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파이] 키스는 좋아하는 사람끼리
루이벨라 2019-01-08 7
※ 지인 분의 연성 교환 볼프파이를 보고 삘(FEEL)받아서 쓰는 짤막한 글
※ 사냥꾼의 밤 챕터2 중반부 시점
고된 임무가 계속 되던 와중에, 가뭄 끝에 단비와 같은 짤막한 휴식 시간이 볼프강에게 내려졌다. 이놈의 차원종 숫자는 도저히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힘이 아닌 책의 힘을 빌리고 있기는 했으나, 이 책의 힘을 쓰는 데에도 적지 않은 정신력이 필요했다. 고로 볼프강에게는 지금의 이 휴식 시간이 아주 알맞은 타이밍이었다.
30분 정도의 자투리 시간이었기에 잠깐 눈을 붙이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냥 어느 구석에 앉아서 잔뜩 긴장된 근육이나 풀기로 했다. 그렇게 적당한 자리를 찾는데 볼프강의 눈에 밟혀버렸다.
‘저 녀석...’
성의 벽을 기대고서, 검을 두 손에 꽉 쥔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자신의 후배인 파이 윈체스터를 말이다. 문과인 볼프강보다 씩씩하게 ‘전 단련을 열심히 해서 괜찮습니다!’ 라고 엄포를 넣던 참 활기찬 녀석이었는데, 저 녀석마저 저러고 있는 거라면 지금 상황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란 뜻이겠지...
그도 그렇고 재리에게서 귀띔으로 들었다. 파이는 현재 자신의 본래 능력을 무리하게 발현한 탓에 컨디션이 최상은 아닐 거라고. 늑대개 팀과 싸우느라 자신도 조금 무리한 탓에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볼프강은 자기 몸보다는 파이의 몸이 더 걱정이 되었다. 이건 그냥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그냥 선배가 후배를 걱정하는 마음...그래! 길에서 꾀죄죄한 고양이를 발견했을 때의 그 감정과 같은 거라고 볼프강은 자신을 세뇌했지만...
...그게 그럴 터가 있나. 볼프강은 타인은 잘 속여도 자기 자신은 잘 속이지 못했다. 거짓말쟁이로 살아가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적어도 자신에게만은 솔직해지기로 한 젊은 시절의 패기 넘치는 맹세 때문이었다.
그렇다, 이건 아주 사사로운 감정이다. 볼프강은 자신이 파이에게 품고 있는 이 감정이 어떤 형태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석의 서로 다른 극이 이끌리듯이 파이에게 다가가는 건 당연했다.
“이봐, 괜찮아?”
“으으...”
아프다는 듯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뜨는 파이를 보자니 볼프강은 더 걱정이 되었다. 자신은 이런 일을 그래도 몇 번은 겪은 베테랑이었지만, 파이는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햇병아리 – 볼프강의 시점 기준 – 였다. 혹여 탈이라도 났을까봐.
하지만 파이는 눈을 뜨자마자 너무도 가까이 있는 볼프강의 얼굴에 오히려 더 놀란 듯 했다.
“우, 우왁! 서, 선배!?”
“누가 보면 귀신이라도 본 줄 알겠네...”
“아, 제가 깜빡 잠들었었나요? 선배가 왔다는 건 교대 시간이라거나...”
“교대 시간 아니다. 넌 조금이라도 더 자. 보아하니 제정신 아닌 거 같은데.”
볼프강은 참 말투가 거칠었다. 그게 볼프강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지는 않았고, 주변인들이 볼프강에게 다가오는 걸 꺼려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파이도 이제는 얼추 안다. 한 꺼풀 벗기고 나면 선배라는 사람은 참 여린 인물이라는 걸.
파이는 옆에 앉는 볼프강을 보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검을 챙기는 폼을 보아하니 나가려는 모양이었다.
“요즘 들어 피곤해서 말이죠. 그래도 이제는 괜찮습니다. 그럼 전 이만...”
