. 쉬는 시간에 게임을 좀 하려고 했더니 그냥 여기에서 나가야 될 거 같았다. 하지만, 이미 나가는 길도 막혀버려서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지. 이어폰을 꽂아서 하는 수밖에.


"저, 이 도시는 처음이지? 내가 시간이 나면 안내해줄게."

"멍청아, 무슨 소리야? 여기 학교를 먼저 안내하는 게 먼저잖아."

 어휴, 시끄럽네. 이어폰을 꽂고 있어도 다 들릴 수가 있냐? 소음 공해라고 봐도 이상할 것도 아니다. 묵묵히 게임을 하려고 해도 맘대로 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서로 자신이 안내하겠다고 다투는 남자애들을 본 유리는 어색한 미소를 짓다가 박수를 한 번 치면서 말한다.


"저기, 얘들아. 괜찮으면 모두가 안내해주는 게 어때?"

"응? 우리가?"

"응. 너희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상냥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들은 힐링스킬을 단체로 받아서인지 꽃이 아름답게 활짝 피는 거 같은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천국으로 승천할 준비가 된 영혼들처럼 보이기도 하다. 유리의 성격은 나도 인정할 정도다. 그녀는 첫인상부터 다정한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그들이 저렇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면역이 되어있다. 겉모습은 엄마 영향이지만, 다정한 성격은 아빠 영향이었으니까.


 엄마에게 들었었는데, 여성 클로저들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엄마 라이벌이 된 강력한 클로저도 아빠를 차지하기 위해서 대립할 정도라고 들었었다. 별로 관심도 없는 이야기지만, 아빠가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나도 어렸을 때부터 직접 경험했기에 인정하지 못할 부분은 아니었다.


"저기, 세하야. 너도 같이 오지 않을래?"

"으응? 아니, 난 괜찮을 거 같은데, 여기 다른 애들이 있잖아."

"그래도 다같이 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안 될까?"


 두 손을 모으면서 간절히 부탁하고 있었다. 의도는 잘 알겠지만 갈 필요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다른 남자애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왜 저래? 오히려 좋아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여간에 저런 녀석들의 머릿속은 대체 어떻게 되어있는지 가끔은 알 수가 없는 부분이 많다니까.


"응, 알았어. 그렇게 할게."

 억지로 권하지는 않았다.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유니온 요원이라면 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긴장한 기색은 없었다. 그저 평범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걸 보면 내가 누구라해도 별로 개의치 않는 성격일까? 그게 아니면 내 정체를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딩동 댕동-


 수업종소리다. 남자애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다음 수업의 교과서를 꺼낸 뒤에 들을 준비를 했다. 응? 그러고 보니 유리가 곤란해하고 있었다. 뭐야? 교과서를 아직 못 받은 거야?


"저기, 세하야. 미안한데, 교과서 좀 보여줄 수 있어?"

"어, 문제없어."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망설임없이 보여주었다. 고맙다고 말하면서 교과서를 보는 그녀의 옆 얼굴을 본다. 밝은 얼굴 이미지, 어떤 일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거 같은 좋은 모습을 보일 거 같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뭔가를 짊어지고 있는 듯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 팔에 조금 검게 물든 흉터자국, 다른 사람들은 눈치 못챘지만 내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전투 감각이 있는 게임을 많이 해본 사람이라면 어디에 주로 상처가 생기는 지 대충 보이니까. 그리고 유니온 요원이니까 차원종과 매일 같이 싸우면서 다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응? 왜 그래?"

"아, 아니야."


 잠시 넋을 잃었다. 호기심은 나중에 가지기로 하고 일단 수업을 집중해서 들었다.



*  *  *



 점심시간, 우리 학교는 급식소가 없기 때문에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나야 뭐, 항상 똑같은 도시락을 먹으니 상관없지. 항상 그렇지만, 매일 혼자서 옥상에서 먹는 게 대부분이다. 이곳이야말로 점심을 먹고, 남은시간동안 게임을 하면서 시간 때우기에 알맞은 장소니까. 다른 사람들은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옥상에 올라올 일은 전혀 없었다.


"여기 있었구나."


 응? 서유리? 왜 여기로 왔지? 남자애들에게 둘러싸여서 점심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했다. 그리고 그녀가 들고 온 것은 3단 도시락이다. 너무 많아보이는데? 설마, 내 것까지 싸왔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저, 유리야. 그 도시락, 양이 너무 많아 보이는 거 아니야?"

"응? 아, 나는 원래 이 정도 양을 먹어야되거든. 내가 원래 좀 많이 먹는 체질이야."


 그럼 그렇지. 내가 뭘 생각하는 거냐? 그리고 그것을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하는 것도 참 별나다고 생각했다. 보통 여자애들은 많이 먹는 것을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 걸로 아는데, 유리에게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세상에는 참 별난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도시락 안에 든 밥과 수많은 반찬, 엄청나다. 전체적으로 영양균형이 잡힌 반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건강한 사람의 식단으로는 아주 좋은 조건이기도 하다. 저렇게 먹다가 살이 찌지는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


"유리야. 너 평소에 뭐하고 지내?"

"음, 방과 후에 클로저 일을 하지."


 두 눈을 위로 올리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활짝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바꾼다. 클로저 일이 아니면 방과후에 뭐하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검도연습을 하고, 집에서 가사일을 하지. 그리고 훈련도 게을리 하지 않아."


 호오, 살이 안찌는 이유가 있었군. 클로저 일에 검도 연습을 부지런히 할 뿐만 아니라 집에서 가사 일을 담당하는 것까지 하니까. 꾸준히 운동을 많이 하게 되면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고 영양균형이 잡힌 식단이라면 당연한 거겠지. 그것도 아니면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던가.


"세하 너는, 평소에 뭐하고 지내?"
"게임."

"게임 말고 다른 건 없어?"

"공부하고 게임, 두 가지 외에는 없어."

"그렇구나."


 너무 딱딱하게 대답했나? 의욕이 없는 듯이 두 눈을 내리면서 실눈처럼 보이게 했다. 도시락을 먹는 그녀의 모습을 보다가 다시 게임기를 켜서 집중한다. 더 이상 할 얘기도 없었으니까.


To Be Continued......

2024-10-24 23:23:1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