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암흑의 광휘

더세븐스원 2019-03-08 1

어째서?


멍한 기분 속에서 그 한 마디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이러려던게 아니었다. 저렇게 됐어야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너는 그렇게 웃고 있는걸까.


*


미칠 것만 같았다. 자신이 누군가를 그렇게 미워할 수 있다는 것을, 안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연구소 시절에도, 도망쳐다닐 때도, 안나는 늘 자신의 감정을 누를 수 있었다. 세크메트가 있었으니까. 사랑스럽고 소중한, 나의 세크메트. 그 아이만 있다면 안나는 무엇이든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오만이었다. 너무나도 오만했다. 한 번 넘쳐흐르기 시작한 감정은 지금껏 눌려있던 분풀이를 하듯 멈출줄 모르고 쏟아져내렸다.


미워. 세크메트. 나를 두고 나아가는 네가, 너를 나에게서 빼앗아가는 그들이, 나를 이렇게 만든 모든 것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어.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 모든 것을 넘어서, 안나는 세크메트를 사랑했다. 세크메트의 전부가 안나가 아니더라도, 안나의 전부는 세크메트였다. 그렇기에 결심했다. 세크메트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을, 자기 자신을 없애기로.

세크메트의 몸은 원래 안나의 것이었다. 어느 정도 움직이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저 사랑스러운 아이는 분명 자신을 살리려 죽으려들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막연히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안나를 위해 기꺼이 그 것에 뛰어들 것이다. 그러니 그 아이는 분명, 자신을 만나러 올 것이다. 아무리 밀어내고 도망쳐도 바꿀 수 없겠지. 영원한 술래잡기는 없으니까.


모두 예상대로였다. 마주한 그 아이에게 솟아오르는 감정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래도, 계획대로, 그 아이에게.......


죽었어야했는데.


혼란한 시야 가득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이 들어왔다. 다행이다, 안나. 이제 계속 함께할 수 있다. 나는 너의 이빨이니까....

무슨 소릴 하는거야, 세크메트. 아니야. 이런게 아니야. 현실을 떨치려는듯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무언가가 잘못됐다. 무언가가.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셋을 세고, 눈을 뜬다. 시야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았던걸까? 안도의 한숨을 쉬며 둘러본 주위에는, 여전한 전투의 흔적과.. 세크메트.

자신의 손에 있어선 안 될, 세크메트란 이름의 이빨.


"되살아난 것을 축하한다, 안나."


거짓말같은 현실 속에 악마가 웃는 소리가 귀를 파고 들었다. 무릎이 꺾여 풀썩 주저 앉았다. 귀를 막고 싶지만 손의 세크메트를 도저히 놓을 수 없어 멍하니 애쉬를 올려다보았다. 웃고 있다. 세크메트를 죽게 한 자가, 저렇게 즐거운듯이 웃고 있다.


미워.


사그라든줄 알았던 감정이 다시 타올라서.

웃고 있는 애쉬도, 세크메트를 막지 못한 그 동료란 놈들도, 무엇보다, 억누르지 못하고 세크메트를 죽여버린 자신이. 견딜 수 없이 밉고, 미워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도와줘, 세크메트. 다시 한 번 내 손을 잡아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안나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소리도 없이 눈물만을 흘렸다. 쉼없이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그저 그렇게 울고 있었다. 밉디 미운 저 악마에게 덤비려해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슨 짓을 해도 세크메트는 돌아오지 않는데. 이미 미움으로 일을 그르친 자신이, 더욱 미워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걸까.

모르겠다. 세크메트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어색해진 그 몸이,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그 몸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차라리 여기서 그 아이와 함께 잠들고 싶었다. 그런 때에.


"세크메트는 죽지 않았다."


악마가, 속삭였다.


둥둥 떠 웃고 있던 애쉬가 사뿐, 땅에 내려왔다. 산보라도 나온듯 가벼운 걸음으로 안나의 앞까지, 안나가 그 말을 음미할 시간을 주듯 천천히 걸어온 애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안나가 몸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세크메트가 죽었다는 뜻. 확신하면서도, 그 말이 너무도 달콤해서, 홀린듯이 그는 물었다. 그저 농락당할뿐이라도, 지금의 안나에게는, 그 말이 너무나도 절실했기에.


"잠들었을뿐이야. 원래의 자신 속에서. 한 번 생겨난 인격이란 것은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지. 무엇보다, 세크메트는 몸을 얻어서 인격이 생긴게 아니니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뒤집는듯이, 애쉬는 말했다. 그의 말을 믿어도 되는걸까? 하지만, 지금에 와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이 밉다. 자기 자신조차도. 일어설 이유따위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거짓이어도, 그 희망이 있다면.


"내게로 와라, 안나. 내 곁에서, 네 미움을 쏟아내. 세크메트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살아갈 수 있어.


*


검은색도, 붉은 색도 아닌, 새하얀 은발. 아니, 백발인가? 아무래도 좋았다. 세크메트와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차원종의 무기라면, 인간보다는 차원종에 가까운 쪽이 세크메트가 돌아오기 편할 것이다.


"잘 어울리는군, 안나."


"**, 애쉬. 그리고 날 안나라고 부르지 마."


후후, 하고 예의 그 여유로운 웃음을 짓는 그를 외면하며, 되새기듯 말한다.


"나는 세트. 세트야."


누구 하나의 이름이 아니야. 우리는 둘이서 하나인 세트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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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양늑개는 용 관련 스토리에서 암광 개연성이 나오는데 냥터지기는 부족한 것 같아서 여러모로 상상을 해보게 되는데요. 나머지는 몰라도 루나는 정말.. 왜 그렇게 된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강의 듣다 힘들어서 아무말 끄적인건데 쪽팔림이 도를 넘으면 지워집니다. 쓸 마음 들면 다른 캐 것도 나올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망겜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아이들은 다들 천사입니다. 모두 좋아히니 댓글이나 감상은 감사하지만 캐릭터 혐오 발언은 하지 말아주세요!


2024-10-24 23:22:4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