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이야기 (이슬비 편#2)
T에리아T 2019-02-07 3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차원종의 침략이 눈에 띄도록 횟수가 줄어들었다.
평화롭게 보이는 도시. 그러나 여전히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화약과 분진들로 인해 하늘은 아직 해가 화창하게 뜰 시간임에도 자욱한 먹구름으로 가려져 있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병원 옥상으로 올라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울적해지는 하늘.
하지만 그런 감상은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통. 통. 통.
의자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던 중에 무언가 튕기는 소리가 들려오자, 자연스럽게 고개가 그쪽으로 향했다.
데구루루 굴러오는 고무공. 공이 굴러오면서 ‘툭’ 발끝을 치고는 멈추었다.
그 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달려오는 어린 아이.
나이는 대충 보아도 유치원생 정도로 보였다.
발끝에 굴러온 공을 집어서는 남자 아이를 향해 상냥하게 웃으며 공을 건네 주었다.
“자. 여기.”
“감사합니다.”
남자 아이는 엉거주춤 하며, 어색하게 허리를 숙여 고맙다고 인사를 해오자, 살며시 웃어보였다.
“옥상에서 공 가지고 놀면 위험해.”
자칫 하다가 공을 가지고 놀다가 공이 난간 밖에 떨어져, 그것을 잡겠다고 하다 떨어 질 수도 있었기에 주의를 주었다.
아이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를 못 한 것일까?
어째서인지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왜 그러니?”
“누나. 누나 클로저 맞죠?”
“응. 그런데?”
“티비에서 봤어요. 그 커다란 차원종을 무찌르는.”
“아....”
옛날에 유니온에서 클로저들의 홍보 영상을 만든다고 빛나 언니가 계발한 훈련 프로그램에서 녹화한 것을 본 모양이다.
“나도 크면 클로저가 될 거에요!”
“....”
어린 아이에게 있어 클로저는 만화나 게임에 나오는 영웅 같아 보일 것이다.
평소 같으면 ‘그래. 꼭 열심히 하면 클로저가 될 거야.’ 했겠지만. 클로저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은 위상력이 각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위상력이 각성 되었다고 하여 클로저가 되는 것을 되도록이면 말렸을 것이다.
클로저에 대한 많은 암흑을 본 내게 있어. 클로저라는 것이 그리 좋은 것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어른들의 더러움으로 인해 생겨진 암흑.
일부 어른들로 인한 것도 있지만. 동료를 잃은 내게 있어 클로저라는 것이 저주스럽게 느껴져 왔다.
차원종 에게 부모님을 잃었을 때. 차원종을 죽일 힘을 갈망하였고, 그 때 위상력이 각성 되었다.
그 이후. 차원종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으며, 사람들을 지키는 것에 자긍심을 가졌다.
이제는 증오스럽기만 한 클로저라는 존재.
내게 있어 너무나도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나의 부모님.
처음으로 생긴 친구.
믿을 수 있는 어른.
순수했던 동생.
그리고 내가 사랑한 사람.
내 주위에 남은 것이 무엇이지?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왜? 왜? 왜? 왜?
의문만이 머릿속에 가득 채워져 갔다.
“누나?”
가득 채운 물음에 정신을 깨운 것은 남자 아이의 부름이었다.
“어? 응. 그래. 열심히 하면 꼭 될 수 있을 거야.”
방금 까지 나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아이를 위해서라도 현실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것과는 달리.
나는 아이의 꿈을 깨기 싫어 평소와 같은 대답을 하였다.
“응!”
남자 아이는 너무나도 순진무구하고 밝은 표정을 하며 힘차게 대답했다.
그 대답이 마치 심장에 비수가 박힌 것처럼 내 마음을 후볐다.
“건우야! 어디 있어!”
“아. 엄마다!”
옥상의 입구에 한 여성이 들어와서는 소리쳤고. 남자 아이는 그녀를 보고 엄마라 소리치며 달려갔다.
