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Necrorize-Chapter 4

바스케즈 2019-02-16 0

이상혁 중사의 희생을 슬퍼할 틈도 없이 격납실로 진입한 요원들은 메인 컴퓨터에 다시 접속을 시도했다.


하지만 메인 컴퓨터의 고집을 꺾기란 쉽지 않았다.


"비인가자의 사용이 제한되어있습니다! 접근을 허가할 수 없습니다."


"쳇! 호프만 이 자식! 정말 열 받게 하는군!"


"김도윤 씨와 재리의 해킹 실력도 안 통한다면 어찌 할 도리가 없는데...."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컴퓨터군요. 차가워요."


"혹시 발할라라는 단어에 뭔가 힌트가 있는게 아닐까?"


"발할라라.... 발할라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그 Valhalla가 맞다면 뭔가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더 이상 희생을 내서는 안돼. 죽으면 안된다고!"


그 때였다.


"콜록! 콜록!"


"희준아! 무슨 일이야?!"


"중대장님! 뜨겁습니다! 몸이... 뜨겁습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야, 김희준! 정신 차려!"


포인트-맨2 포지션을 맡고 있었던 김희준 병장이 기침을 동반한 열 증세를 보였다.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희준아! 정신 차려! 너 전역 얼마 안 남았잖아!"


"은이 씨, 잠깐 비켜봐."


"제이 씨....."


제이는 급히 김희준 병장의 방탄 조끼와 전투복 상의를 벗겼다.


"이런.... 맙소사!"


김희준 병장의 온몸에는 재리가 말했던대로 푸른색 반점들이 군데군데 나있었다. 


"감염된 상태야. 아주 심각해. 이미 늦었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요. 그럴 리가 없다고요."


송은이 대위는 애써 현실을 부정했다. 하지만 제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은이 씨, 여기와서 좀 보라고. 김희준 병장이 쓴 마스크는 이미 파손된 상태야. 자칫 잘못했다가는 아까 재리가 브릿지에 걸린 제어 시스템을 해제하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에 좀비가 된 김희준 병장에 의해 우리 모두 전멸할 뻔했어."


"왜 진작 말을 하지 않았던 거야?! 재리가 한 말 못 들었어?! 마스크가 파손된 것 같으면 지체하지말고 이탈하라고 했잖아?!"


"중대장님, 저는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습니다. 치사하게 중대장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을 뒤로하고 먼저 도망칠 수는 없었습니다."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야?! 다 무슨 소용이냐고?! 살아야 의미가 있지, 이 바보야!"


"멋지게 죽고 싶습니다. 중대장님, 늦기 전에 부탁드립니다. 어서....."


김희준 병장은 점점 좀비처럼 변하고 있었다.


"진웅아."


"예, 하사 김진웅!"


"화염방사기 좀 빌려줄래?"


송은이 대위는 울음이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듯한 얼굴로 김진웅 하사에게 화염 방사기 인계를 명령했다.


김진웅 하사는 말 없이 송은이 대위에게 화염방사기를 넘겼고, 송은이 대위는 바닥에 쓰러진 김희준 병장을 향해 네이팜 분사 트리거를 당겼다.


치이이이이이익!


김희준 병장에게 네이팜을 끼얹은 송은이 대위는 차가운 말투로 일행들에게 물러서라고 지시한다.


"물러서세요. 위험하니까."


송은이 대위는 생존한 일행들이 사선상에서 물러난 것을 확인하고나서 점화 트리거를 당겼다.


송은이 대위가 점화 트리거를 당기자, 푸른색 화염이 치솟았다.


화르르르륵!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김희준 병장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김희준 병장이 괴롭게 죽어가는 모습을 본 송은이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오열했다.


"희준아, 미안해! 미안해, 희준아!"


"중대장님! 중대장님! 진정 하십시오!"


"내가 희준이를 죽였어..... 내가 희준이를 죽였다고..... 내가 희준이를 잿더미로 만들었다고! 이 손으로!"


"저도 슬퍼서 미칠 것 같습니다! 형동생같았던 희준이 떠나보내니 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중대장님이 먼저 눈물을 보이시면 어떡합니까!? 중대장님은 지휘관이십니다! 지휘관이 흔들리면, 저희도 흔들립니다! 어서 눈물을 멈추십시오!"


"지휘관이기 이전에 나도 사람이야! 희준이가 나를 찾아와서 전역 연기 신청서 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 줄 모르지?! 너나 나처럼 군대를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 희준이같은 용사들을 더이상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설득당하더라. 내가 설득해야 되는데 내가 설득당해버렸다고! 희준이가 전역할 때 되니까 나는 '벌써?'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전역하게 되면 그 뒤로 연락 안 된 얘들 많았잖아. 너도 알잖아, 윤성아? 하지만 난 마음 한 구석에 희준이를 그대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더라! 희준이는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말년 병장들처럼 몰래 점호 빠지거나, 몰래 주머니에 손 넣고 다니거나, 몰래 머리 기르고 다니거나, 허가 받지 않은 전자 제품을 반입해서 몰래 사용하던 얘가 아니었어. 오히려 간부같이 책임감 있고, 모범적이고, 우등생이었어! 그런 얘가 자진해서 전역 연기 신청서를 내니까 내가 오히려 감동했어!"