“뭐가 괜찮아? 이리 와서 더 쉬어.”
“네?!”
볼프강이 파이의 오른손을 억세게 잡았다. 그 손길에는 가지 말라달라는 완곡한 감정도 있는 거 같아, 파이는 어쩔 수 없이 볼프강의 옆에 앉았다. 서로 어색하게 굴 관계는 아니었는데 지금 처해진 상황이 상황인지라 태연하게 대화를 나눌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파이는 그렇다 쳐도, 경험이 풍부하다고 자부하는 볼프강도 그러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말을 걸어보려는 용기를 낸 건 파이였다. 뭐, 볼프강이 자기를 과보호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약간의 불만이 섞인 말이었지만 말이다.
“전 진짜 괜찮은데 말입니다.”
“넌 너 자신 믿지 마. 나나 재리가 말하는 걸 믿어.”
“그 말 조금 무섭게 들리는데요?”
“넌 널 너무 혹사시켜. 지금 상황이 상황이지만, 그대로 뻗어서 짐이 되는 것은 더 민폐를 끼치는 일이다. 알겠나?”
그렇게 또 한 수 배워갑니다...파이의 목소리에서 투덜거리는 뉘앙스가 확연히 묻어나왔다. 이번에는 볼프강이 물어보았다.
“그보다 너 그건 괜찮아?”
“그거요?”
“그거...시간을 조종하는 능력 말이야.”
“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자중하고 있습니다.”
전 슈에를 잊어버리고 싶진 않으니까요. 좋아하는 사람의 입에서 그 사람의 소중한 이의 이름이 올라온다. 그 인물이 파이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볼프강은 뇌로는 충분히 이해했지만...했지만!
마음만은 도저히 그러지 못했다. 이런 거에 마음 상하는 거 참 자존심이 없는 거 같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걸...아, 빌어먹을 더스트 말이 이건 맞다. 이성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그 뒤를 이어서 파이는 차분히 말했다.
“사실 슈에뿐만이 아니죠. 루나 양, 소마 양, 재리, 앨리스 양, 헤이...아주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렇게 중요한 것들도 자칫 잊어버려서는 안 되니까요.”
“...”
“아, 혹시 선배의 이름이 없어서 서운하시기라도 합니까?”
너무도 정확했다! 볼프강이 아무 말 하지 않았어도 파이는 표정에서 다 읽혀졌다며 주석을 덧붙였다.
“선배는 바로 옆에 있는데...이런 거 차마 쑥스러워서 말을 꺼낼 수가 없잖아요.”
그 말은? 볼프강의 두 눈이 빛났다.
“...선배에게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조금만 더 성실히 일만 해주신다면 정말 완벽한...”
감사의 말을 빙자한 설교 시간인가! 파이의 주특기가 나오자 그제야 볼프강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까 전의 파이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의 파이로 조금은 돌아온 걸 보자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선배! 귀여운 후배의 진심 어린 충고를 그렇게 웃어넘기실 생각입니까?!”
“네가 귀엽다고? 그건 어디서 배운 말이야?”
“그, 그것이...!”
파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볼프강은 저 원흉(?)이 누구인지 대강 짐작은 갔다.
보나마나 말썽쟁이 2호겠지. 뭐,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귀엽긴 하다. 하지만 귀엽다는 표현보다는 사랑스럽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파이에게는.
파이가 고개를 휘저으며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게 아니라며 다시 설교를 시작했다.
“하여간 선배는 도망가려는 쥐처럼 구멍을 잘 찾아다니시는군요. 전 그저 지금의 선배도 좋지만, 선배가 이러이러한 점만 고치면 더 좋은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에...”
“날 좋아한다고?”
볼프강의 난데없는 공격 시도에 파이는 또 멈칫거렸다. 그리고 곰곰이 자신이 방금 전 한 말에 무슨 의미가 내포되어있는지 따지기 시작했다. 파이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아, 그것이!”