아이의 엄마는 아들의 손을 잡고는 화사하게 웃으며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우리며 대화를 나누면서 옥상을 내려갔고. 그 뒤를 이어 유정 언니가 올라왔다.
“여기 있었구나....”
“유정 언.... 국장님.”
유정 언니는 자신을 부르는 내 호칭에 한 숨을 쉬고는 내가 앉아있는 의자의 옆에 앉았다.
“병실에서 쉬지. 왜 여기 올라와 있어.”
“그냥. 답답해서요.”
“....저. 슬비야.”
“네.”
“미안해.”
무엇을 사과하는 것인지 몰랐다. 갑자기 내게 사과를 왜 하는 건지 의문을 가질 때.
주륵.
눈가에서 나와 볼을 타고 무언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어?”
흐르는 눈물.
그것을 서둘러 닦아 냈지만. 연이어 눈물이 흘러 내렸고. 계속 해서 닦아 냈지만. 결국에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
하염없이 우는 슬비를 옆에서 지켜보는 김유정 국장은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아이를 지키는 것이 어른의 의무라 말했던 자신을 참으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른이 되어서 아이들에게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운 것이 아닐까.
그것이 꼭 자기 탓 같게 느껴져 왔고. 슬비에게 어떠한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 슬비를 이대로 작전에 배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상층부에서 새로운 작전이 세워지면서 슬비에게 작전 통보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일단은 실험을 하여 확인 후.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로 결정 되었지만.
가능성은 꽤나 희박한 실험이었다.
안 될 확률이 높은 실험이라 작전 승인은 불가라 판정이 내려지겠지만.
그래도 이 내용을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가....’
이 작전에는 그 밖에 많은 내용이 숨겨져 있었다.
정보 통제가 이루어져 있기에 그 사실이 세어나갈 일은 없겠지만.
나는 슬비가 이 실험에 통과가 되지 않기를 신에게 빌었다.
*
유정 언니는 내가 울음이 어느 정도 그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는 스스로 너무나도 무책임한 어른이라며, 내게 사과를 하였고.
나는 그런 언니를 위로하였다.
누군가는 해야 되었을 일이다. 단지 내가 그 일을 하게 되었을 뿐.
언니 탓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니 이번에는 언니가 울음을 터트렸다.
이번에는 입장이 반대가 되어서는 내가 언니의 울음을 달래고 있었고. 히끅 거리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난 뒤. 언니는 내게서 유니온과 각국 정부에서 새로운 계획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다.
“할게요.”
“슬비야....”
내용은 이러했다.
언노운이 처치가 되었지만. 새로운 언노운이 출현하였다.
제2의 언노운. 유니온은 그에게 정식 명칭을 붙였다.
심연의 왕. ‘마왕’ 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명칭이 바뀐 차원종.
그를 처치하였지만. 원반은 부시지 못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 원반을 부실만한 위상력이 부족했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원반을 부실만한 힘을 어떻게 발휘 하냐는 고민을 하였고. 그 결과가 지고의 원반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과거에 데이비드가 지고의 원반을 흡수하였다.
과거의 전례가 있으니. 지고의 원반의 힘을 강제로 흡수하면 원반을 부술 수 있는 힘을 얻을 거라 생각하였다.
허나 데이비드가 지고의 원반을 흡수하면서 이성을 상실했다.
힘겨운 싸움 끝에 그를 처리하고. 지고의 원반을 회수 한 뒤에. 유니온 지부 어딘가의 최하층에 철저한 보안 아래 보관되어 왔다.
원반을 흡수하면서 데이비드가 이성을 잃었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생각한 지휘부는. 과거 아스타로트와의 싸움에서 제 3위상력을 가졌던 검은양 팀이 후보에 올랐다.
그 생존자중 유일하게 남은 나에게 실험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졌고. 유정 언니는 내 의사를 물어왔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는 그 실험에 참여 하겠다고 대답하자. 유정 언니는 말리기 시작했다.
