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세하만의 이야기

CKoCrysiS 2014-12-12 1







'....'




어디선가 들려오는 창문밖의 희미한 새소리.


그 조그만 소리가 아무도 없는 내 방 안에 감미롭게 울려퍼진다.




'부스럭...'




똑같은 아침을 맞이하며 눈을 뜨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보니,


내 온몸은 우두둑 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운 인사를 보내왔다.




"으으...."




몸 상태가 이 지경이 된 이유는,


아마도 새벽까지 신나게 즐긴 게임 덕분일거다.




'툭...'




침대에서 몸을 돌려 일어서려는 순간,


이불을 짚고 있는 내 손으로 차갑고 딱딱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제는 그게 뭔지 감으로도 알 수가 있다.


....바로 게임기다.




"하아암...."




크게 하품을 하며 게임기의 전원을 올렸다.


게임화면 속에서는 어젯밤 하다만 보스전이 그대로 멈추어져 있었다.


이런 경우는 하던 도중에 강제로 전원을 끄거나


어느 정도 건드리지 않고 놔두면 자동으로 이 상태가 된다.


게임을 하던 중에 내가 직접 끈 기억이 없으니,


아마도 게임을 하다가 졸려서 그대로 잠들었나 보다.




"....보스패턴 다 까먹었는데."




처음부터 다시 깨야 한다는 상상을 하니,


갑자기 머리가 굳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깬 건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터벅... 터벅...'




손에 쥔 게임기를 다시 책상위에 내려놓고,


방 밖에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덜컥-'




대충 아침을 때우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지만,


간단한 먹거리는 없고


왠 작은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아들! 엄마 이번에 잠깐 출장가니까, 집 잘 보고 있어! 사랑해♡]




"....또 출장인가."




어렸을 때 우연히 이웃들에게서 알게 되었는데,


우리 엄마가 예전에 차원전쟁인지 뭔지 그것 때문에


아무튼 되게 유명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런지 차츰 내가 성장하자


영웅의 아들이다 뭐다 해서 주변에서 날 마구 귀찮게 했다.


하지만 난 그딴 거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게임이나 하는 게 내가 하고싶은 일이고,


더 이상 귀찮아지고 싶지도 않았다.


처음엔 내게 붙은 불씨를 최대한 꺼보려 노력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 많은 관심의 눈빛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냥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택했고,


그 결과는 게임폐인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프로젝트에 참여가 되었고,


다른 차원에서 온 괴물들을 막는 일명 '클로저' 가 되었다.


물론 내가 의도한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알고보니, 그건 엄마의 소행이었다.




"그냥 아침을 굶어야 하나...?"




아무리 찾아봐도 마땅히 먹을 만한 게 없자,


나는 냉장고에 유일히 있던 우유 한병을


병째로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꿀꺽... 꿀꺽...'




허기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배고픈 느낌은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하던 게임이나 마저 할까...."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등 뒤로 시끄러운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띵동- 띵동-'




"야! 이세하!!"




익숙하면서도 듣기 싫은 목소리.


아침부터 문을 두들기고 벨을 눌러대는 한 사람....




"빨리 일어나 이세하!!"




'쾅쾅쾅!!'




지금 안 열어주면


이제는 문을 부수고 들어올 기세다.




"갑니다, 가."




'끼이익-'




천천히 열어준 문 앞에는,


이번 프로젝트에 같이 참여하고 있는


같은 학교의 신강고등학교 E반, 이슬비였다.




"너, 지금 뭐하고 있어?!"


"아.... 글쎄."




잔뜩 화가 나있는 말투.


아무래도 날 반기는 건 아닌 듯 하다.




"이세하, 약속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도 연락하나 없는 게 말이 돼?!"


"....안 되지."


"그걸 알고도 지금 이러는 거야?"




짜증과 귀찮음이 머리 속에서 마구 뒤섞인다.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 뜨려 봐도,


이 기분은 사라질 기미가 안보인다.




"지금 당장, 옷 갈아입고 나와!"




이슬비는 검지손가락으로 내 방을 가리키며 명령조로 소리쳤다.




"하아.... 네, 네."




별 수 있나?


그저 시키는 대로 대충 따라야지.




"....하여간, 엄마는 이런 거에 왜 날 참가시켜서는."




나는 이런저런 불평을 꺼내면서도


귀차니즘의 극치를 표현하며


느릿느릿 옷을 입었다.




"하아암.... 졸려라."




하지만 이 평온도 잠시,


거실에서 다시 한번 잔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안 나와?!"




'지이익-'




마지막으로 옷의 지퍼를 올리며


방 밖으로 나갔다.




"....이제 됐냐?"


"하아... 빨리 따라와. 늦었어."




이슬비는 깊게 한숨을 쉬며 집 밖으로 나갔다.


나는 깜빡하고 놓고 온 게임기를 급히 주머니 속에 넣고는


재빠르게 이슬비를 따라갔다.




*




'덜컹!'




약속된 소집 장소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너무 평범한 프로젝트 본부.


문 앞에는 대놓고 '검은양' 이라는 문구와 함께 왠 양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이 프로젝트의 이름인 듯 하다.




"야, 근데 왜 우리밖에 없어?'




말없이 먼지쌓인 책상을 닦고있던 이슬비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 늦는 거겠지, 가만히 기다리기나 해."