이건 명백한 파이의 실수였다. 매사에 매우 솔직한 파이가 볼프강은 너무 좋았다. 심지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볼프강이 파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파이는 뒤로 몸을 내뺐지만, 뒤에는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볼프강이 웃음기가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부터 좋아했던 거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 좋아한다는 의미가 선배가 생각하는 그 의미가 아닐 수도...!”
“그래? 그런데 나, 감 좋은 편이거든? 그리고 그 감이 내가 생각하는 그 의미가 확실하다고 말하는데?”
“...”
아주 이런 쪽(?) 사냥에 특화된 사냥매에게 잡혀버린 꼴이었다. 이제 이 일로 볼프강이 자신을 잔뜩 골탕 먹이리라 생각한 파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질책하거나 놀리는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눈을 살며시 뜨니 아까 전과 같이 볼프강의 얼굴이 너무 가까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고백을 한 참이라 감정이 전후가 달랐기에, 파이는 볼프강의 얼굴을 계속 피했다.
파이는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오기까지 했다.
“서, 선배? 지금 이 상황...선배가 저에게 키스하려고 하는 상황인 거 같은데 말입니다?”
“맞는데. 뭔 불만 있어?”
“...”
오히려 행동자인 볼프강은 담담했다.
댕- 댕- 댕- 종이 쳐버렸습니다. 아, 종이 쳐버리고 말았습니다!
키, 키스라니! 볼프강의 속내는 알다가도 몰랐다. 아, 혹시 지금 자기를 좋아한다는 파이를 아주 작정하고 놀리려는 셈이었나? 그렇다면 정말 최악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볼프강을 거부하지 않는 파이가 있었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파이는 최후의 수단으로 볼프강에게 말했다.
“서, 선배! 자, 잠시만요!”
“왜, 또.”
침을 꼴깍 삼켰다.
“선배...키, 키스는...좋아하는 사람끼리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
파이의 예상치 못한 총공세에 이번에는 볼프강이 멈칫거렸다. 이대로 좋게 끝나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볼프강이 한 눈에 봐도 확 짜증나는 얼굴로 이렇게 쏘아붙였기 때문이다.
“거참 쫑알쫑알 말도 많네.”
“...”
아, 이 뜻은...자신은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강한 의사 표시였다. 파이는 도저히 볼프강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 눈을 또 질끈 감았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파이의 입술 근처에서 잠시 주춤하던 볼프강은 파이의 오른손을 들어서, 손바닥에 자신의 입술을 부딪쳤다. 아직도 눈을 딱 감고 잔뜩 경직되어 있는 파이에게, 볼프강은 아까 전의 살기어린 표정과 전혀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도 알고 있거든?”
“서, 선배...”
“그렇게 떨지 마. 나 너한테 나쁜 짓 안 해.”
“...그럼 방금 전 할 뻔 했던 건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파이의 싸늘한 대꾸에 볼프강이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볼프강의 정중한 사과(?)에 파이는 당황했다. 볼프강의 저 말과 행동의 의미는?! 그렇다는 건...!!
파이에게도 파이의 엄청난 ‘감(感)’ 센스가 작동되었다. 파이가 그런 볼프강을 싸늘히 내려다보며 무심히 말을 꺼냈다.
“선배.”
“왜.”
“제가 말했죠? 키스는 좋아하는 사람끼리 하는 것이라고. 그에 대해 선배도 동의했습니다.”
“그랬었지.”
그런데 그건 왜 말하는 거야? 그러자 파이가 채 가시지 않은 상기된 얼굴로 제안했다.
“그럼 하지 않겠습니까? 그 키스.”
“...”
하아, 도저히 널 이길 재간이 없다. 그렇게 생각한 볼프강은 자신의 앞에 있는 소중한 이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첫 키스의 맛은 아마도...솜사탕의 맛이라고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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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연말 기념 QnA : http://closers.nexon.com/board/16777337/14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