“슬비야. 다른 사람들은 내가 설득할게. 그러니까.”
“아니요. 언니. 가능성이 있다면. 해봐야죠.”
지고의 원반의 힘이라면. 분명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나는 이 실험에 참여 하고 싶었다.
“슬비야. 잘 못 하면 데이비드 처럼 의식이 삼켜질 수도 있어. 최악에는 네가....”
언니는 뒷말을 삼켰다.
의식이 삼켜진 데이비드는 자신을 심판자라 부르며 인간을 말살 하겠다는 의지를 가졌다.
아직까지 그것이 지고의 원반이 가진 의지인지는 명확한 사실은 모른다.
언니는 내가 변하여, 데이비드 처럼 사람들을 헤칠까봐 걱정 되는 것이다.
“그래도 실험을 해볼만 하다고 생각 되요.”
가능성은 있다. 도전해볼 만하다.
“하지만....”
“하고 싶어요. 하게 해주세요.”
*
[실험 시작 할게요.]
유니온 신서울 지부 지하.
지고의 원방에 대한 것은 꽤나 기밀 정보였기에. 일부 관계자밖에 모른다.
유정 언니가 국장이긴 했지만. 지고의 원반에 대한 위치는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 하였다.
지하에 마련된 연구 시설. 투명한 케이스 안에는 상당히 고대 유물로 보이는 물건이 들어 있었다.
위상력의 근원지. 더 하여 차원 전쟁의 계기가 된 물건.
과거 데이비드 에게 수거한 지고의 원반이 다시 한 번 내 눈 앞에 있었다.
[슬비야. 지금이라도....]
스피커 안에서 유정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조금 고개를 위쪽으로 올렸다.
천장 부근에 이쪽을 내려다보게끔 만들어진 방. 실험을 위한 제어실 안에 유정 언니와. 트레이너씨. 그리고 연구소장으로 승진한 빛나 언니를 포함하여 여러 사람들이 이 실험을 지켜보기 위해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안면이 있는 A급 클로저들이 보였다.
아마 내가 데이비드 처럼 변했을 때를 대비한 사살 명령을 받았을 거라는 것은 쉽게 추리 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언니.”
지고의 원반이 담긴 케이스에 손을 얹었다.
실험이 실패 하여 데이비드 처럼 변하여 저들 손에 죽는다고 해도 괜찮았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고민했다. 그러나 참여하게 된 이유.
그것은 이렇게 마음이 아플 바에 차라리 죽고 싶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너무나도 지친 마음. 더 이상 괴로워지기 싫었다.
그럼에도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강제로 일으켰다.
그리고는 힘을 갈망했다.
세계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은 이제 내 안에 없었다.
내게 있어 살아가는 이유는 복수.
모두를 고통스럽게 한 언노운에 대한 복수.
아니. 시작은 이 지고의 원반이 문제였다.
이것만 발견 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시작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지나 버렸다.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이 있다면. 이 지고의 원반을 부셔 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지고의 원반을 이용하여야 했기에 그 복수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참았다.
[이슬비 요원. 케이스를 개방하면. 원반의 힘을 강제로 각성시킬 거예요. 그러면 그 힘을 흡수 하시면 되요.]
“네.”
처음 계획은 원반을 몸 내부에 넣는 것으로 계획하였지만. 일단은 지고의 원반안에서 흘러나오는 힘을 흡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테스트 확인 후에 결정하자고 유정 언니와 트레이너씨가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하였다.
슈우우웅.
지고의 원반을 보관하던 케이스가 열리고. 나는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촉감이나 느껴지는 온도는 아무리 봐도 평범한 돌 같았다.
[그럼. 시작할게요.]
빛나 언니의 말이 떨어지는 동시에 지고의 원반 아래에는 정체 모를 회로도 같은 것들이 나타났고. 이내 원반에서는 위상력이 천천히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곧 거칠게 어마한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윽....”
뿜어져 나오는 위상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내가 담을 수 있는 위상력의 허용치가 넘기 시작했다.
