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niorum atque Vale-꿈, 그리고 이별 (end)
건삼군 2019-02-21 0
추억이 흩어져 사라지자, 슬비는 애석하다는 표정으로 내 손을 붙잡고 교실을, 학교를 나와 나를 그동안 잊고있었던 추억의 장소들로 데리고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검은양 팀의 모두가 함께였던 대기실.
평화로운 하늘을 되찾은 강남.
늑대개 팀과 처음으로 공동전선을 펼친 국제공항.
그리고 나와 슬비가 시간을 함께했던 장소들.
그렇게 많고 많은 장소들을 돌아 마지막에 다다른 곳은 어느 한적한 다리였다. 작은 강이 흐르는 위에 위치한 다리는, 낡고 허름져 보이지만 하늘 끝으로 지고있는 노을이 한눈에 보이는 장소였고, 동시에 내가 슬비에게 고백했었던 그 장소였다.
이 곳에 다다르자, 아침에는 맑아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푸른 하늘이 어느샌가 붉은 노을로 변해 있었다.
붉은 노을은 아름다웠지만, 내게 있어서는 아름답기 보다는 두려웠다. 너무나도 붉어서, 마치 하루의 끝을 뜻하는 핏빛 같아서. 그랬기에 나는 잡고있던 슬비의 손을 보다 더 강하게 쥐며 그녀를 멈춰 세웠다.
그러자 슬비는 다리 한가운데에서 멈춰선 날 바라보며 슬픈 미소를 짓고는, 이내 강물에 반사되는 노을을 등지며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맺어졌지. 세하 네가 수줍은 모습으로 나한테 고백했었던 일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 정말이지, ‘결혼하자!’ 라니, 너무 오버했었던거 아니니? 물론 싫진 않았었지만.”
“…”
웃으며 그렇게 예전의 일을 말하는 슬비에게 침묵으로 답하자, 슬비는 이내 아련한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 사귄 뒤에도 우리는 서로 다투고, 웃고, 슬퍼하고, 그렇지만 모든 순간들을 함께 보냈었지.”
“…그만해.”
슬비의 말에 감정을 억누르며 그렇게 대답하지, 순간 정적이 사라지며 여러 목소리들이 나를 불러오듯이 귓가에 맴돌고, 어디선가 몇 번 맡아봤던 듯한 약품 냄새가 순간 내 코를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전부 무시하였다.
그러자 슬비는 그런 나를 감싸 안으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잊혀지더라도, 추억은 언제까지나 네 곁에 남을거야.”
그렇게 내 귓가에 속삭인 슬비는, 이내 내 품에서 떨어지며 다리의 반대편을 향해 조금씩 뒷걸음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는 곧바로 멀이지는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아이처럼 매달렸다.
“…같이가자! 제발…”
“…미안해. 네가 가야할 길은 이쪽이 아니야. 세하 너는 돌아가야지. 모두의 곁으로.”
“하지만 그 모두들 사이에 넌 없을거잖아!”
“아니야. 난 늘 네 곁에 있을거야. 기억속에서, 혹은 추억속에서는 난 언제나 너와 함께일테니까. 그러니까… 이젠 꿈에서 그만 깨야지. 세하야.”
“…”
추억이 함께이면 뭐하는가. 만약 내가 이 곳에서 그녀의 손을 놓는다면 난 다시는 그녀의 모습, 손길, 목소리 조차 느끼지 못할텐데.
이기적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하늘이 내 이기심을 눈감아주기를 바라며 나는 그녀를 절대로 놓치지 않게 끌어 안은 채로, 그저 눈물이 섞인 목소리로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제발… 제발… 그냥… 이대로… 같이…”
목이 막히고 숨이 가빠지며 말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에게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슬비는, 그런 나를 부드럽게 떨어뜨리고는 다리의 끝자락으로 멀어져만 갔다.
멀어지는 그녀를 향해 ** 듯이 울부짖으며 손을 뻗어보았지만, 내 손은 닿지 않았다.
그렇게 울부짖으며 자신을 따라오려고 하는 나를 본 그녀는, 그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슬픈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작별의 인사를 말했다.
“기다리고 있을게. 그러니까…”
-안녕, 세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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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두 눈 사이로 빛이 밝게 비춰온다. 동시에 시끄러운 사람들의 목소리와 자극적인 약품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여러 사람들이 내 주위에서 손을 붙잡고 내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렇게 눈을 뜨자, 새하얀 천장이 마치 일렁이듯이 흐려져 보였다. 그리고 수 초가 지나서야, 나는 그것이 내 눈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눈에 고인 눈물은 내가 일어남과 동시에 뺨을 타고 새하얀 병원 이불을 적시며 떨어졌고, 동시에 제이 아저씨, 유리, 그리고 테인이가 나를 껴안으며 흐느꼈다.
“동생, 걱정했잖아…!”
“세하야….!”
“형…!”
그렇게 나를 껴안으며 흐느끼는 모두를 보자 미안함, 그리고 안도감이 내 마음을 적셨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한명의 모습이 내 마음을 비수처럼 찔렀다. 그러자 다들 내가 누구를 찾고있는지 깨달았는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머뭇거렸다.
“…저기, 동생. 대장은….”
가장 먼저 굳은 표정으로 사실을 말하려고 하신 아저씨지만, 나는 그런 아저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하였고, 그리고 눈물이 다시한번 눈가에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알아요.”
내 손은, 이제 다시는 그녀에게 닿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