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산타는 믿지 않아
루이벨라 2018-12-26 4
※ 짧음주의
※ 뒤늦은 크리스마스 연성
“세하는 산타를 언제까지 믿었어?”
“산타?”
크리스마스 캐롤이 공기 중으로 떠다녀야 할 거 같은, 누가 봐도 크리스마스요~ 라는 장신구들이 주렁주렁 달린 거리를 거닐다 유리가 세하에게 문득 던진 질문이었다. 세하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즉각 대답을 내놓았다.
“기억에는 없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산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린 거 같아.”
“응?”
“난 산타는 믿지 않아.”
조금은...동심이 와장창 파괴되는 답변이었다. 유리가 원하는 방향의 답변이 아니었기에 유리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면서 하는 불평이 바로, 자신의 애인의 꿈이 없는 어린 시절이었다.
“세하는 가끔씩 보면 너무 애늙은이 같아.”
“일찍 철이 든 거나, 아니면 너무 현실을 일찍 깨달아버린 거라고 표현해 줘.”
“그거나, 그거나.”
“그리고 내가 산타를 믿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우울한 이유도 아니야.”
엄마가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미니스커트 산타 옷을 입고서 선물을 주는 통에 알아차린 것뿐이라고. 세하의 변명 아닌 변명에 유리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세하는 멋쩍었는지 얼굴을 긁적였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나에게 있어서 세상 그 자체였으니까. 그래서 산타가 없다는 걸 알아도 그렇게 슬프지 않았어. 난 그게 당연하다고도 느꼈어.”
오히려 산타는 없다는 걸 알아서 안도감마저 느꼈더랬다. 이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유리는 자신의 얼굴에 훈훈한 미소가 저절로 퍼지는 걸 느꼈다.
“세하는 아주머니를 정말로 사랑하는구나.”
결론이 약간 이상하게 나온 거 같았지만, 거짓이 아닌 사실이었기에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입단속은 확실하게.
“이거 엄마 앞에서는 비밀이다?”
“네네, 알겠습니다.”
유리는 장난스럽게 경례를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세하는 아프지 않을 정도로 유리의 볼을 꼬집었다. 유리는 손바닥을 핀 채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 어느 순간, 갑자기 내가 속해지는 세상이 넓어지는 기분. 산타가 사실은 없다는 걸 깨달을 때라던가, 높기만 하던 철봉이 어느 순간 작아지는 때라던가...”
“...지나간 과거를 계속 그리워할 때라던가.”
“응...그런 거.”
유리는 잠시 침울해졌다. 덩달아 세하도 그러했다.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이 넓어질수록, 내가 감당할 수 있던 세계가 작았을 때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 작은 방 안에서는 어디든 자신의 손이 뻗어가는 곳이었으니까. 그러면 지금은? 하나를 바라보고 그 곳을 향해 전력질주를 해도 아직 닿지 않는 경향이 허다했다.
이번에도 질문은 유리가 먼저 했다.
“세하는 그럼 언제 세상이 넓어졌어?”
“난 아직도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이 작다고만 느껴져.”
“의외네?”
“그만큼 난 겁쟁이라는 뜻이기도 하지.”
아직, 난 엄마의 그늘에 속해 있다는 기분이 들거든.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세계의 크기는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세계를 넓히려는 욕망도 없었다. 자신은 이제 너무 커버려서 그 방이 비좁게 느껴질 법도 한데.
그래도 모든 면이 비좁은 곳은 아니다. 한 쪽 면만은 무한하게 뻗은 길이 있었다. 그 앞에 있는 것은...
세하는 웃음이 터졌다. 당연히 너 말고 누가 있겠니.
세하는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연인의 손길에 당황했지만, 세하의 손은 크고 따뜻해서 유리는 익숙하게 그 손길을 느꼈다.
그렇게 한창 걷는데 유리의 뺨 위로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졌다. 흐리던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육각형의 정교한 결정이 장갑에 닿자 유리가 말했다.
“아, 눈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소복하게 쌓일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눈 때문에 거리에 있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빠지는 것이 보였다. 그 인파 속에서 세하와 유리만은 느긋하게 거리를 거닐었다. 조금 더 이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리가 먼저 세하의 손을 잡았다. 항상 이렇게 이끌려 다니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 이끌림으로 인해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이 내 안에도 생긴 거니까.
유리는 티 없이, 세하의 옆에 서서 현재의 행복을 같이 나누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응.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
그에 대한 보답을 세하도 똑같이 하였다. 눈은 그칠 줄 몰랐다.