[멈춰! 슬비야!]
여기 저기 혈관이 터져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유정 언니가 내 모습을 보고는 다급하게 소리치며 말렸지만. 원반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갈망한 강대한 힘.
그가 어떤 기분으로 이 힘을 얻으려고 하는지 이해하였다.
[시스템 종료 할게요!]
빛나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직. 더. 멈춰서는 안 돼.
그러나 제어실에서 지고의 원반을 각성 시키는 것을 멈추었는지. 뿜어져 나오는 위상력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조금 더!’
이렇게 끝낼 수 없었다.
좀 더. 많은 힘이 필요했다.
내게 힘을. 복수 할 수 있는 힘을.
[그것이 네 의지인가?]
처음 들어 보는 목소리. 남자의 목소리. 여자의 목소리.
그것이 정확하게 구분 되지 않을 정도로 다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의 정체를. 나는 본능적으로 지고의 원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 복수 할 거야.’
[무엇을 위해 복수 하는 거지? 너도 데이비드 처럼 모든 인간에 대한 복수를 원하는 건가?]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건. 언노운! 심층 깊은 곳에 있다는 원반을 부수는 거야!’
[심연과 그 수호자를 말하는 거군.]
‘몰라! 그런 것들이 어떤 이름인지 관심 없어! 나는 복수 할 거야!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빼앗은 그 녀석에게!’
함께 웃고 울던 사람들. 그 모든 것을 빼앗은 녀석이 원망스러웠다.
차원종에게 복수만이 내 삶이라 생각했던 내게. 친구들이 생겼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생겼으며, 사랑도 하였다.
행복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내 삶을 변화시켜준 그들. 그리고 내가 사랑한 세하를 위해 또 다시 복수심을 가득 불태웠다.
[나와 심연의 힘은 대등하다. 심연을 부수려고 하면 나 또한 부셔지고 만다. 나는 세계를 위한 자. 심연은 세계를 멸하는 자. 그것이 세계의 순리. 우리의 존재 유무. 너무 많은 각성자로 인해 나는 차원 문을 열었으며, 너무 많은 힘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심연의 힘을 이용하였다.]
의외의 사실에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차원 전쟁의 발생 원인이 원반의 힘을 끌어내다 발생 한 것이 아닌. 원반이 의지를 가지고 행한 일이라니.
그 말이 나의 복수심을 더욱 끌어 올렸다.
‘이 모든 게 너 때문이라고?’
[그렇다.]
너무나도 담담하게 인정하는 지고의 원반의 말에 소리쳤다.
“웃기지 마!”
점차 꺼지는 불꽃. 사그라들기 시작하던 위상력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내게서 가족을 빼앗고. 친구를 빼앗았으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빼앗아 놓고는 뭐가 이렇게 뻔뻔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위상력은 주변을 삼키기 시작하며 실험실 여기저기에 그 위력의 여파가 전해지면서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복수 할 거야! 그 녀석에! 그리고 너한테도 복수 할 거야!”
[그건 안 된다. 나는 세계를 위한 자. 많은 각성자로 인해. 데이비드한테 힘을 빌려 주었지만. 너한테는 빌려 줄 수 없다.]
내가 하려는 것은 복수. 그 과정에서 심연의 원반이라고 불리는 녀석을 부시면 지고의 원반이 원하던 균형이 깨지기에 내게 힘을 빌려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시끄러! 누가 이런 세계 만들어 달래? 누구도 이런 세계 원치 않았어!”
꿈을 잃은 소녀가 있었다.
힘을 가졌단 이유로 어린 시절 싸워온 아이는 어른이 되어 몸이 망가졌다.
싸우는 것이 사명이라는 불쌍한 아이가 있었다.
원치 않는 힘으로 인해 많은 기대감을 받은 소년은 그 부담감에 현실에서 도망쳤다.
“누구 하나 이런 세상 원하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책임지고 내게 그 자들에게 복수 할 수 있는 힘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