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Paradox(8)
건삼군 2018-12-26 0
“...미쳤어, 다들 미쳤어...”
“동감이야...”
만약 내가 알고있는게 맞다면 마트에 장을 보러오면 보통은 많아야 카트가 가득 차는 정도 사는게 정상이다. 왜냐하면 카트가 가득 차도록 많이 샀다는 것은 적어도 1달치 생필품을 샀다는 소리니까. 가격도 그만큼 많이 나갈테고.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두명의 부르주아들은 내 상식을 넘어섰다.
아빠라는 작자는 살게 별로 없다면서 세일하던 과일이나 야채, 혹은 고기들을 싸그리 긁어왔고 그 옆의 대기업 사장님은 딱 봐도 필요없는 고급 물품들을 잔뜩 사가지고 자신의 비서에게 들게하고 있다.
“흠... 총 89만원이라, 매우 저렴하게 샀군요.”
“네, 아가씨. 아가씨가 쇼핑하시면서 지출하신 최저금액을 달성했습니다.”
89만원이 쇼핑하면서 쓴 최저금액이란다. 돈** 스케일 한번 엄청나네.
“...세일에 눈이 멀어서...”
난 몰라. 어차피 내가 돈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부르주아들끼리 돈을 펑펑쓰고 살라고 그러지. 신경써봤자 머리만 아프니까.
“그럼,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가볼까요 하이드?”
“네, 아가씨. 어떤 메뉴를 드시고 싶으십니까?”
“음... 오늘은 프랑스 요리... 아니, Caviar를 먹고싶군요. 이왕이면 Velouté 도 먹고싶군요.”
네? 뭐라고요? 카비아... 뭐시기? 벨라... 뭐? 대체 뭔 요리야 그건? 아니, 그 이전에 무슨 요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어째서 비싼 음식이라는게 확 느껴지는 거지?
“네. 알겠습니다 아가씨. 바로 안내드리겠습니다.”
“아, 여러분도 초대할테니 차에 타시죠. 점심은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언니!”
일단 바이올렛 씨의 말에 환호하는 유리 이모였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얼굴을 굳힌 채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곧 먹을 음식의 가격이 엄청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겠지.
하지만 상대방이 사준다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다. 게다가 상대가 대기업 사장님이라면 얼마든지 미안한 마음 없이 받을 수 있지.
그렇게 해서 일단 차에 타게된 나는 뒤늦게 차 또한 엄청난 고급 차라는 것을 깨닿고는 헛웃음을 지으며 좌석에 앉았다.
정말이지, 부르주아란 역시... 대단하다.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그냥 신경쓰지 말자고 다짐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내가 줄곧 보아오던 미래의 길거리와는 어딘가 사뭇 다른 길거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난 지금 대체 여기서 뭘 하고있는 걸까. 아니, 무엇을 하고싶은 걸까.
처음에는 그저 부모님을 향한 원망밖에는 없었는데 이렇게 막상 같이 일상을 조금 지내보니 이제는 그런 원망조차도 정녕 원망이 맞기는 하는지 스스로 의심이 든다. 사실, 나는 원망따위는 하고있지 않았던 것 아닐까? 아니, 그럴리는 없을거야. 정말로 원망하지 않는다면 겉으로는 웃고있는 지금도 이렇게 마음이 답답하고 화가 날 리가 없을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아빠와 함께 일상을 지내보니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만약 아빠가, 부모님이 날 떠나가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과 같은 행복하고도 평범한 일상을 지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아빠는 친절하면서 엄마한테 잡혀사는 아빠로, 엄마는 잔소리가 많으면서 한편으로는 부드러운 엄마로, 그리고 나는 말썽도 일으키고 가끔 부모님 속을 썩히는 딸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미래를 바꾸고 싶다. 엄마 아빠 없이 힘든 나날을 지내야 했던 내 인생을 평범하고 행복한 나날로 바꾸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왔습니다. 내리시죠 여러분.”
...일단 내릴까.
식당에 도착하자 나는 이내 생각하던 것들을 정리하고는 차에서 내려 일행과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예상대로 식당은 5성급 고급 레스토랑이였고 들어가자 마자 고급진 인테리어와 엄청나게 호화스러운 복장들을 하고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있었다.
“...나 여기서 나갈래.”
“...나도.”
불편하다 못해 숨이 팍팍 막힌다. 너무나도 고급진 분위기가 나에게 여긴 내가 있어도 될만한 곳이 아니라듯이 날 거부하고있다. 게다가 나타샤도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고...
하지만 모처럼 바이올렛 씨를 따라온 것인데 여기서 그냥 나가버리면 실례다. 아무리 갑갑하더라도 참고 다 먹기 전까지는 나가지 말아야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까 바이올렛 씨가 19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사주신 원피스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있던 다른 사람들의 복장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아마 눈에 띌 일은 없겠지...
“우와~! 여기 음식들, 엄청 맛있어보인다!!”
“야, 서유리. 조용히 해...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고....!”
...방금 전 말 취소. 유리 이모 때문에 벌써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들을 받고있어...
“여러분, 일단 다들 앉으시죠. 메뉴는 그 다음에 정하고요.”
그렇게 다소 소란스러워진 주변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로 울려퍼진 바이올렛 씨의 목소리에 다들 테이블에 앉고는 메뉴판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나도 빨리 메뉴를 정해볼까?
메뉴판을 넘기기 시작하며 메뉴를 둘러보던 나는 이내 먹음직스러운 고기요리가 찍혀있는 사진을 보고는 고기요리의 이름을 천천히 발음해 보려고 하였다.
“피, 필레미아... 뇽?”
“필레미뇽. 소고기의 안심부분을 사용한 프랑스식 스테이크야.”
영어, 아니 프랑스어? 로 적혀있던 탓에 간신히 대충 발음하는데는 성공 하였지만 내 옆에 앉아있던 아빠가 내 발음을 정정하며 어떤 요리인지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익숙해 보여? 이런데 온적 있어?”
“그냥, 예전에 몇번인가 엄마가 이런 고급진 레스토랑에 초대되었을 때 같이 따라간 적이 있었거든. 게다가 호기심 때문에 프랑스 요리를 집에서 몇번 해본적도 있고.”
프랑스 요리를 집에서? 뭐야, 요리 잘한다는거 사실이였어? 그나저나 대단하네... 난 할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밖에 없는데. 정확히는 컵라면.
“...그런데 왜 어제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려고 했던거야...?”
“그야 요리하는데 오래걸리고 귀찮으니까.”
그래. 인정하긴 싫지만 사실은 인정해야겠다. 아무래도 난 아빠하고 닮은 것 같다고.
“그럼 모두들, 메뉴는 정했나요?”
내 스스로 나와 아빠의 공통점을 인정하며 한숨을 내쉬고있던 그 순간, 바이올렛 씨가 정신없이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유리 이모와 영어... 아니, 프랑스어를 읽는데 어려움을 겪고있는 니티샤를 바라보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모두가 메뉴를 정했는지 다들 메뉴판을 접으며 웨이터를 불러 각자 시키고 싶은 음식들을 시켰다.
그래. 이런 비싼 레스토랑에 올 기회가 평생 한번밖에 없을텐데 이왕 이렇게 된거 실컷 먹어야지.
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