김희준 병장은 여느 전역 대기자 답지 않은 모범적인 병사였다.


대학교 경찰학과를 다니다가 특경대 모집병을 신청해서 육군 훈련소에서 6주 교육 수료후, 충북 영동의 육군 종합 행정학교에서 헌병 병과 후반기 교육을 추가로 더 받은 뒤에 송은이가 근무하고 있던 서울 경복궁의 수도 방위 사령부 헌병단 특수 경찰 대대에 전출을 명받아 모범적인 군생활을 이어나갔다. 운동도 잘하고, 사격이나 레펠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기에 송은이나 여러 간부들로부터 부사관 임관을 몇 번이나 제의를 받았었다. 하지만 김희준 병장은 통제가 따르는 세상인 군대 세계를 벗어나 사회로 나가서 조용하게 민생 치안과 여성 및 청소년 보호 활동에 힘쓰는 지방 경찰에 마음을 두고 있었기에 번번히 거절했다. 그렇게 군 전역일이 조금씩 다가올 무렵, 김희준 병장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원래 계획하고 있던 지방 경찰직을 맡으면서 조용히 사는 것보다 군에 있을 때의 순간이 훨씬 값지다는 것을 말이다. 김희준 병장은 해외 파병 자격으로 램스키퍼를 타고 러시아로 떠나려는 송은이 대위를 만나 조금 더 남아있겠다는 의사를 표출하기 위해 파병 3일 전에 중대 인사계에게 부탁해서 전역 연기 신청서 양식을 받아 신청서를 작성하고 중대장실에서 파병 준비를 위해 군장을 싸고 있던 송은이를 만나 전역 신청서를 냈다. 김희준 병장의 의지에 감동한 송은이 대위는 파병 인원에 김희준 병장을 넣었고, 김희준 병장은 러시아와 미국과 독일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송은이 대위와 함께했다. 하지만 이번 작전 도중에 감시탑 상층부로 날라든 탄환이 안면부를 스치고 지나가 흠집이 나게 되면서 그 틈으로 좀비들이 뿜어대는 잠식 포자가 스며들게 되었고, 결국 완전히 좀비화가 진행 되기 전에 송은이 대위 손에 의해 사살되고 말았다.


"정말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친구로군. 정말로...."


"멋진 남자네요, 송은이 대위님의 부하."


"나 같았으면 이 지긋지긋한 일을 당장에 때려쳤을텐데 말이야. 정말 좋은 부하를 뒀군."


그 때였다.


한동안 미동도 안했던 메인 컴퓨터가 갑자기 켜지면서 여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비인가자의 접속을 허가합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컴퓨터 가까이 서있다가 컴퓨터의 기습적인 질문에 화들짝 놀란 제이가 반문했다. 


"넌 뭐지?" 


"저는 이 연구 시설의 인공지능인 알리사입니다. 저는 침입자 여러분들의 행동을 지금까지 쭉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의 원래 주인이신 호프만님의 명령대로 한동안은 침입자 여러분들이 가는 곳마다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르른 생체 병기들을 풀어 놓거나, 방어 무기 시스템을 가동하여 침입자 여러분들을 배제하려 했으나, 방금의 행동을 보고나서 의문이 생겨 침입자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되었습니다. 궁금.... 주인님은 피조물인 저를 보고는 절대 궁금해하지 말고 오로지 주인인 자신의 명령만 따르라고 했지만....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지요? 실험에 대한 연구 자료가 아니었나요?"


그러자 제이가 답했다.


"아니, 알리사. 우리는 이 시설을 파괴하려고 왔어. 연구 자료와 저 빌어먹을 괴물들까지 몽땅 다."


"주인님이 남기신 마지막 명령. 그것은 이 시설의 연구 자료와 샘플들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주인님의 명령대로 지난 3년간 저는 이 시설에 서식하는 생체 병기들이 자라고, 성장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입력시켰습니다. 그렇게 쌓인 제 데이터는 이미 제타바이트 수준을 넘긴 상황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가지 의문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랑.... 그것은 무엇인가요? 찾을 수가 없어요. 사랑이 무엇이죠?"


그러자 볼프강이 신경질을 내며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리사의 질문에 답했다.


"사랑이라고? 지금 너의 그 잘나신 주인님의 명령대로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게 너한테는 곧 사랑이자 복종이 아니고 뭐야?"


"그건 오로지 입력된 명령에 의해서 벌인 단순한 행동일 뿐입니다. 저는 명령받은 일을 수행합니다. 침입자를 배제하고, 이 지하 시설을 보호하고, 이 시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하는 일을 맡고 있죠. 하지만 여러분이라면 답을 알고 있을 듯 하네요. 사랑이란 무엇이죠? 가르쳐주세요."


참고있던 분노가 폭발한 제이가 알리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너가 이 시설과 함께 이 세계에서 영원히 사라져주는 것. 그것이 세계를 위한 평화이고, 믿어준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야.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그것만으로 설명이 되긴 어렵군요. 제가 납득할 수 있는 답을 내놓을 때까지 절대로 여러분을 이 방에서 내보내지 않도록... 아니, 이 시설에서 영영 나가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코드: 락다운 발동!"


2024-10-24 23:22:2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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