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Paradox(9)
건삼군 2018-12-26 0
“...배불러...”
“...난 속이 울렁거려...”
“그래? 난 더 먹을 수 있었는데~”
“음... 아까 그 소스, 집에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매우 고급진 음식들을 먹고 레스토랑에서 나온 우리는 그렇게 각자 한계 이상 위장속에 집어넣은 음식에 괴로워 하며 근처 벤치에 앉았다. 뭐, 아무래도 유리 이모는 아직도 더 먹을 수 있는것 같지만 말이야... 게다가 아빠는 나중에 집에서 만들어 볼 생각인 모양이고...
“그래서, 다들 앞으로 일정이라도 있나요?”
일정이 있냐는 바이올렛 씨의 물음에 모두들 고개를 저으며 딱히 예정은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바이올렛 씨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한가지를 제안하였다.
“그럼, 소화도 할겸 몸을 움직이러 가볼까요?”
몸을 움직인다고?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아무래도 요즘 조금 많이 먹어서 몸무게가 늘어난 것 같기도 하고...
바이올렛 씨의 제안을 듣고는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 나는 이내 바이올렛 씨의 입가에서 옅은 미소가 지는 것을 보고는 순간 오한을 느꼈다.
“자, 그럼 가죠. 도장으로.”
...도장? 도장이라면 그 검도나 무술을 훈련하거나 하는 곳을 말하는 건가?
어쩐지 불안감이 들며 내게 무언가를 경고하였지만 나는 속으로 별일 없을거라고 생각하며 순순히 모두와 함께 바이올렛 씨의 차에 탔다. 이내 모두가 차에 올라타자 유연한 엔진음과 함께 차가 움직였고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며 어딘가로 향하였다.
그렇게 차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쯤,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차가 멈춰섰고 이내 비서 아저씨가 도착했다며 내리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여긴...”
“도장입니다. 먹은 것을 소화 하기에는 대련이 최고죠.”
아무렇지도 않게 몰랐냐는 듯이 말하고는 먼저 도장 안으로 들어간 바이올렛 씨. 그래. 속았다. 난 무슨 공원에 가는 줄 알았지... 그냥 따라오지 않고 집에 가는게 좋았어...
하지만 어쩌냐. 이미 따라와 버렸는데. 설마 죽기야 하겠어?
어쩔 수 없이 모두와 함께 바이올렛 씨의 뒤를 따라 도장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이내 비서 아저씨가 나눠주시는 죽도를 하나씩 받아들고는 바이올렛 씨의 설명을 들었다.
“그럼 대전 방식은 토너먼트 형식으로 하죠. 룰은 직접적인 위상력 사용 금지, 대신 신체강화 같은 것은 가능. 그리고 유효타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승부가 나는 것으로.”
“그냥 기권해도 되나요...?”
“안됩니다.”
제일 먼저 귀찮다는 표정으로 기권해도 되냐고 물어본 아빠였지만 안된다는 바이올렛 씨의 즉답에 체념해버린 아빠.
“뭐 어때~ 그나저나 검도라... 오랫만이네~ 간만에 전력으로 해봐야지!”
그나저나 유리 이모는 즐거워 보이네. 왠지 모르게 나타샤도 이기고 싶다는 표정으로 가득한것 같고. 그런데 난 어쩌지...? 검도 같은거, 한번도 해본적 없는데...
“왜 그래? 검 휘둘러 본적 없어?”
“당연하지! 여기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미래에서는 미성년자는 위상 능력자라고 해도 절대로 현장에 투입되지 않는다고! 심지어 클로저도 되고싶은 애들만 되는거고!”
“그래...? 그건 다행이네. 평화로운 것 같아서.”
“...”
평화롭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미래에서는 차원종이 소규모로 1년에 한두번 출현할까 말까 하기 때문에 직접 현장에 투입되는 클로저도 수가 적고 평소에는 클로저라는 직업은 거의 경찰이 하는 일과 다를것이 없기 때문에 평화롭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평화가 원망스럽다.
