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소녀는 공주가 되길 꿈꾼다. - 프롤로그
루시터 2019-02-10 7
용사님을 처음 본 건 제가 아홉 살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할머니의 손을 잡은 채로 흰옷을 입은 아저씨들을 따라가고 있었어요. 저와 할머니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웃들과 함께 말이죠. 그러고 보면 그때 당시 주변에서는 들려오는 울음소리 때문에 덩달아 눈물을 글썽거렸던 게 생각나네요. 지금과는 다르게 그때의 저는 굉장히 겁이 많았거든요. 아, 실수. 조금 전의 이야기는 잊어주세요. 중요한 건 제가 울었다는 사실이 아니니까요.
“할머니, 저 사람들은 누구야?”
흰옷을 입은 아저씨들을 따라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을 때, 저는 다른 무리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가는 우리와는 다르게 위험한 곳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지요.
“애야, 저 사람들은 이곳을 구하러 온 클로저들이란다.”
“클로저가 뭐야?”
저의 물음에 할머니는 싱긋 웃어주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저에게 있어서 정말로 안심되는 미소였어요. 할머니는 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어요.
“우리 꼬마 아가씨의 표현대로 말하면 용사님이라고 할까.”
용사님! 저는 그때 정말로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꿈에 그리던 용사님이 눈앞에 있었으니까요! 저는 당장이라도 반대쪽으로 달려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제가 가버린다면 할머니를 지킬 사람이 없거든요. 용사님을 보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죠.
“할머니, 할머니. 저 사람들 중에 누가 용사님이야? 어떤 사람이 공주님을 구하는 용사님이야?”
“그건 이 할미도 잘 모르겠구나. 어쩌면 저기 있는 모두가 용사님일 수도 있겠지.”
“치이, 하지만 용사님은 여러 명일 수 없는걸. 무슨 책을 읽든 공주님을 구하는 용사는 단 한 명이었어.”
“후후, 그렇구나.”
할머니는 그저 웃기만 하셨습니다. 저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시지는 않으셨지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용사님으로 생각되는 사람을 뚫어져라 보는 것뿐이었어요.
“책에서 나오는 용사님은 모두 남자였어···.”
그때 당시 어린 제가 확실하게 알고 있던 몇 안 되는 사실 중 하나는, 책에 나오는 용사님은 모두 남자라는 점과 칼을 가지고 있다는 거였죠. 그래서 저는 용사님의 일행들 중 한 사람만을 쳐다봤습니다.
검은 머리의 용사님이었어요. 손에 칼을 들고 계시는 용사님이었죠. 저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저 사람이 저의 용사님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우리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저는 용사님에게 구해지는 공주님이 될 수 없었어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제 두 눈으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용사님을 바라보았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면서요. 저는 가슴 속에 분명히 담아 두었어요. 검은 머리를, 검은 눈동자를, 심각한 상황에 마주한 듯 찌푸린 얼굴과 작게나마 들려오는 화가 난 목소리까지도요.
그리고 시간 흘러 조금씩 현실에 대해 알아가고 용사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을 때, 저는 2년 전에 보았던 용사님을 오늘 다시 한번 보게 되었어요.
오늘은 비가 아주 많이 내리는 날이었고, 용사님은 비를 맞고 있는 저에게로 다가와 주었죠. 저는 용사님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어요. 지금처럼,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로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지요.
아, 하지만 용사님에게는 제가 기뻐했다는 건 비밀이에요. 왜냐하면 저도 이제는 동화와 현실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는 용사님을 만났다고 해서 기뻐하면 안 됩니다. 물론 이건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죠. 그도 그럴 게, 마음과는 다르게 제 몸은 저에게 협력하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실례라는 것을 알지만 저는 제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고 용사님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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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팬픽의 시점은 본작의 주인공들이 아닌, 본작에 등장하지 않는 허구의 캐릭터임을 알려드립니다.
시점은 주인공인 소녀의 시점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대략 중편 정도의 길이가 될 듯 합니다.
또한 위의 팬픽과 더불어 동시에 쓰고 있는 [세하의 집에 2분대의 아이들이 찾아온다면] [루나는 오늘도 고백을 연습한다]
또한 중도 포기가 아닌 계속 쓸 예정이니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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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팬픽은 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런 공지를 올리는 것도 부끄럽지만요.. o_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