얼어붙은 말투로 차갑게 대답하는 이슬비.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자존심을 내세울 입장은 아니기에,


그냥 군말없이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는 순간에


다시 한번 문이 열리며


한 여자애가 들어왔다.




"안녀엉~! 너희들이 앞으로 함께 싸울 멤버야?"



"싸운다는 언어를 넣으니, 뭔가 굉장한데."


"헤에.... 그래?"




대충 말을 섞으며 첫 인사를 끝내고 고개를 돌렸지만,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이 익숙함은 뭐지....


라며 계속 고민하던 중,


간신히 생각이 났다.


방금 들어온 이 여자애....


학교에서 나와 같은 반이다.




"....너, 혹시 나랑 같은 반?"


"어라? 그러고보니, 너 익숙한 얼굴이네?"


"역시, 맞네."


"근데.... 이름이 뭐였더라?"




정말 모른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근데 웃긴 건,


나도 저 여자애의 이름을 모른다.


난 애초에 학교에서는 잠만 자는 스타일이라,


친구 따위는 만든 적이 없다.


당연히 이름을 외운 적도 없다.


같은 반 아이라도 말이다.


어떻게 보면 슬퍼 보이지만


나 자신이 괜찮으니까, 딱히 신경쓸 건 아니다.




"그러는 네 이름은 뭔데?"


"나? 난 서유리. 너는?"


"....이세하."


"....에? 이, 이세하?"




갑자기 조금 물러나며 눈을 크게뜨며 바라보는 서유리.




"네, 네가 그 이세하라고?"


"....내가 왜?"


"그럼, 네 어머니가....!"


"아, 잠깐 스톱."


"응?"




지친다.


이 망할 놈의 원치도 않는 관심.


누군가가 내게 엄마의 과거를 들먹이며


말할 때 마다, 조금 짜증이 난다.




"....나 네가 무슨 말하려는지 알거 같거든? 그러니까 그냥 조용히 있어주라.'


"호오.... 뭐, 알았어! 근데, 조용히 있고싶진 않은데에-?"


"....그러시던지."




왠지 약 올리는 듯한 서유리가 말투가 거슬리지만,


의외로 쉽게 그것에 대해선 더이상 말을 꺼내지 않는 모습에


일절 관심을 끄고,


나는 집에서 몰래 가져온 게임기를 꺼내어 실행했다.




*




얼마 안 있어 약속시간에 다다르자,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현 시간부로 여러분을 맡게 될 유니온의 김유정 요원이라고 합니다."




뭐라뭐라 말을 하고있는 건 들렸지만,


게임에 집중 하느라 대충 흘러넘겼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 이슬비라고 합니다."


"아! 저는 서유리라고 해요!"




책임자가 오자마자 인사하는 두 명.


하지만 나는 별로 인사까지 할 마음은 없다.




'꽈악-'




내가 계속 인사를 하지 않고 버티자,


이슬비가 옆에서 몰래 허리를 꼬집었다.




"끄아악... 뭐, 뭐하는 거야 지금...?!"


"시끄럽고 빨리 인사나 해!"




요원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하는 이슬비.


끝까지 말 안하고 버티고 싶지만,


주도권은 이슬비가 잡은 상황이다.




"....아, 뭐. 빨리 끝내주세요. 게임해야 하니까."


"네....?"




'퍼억!!'




"컥!!!"




이번엔 꼬집기가 아닌 강력한 펀치가 날아왔다.




"죄,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조금 모자란 애라서..."


"아, 아뇨.... 괜찮습니다.... 하하하...."




나는 가격당한 배를 간신히 부여잡고 말했다.




"누, 누구 맘대로 날 부족한 놈으로 만드는 거야..."


"가만히 안있어?!"




내 한쪽귀를 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이슬비.


고문당하는 듯한 기분이다.




"아, 아아아-!! 그, 그만-!!"




필사적으로 그만두라고 말해도


듣는 체도 안한다.

 



"저기, 그럼 이제 뭐 해야하는 거에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서유리가 말을 꺼냈다.




"오늘은 인원확인만 하는 거니까, 이제 가셔도 괜찮습니다."


"저기...."


"네?"


"이 프로젝트 열심히 하면 정식요원 될 수 있나요? 연금 쭉 나와요?!"


"그, 그건...."




자신이 바라고 있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서유리.


저거는 뭐 대담하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고....




"제가 총 책임자가 아니라서, 그런 건 잘..."


"치잇.... 좋다 말았네."


"하, 하하하...."




뭔가 살짝 불쌍해 보이는 유니온 요원.


아까부터 억지 웃음만 짓고 있다.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바이바이~"




'덜컹!'




....정말 쿨한 여자다.


저렇게 당당하고 뻔뻔할 수가 있다니.




"야 이세하. 그렇게 정신 팔고 있을 상황이 아닐 텐데~?!"


"으, 으아악!!"




내 조용하고 즐거운 생활이 파탄날 듯한 예감이 든다.


하루 12시간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게임시간이 줄어드는 건 기본이고,


예상을 할 수 없는 과격소녀 서유리의 행동도 보게 될거고,


앞으로는 이슬비의 귀찮은 잔소리도 빠짐없이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불만이 많은 상황인데도


조금만큼은,


아주 조금만큼은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10-24 22:20:5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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