항상 생각하게 된다. 어쨰서 그런 평화가 뒤늦게야 찾아왔는지, 대체 왜 내 부모님이 클로저라는 일 따위를 위해 날 버리고 떠나셨던 그때는 세상이 평화롭지 않았던 것인지, 그런 어린애 같이 애꿎은 평화를 원망하고 있다.
[쾅!!]
“?!”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와중, 갑작스레 들려온 굉음에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에는 바닥에 그려진 직사각형의 테두리 안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주변 바닥에 금이 가있었다.
“제법이군요. 서유리 씨.”
“언니도요. 그렇게 강한 일격은 처음봐요!”
“뭘요. 그래도 당신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했는 걸요.”
서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화를 나누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로 움직이고 있는 유리 이모와 그런 이모를 노리고 바닥에 금이 갈 정도로 죽도를 내리치고있는 바이올렛 씨. 뭐야 저거. 무슨 액션 영화? 저런거,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수 있는거 아니야?
아까 바이올렛 씨는 분명히 위상력의 집적적인 사용은 금지라고 하셨다. 즉, 유리 이모랑 바이올렛 씨 두분 모두 그저 신체강화만 하고 계시다는 소리다.
“...대체 인간이 뭘 어떻게 하면 저렇게 싸울 수가...”
“뭘. 저 정도는 양반이야. 나타는 대련 할때마다 진짜로 살의를 가지고 공격한다고.”
“...나타 아저씨가? 왠지 묘하게 납득이 가긴 하네...”
그 승부욕이 넘치는 아저씨라면 그럴만도 하지. 게다가 젊었을 적에는 내가 알고있는 모습보다 더 통제불능이라고 소영 아줌마가 그랬었으니까...
“동작 그만! 무승부 입니다.”
유리 이모와 바이올렛 씨가 서로 대련하고 있던 걸 보던 와중, 두분 모두 서로에게 돌진하며 교차한 그 순간, 비서 아저씨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종료를 알렸다.
무승부로 판결나자 바이올렛 씨와 유리 이모는 서로를 마주본채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고 두분 모두 붉게 부어오른 이마를 문지르시며 직사각형의 테두리 바깥으로 나오셨다. 아무래도 마지막 그 순간에 서로 같은 곳을 떄리셨나보다.
“후... 좋은 승부였어요 서유리 씨.”
“네! 정말로 좋은 승부였어요 바이올렛 언니!”
그렇게 서로를 칭찬하며 근처에 앉아서 구경하고있던 우리에게 다가오신 두분은 이내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우리들의 옆에 앉으셨다.
“그럼, 이번에는 이세하 씨와 이세리 양이 대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네?”
내가 방금 잘못 들었나? 나보고 아빠랑 죽도로 대련해 보라고? 아니, 나 검도같은거 해본적도 없는데?
“괜찮을 거에요. 이세하 씨는 아마 적당히 봐주실 테니까요.”
“저기, 전 아직 한다고 한적....”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전 검도 같은거 해본적도 없는데...”
“그냥 내키는대로 휘두르세요. 그거면 충분해요.”
“저기요, 제말 듣고계신....”
옆에서 바이올렛 씨에게 무시당하는 아빠를 무시하며 일단 최대한 거절해 보는 나지만 밝게 웃으시며 괜찮다고 말하시는 바이올렛 씨의 얼굴을 보니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다... 왠지 이상하게 웃는 얼굴에서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지는 건 기분탓 인가...?
결국 거절하는데 실패한 나는 마지못해 죽도를 쥐고는 몇번 휘둘러 보았다. 뭐랄까, 일단 나도 위상 능력자라서 무겁진 않은데 그래도... 휘두르는게 영 불안하다.
“그럼 어서 시작하시죠.”
그렇게 해서 난데없이 갑작스럽게 아빠와 죽도로 대결을 펼치게 된 나는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됬냐고 속으로 한탄하며 의욕없는 얼굴로 죽도를 쥐었다. 그나저나 아빠의 얼굴 또한 의욕없다는게 훤히 보일정도로 귀찮아 보인다.
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